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명예훼손(3)
* * *
거듭된 야근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이틀 동안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신문사의 임원진은 우리가 노는 줄 아는 듯, 삼일째 아침에 우르르 몰려왔다.
덕분에 나는 머리도 못 감은 꼴로 그들을 맞이하게 됐다.
"바쁜데 뭡니까?"
"도대체 범인은 언제 잡히는 겁니까? 직원들도 다들 불안해해서..."
"그러게 나쁜 짓 좀 작작 하시지. 용의자가 너무 많은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구요?"
나는 답답한 심정으로 용의자 명단을 내밀었다.
사진과 함께 이름과 간단한 신상명세가 기재되어 있는 명단이 몇 장나 된다.
사장은 그것을 보곤 안색을 굳혔다.
"용의자가 이렇게 많다구요?"
"범죄에 사용된 헌터 능력이 미상이니까, 범행 동기를 바탕으로 조사해야 하죠."
그들에게 최대한 간단히 설명해주려고 애썼지만, 불행히도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것은 몇 명 없는 눈치였다.
"여기 있는 인원들은 피해자의 보도로 큰 피해를 입고, 현재 재정상황이 어려운 헌터입니다.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이 정도입니다."
"그, 그런 게 아니라 정신이상자의 범죄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왜, 지나가던 미친놈에게 찔렸다든가..."
신문사의 사장은 이번 사건이 원한범죄라고 여겨지는 것이 영 불편한 눈치였다.
나는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달았다.
피해자의 행적이 보통 구린 것이 아니라, 벌써부터 경쟁 언론사들이 마구 찔러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나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그의 의견을 반려했다.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지나가던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서 목매단 다음에 배를 갈라서 장기자랑을 하겠습니까?"
"사이코가 괜히 사이코가 아니잖습니까."
"이번 사건은 철저하게 계획된 범죄라니까요. 피해자 탐색부터 도주 경로 선정까지 사전에 다 정해두고 실행에 옮긴 건데 무슨 사이코입니까?"
백 번 양보해서 이게 소시오패스의 범죄라 쳐도 말이 안 된다.
골목에서 피해자를 산 채로 해체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지나치게 높은 일이다.
만약 전시의 목적이 없었다면, 피해자를 납치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리라.
아무리 새벽이었다 해도. 그 난리를 치는데 목격자가 아예 없었던 것은 천운이었다.
놈은 운이 좋아서 지금껏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범행 시작에서 도주까지 그토록 깔끔하게 처리했는데 이 부분에서만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무척 아쉬워하는 신문사의 사장에게 엄포를 놓았다.
"이 명단이 유출되면 그 날 회사 문 닫을 줄 아십쇼."
"아, 아니 그런..."
"이런 범죄는 평소 친했던 지인이 저지르는 경우도 많은데... 그쪽도 한 번 조사해볼까요?"
내가 압수 수색을 암시하자 곧바로 달아나버리는 임원진.
그 뒤로도 용의자를 줄여나가던 나는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했다.
이틀만에 집에 돌아오자, 예리엘이 아예 목욕물을 받아놓고 기다려줬다.
나는 너무 뜨거운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저 감사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슬슬 입욕을 하려던 중. 티아가 문득 내게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 인터넷 기사에 어떤 댓글을 쓰면 고소당할 수 있는 건가요?"
"너 요즘 댓글달고 다니니? 만약 고소당하면 바로 살처분 한다?"
"아, 아녜요! 그냥 궁금해서요."
티아가 열심히 고개를 젓자,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설명해줬다.
"보통 댓글 달아서 고소를 당한다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지. 가장 중요한 건 보편적인 욕설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 거야."
"보편적인 욕설이요?"
"예를 들어서 시발, 개새끼. 같은 거 말야. 보편적인 욕설을 쓰는 순간 손쉬운 표적으로 찍히거든. 합의금 장사 목적으로 고소를 남발하는 경우도 없진 않으니..."
"개새끼는 주인님도 자주 사용하시잖... 우와앗!"
"내가 언제 그걸 자주 썼다고 그래? 그리고 나는 그걸 댓글로 쓰진 않아."
나는 티아를 응징하며 욕실로 걸음을 옮겼다.
녀석은 아주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왔다.
"물론 특정성도 조심해야지. 인터넷 댓글 정도로 처벌을 받게 될 확률은 낮지만, 고소당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그냥 안 쓰는 게 최선이야. 근데 너는 어디까지 따라오려고 그러니?"
"오늘은 고무 오리 대신 헌터펫 드래곤으로 어떠신가요?"
"나는 목욕할 때 고무 오리 같은 거 안 쓰는데."
"엑..."
혹시라도 예리엘이 따라할까봐 냉큼 티아를 내쫓고 입욕.
적당한 온도의 목욕물에 몸을 담그자 티아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명예훼손... 확실히 어려운 분야다.
개인적으론 그런 건 악용될 여지가 너무나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사사건건 잡는 것은 반대다.
'피해자도 명예훼손 사건에 수도없이 엮였지만, 대부분은 가벼운 모욕 수준이었으니까 정작 그쪽에서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거의 없었단 말이지.'
차분히 생각을 이어나가던 나는 돌연 머릿속에서 뭔가 번뜩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 사건에선 블랑쉬까지 동원했는데, 아직까지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지 않았단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이건 내가 뭔가 기본적인 부분에서 실수를 했다는 뜻이다.
