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89화 (89/131)

〈 89화 〉 버튜버(1)

* * *

원래 사건 때마다 모르는 것을 일일이 찾아보진 않는다.

내가 무슨 걸어다니는 백과사전도 아니고, 전문용어 한두개 정도는 당연히 모를 수도 있다.

이 경우, 그냥 피의자나 참고인을 앞에 앉혀놓고 물어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버튜버라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건 파일에 쓰여있는 '아바타'나 '모션 트래킹', 'Live2D'같은 용어들도 무척 생소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예 파일에서 이해되는 부분보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더 많을 정도.

버튜버는 내게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해당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라서, 나는 잠시 업무를 중단하고 공부하기로 했다.

그나마 버튜버에 대해서 감을 좀 잡고있는 앨리스가 살짝 우쭐거리며 설명해줬다.

그녀가 신이 난 것도 당연한 것이... 원래 이런 걸 설명해주는 것은 내 역할이었다.

"너 혹시 스트리밍 이라는 건 알아? 인터넷 방송은?"

"그 정도는 알지."

얘가 사람을 뭘로 보고 이러는 걸까.

내가 쉽게 긍정하자 앨리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쉽지. 버튜버는 본인의 얼굴 대신 아바타를 사용해서 방송을 하는 거야. 이렇게, 보통 오타쿠처럼 모에화된 캐릭터를 사용하지. "

"결국 씹덕 맞네."

앨리스는 내 중간정리에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나는 질문을 던져서 시간을 좀 단축시키기로 했다.

"그, 인터넷 방송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비슷한 거 하는 사람이 있던데... 보통 버튜버가 아니라 듀라한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아. 듀라한과는 좀 달라. 버튜버들은 롤 플레잉과 심볼화에 조금 더 집중하거든."

"롤 플레잉? TRPG같은 건가?"

"비슷해. 여튼, 버튜버는 보통 그쪽보다 조금 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가지고 있지."

이거... 생각보다 많이 복잡하다.

나는 아예 스마트폰 메모장까지 켜서 기록을 시작했다.

"그 버튜버란 사람들은 보통 무슨 방송을 하는데?"

"대부분 잡담이나 게임이지. 특히 게임을 하지 않으면 합방이 제한되니까, 게임은 필수야. 아.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노래를 부르기도 해. 요즘 노래를 안 부르는 버튜버는 거의 없지. 잘 부르는 건 별개지만..."

앨리스의 설명을 듣던 나는 돌연 생각나는 게 있어서 손바닥을 딱 쳤다.

이제보니 분명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잠깐. 이건... 사이버 가수 아담이잖아?"

"비유가 엄청 올드해... 아예 틀리진 않았지만."

"그렇군."

버튜버란 것은 사이버 가수 아담의 후예들이었던 건가.

나는 이제야 비로소 감을 잡았다.

그 사이,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보자 가장 먼저 애니메이션풍의 동영상이 재생됐다.

영상을 가만히 감상하던 나와 티아는 살짝 정색하며 앨리스를 돌아봤다.

"..."

"왜 그런 눈으로 봐?"

"아니... 평소에 이런 걸 보고 다니는구나 싶어서."

"앨리스 언니, 좀 의외네요."

"아, 아냐! 그냥 길드에서 합방 제안이 들어왔을 뿐이야! 나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앨리스도 괜히 부끄러워진 듯,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하긴. 앨리스는 이 녀석들 사이에 끼워놓아도 위화감이 좀 적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게 주력인 건가?"

"아니. 주력은 오히려 실시간 방송이라고 봐야지."

"실시간 방송이 주력이라... 그럼 이 모션 트래킹이라는 건 뭐야? Live2D랑 HTC VIVE라는 건?"

"아, 거기까진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역시 앨리스도 옆에서 살짝 발만 담궈본 정도라서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은 내게 도움이 되기 위해 반가운 제안을 건넸다.

"괜찮으면 한 번 견학해볼래?"

"견학?"

"버튜버라면 윈터킹덤 산하의 연예기획사도 몇 명 데리고 있거든. 그것도 꽤 잘 되고 있는 걸로 아는데..."

"좋아, 가보자."

"얏호!"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티아와 케르가 산책이라도 가는 것처럼 주저없이 따라나섰다.

다소 갑작스런 견학 요청이었지만, 예리엘과 앨리스의 명함 덕분에 즉시 허가가 나왔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윈터킹덤 길드 내부라면 사실상 프리패스다.

즉시 차를 타고 이동한 우리는 윈터킹덤 길드의 무수한 사무실 중 한 곳에 들어섰다.

