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보험사기(2)
* * *
국립 헌터 전용 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비는 편이었다.
이곳도 특수대와 마찬가지로 기능이 좀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고, 이용자는 더더욱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시설이다.
던전 공략 과정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면 당연히 사망자의 동료들도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겠지.
꾀병을 부리고 있든, 아니면 정말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든 말이다.
나는 일단 보험 조사관을 내버려두곤 증인들을 만나기로 했다.
아무래도 그가 섞여있으면 괜히 언성이 높아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속에서, 티아와 케르가 최대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녀석들은 아무래도 헌터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로비의 데스크로 곧장 다가가서 물었다.
"실례합니다. 어제 입원했다는 태산 길드원들은 어디있죠?"
"302호 병실로 가시면 됩니다."
직원은 곧바로 나를 알아보곤 안내해줬다.
사망자 송중일 씨의 동료들은 6인실을 전세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으..."
"진통제 좀 더 놓아주시면 안 돼요?"
"여기 붕대 감아줘요!"
병실에는 간병인과 간호사들이 전쟁같은 분위기로 움직이고 있었다.
뼈에 금이 가거나 팔다리가 부러진 것은 예사고, 전신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인원도 있었다.
사망자가 나온 공략이라길래 나름대로 각오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그나마 상태가 좀 멀쩡한 팀장이 목발을 짚은 채 힘겹게 걸어나왔다.
"엇? 특별 수사관님? 앨리스 님까지..."
"태산 길드 공략팀장님이시죠?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아, 알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 자리를 옮겼다.
팀장은 살짝 당황한 눈치였으나, 이미 사망자가 나와버린 상태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내가 전한 소식을 듣곤 격분했다.
"공략 도중 별세하신 팀원 송중일 씨가 헌터 전용 생명보험을 들고 계셨던 거, 알고 계십니까?"
"네에? 아... 네. 그 친구가 한 번 이야기 했던 것 같네요.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보험사에서는 보험사기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구요?"
그는 몸을 크게 부르르 떨더니 주먹을 꽉 쥐었다.
부러진 다리보다도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기색이었다.
"이런 개새끼들이..."
"진정하시고 천천히 이야기 해보시죠.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확실히 공략이 심상찮았던 것 같은데요."
"던전 등급 측정 오류였습니다!"
팀장은 버럭 성을 내듯 거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완전 최악이었어요. 그건 최소 한 등급은 높은 던전이었다구요. 지형도, 출현 몬스터 종류도 탐색 결과와 맞는 게 없어서 정말 죽을 뻔했습니다. 까다로운 몬스터들이 줄줄이 튀어나와서 완전히 포위당해버렸죠."
"그런..."
태산 길드라면 대형으로 분류되니까, 당연히 등급 측정을 비롯한 사전준비도 자체적으로 해결할텐데...
그쪽에서부터 일이 틀어진 것 같다.
그는 내게 따지고 드는 것처럼 물었다.
"자칫하면 팀이 전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보험사기를 의심한다는 거죠?"
"보험사 측에서 공략 영상이 소실됐다고 하더군요."
"이번 공략에서 소실된 건 촬영 장비 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장비도 완전 걸레짝이 다 됐다구요. 무기는 부러지고, 갑옷도 박살나고, 하다못해 소모품도 거의 다 써버려서 멀쩡한 게 없는데 왜 촬영 장비만 가지고..."
내게 분통을 터뜨리던 팀장은 뒤늦게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수사관님. 수사관 님께선 저희를 의심하시는 게 아니죠?"
"그야 병실을 보고 왔으니까요."
이번 사건... 다른 건 몰라도 고의성은 없어보인다.
아니면 저렇게 다들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리가 없다.
사망한 송중일 씨가 저항했다고 보기도 뭣한 것이... 그는 치유 능력을 지닌 헌터였다.
송중일 씨는 그들을 다치게 할만한 능력이 없었는데다, 만약 돌발사태가 터졌더라도 팀원들이 필사적으로 보호했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자세한 경위를 듣곤 그를 병실로 돌려보낸 뒤, 협회의 기록까지 뒤져봤다.
다행히 서울에서 발생한 던전이라서 조사는 비교적 쉬웠다.
"블랑쉬, 어때?"
[현장에서 회수된 전리품의 목록은 조금 전의 증언과 일치합니다. 예상과 전혀 다른 종류의 몬스터가 출현한 것이 확실합니다. 다만 수량이 좀 많이 적군요.]
"그야 급한 와중에 제대로 챙기진 못했겠지. 동료의 사체까지 수습했으니."
[원한 살인이나 계획 범죄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통화와 문자, 메신저 앱 내역은 아주 깨끗해요.]
"수고했어."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사건을 종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증거 부족이다. 그냥 보험금 내라고 하지 뭐."
"엣...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요?"
서지유가 옆에서 묘하게 불안해했으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지유 씨, 설마 보험사 걱정이라도 해주는 거야?"
"그야 혹시 모르니까요."
만약 이게 진짜 보험사기라도 큰 상관은 없다.
애초에 헌터 전용 생명보험을 만든 게 잘못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서지유를 안심시켰다.
"걱정마. 보험사 걱정은 연예인 걱정보다 훨씬 부질없어."
