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 보험사기(3)
* * *
다음 날 아침.
예리엘과 함께 다시 병원으로 향하던 나는 속으로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아직 예리엘이 말하는 진실이란 것이 뭔진 모르겠지만, 불변의 사실이 하나 있다.
이번 사건은 절대로 계획적인 범죄가 아니다.
범죄라고 쳐도 우발적인 범행이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만약 계획 범죄였다면 사망자 송중일 씨의 동료들이 그토록 다치지도 않았을테고, 아예 시체 자체가 발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공략의 완료와 동시에 무너져내리는 던전은 완전범죄에 딱 맞는 장소니까.
초조한 기분으로 병원에 들어선 나는 예리엘과 함께 기부금 전달 행사에 참여했다.
무척 갑작스런 행사였지만, 이게 평소에 예리엘이 하던 짓이라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대로 입원중인 아이들을 만난 우리는 다시금 태산 길드원들을 마주했다.
예리엘은 포근하게 웃으며 놀란 얼굴의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예리엘 님?"
"지난 공략은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하지만, 서방님께 아직 말씀드리지 않으신 사실이 있는 것 같더라구요."
"서, 서방님이라..."
"아주 꿀이 떨어지시는군요."
태산 길드원들은 바짝 긴장한 와중에도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모든 게 끝장난 것 같은 기분으로 두 눈을 가렸다.
앨리스도 애써 먼 산을 보는 가운데, 예리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태산 길드원들은 일단 잡아떼려고 했지만 영 자신감이 없는 얼굴이다.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사실이라니... 더 설명할 게 남아있나요?"
"물론이죠. 아무리 등급 측정 오류가 발생했다 해도 고작 한 등급 위쪽의 던전이라면 어렵지 않게 공략하실 수 있었을텐데요?"
"그건 그렇지만요. 지난번의 그 던전에선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대거 나와서..."
해당 몬스터들이 실제로 던전에 등장했던 것은 맞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나온 전리품을 통해서 확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예리엘은 다른 곳을 짚었다.
"아무리 그래도 보고된 숫자가 너무 많지 않나요? 보고대로라면 여러분들께선 공략은 커녕 정말로 전멸했어도 이상하지 않던데요. 등급 측정도 훨씬 높게 나왔을테구요."
"..."
이제 길드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만약 내가 이런 식으로 꼬치꼬치 캐물었다면 대번에 욕을 먹거나 했을텐데...
예리엘은 예외다.
정상까지 올라갔던 헌터라서 그런지 대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녀는 적당한 때에 상대를 다독였다.
"불의의 사고였다는 것은 이미 알고있어요. 부디 진실을 가르쳐주시겠어요?"
"정말 말씀을 드려도 되는 겁니까?"
"제 예상이 맞다면, 여러분들께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에요."
"..."
열심히 시선을 교환하던 팀원들은 이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팀장이 순순히 거짓말을 인정했다.
"확실히... 저희가 잘못 보고했던 사항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이죠?"
"먼저 출현 몬스터의 숫자입니다.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출현했던 것은 맞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많이 나오진 않았어요."
"..."
출현 몬스터의 숫자를 속였다곤 해도,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차피 영상 자료도 소실됐고, 전리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으니 보상금도 그만큼 받지는 못한다.
예리엘은 전혀 놀라지 않는 눈치로 그들을 독려하듯 물었다.
"어째서 출현 몬스터의 숫자를 부풀리셨나요?"
"그, 그건..."
"만약 말씀하기 힘드시다면, 제가 말해볼게요."
이런 때엔 역시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는 게 가장 알아듣기 좋다.
예리엘인 담담한 목소리로 추론을 시작했다.
"공략 보고서를 살펴봤는데, 던전 진입부터 첫 교전까지는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사전 정찰 결과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길드원들은 주저없이 공략 속행을 결정했다.
무턱대고 돌아가는 것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인데다, 1등급 위쪽의 던전은 그래도 예상범위 이내였던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인 송중일 씨는 상당한 불안증세를 보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진 그로선 당연히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다음 교전에서 발생했다.
"몬스터와의 전투 도중 포위를 당하지 않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죠. 그래서 헌터들은 이미 확보된 구역을 기반으로 공략을 진행합니다."
"... 맞습니다."
"설령 상급 몬스터가 출현해도 대형을 지키면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송중일 씨는 치유 담당 헌터라서 교전 경험은 거의 없었죠."
격렬한 전투 도중, 사망자 송중일은 모종의 이유로 대형을 이탈했다.
그것이 사건을 자세히 살펴본 예리엘의 결론이었다.
아니면 치유 담당 헌터가 가장 먼저 죽고, 팀원들도 줄줄이 부상을 달고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치유 담당 헌터는 절박한 상황일수록 우선순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태산 길드의 공략팀장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상한 오해를 받느니 본인의 입으로 털어놓는 것이 나으리란 판단이었다.
