〈 107화 〉 명예훼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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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살인 사건의 범인은 아주 흔쾌히 조사에 응했다.
이럴거면 도대체 뭐하러 범행을 숨겼나 싶을 정도.
그래도 결정적인 증거물이 확보된 이상, 이쪽이 피차 편하고 좋다.
그를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 나는 보기보다 차분한 분위기에 살짝 놀랐다.
아무래도 정신이상을 주장하려는 것은 아닌 모양.
범인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점심 못 드셨죠?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습니까?"
"괜찮다면 햄버거를 좀 먹고싶네요. 못 먹은지 좀 돼서..."
"햄버거 좋죠. 버거갓?"
"프밀 버거로. 거기 치즈프라이와 밀크셰이크가 꼭 먹고싶어요."
내가 요청을 들어주자 범인은 아주 맛있게 햄버거를 해치웠다.
지금껏 햄버거 살 돈도 없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리라.
체포 당시, 그의 집은 이미 전기와 가스가 끊겨있었다고 한다.
헌터 연금이 들어오는 족족 빠져나가서 생활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피해자를 왜 죽였냐고 묻는 것은 너무 무례한 질문이리라.
그가 피해자에게 광고비로 지급했던 자금은 총 6천만원.
가게에 들어갔던 돈까지 합치면 사람 한 명 죽이기엔 충분한 금액이다.
살인범 청은호 씨는 던전 공략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던 헌터다.
그것도 20여년 전부터 활약했던 1세대 헌터!
그의 솜씨는 피해자의 사체를 능숙하게 해체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영웅이라 불려야 했을 그가 이런 자리에 잡혀있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그가 블랙 로터스와 연관되어 있을까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사체의 처리야 헌터로서 익힌 기술 덕분이라고 쳐도, 감시 카메라를 피하고 헌터 능력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 등등. 범죄자로서도 지나치게 능숙한 움직임을 보여준 감이 있었다.
"공범은 따로 없다고 하셨는데... 혹시 범죄 계획 수립에 도움을 받았던 곳이 있습니까?"
"없진 않죠. 범행 직전에 헌터 범죄 수사 과정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어서..."
"네? 그게 누굽니까?"
살인범은 피식 웃더니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그의 대답에 황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요?"
"일본에서의 헌터 범죄 강의, 한국에서도 방송됐습니다. 좋은 강의더군요. 저 같은 초보도 알아듣기 쉬웠죠."
"..."
아연실색했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했던 사태다.
기껏 헌터 범죄를 막기 위한 노하우를 공유했는데, 그걸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다니.
강한 두통에 시달리던 나는 진심으로 한탄했다.
"강의를 제대로 안 보셨군요. 원한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지인에게 범죄를 저지르면 검거율이 하늘까지 치솟는다니까요..."
"그 부분은 놓쳤나보군요. 집에 TV가 제대로 안 나와서 틈틈이 훔쳐봤거든요."
또다시 씁쓸한 소리를 해댄 그가 속내를 토로했다.
"... 잘 해보려고 했습니다. 살인 말고, 은퇴 이후의 생활 말입니다. 빚을 떠안고 망해버렸을 때도 어떻게든 갚으려고 했죠. 그런데 몸이 부서져라 일해봤자 이자도 제대로 못 냈습니다."
헌터로서 복귀하고 싶어도 능력이 약화된데다, 시장 자체가 축소되는 추세라서 불가능했다.
그의 소지품은 소박하기 그지없어서... 마음대로 팔아먹지도 못하는 헌터 장비들과 헌터 협회에서 나온 감사장 뿐이었다.
그것이 그에게 남아있었던 전부였다.
"그런데 그 기레기 놈은 사지 멀쩡히 잘 먹고 잘 살더군요. 저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주제에... 그래선 안 되는 것 아닙니까?"
"..."
사실 그의 말이 꼭 틀린 것도 아니다.
언론의 지대한 영향력에 비하여, 그들이 지는 책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멋대로 담보로 삼아서 돈을 버는 것이 언론이다.
그들이 펜과 키보드로 저지르는, 손쉬운 살인은 제대로 처벌조차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해도...
이 사내가 이번에 저지른 짓은 인간들의 사회에서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짓이다.
생활고에 쪼들리고 있던 그에겐 차라리 헌터 전용 감옥이 더 편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머지 심문까지 모두 마쳤다.
"여기서 지내시는 동안 드시고싶은 게 있으면 밥 때마다 말해주시죠. 그럼..."
씁쓸한 기분으로 방을 나선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피해자가 근무했던 언론사는 이미 경쟁사들에게 낱낱이 해체되고 있었다.
기자들의 책임회피가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라지만...
이번에는 그 궤가 많이 다르다.
친인척 채용은 둘째치고, 광고주에게도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발각되어버려서, 현재 신문사의 가장 주요한 수입원인 광고가 다 끊기게 생겼다고 한다.
"기묘하군."
덕분에 기분이 좀 풀려서 욕실로 향하려는데...
예리엘이 돌연 내게 찰싹 따라붙더니 작게 이상한 소리를 냈다.
"꽥꽥."
