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90화 (90/131)

〈 90화 〉 버튜버(2)

* * *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이틀 전에 발생했다.

헌터제가 끝난 있었던 주의 주말.

사무실에서 방송 중이던 버튜버 3인의 얼굴이 거의 동시에 노출됐다.

원래는 장비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아바타를 씌우게 되어있는 것이 갑자기 내려가버린 것이다.

피해자인 버튜버들은 당시에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을 눈치채는 것이 늦었다.

개중에는 아예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던 인원도 있었다.

그 때문에 짧게는 30초, 길게는 2분 가까이 맨얼굴이 노출됐다.

세 여자들은 모두 중견급 이상의 버튜버 들이었는지라, 신상명세는 아주 순식간에 노출되었다.

지금껏 버튜버들의 얼굴이 노출되는 사고가 아예 없진 않았지만...

그래봤자 거울면에 살짝 반사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런 식으로 생방에서 얼굴을 훤히 드러내게 되어버린 사례는 거의 없었다.

당연히 반향도 상당해서, 윈터킹덤 산하 소속사에서도 이미 훤히 알고있었을 정도.

사건 경위를 들어보던 나는 가장 먼저 케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틀 전... 그것도 주말이 끼어있었다면 아직 흔적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네요. 케르, 건물 주변을 샅샅이 살펴봐."

"왈왈!"

"사건 당시 편집자들은 없었습니까? 달리 방송을 도와주는 직원들이라거나..."

"아무래도 주말이다보니 최소한의 인원들만 출근했죠. 그마저도 로테이션으로 돌렸구요."

"그렇군요."

기업 소속의 버튜버들은 방송을 한 번 켜면 최소 4시간 이상... 길면 8시간도 방송을 하니까, 아무래도 스탭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사건 당시처럼 노래 같은 걸 부르고 있었다면 담배 피우러 가기 완벽한 타이밍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가장 먼저 해당 스탭들을 의심했으나,금방 생각을 바꿨다.

그들은 오히려 자리를 비우고 있었으니 범행이 불가능했다고 봐야한다.

게다가 편집자들의 컴퓨터로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꺼버리거나 할 수도 없다고 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방송용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으니까요. 혹시 전자계 헌터 능력 같은 것으로 해킹을 한 건 아닐까요?"

"전자계 헌터 능력이라고 해도 만능은 아닙니다."

오라클 같은 특이 케이스를 제외하면, 전자계 헌터라고 해서 마음대로 원격에서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전기 신호를 교란하거나 보내는 선에서 그치기 때문에 엄연히 사정거리가 있다.

오라클은 원격 간섭 능력에 천리안까지 조합되어서 자유자재로 해킹이 가능한 것이다.

"전자계 헌터가 이런 짓을 하려면 최소한 건물 내부로 침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까 케르에게 주변을 둘러보라고 시켰죠."

"그렇군요. 정말 믿음직스러운데요?"

묘한 웃음을 머금은 신소이가 벌써부터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래도 특수대 수사 경험자라서 저러는 것 같은데... 솔직히 좀 부담스러운 기분도 없지 않다.

나는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수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사이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케르가 별 것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녀석은 사냥용 헌터펫인만큼 이런저런 흔적을 찾는데에 특화되어 있다.

"끼이잉..."

"수고했어. 방범 장치는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보안체계는 전문 업체에 의뢰했는데요..."

"아, 잘 고르셨군요. 여기 괜찮죠."

기획사에서 고른 보안업체는 나도 잘 아는 곳이었다.

아니, 실은 잘 아는 수준이 아니라... 한 때는 내가 일했던 회사다.

앨리스는 회사의 로고를 보곤 내게 조용히 물었다.

"너희 회사에서 이런 것도 했어?"

"대 헌터 경비체계 외주 사업이지. 이건 사실 공익 차원에서 겸사겸사 하는 거야. 본업에 비하면 영업이익도 거의 안 나온다고."

그래도 혹시 몰라서 건물 외부 CCTV의 배치 등을 살펴보니, 역시 문제는 없었다.

사각지대 하나 없이 제대로 배치된데다 따로 조작된 기록도 보이지 않았다.

사건 당일은 휴일이었으니 외부인의 침입은 없다고 봐야겠지.

'역시 내부자의 범행인 건가.'

아무래도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하필이면 스탭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사고가 터지지 않았던가.

게다가 능력으로 해킹을 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다고 보니까, 모든 정황이 내부자의 범행을 암시하고 있다.

"인터넷 방송 자체도 우리 회사의 자문을 받았군. 해킹 가능성은 거의 없어."

"하지만... 내부인이 왜 버튜버의 얼굴을 까발려?"

"그야 원한관계가 있을 수도 있지."

나는 이어서 방송인들의 스튜디오까지 살펴봤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방에는 방송용 데스크톱 외에 이렇다할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신소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실없이 웃으며 나를 졸졸 따라왔다.

"스튜디오에 따로 반사가 될만한 물건은 없군요?"

"그런 걸로 신상이 노출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니까요. 저희는 방송 배경도 모두 CG로 처리해요."

