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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04화 (104/131)

〈 104화 〉 명예훼손(1)

* * *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우리는 협회 본사 근처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곤 사무실로 돌아갔다.

티아는 제법 만족스런 얼굴로 이쑤시개를 놀리고 있었다.

"후후... 갈비찜은 최고예요. 일본에 있다 오니 매운 음식이 너무 좋아요."

"왈왈! 으르르..."

아주 격하게 동의하던 케르가 돌연 낮게 경고하는 듯 울었다.

나는 녀석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야 전방에서 웬 무리를 발견했다.

협회 본사의 앞에서는 웬 시위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뭐지? 아까는 없었는데..."

잠시 시위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무척 어이없는 구호가 들려왔다.

"헌터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헌터 연금, 폐지하라! 폐지하라!"

"협회는 기금 고갈 문제를 투명하게 밝히고 당장 연기금을 반환하라!"

"엑... 헌터 연금 폐지라고?"

식당에서 박하사탕을 하나 물고 나왔던 앨리스가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반응했다.

그녀가 이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헌터 연금은 한국에서 시행된 헌터 관련 정책들 중 최고라고 해도 될만큼 잘 돌아가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시위대는 이쪽을 향해서 우르르 달려들었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과 카메라맨들도 앞다투어 장비를 들이댔다.

"특별 수사관님! 헌터 연금 제도에 대해서 한 말씀..."

"몬스터다! 우리 세금으로 몬스터에게 밥을 먹이고 온거야!"

"엣..."

티아는 시위대 중 한 명이 외치자마자 들고있던 콜라캔을 등 뒤로 숨겼다.

나는 출동을 나와있던 경찰들이 그들을 만류하는 틈을 타서 잽싸게 해명했다.

"티아와 케르는 앨리스가 소유한 헌터펫입니다. 이 녀석들의 식비는 모두 사비로 내고 있어요."

"헌터 연금을 폐지하라!"

"월에 300 버는데 연금으로 100 넘게 뜯는 게 말이 되냐!"

다양한 개소리로 구성된 구호를 듣고있자 정신이 혼미해졌다.

원래는 그냥 잽싸게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여기선 그들을 위해서라도 한 가지 짚어주고 넘어가기로 했다.

"여러분, 헌터 연금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복지 체계입니다. 솔직히 저도 하나 들고싶을 정도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수입의 3할을 떼어가면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연금보험료가 센 것은 의료보험 비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납부기간이 짧잖아요. 헌터들은 최소 복무 기간만 채워도 죽을 때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실 보험료가 유달리 미쳐돌아가는 것은 정부의 의도였다.

한창때 헌터들이 너무 수익을 많이 올리니까, 인플레이션도 막을 겸 보험료로 돈을 묶어두기로 한 것이다.

헌터 협회는 연기금을 헌터 관련 인프라에 투자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어냈다.

덕분에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헌터 강국이 됐고, 헌터 연금 관리 공단도 재정적으로 엄청나게 안정적이 됐다.

물론 다달이 연금을 내야하는 현역 헌터들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겠지만...

은퇴를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헌터 연금은 은퇴와 동시에 지급이 시작되는데, 그게 죽을 때까지 나온다.

그 이유는 헌터 연금이 헌터 전용 의료보험을 겸하기 때문이다.

"현역 헌터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능력은 평생 유지되지 않습니다. 은퇴한 이후에 능력의 부작용이 발현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죠."

당장 나만 봐도 그린 더스트를 뽑아낼 때마다 피폭을 당하는 처지다.

헌터 능력은 원래 인간에게 허용된 힘이 아니라서, 부작용이 아예 없는 경우가 더 희귀한 것이다.

은퇴 이후 수입이 일정치 않게 된 헌터들에겐 이 헌터 연금이야말로 목숨줄이나 다름없다.

"헌터 연금 폐지하면 은퇴한 헌터분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헌터 연금은 여러분들이 납입한 것보다 훨씬 많이 돌려드리니까요."

"요, 요즘 던전 발생이 많이 줄어들어서 연기금이 고갈된다는 소리가 있던데..."

"헛소립니다. 헌터 연금은 안정성이 매우 뛰어납니다. 연기금 투자가 매년 대박나서, 차라리 국민연금 쪽이 더 빨리 바닥날 정도라구요."

다시말해 시위대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을 걱정해서 시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뭘 잘못 들고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되레 성을 내며 다시금 목소리를 높이려 했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피해서 냉큼 사무실로 도망쳤다.

"연기금 투자가 대박났는데도 돈을 그렇게 뜯어간다고?"

"헌터 연금은 사기야!"

"세상에..."

앞서 설명했듯, 헌터 연금은 국민연금과 많이 다르다.

헌터 연금은 헌터들이 은퇴 이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복지다.

생활고에 내몰린 헌터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헌터 연금은 필수적이다.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네."

"... 이거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야?"

"갑자기 무슨 문제?"

앨리스는 자세한 설명 대신 기도라도 하는 것처럼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불길함을 느끼며 사무실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초조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살펴보던 앨리스가 비명을 질렀다.

"올라왔어!"

"뭐가?"

"인터넷 기사 말이야! 아까 거기에 깔린 게 헌터부 기자들이었잖아."

"뭐라고?"

거기서 떠들어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사가 올라오다니.

이놈들은 퇴고도 안 하는 건가?

내가 진심으로 기겁하고 있자 무척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보였다.

[헌터 협회 특별 수사관, 국민 연금 고갈 가능성 경고...]

"이런 개새끼가!"