"제 잘못입니다."
"아, 아녜요 팀장님!"
"2번째 교전 도중, 대열 안쪽으로 몬스터 한 마리가 침투했습니다. 해당 몬스터는 곧바로 처리됐지만, 송중일 그 친구는 패닉 상태에 빠졌죠."
겁에 질린 송중일은 팀원들을 내버려두곤 뒤쪽의 퇴로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
어차피 치유 담당은 전투 도중에는 큰 도움이 되기 힘드니, 완전히 틀린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이 통과한 길목에는 전투의 소음을 듣고 몰려온 몬스터들이 매복해있었다.
팀장이 곧바로 송중일을 데리러 갔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송중일은 몬스터들의 매복에 당해서 사망.
그를 수습하느라 대형이 무너져서 나머지 팀원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그것이 던전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이었다.
송중일은 결국 몬스터에게 죽은 것이 맞았다.
'그렇게 도망치다가 등 뒤에서 치명상을 입었던 건가...'
겨우 공략을 완료한 팀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첫 번째. 죽은 동료의 실수를 사실대로 밝히고, 길드의 명예와 사기를 크게 실추시킨다.
두 번째. 영상 자료를 폐기하고 송중일의 명예를 지켜준다.
어차피 본인들이 금전적으로 이득을 챙기거나 하는 것도 없으니, 결정은 쉬웠다.
적어도 송중일이 생명보험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해당 생명보험 상품의 규정에 따르면, 공략 도중 무단으로 작전 지역을 이탈하는 것은 보상금 지급 거부 사유가 될 수 있다.
결국 그들은 의도적이지 않게 보험사기를 쳐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그 금액은 무려 15억!
이 정도면 아무리 현역 A급 헌터들이라도 만만찮은 금액이다.
이야기를 마친 길드원들이 깊은 침묵에 빠진 사이.
나는 이제야 앞뒤가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역시 우발적인 범행... 사실상 범죄를 저지른다는 자각 자체가 없었군.'
보고 사항이 완전히 거짓된 것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단순 보고 실수로 처리할 수 있다.
나도 굳이 그들을 기소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팀장은 소실된 줄 알았던 영상 자료의 행방을 밝혔다.
"녹화본은 이곳에 보관해뒀습니다. 거짓말을 해서 죄송합니다. 무슨 처분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글쎄요. 그건 제 관할이 아니라서요."
예리엘은 엷게 웃으며 내쪽을 봤다.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 보고 누락으로 처리하죠."
"가, 감사합니다."
"그럼... 보험금은 어떻게 해야하나요?"
팀원들 중 한 명이 불안하게 물었으나, 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보험사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 건 맞지만,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야..."
"타이밍?"
"뭐, 보시면 압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충분히 휴식을 취하셔야겠네요."
우리는 씁쓸한 기분으로 병원을 떠났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인터넷 뉴스를 살피다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멀찍이서 눈치를 살피던 서지유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역시 보험사에 알리실 건가요?"
"당연하지."
"어제는 제게 보험사 걱정 따윈 해줄 필요가 없다고 하셨으면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하지 못하게 되면 이미 끝장난 거라고."
게다가... 어차피 크게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진실의 힘이라는 것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
보험사 측에 모든 사실을 전달한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곤 사무실 한켠의 TV를 켰다.
TV에선 때마침 XX생명의 새로운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가... 정말 빨리도 만들었군."
"아앗? 저, 저건..."
상복을 입은 여인과 아들이 묵념을 하는 가운데.
짜증날 정도로 담담한 나레이션이 울려퍼졌다.
XX생명의 새로운 광고는 이렇게 시작됐다.
[20억을 받았습니다.]
"에, 에엑..."
광고의 내용에 충격을 받은 서지유가 한참동안 어버버하는 가운데.
나는 쓰게 웃으며 생각했다.
'15억에서 5억이 늘었군. 보험사에서 깔끔하게 맞춰준 건가?'
만약 처음부터 사건의 진상이 알려졌다면 또 몰라.
이미 타이밍이 너무 늦어버린 감이 있다.
XX생명 측에선 이미 보험금 전달을 완료하고, 이번 사건을 이용한 마케팅까지 승인받았던 것이다.
20억은 확실히 큰 돈이지만... 이제와서 그걸 다시 엎어버리는 것은 너무나도 번거롭다.
심지어 사망자 송중일 씨의 아내는 광고에서 직접 본인의 역할을 연기했다.
광고를 감상한 나는 작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지유는 무척 찝찝한 얼굴이었으나 나는 그러려니 했다.
설령 진실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지라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내 일이다.
"퇴근하자."
"아, 네에."
뒷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티아가 케르와 함께 엘리베이터로 달려가서 버튼을 연타했다.
우리는 녀석에게 꿀밤을 먹이며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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