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명예훼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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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조사를 완료한 나는 사건을 간단히 재구성해봤다.
피해자는 밤 늦게까지 동료들과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야 귀가하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골목으로 끌려들어가서 범인의 습격을 받은 것이지만...
사실 서울에는 골목다운 골목이 거의 없다.
특히 이번 범행 현장은 신문사 근처라서 갓길주차가 되어있는 차량이 엄청나게 많았다.
새벽이라 문을 닫은 가게들 사이의 골목.
피해자는 그 사이로 끌려가서 목이 매달린 뒤, 살아있는 상태로 해체됐다.
사인은 혈액 부족으로 인한 쇼크사지만 느리고 고통스럽게 죽었다.
범인이 피해자를 굳이 중세시대 유럽 스타일의 교수형으로 처리한 것은, 놈을 가축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불행히도 근처 차량의 블랙박스엔 범인의 모습이 제대로 찍히지 않았다.
일부러 품이 넓은 옷을 입어서 체형을 숨기고, 도주할 때에는 건물의 벽을 기어올라갔다.
따로 계단이나 손잡이가 될만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헌터 특유의 운동능력으로 극복했다.
흉기는 평범한 헌팅 나이프.
헌터 능력은 따로 사용하지 않은 것 같다.
'일단 헌터 범죄인 건 확실한데... 용의자가 뭐 이렇게 많아?'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결코 좋은 기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한국 최악의 기자를 당당히 노려볼 수 있을만한 인재였다.
나는 용의자 목록을 읽어보며 그렇게 확신했다.
"현장 검증 완료. 사체를 수습하셔도 좋습니다. 피해자의 유가족이나 동료분들 있으십니까?"
"여, 여기 있습니다."
"일단 피해자의 근무지로 가보죠."
같은 헌터부 기자라는 남자의 안내를 받아서 신문사 건물로 이동했다.
블랑쉬를 쓰면 쉽게 끝날 것 같지만, 일본에서 너무 팍팍 써댄 탓에 당분간은 절약 모드다.
일단 어제 같이 술자리에 있었다는 동료 직원들을 조사해보자 범행 시간이 특정됐다.
모두의 진술이 정확히 일치하는데다, 애초에 헌터 범죄니까 그들은 용의자가 아니다.
나는 주저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헌터 능력의 종류는 특정되지 않았어. 일단은 보복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한다. 범행 동기부터 찾아봐."
"예, 팀장님."
"최근에 피해자와 다툼을 했던 인원이 있습니까?"
내가 헌터부의 기자들에게 묻자 그들이 말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곤 단어선택을 좀 바꿨다.
"최근에 피해자와 다툼을 했던 헌터가 있습니까?"
"그... 너무 많죠."
"가벼운 말다툼 같은 거 말고, 법정까지 갔던 케이스 말입니다."
어지간한 원한으론 저렇게까지 못한다.
내가 나름대로 필터링을 해줬건만, 직원들의 대답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 너무 많죠."
"젠장."
"저, 소송을 당한 것만 포함합니까, 아니면 소송을 걸었던 것도 포함합니까?"
동료 기자들 중 한 명이 내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이서우와 팀원들이 피해자의 책상을 헤집는 사이, 나는 직원들에게자세히 물었다.
"피해자가 소송을 걸었다뇨? 뭐 억울한 일 당한 것 있었습니까?"
"아. 그리 큰 건 아니구요, 인터넷 뉴스 기사에 댓글 달렸던 거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정말 가지가지 하셨군요."
인터넷 기사에 기레기라는 댓글을 쓰는 것은 모욕죄가 아니라는 판례를 보면서, 도대체 어떤 기자가 이런 걸 고소하나 싶었는데...
바로 이런 놈이었나 보다.
인터넷 기사는 게시 때마다 기자의 본명을 기재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고소가 상당히 용이하다.
명예훼손의 성립 조건인 공연성도 아주 훌륭하게 만족한다.
나는 되도록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얘쓰며 피해자가 작성했던 기사들을 살펴봤다.
사실 범인이 최근에 원한을 가지게 됐다는 보장은 없으니, 옛날 것부터 차근차근 찾아볼 필요를 느꼈다.
팀원들과 함께 그 내용을 뒤져보던 나는 상당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뭐야 이거... 기사 안에 맞는 내용이 단 하나도 없는데?"
"어제 올렸던 그 기사는 나름대로 자제했던 거였군요."
"그게 자제한 거라면, 평소엔 도대체 어떤 쓰레기를 만들어서 올리는 거야?"
가관이다.
종이신문에 실렸던 기사는 좀 멀쩡한가 싶었는데, 오히려 이쪽이 더하다.
이쪽에선 아예 헌터 길드의 광고가 실렸던 바로 그 면에 해당 헌터 길드를 까대는 기사를 올렸던 것이다.
이쯤되면 살짝 감탄이 나올 정도.
"만약 올해의 기레기 상이라는 게 있다면 이놈이 싹 쓸어가겠군.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칼침 안 맞고 버틴 거지?"
힘없는 약소길드나 헌터들만 까댔으면 또 모르겠는데...
대형 길드까지 욕하는 거 보니까 조금 존경스럽다.
이놈은 순수한 혼돈 악 성향의 인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피해자가 사망한 것은 전혀 아쉽지 않지만, 그래도 수사는 해야한다.