내게 따라붙은 직원들 중 한 명이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이것으로 해킹의 가능성은 한층 더 낮아졌다.

나는 자리를 조금 옮겨서 앨리스와 논의했다.

"범행 방법은 아직 특정 불가능이지만, 전자계일 확률이 높아. 하지만 사내엔 전자계가 없어."

"그럼 일단 범행 동기에 집중해야겠네?"

"그렇지."

나는 그대로 당사자들을 앞에 앉혀두곤 의심가는 사람들을 모두 불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의외로 굉장히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피해 당사자들이 사건 해결에 의욕이 없다는 것은 살짝 의외였다.

"저, 수사관님. 범인을 꼭 잡아야하나요?"

"신상 털려서 힘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피해 신고도 하셨던데요?"

"신상이 털려버린 건 정말 기분 나쁘고 힘들지만, 과연 잡을 수 있을까 걱정돼서요. 조금 죄송하기도 하고..."

"범인을 잡아서 처벌하는 게 특수대의 일이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그녀들을 안심시키며 일이 돌아가는 분위기를 눈치챘다.

사실 범인을 잡길 원하는 것은 당사자인 버튜버들보다 소속사가 더 간절했다.

버튜버 사업을 하는 소속사로선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제대로 사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들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인지라 보상을 제대로 받기도 힘들다.

게다가 범인이 보복을 저지르는 것도 조금 걱정될 것이다.

나는 아예 소속사에 죽치고 앉아서 도네이션 목록 등을 죄다 훑었다.

이번 사건은 특정 소속사의 버튜버 3명을 동시에 노렸다.

그것이 단순한 우연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인적인 원한인지, 기업 차원에서 노린 건지... 골치아프군. 단서가 너무 없어."

하필이면 이럴 때 오라클이 사용 불능이라니.

이번 사건의 특성상 녀석이 나서면 거의 바로 해결됐을텐데, 조금 답답하다.

나는 사건 당일의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지만 딱히 의심가는 구석은 없었다.

그 전의 영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앨리스의 말이 맞아. 당장은 범행 동기에 집중해야 해.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지?'

알기 쉬운 원한관계 따윈 보이지 않는다.

내가 전전긍긍 하고있자 신소이 외에도 기시감이 느껴지는 얼굴이 나타났다.

지난번 S대 축제 사건 때 우리와 엮였던 가수, 미레이였다.

"음? 수사관 님. 안녕하세요."

"미레이 씨도 놀러오신 건가요..."

"소이 언니가 여기에 있대서요."

"앗, 미레이 선배님!"

신소이보다 훨씬 가까운 느낌의 선배가 출현하자, 사건의 피해자들도 냉큼 나와서 인사를 했다.

그러나 미레이는 정작 그녀들을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유심히 살피며 수사를 진행했다.

"저, 수사관님. 저희들 슬슬 방송 시간인데... 취소할까요?"

"아뇨.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방송에서 추가적인 단서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그... 그렇군요. 그럼 이만..."

피해자 버튜버들이 각자의 방으로 모습을 감춘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자료를 훑었다.

내부 CCTV를 철저하게 확인한 결과 당시에 자리를 비웠던 스탭들은 혐의 없음.

예상보다 시간이 훨씬 길게 끌리자, 신소이는 괜히 미안한 표정이 됐다.

"저... 수사관님. 혹시 배고프시진 않으셔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죄송하네요."

"괜찮습니다. 원래 이런 식으로 장기전이 되는 경우도 흔하니까요."

의심가는 모든 구석을 하나씩 철저하게 훑어보는 것만큼 확실한 수사기법은 없다.

게다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가 확인돼서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나는 내친김에 피해자들의 방송을 켜봤다.

그러자 미레이는 굳이 보고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크, 크흠..."

"미레이 씨는 버튜버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건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요."

살짝 씁쓸한 얼굴로 반응을 숨기는 미레이.

그것을 못 본 체 하며 방송의 내용에 집중하자, 평소보다 훨씬 늘어난 숫자의 시청자들이 보였다.

"역시 이슈가 된 건가..."

빨간약이 버튜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피해자들은 원래 아이돌 지망생 출신이었던 만큼, 객관적으로 봐도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그녀들에게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차분히 방송을 감상하던 나는 앨리스와 시선을 교환하며 한숨을 삼켰다.

미레이는 아예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던 눈치다.

그저 같은 소속사라는 의리 때문에 별 말 하지 않았을 뿐이다.

신소이도 마침내 분위기를 읽곤 어두운 얼굴이 됐다.

"수사관님. 설마..."

"끝날 때까지 기다리죠."

우리는 그대로 전직원의 알리바이와 동기를 조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

마침내 방송을 종료하고 스튜디오를 나선 피해자들은 우리를 보곤 화들짝 놀랐다.

설마 이 시간까지 남아있을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아, 아직 계셨나요?"

"아무래도 범인을 찾은 것 같습니다."

"엣... 저, 정말요?"

안도감보다는 불안감이 교차하는 시선들.

나는 그녀들을 맞은편에 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버튜버 하기 싫죠?"

내 말에 3인방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