나는 그것을 읽자마자 버럭 고함을 질러버렸다.

시위대에게 강연을 하는 동안, 국민연금 이야기는 딱 한 번 나왔는데...

그걸 왜곡해서 쓰레기 같은 기사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본문의 내용도 굉장히 기이하게 변형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헌터 연금을 폐지하면 헌터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는 막말을 쏟아낸 특별 수사관은...]

"이 새낀 도대체 뭐야?"

"찾아보니까 되게 유명한데? 헌터부 기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수준의 기레기네."

앨리스는 이미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잠시 뒤, 기사는 곧바로 내려갔다.

앨리스가 예리엘과 윈터킹덤 길드에 연락해줘서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서지유는 나와 달리 마술의 비결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 듯, 당혹스런 얼굴로 물었다.

"어, 어떻게 하신 거예요?"

"길마 언니에게 연락해서 광고를 끊어달라고 했지."

"아..."

신문사는 원래부터 광고수익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근래에는 종이 신문 구독이 줄어들어서 그러한 경향이 더 강해졌다.

인터넷 신문은 그 특성상 구독료가 거의 없는 수준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신문사가 구독료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20% 이하.

반면 광고 수익의 비율은 50%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러니 윈터킹덤같은 대형 기업에게 밉보일만한 짓은 절대로 못한다.

애초에 예리엘 프로스트의 남편을 대놓고 욕하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아직 열을 식히지 못한 나머지 씩씩거렸다.

"이런 놈들에게도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랑 구속수사 맛 좀 보여줘야 하는데. 뭐 좋은 꺼리 없나?"

"케르를 보내서 물어버리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케르는 사람 못 물어. 대신 티아 네가 가면 되겠네."

말은 이렇게 해도 민간인 상대라서 최대한 참기로 하는데...

다음 날 아침, 문제가 발생했다.

모처럼 산뜻한 기분으로 출근했던 나는 이서우의 호들갑에 살짝 당황했다.

그도 이제 특수대 업무에 익숙해져서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됐던 것이다.

"팀장님, 뉴스 보셨습니까?"

"뉴스는 갑자기 왜?"

"지금 난리났습니다. 어제 팀장님 관련 오보를 냈던 그 기자 있잖습니까..."

"아, 그 기레기?"

내가 겨우 잊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며 불쾌함을 느끼고 있자...

이서우가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다.

"그 기자가 죽었답니다!"

"뭐야, 어디서 천벌이라도 받았대?"

"아뇨. 그게, 아주 잔혹하게 살해됐다고..."

"뭣?"

과연. 인터넷 뉴스가 게시되는 포털 사이트는 벌써부터 난리였다.

모처럼 동업자가 변을 당해서 그런지 다들 아주 이를 악물고 속보를 갱신해대는 중이다.

나는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물었다.

"헌터 범죄의 경향이 있는 건가?"

"저, 저도 그것까진... 하지만 피해자가 헌터부 기자였으니까 그럴 확률이 매우 높지 않을까요? 게다가 신문사 근처에서 한밤중에 살해당했구요."

"오케이, 나가자."

일단 구경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심정으로 출장을 결정.

다행히 사건 현장은 협회에서 그리 멀지도 않았다.

경찰들이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사이, 기자들은 벌써부터 신나게 주변을 들쑤시고 다녔다.

"협회 수사관이다!"

"수사관 님, 이번 사건에 대해서 한 말씀..."

"뭐 본 게 있어야 말하죠."

나는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를 지나쳐서 통제선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이번 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보복범죄였다.

멀리서부터 코를 찔러대는 피비린내.

옷이 발가벗겨진 피해자는 밧줄로 목이 매달린 채 본인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언뜻보면 가짜 그린 더스트의 소행 같지만 그 때보다 훨씬 강한 원한이 느껴졌다.

이서우는 곧바로 녀석의 범행을 의심했다.

"혹시 이번 건도 지난번 그놈의 소행일까요?"

"아니. 느낌이 많이 달라. 그놈은 시리얼 킬러였잖아. 범죄자를 체포해서 보내줄 때도 카드를 보냈는데, 여기엔 아무런 범행성명이 없어."

이번 범행 현장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직 피해자에 대한 뿌리깊은 원한뿐이다.

나는 사체를 살펴보며 확신을 얻었다.

"봐. 출혈량이 상당하지? 이번 놈은 살아있을 때 목이 매달린 거야. 그것도 경추손상으로 죽은 게 아니라, 비명을 지를 수 없는 상태로 질식당하면서 배를 갈린 거지. 보니까 내장까지 끄집어냈군."

"끔찍하군요."

아무리 통행량이 적은 새벽이었다지만...

어지간한 원한으론 골목 안에서 이따위 짓은 못한다.

범인은 처음부터 검거되는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밧줄의 흔적을 봐서, 목매달린 상태로 상당히 오래 살아있었어. 틈틈이 산소 공급까지 해줬어. 어중간한 놈은 이렇게 못 해."

"역시 헌터 범죄일까요?"

"그럴 확률이 더 높아졌네. 범인은 던전에서 직접 활동했던 헌터일 확률이 높아."

나는 이서우에게서 잠시 등을 돌리며 스마트폰에 대고 요청했다.

"블랑쉬, 예상 용의자 리스트 정리 가능해? 피해자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헌터들만 뽑아줘."

[그게, 너무 많습니다.]

"... 뭐라고?"

블랑쉬는 순식간에 20명이 넘는 명단을 스마트폰의 화면에 띄워올렸다.

나는 순간 몹시 어지러워져서 눈을 질끈 감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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