"... 역시 들었던 거야?"
"꽥."
"미안한데 난 목욕할 때 오리 같은 거 필요 없다니까..."
"하아... 정말요?"
내 철벽수비에 살짝 아쉬워하는 예리엘.
겨우 욕실의 평화를 지켜낸 나는 마음 편히 주말을 보낸 뒤 완전 부활 상태로 출근했다.
그런데, 출근하자마자 우편물을 살펴보던 김정태의 얼굴이 영 심상찮았다.
"음? 이건..."
"뭔데? 보여줘봐."
[도와주세요.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서류봉투 안쪽에는 그런 내용의 종이가 들어있었다.
경찰이 아니라 우리에게 직접 보내다니.
우리도 이제 제법 유명해진 것 같다.
내가 살짝 어이없이 생각하면서도 안쪽을 탁탁 털어내자...
돌연, 탁! 하고 자그마한 카드가 하나 튀어나왔다.
나는 그것을 보곤 얼굴을 굳혔다.
"음? 이건..."
헌터증.
봉투 안에는 헌터 협회에서 직접 발행하는 신분증이 들어있었다.
이건 오직 현역 헌터들에게만 나오는 물건으로, 주민등록증보다 더한 수준의 위조 방지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내가 잽싸게 마력을 끌어올리자 카드의 표면에 익숙한 문양이 나타났다.
"진품이네? 정태야, 이거 일련번호 확인 좀 해봐."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현역 헌터입니다."
"뭐지?"
알 것 다 아는 B급 현역 헌터가 특수대에게 장난을 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제야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믿을 수 있게 됐다.
옆에 있던 서지유는 벌써부터 본인의 일처럼 호들갑을 떨어댔다.
"근데 왜 직접 안 오고 이런 걸 보냈대?"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다잖아요. 아마 감시당하고 있겠죠."
"그럼 보호라도 해달라고 하든가."
작게 투덜거리면서도 편지의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자 비로소 자초지종이 드러났다.
피해자는 대형 길드 소속의 현역 B랭크 헌터로, 스토커 의심 대상과 함께 던전을 공략했다고 한다.
그런데... 던전에서 해당 동료를 구해준 이후 자꾸만 이상한 시선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동료의 능력이었다.
"천리안 능력자라. 이건 탐색계로 현장에서 뛰는 경우가 종종 있지."
"천리안 능력자가 스토킹을 해요? 그럼 사실상 못 잡는 거 아닌가요?"
"뭐, 많이 힘들겠지? 몰카 같은 것과는 달리 증거도 뭣도 안 남을테니까. 피해자 근처에서 목격되지도 않을테고 말야."
보통 천리안 능력자가 뭘 봤는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설령 그들이 뭔가를 관음하는 취미가 있다고 한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굉장히 까다로운 일이 되겠지.
그렇다고 피해자가 완전히 헛된 걱정을 한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
천리안 능력의 종류에 따라선 실제로 미약한 마력 반응 따위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녀도 아무런 확신없이 특수대에 도움을 청하진 않았으리라.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스토커가 어제의 저녁 식사를 맞췄다거나, 때마침 보려고 했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는데... 아쉽게도 녹음파일 같은 건 없군."
"뭐, 그런 걸 일일이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니까. 일단은 조사를 해주는 게 어때?"
앨리스가 옆에서 은근슬쩍 피해자를 두둔하자, 나는 어렵지 않게 동의했다.
"먼저 상황파악부터 제대로 하고 가자."
나는 즉시 피해자의 주장이 맞는지 검증부터 시작했다.
데스크톱을 켜고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서 던전 공략 기록을 열람.
그녀와 스토킹 용의자는 실제로 해당 일자에 던전을 공략했다고 되어있었다.
내친김에 영상 기록과 보고서 자료까지 훑어보자 그녀의 주장에 무게가 더해졌다.
"던전 공략을 진행하다가 두 사람이 본대에서 따로 떨어졌군. 그래서 전투계인 피해자가 천리안 능력자인 용의자를 보호해줬던 거야."
"그럼 그 때 호의를 품었을지도 모르네."
"그렇지. 그 호의가 스토킹 행위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없진 않아."
용의자에겐 좀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외모는 아니었다.
반면 피해자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진짜배기 미인들에게 둘러싸인 내가 하는 소리니까, 이건 확실하다.
"지유 씨, 출동 준비해."
"네에? 제가요?"
"그래. 피해자의 동료들에게 카톡으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지유 씨가 직접 가서 조용히 증언을 받아와. 당연하지만 용의자에게 들키면 안 돼."
"아하. 맡겨주세요."
이젠 서지유도 헛소리 안 하고 제법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줬다.
그녀는 이것저것 준비하고 챙기는 체를 하면서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기요, 만약 사건성이 있으면 추가로 조사할 때 저랑 같이 나가주실래요?"
"지유 씨... 사건 가지고 그런 내기 하는 거 아니야."
"아, 죄송..."
"그리고 사건성이 있든 없든 하루 정도야 뭐..."
"아앗! 알겠어요. 확실히 조사하고 올게요!"
서지유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호다닥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녀의 보고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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