"잠깐만. 명예훼손의 성립 조건은... 설마?"
주르륵...
나는 그대로 욕조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들곤 블랑쉬에게 요청했다.
"블랑쉬. 아무래도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광고야! 피해자의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 말고, 광고 기사를 맡겼던 헌터들 중 용의자가 될만한 인물을 찾아봐!"
[광고인가요? 찾았습니다.]
블랑쉬는 곧바로 유력 용의자를 한 명 띄워올렸다.
검색 방식을 바꾸자, 좀 허무할 정도로 갖가지 조건이 딱딱 맞아떨어졌다.
허겁지겁 몸을 닦고 거실로 나가자 앨리스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봤다.
"뭐 해?"
"찾았어. 최유력 용의자."
"뭐?"
"봐봐. 피해자와 엮여있고, 현재 재정상황이 어려우며 사건 전날과 당일에 현장의 카메라에 노출된 인물이야. 아무리 그래도 사전 탐사까지 모두 들키지 않고 진행할 수는 없었겠지."
"하지만... 이 사람은 용의자 명단에 없었는데?"
내가 설명하려 하자 블랑쉬가 담담히 말했다.
[광고입니다.]
"광고?"
[네. 용의자는 42세의 은퇴 헌터로서 퇴직금을 이용해 음식점을 개업했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흔하디 흔한 비극이 시작될 조짐을 감지한 앨리스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블랑쉬는 담담히, 평소엔 쓰지도 않았던 기계적인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 때 용의자에게 접근한 것이 바로 XX일보의 헌터부 기자... 즉, 피해자입니다. 피해자는 상당한 금액의 광고비를 요구하며 용의자에게 홍보성 기사를 제안했습니다.]
보통은 기자가 아니라 블로거 등의 인플루언서들에게 일을 맡겼겠지만...
피해자는 본인이 정식 기자란 것을 강조했다.
사실 인플루언서라는 것의 원조가 다름아닌 기자들 아니겠는가?
용의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덥썩 광고를 맡겼다.
"그래서, 피해자가 돈을 먹고 날랐던 거야?"
"그것보다 훨씬 나빠."
"뭣?"
[피해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홍보성 기사를 실어줬습니다.]
문제는 그 기사가 정말 너무나도 구렸다는 것이다.
음식이 최대한 맛없어보이게 찍은 것 같은 사진과 없는 게 나은 수준의 홍보 멘트, 철지난 유행어까지...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서 망친 것 같은 홍보였다.
이 정도면 거의 악마의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피해자는 전부터 헌터들은 물론이고 일반 구독자들에게도 악명이 자자해서, 광고를 요청한 용의자도 도매로 묶어서 욕을 먹게 됐다.
별점테러 같은 것은 예사고 노쇼를 하거나 유리창을 깨고 달아나는 사건까지...
결국 홍보성 기사가 나간 직후부터 매출은 급격히 떨어져서, 가게는 불과 2개월만에 폐업됐다.
용의자는 퇴직금을 모두 날려먹고 거액의 빚까지 생겼다고 한다.
앨리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더듬더듬 내뱉었다.
"근데 왜 우리가 눈치를 못 챘던 거지?"
"용의자가 사기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를 했지만, 패소했거든. 그래서 용의선상에서 일찌감치 벗어나 있었던 거야."
"패소?"
"명예훼손이 성립되기 위해선 말 그대로 대상의 명예를 훼손해야 해. 다시 말해서, 해당 보도로 인해 명예가 훼손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처벌을 받지 않아."
피해자는 용의자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가 없었다.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해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해줬다.
결과적으로 홍보가 악재로 작용하고, 가게가 폐업됐을 뿐.
기사의 내용 자체는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홍보처를 잘못 골랐다는 거지."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블랑쉬, 지금 당장 용의자의 주소로 대원들을 보내줘."
[네, 마스터.]
결국 용의자는 날이 넘어가기 전에 체포됐다.
자택에서 증거물도 다수 발견되어서, 아주 수월하게 확보.
대원들은 다음 날 내가 출근하기 전에 놈의 자백까지 받아놓았다.
불행히도 블랑쉬가 조사한 내용에는 한 점의 거짓조차 없었다.
내가 취조실의 용의자를 구경하고 있자 앨리스가 다가와서 물었다.
"증거물이 있다면서? 뭔데?"
"피해자의 내장 일부가 냉장고에서 발견됐어."
"뭐어?"
"용의자는 아예 경고와 공익의 목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중이야."
불쌍하게도, 너무 말도 안 된 짓을 당한 탓에 맛이 가버린 것이리라.
어쩌면 심신미약을 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이미 빚 때문에 병원비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니...
어쩌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치료까지 해주는 헌터 전용 교도소가 나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내를 보며 작게 치를 떨었다.
"진짜 역대급 피해자였다."
"주인님. 이 정도면 정말 공익 목적으로 인정해줄 수 없나요?"
"되겠냐? 너를 먹여살려주고 있는 나도 보조금 한 푼 못 받고 있는데."
"우우..."
우리는 사건을 모두 정리하곤 그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은 늘 그랬듯 신이 나서 경쟁사를 난도질해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