"네, 네에?"
"지유 씨. 보험사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아."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보험사가 어디 동네 구멍가게 수준도 아니고.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대기업 계열사인 XX생명이다.
이름 그대로 생명보험 전문인데, 헌터용 보험상품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보험상품을 운용하고 있다.
"XX생명 시총이 얼마인 줄 알아? 조단위야. 보험 장사는 기본적으로 손해를 볼 수가 없어. 대기업들이 보통 보험회사 하나씩 하고있는 이유가 있다고."
"보, 보험이란 게 그 정도로 돈이 되나요?"
"당연하지."
보험사는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당장 이번 사건만 봐도 좀 아니다 싶은 것을 억지로 보험사기까지 몰고왔다.
그들은 절대로 순순히 보험금을 내주는 일이 없다.
설령 순수보장형이 아니라, 만기환급형 보험이라도 마찬가지다.
일단 만기환급형 보험은 환급을 해주는만큼 보험료가 더 세다.
언뜻보면 연이율이 높아서 상당히 짭짤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금리의 상승 때문에 그만큼 이익이 발생하진 않는다.
그마저도 보험 이용자의 30% 이상은 2년 이내에 보험을 해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이 수치는 특히 생명보험 분야에서 소폭 상승한다.
그렇다고 보험사가 고객들의 돈을 들고 가만히 앉아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들은 고객들이 납입한 보험료를 다른 곳에 빌려줘서 열심히 굴린다.
특히 대기업 계열사 정도 되면 그룹 내부의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헌터가 엮여있어서 충분히 화제성이 있어."
현역 헌터가 작전 도중 불행하게 사망. 동료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송중일 씨는 다행히 생명보험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XX생명 정도 되는 대형 보험사가 영상 자료 소실만 걸고 넘어지면서 보험금 지불을 거부한다?
그랬다간 보험사의 이미지는 그대로 개박살나는 것이다.
상대가 어디 만만한 것도 아니고.
사망자가 소속된 태산 길드 정도면 당당한 대형 길드다.
그쪽에서 법무팀을 동원하고, 여론전까지 펼치면 그로 인한 손해가 더욱 막심할 것이다.
'차라리 15억 깔끔하게 지불하고 홍보에 써먹는 게 훨씬 낫지.'
위험천만한 일을 하는 헌터들에게도 보험을 들게 해주고, 정당히 보상한 보험사!
이 얼마나 아름다운 미담인가.
물론 헌터 전용 생명보험 상품 따위를 만들어낸 얼간이는 최대한 빨리 모가지를 쳐버려야 할 것이다.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보험 조사관을 불러서 병실을 대충 보여준 다음 물었다.
"송중일 씨 동료분들 상태, 알고 계셨습니까?"
"아, 아뇨. 자세히는..."
"그야 조사관 님도 혼자서 일하시는 게 아닐테니까요. 일단 돌아가셔서 상부와 다시 이야기를 해보시죠."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험 조사관도 차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호다닥 자리를 떠났다.
곧장 사무실로 돌아간 우리는 퇴근하기 전에 그의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특별 수사관님. 던전 공략 작전 도중 별세하신 송중일 고객님의 사망 보상금, 유가족 분들께 최대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 해당 건은 여기서 종결하겠습니다."
[예. 수고를 끼쳐드려서 무척 죄송합니다.]
역시 XX생명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
앨리스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상태로, 예리엘에게 무슨 무용담처럼 오늘의 일을 떠들어댔다.
퇴근 후의 저녁 식사 시간에야 재회한 예리엘은 그것을 듣곤 입을 살짝 가리며 웃더니...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를 했다.
"음? 정말 이대로 끝이라구요?"
"...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서방님은 헌터 경험이 없으시니, 모르실 수도 있군요."
내 반응을 멋대로 납득한 예리엘이 앨리스를 붙잡곤 뭔가를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러자 앨리스의 작은 어깨가 흠칫 떨리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뒤늦게 위화감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잠깐... 그런가?"
"그렇지. 요즘은 던전 안전 규정이 상당히 빡빡하니까, 1등급 위쪽의 던전 정도는..."
"그럼 하필이면 등 뒤에 상처가 났던 것도..."
내가 무척 당황하고 있자 그제야 나를 돌아보는 예리엘.
그녀는 묘하게 들뜬 눈초리로 진지하게 물었다.
"서방님. 개인적으로, 지금의 결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보험사는 사소한 손해를 입긴 했지만 이미지를 챙겼고, 사망자의 유가족들은 보상금을 얻게 됐으며 동료들은 명예를 지켰다.
이미 죽어버린 송중일 씨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모두 최선의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예리엘은 기어코 그것을 들쑤셔야할까, 그것이 고민이었다.
"때때로, 진실은 실망스럽죠. 진실에 지금보다 더한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요. 그래도 꼭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으신 가요?"
"... 당연하지."
나는 장고 끝에 어렵사리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진실에 가치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알지 못하기에 기꺼이 빨간약을 골랐다.
"알려줘."
"좋아요. 그럼 내일 함께 나가시죠."
굉장히 기쁜 얼굴이 된 예리엘이 흔쾌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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