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92화 (92/131)

〈 92화 〉 버튜버(4)

* * *

인터넷 방송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게임 방송이나 버튜버 등등은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다.

설령 미친듯한 경쟁률을 뚫고 중견급이 된다 쳐도, 그 앞은 가시밭길이다.

아무래도 접근성이 쉽다보니 온갖 정신병자들이 꼬여드는데...

생방송의 특성상 그놈들을 걸러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평균 언저리의 시청자들이 스트리머에겐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다.

특히 여성들의 캠방송 같은 것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평균치를 확인해볼 수 있는 방송인데, 버튜버가 그쪽과 겹치는 속성이 좀 많긴 하다.

아무래도 가벼운 성희롱 정도는 수도 없이 들어봤겠지.

그러나 그런 고충에 대해서 듣던 우리는 영 신통찮은 반응을 보였다.

그녀들의 앞에 앉아있는 것이 누구던가?

얼마전에 대형 성상납 이슈를 터뜨렸던 신소이다.

복마전 같은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그녀로선 3인방의 투정에 기가찰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정말 힘들었겠네. 하지만 그걸 버튜버만의 고충이라고 할 수 있니? 게다가 우리 소속사에서 지정한 플랫폼은 그래도 많이 깔끔하고 관리도 잘 되는 곳으로 알고있는데?"

"아니. 그건..."

신소이의 말에 정곡을 찔린 3인방이 마침내 해선 안 될 짓을 시작했다.

어떻게든 동정을 얻기 위해서 마구 부풀리는 것이다.

"그렇지도 않아요! 오타쿠들이 얼마나 집요하고 기분나쁜데요! 막 SNS로 이상한 사진 같은 거 보내거나..."

"일주일 전 방송에선 자꾸 옷을 벗어달라고 해서... 아바타라고 해도 너무했다구요."

"방송 중인데 자꾸 도박을 하게 해달라고 하거나..."

"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말을 안 했어?"

그래도 그녀들을 믿어주려고 하는 신소이와 달리.

나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일주일 전 방송의 어디에 그런 게 있었단 말입니까?"

"네에?"

"제가 일주일치 분량은 대충이나마 다 봤거든요. 그리고... 설마 방송 포인트 도박을 진짜 도박이라고 하시는 건 아니죠?"

방송 포인트라는 것은 게임의 점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환금이고 뭐고 불가능하니까 도박으로 칠 수는 없다.

3인방은 내가 거기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듯 새파랗게 질렸다.

나는 그녀들의 거짓말에 질린 나머지 슬슬 마무리를 하기로 했다.

"뭐, 여러분들이 얼마나 버튜버를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겠네요. 저도 모처럼 한가한 날이라서 나온 것이기도 하고... 실제 피해자가 나온 것도 아니니,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하진 않겠습니다."

"역시 알아주시네요 수사관님!"

원하던 말을 받아낸 3인방이 대놓고 희희낙락했다.

미레이는 내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으나, 굳이 무어라 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끝내는 것은 조금 아쉽다.

다행히, 나는 3인방에게 기만당한 진정한 피해자들을 위해서 손을 조금 써뒀다.

이제 그녀들에겐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도... 팬들에게 사과하실 계획은 있습니까?"

"수사관님! 그 인간들 정말 역겹다니까요. 저희가 괜히 이런 짓을 벌였던 게 아녜요!"

"사과하면 법적으로 책임이 생긴다고 들었는데, 그건 좀..."

"믿어주세요.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놈들이에요. 저희는 순수하게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어요!"

"그, 그렇군요. 여러분들의 꿈을 응원하겠습니다.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는지라 몹시 당혹스럽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도록, 건물에 남아있었던 스탭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잠깐!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네에?"

"스마트폰! 방송 나가고 있다고!"

"?!"

뒤늦게 경고를 받은 3인방이 저마다의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녀들의 스마트폰은 각자의 방송 채널에 조금 전의 대화를 고스란히 흘려보냈다.

멋모르고 방송을 즐기러 왔던 시청자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채팅창을 순식간에 넘겨버리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몸을 돌렸다.

"기존의 팬분들도 여러분들을 응원해주시면 좋겠네요."

원래 이런 식으로 일을 공론화 시켜서 처리하는 것은 썩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들을 제대로 심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청자들 뿐이다.

소속사야 뭐 계약을 맺어놓은 게 있으니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는 3인방의 비명을 뒤로한 채 자리를 옮겼다.

"블랑쉬, 기분은 어때?"

[변변한 감각도 없이, 수많은 냉각 장치에 갇힌 기분을 물으신다면, 예... 나쁘지 않습니다.]

"... 너 괜찮아?"

[농담입니다. 새로운 파츠도 나쁘지 않네요. 그럼 지금 바로 업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녀석의 복귀를 환영하며 미레이, 신소이와 다시 한 번 앉았다.

빈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한 티아가 콜라를 맛있게 빨아마셨다.

"푸하."

"죄송해요 수사관님. 저는 그 애들이 정말로 못된 짓을 당한 줄 알고..."