나는 명색이 공무원이니까 사사롭게 일거리를 고를 수 있는 권리 따윈 없다.
처벌을 할 때엔 사견이 좀 들어갈지 몰라도 범인은 확실하게 잡아줄 것이다.
놈에게 깊은 원한을 가질법한 헌터들의 목록을 주욱 뽑아보자 이서우가 난색을 표했다.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그래도 다른 단서가 없는 이상, 이런 식으로 예상 용의자 뽑아서 일일이 조사하는 게 가장 확실하단 말이지..."
"그야 그렇지만요."
"걱정마. 아무리 그래도 전원을 조사하진 않을테니까. 일단 현재 재정상황이 어려운 사람들부터 보자고."
가난한 사람이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 는 것은 선입견도 뭣도 아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탈선하기 쉬운 것은 당연지사.
특히 이번 건은 무기징역도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저렇게 죽여놓으면 충동적인 살인이라고 주장하지도 못한다.
한국법은 개선의 여지가 없겠다고 판단되는 범죄자에 한해선 제법 가혹해진다.
"피해자의 보도로 인해서 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헌터들을 최우선적으로 조사해봐. 오보든 아니든 관계없이."
"네, 팀장님."
사건 현장에서 스마트폰 신호는 검색되지 않았다.
솔직히, 이럴 때마다 헌터들 몸에 추적기라도 심어놓고 싶다.
나도 팀원들과 함께 조사를 진행하던 중, 우리를 따라온 앨리스가 피해자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쓰게 웃었다.
"이거 뭐 오보가 아닌 게 있긴 한 건가? 아, 있네. 광고성 기사."
"이젠 놀랍지도 않아."
"팀장님. 이번 건, 지난번 교차살인 사건 때처럼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확률은 낮아."
이번 사건은 아직 피해자가 한 명이다.
게다가 공범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까다롭고 골치아픈 일이다.
상대가 본인의 가장 큰 약점을 쥐게 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굉장히 압박되니까.
"대부분의 공범들은 상당한 기간 동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기 마련이야. 지난번의 교차살인 사건도 그랬고... 이번 건은 굳이 공범을 이용할만한 메리트가 없어."
"그럼 청부살인은요?"
"지유 씨를 시켜서 그쪽 업계를 조사해봤는데, 아직 별 것 없는 것 같아."
"엣... 지유 씨를 그런 곳에 보내도 되는 건가요?"
내 대답에 살짝 기겁하는 이서우.
사실 굳이 서지유를 보낼 것도 없었다.
한국의 블랙마켓은 지난번에 가짜 그린 더스트가 일으켰던 대학살 사건 때문에 엄청나게 위축되어 있는 것이다.
해당 사건은 다른 블랙마켓에도 영향을 미쳐서, 당장은 마켓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정도다.
나는 너무 많은 업무량이 예상되자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여보세요. 어, 자기야. 잠깐 좀 도와줄래? 그래, 고마워."
아예 예리엘의 힘을 빌려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자...
그들이 범행 시각 당시의 출입기록 등을 알아서 척척 제출했다.
역시 예리엘이 엮이면 일이 많이 쉬워진다.
"현역 헌터들은 금방금방 대답이 오네."
현역들은 대부분 길드에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알리바이의 입증이 상당히 용이하다.
이번 살인사건은 새벽에 벌어졌지만, 다들 살인범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결백을 입증했다.
하긴. 지금 기자들은 두 눈에 불을 켜고 특수대의 발표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아까부터 언론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네 뭐네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리엘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젠장. 유력한 용의자가 너무 많아..."
"인터넷 기사 댓글은 아예 100건 넘게 고소했네요. 나중엔 아예 기획고소로 분류돼서, 검찰 선에서 각하됐다는 소리까지 있는데요?"
"이 인간 도대체 어떻게 계속 일한거지? 피해자들에게 소송 걸린 것도 한두건이 아닌데?"
우리가 새삼 감탄하고 있자 우리를 보조하던 동료 기자가 작게 말했다.
"그게, 사장님 친인척이라..."
"아하."
덕분에 궁금증이 아주 말끔하게 해결했다.
그나저나 낙하산인데도 일개 기자 자리에 계속 있었다니.
사장의 빽으로도 커버가 안 될 정도로 사고를 쳐댄 탓이리라.
나는 고민 끝에 다시 블랑쉬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런 하찮은 사건에 할당량을 낭비하는 것이 썩 달갑진 않지만, 이런 하찮은 사건이 특수대의 몇 안 되는 미제사건으로 남는 것은 더더욱 싫다.
앨리스는 내 지시를 엿듣곤 크게 당황했다.
"할당량을 좀 써도 좋으니까, 유력 용의자들을 모두 조사해. 범행 시간 당시 사건 현장에서 가까웠거나 동선이 의심되면 말해줘."
[네, 마스터.]
"진심이야? 일본에서 할당량 꽤 많이 썼잖아?"
"앨리스, 지금 밖에 좀 봐. 만약 우리가 못 잡으면 자기들 손으로 하나 만들어낼 것 같은 분위기잖아."
"아..."
이런 식으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사양이다.
나는 팀원이 사온 커피를 받아들며 장기전을 준비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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