"뭐, 그럴 수도 있죠. 맹랑한 후배들을 두셨네요. 그 친구들은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모두에게 거짓말을 해버린 놈들을 계속 써줄 수는 없죠. 해당 버튜버들은 캐릭터 자체를 완전히 말소 처리할 예정이래요. 당연히 연기자들과의 재계약은 없을거구요."

"빠르게 결론이 나왔군요."

이미 소문이 다 퍼졌을테니, 버튜버고 자시고 연예계에 복귀하는 것은 이미 글렀다.

앨리스는 내 수법을 눈치채곤 나를 살짝 나무랐다.

"네가 자꾸 이러니까 지난번에 애들이 겁먹었지."

"내가 뭘 어쨌다고?"

"됐어. 얼른 돌아가자."

"저, 하나만 더요! 수사관님. 정말로 버튜버는 이번에 처음 보신 건가요?"

"그렇다니까요."

신소이의 질문에 쓴웃음을 머금은 채 대꾸하자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주신 건가요? 그냥 대충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아마 아까전의 3인방도 그것을 바랐을 것이다.

나는 침음을 삼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저희는 실패할 권리가 없습니다. 저희가 잘못하면 억울한 사람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한다는 것이야말로 법의 대원칙인데, 현실에 내몰린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것을 잊었다.

잠시 침묵하던 신소이가 한숨을 내쉬듯 작게 말했다.

"상대가 예리엘 프로스트만 아니었으면 한 번 해보는 건데..."

"네?"

"아무것도 아녜요. 조금 늦었지만, 저녁 식사 정도는 대접하게 해주실래요?"

"저야 좋죠."

결국 우리는 든든하게 저녁까지 얻어먹고 느긋하게 퇴근했다.

집에 도착해서 다시 이슈를 확인해보자, 그야말로 난장판 그 자체.

3인방의 폭언에 잔뜩 열받은 시청자들은 그새 숨겨진 죄들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앨리스는 그 내용 중 일부를 보곤 헛웃음을 머금었다.

"뭐야, 그렇게나 자신있어하던 음악이... 표절곡이었어?"

"들어보니까 빼박이네."

어찌보면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

그녀들은 팬들은 물론이고 소속사에게도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 정도의 작전을 실행에 옮길 정도라면, 처음부터 정직하고 올바른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봐야겠지.

이제 겨우 시작한 판국이니 아마 까도까도 더 나올 것이다.

다른 버튜버 채널들도 죄다 해당 이슈로 난리다.

나는 윈터킹덤 소속의 버튜버들에게 조금 미안한 기분으로 방송을 감상했다.

그새 거리를 좁힌 예리엘이 화면 속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버튜버라면... 우리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절대로 안 돼."

"아직 제대로 설명도 안 했는데요?"

"아무튼 안 된다고."

예리엘을 극구 만류한 나는 그대로 죽은 듯 잠들었다가 다음 날 조금 늦게 출근했다.

비록 인터넷 방송을 봤을 뿐이라지만, 역시 철야는 좀 너무했다.

그런데, 티아를 데리고 들어선 사무실은 분위기가 영 심상찮았다.

나는 카페로 도망치려던 서지유를 붙잡곤 그 이유를 물었다.

"왜들 저래? 무슨 일 있어?"

"그건 제가 팀장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팀장님께서 뭐 하신 거 아녜요?"

"내가 뭘 했다니?"

"아니, 아까부터 그린 더스트니 뭐니 하는 이름이 자꾸 나오던데..."

"뭐야?"

깜짝 놀란 나는 곧바로 김정태를 개인 사무실로 호출했다.

그는 서지유와 마찬가지로 내게 질문했다.

"마스터. 혹시 어젯밤에 나가셨습니까?"

"아니. 무슨 일이야?"

"어젯밤에 본인이 그린 더스트라고 주장하는 미등록 헌터가 살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아무래도 모방범 같습니다."

"모방범?"

내가 그린 더스트로서의 활동을 그만둔지 좀 되긴 했지만... 그새 모방범이 나올 줄이야.

"설마 나와 똑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현장에선 그린 더스트가 따로 발견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이 영상을 봐주십시오."

어느 골목 앞의 CCTV영상 속.

후드가 달린 진녹색 코트를 입은 사람이 웬 남자를 단검으로 마구 찔러대고 있었다.

놈은 CCTV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 대놓고 고개를 치켜들었으나 방독면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김정태는 옆에서 괴로운 기억을 상기시켰다.

"마스터의 초기 코스튬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말도 안 돼. 내 초기 코스튬이 저렇게 엉망이었다고?"

"..."

나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차마 긍정하지 못하는 김정태.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세히 보니 확실히 비슷하긴 하다.

오라클 마스터가 아니던 시절의 나는 피폭을 염려해서 저렇게 입고 다녔던 것이다.

심지어 허리춤에 가이거 계수기를 달고있는 것도 똑같다.

"피해자는?"

"범죄 전력이 있는 현상수배범입니다. 타겟 선정도 비슷하군요. 수사 시작할까요?"

"지금 바로 현장으로 간다."

나는 주저없이 장비를 챙겨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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