앞서 연락을 받은 대표는 주차장까지 우리를 마중나왔다.

"어서오십시오. 혹시 '그 사건' 때문에 오셨는지..."

"그 사건이요? 윈터킹덤은 아니고 다른 길드가 엮인 사건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 역시 그랬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특별 수사관 님의 견학을 돕겠습니다. 저희도 완전히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요."

대표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얼굴로 웃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맡게 된 사건이 제법 유명한 모양.

핼쑥한 인상의 대표는 직접 5층짜리 건물을 안내해줬다.

"이 사무실은 버튜버 관련 업무 전용으로 쓰는 곳입니다. 소속 방송인들의 숙식도 이곳에서 해결하죠."

"사무실에서 숙식을요? 아이돌 연습생이나 프로게이머 같군요."

"수사관 님도 잘 아시다시피, 헌터가 엮이면 보안 문제가 굉장히 중요해져서... 얼마전에 그런 사건도 있었구요."

"아, 이해합니다."

나는 파일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온 것을 새삼 후회하며 사무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실 읽어봐도 도통 이해가 안 됐으니까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의미가 없다.

사무실 윗층의 생활 공간에선 소속 방송인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를 기다린 것은 아니고, 아마 앨리스 때문일 것이다.

"어서오세요 선배님."

"아, 안녕."

앨리스가 어색하게 인사하는 사이, 나는 그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 사람들이 아바타의 뒤에서 활동하고 있던 건가.'

연령도, 체형도 생각보다 통일성이 없는 모습.

겉모습은 역시나 비교적 평범하다.

대부분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경쟁사에서 일어났다는 '그 사건'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었다.

하기사 우리 특수대까지 온 것만 봐도 보통 사건은 아니다.

대표는 뒤늦게 기밀 유출을 염려하듯 말했다.

"수사관님.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오늘 이곳에서 보신 것은 아무쪼록..."

"아, 걱정 마시죠. 기껏 견학을 허가해주셨는데 당연히 비밀 보장 해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예리엘 님의 남편분께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 우습지만요."

그대로 버튜버들이 방송을 진행하는 방에 들어선 나는 비로소궁금증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아, 그러니까 여기 있는 장비로 움직임을 캡쳐한 다음, 그 판때기... 아, 아니. 일러스트로 덧씌우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목소리는 따로 처리를 합니까?"

"대부분은 가성을 써요."

"수익모델은 어떻게 되죠?"

"보통 광고와 도네이션, 구독으로..."

확실히 현직 업계인들을 앞에 두고 질문을 하니까 바로바로 시원하게 답이 나온다.

나는 사뭇 상쾌함까지 느끼며 질문 세례를 중단하곤, 서류의 내용을 떠올렸다.

'근데 아직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지금까지 어디서 '머리가 나쁘다', '이해력이 좋지 않다.' 같은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아직도 좀 어렵다.

'이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 거지?'

결국 실컷 질문을 던진 다음 퇴근해서 보충 수업을 시작.

예리엘은 내가 아예 생방송을 보고있자 입을 살짝 가리며 웃었다.

"서방님. 그런 것도 보셨어요?"

"일 때문이야. 아직은 사건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제대로 모르겠지만..."

나는 윈터킹덤 소속의 버튜버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낮에 봤던 그 여자들이, 아바타의 뒤에서는 이토록 활발하고 장난스러워지는 것인가.

이런 것에 거부감이 없지 않았던 나조차 피식 웃음이 나오는 구석이 있었다.

"도네이션은... 이건가? 예리엘, 이거 해봐도 돼?"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보셔요?"

"일단은 공유 재산이니까, 너무 마음대로 쓰는 것도 좀 아니다 싶어서. 지난번에 뇌우조의 가면 구입 대금도 당신이 냈잖아?"

나는 말을 해놓고도 살짝 움찔했다.

이러다가 이제부터 용돈 받아서 쓰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러나 예리엘은 감격한 얼굴을 보일 뿐, 용돈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그야 서방님께서 수십억을 턱턱 내놓는 건 조금 어색했으니까요. 용돈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마셔요. 제 돈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사용하셔도 돼요."

"크흑..."

나는 갑자기 지난번에 만났던 유부남 참고인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해져서 눈물을 삼켰다.

그대로 소액 도네이션도 해보고, 관련 사건도 찾아보던 나는 하룻밤을 꼬박 새워가며 학습을 완료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앨리스의 앞에서 자신있게 선언했다.

"이제 나도 버튜버 전문가다."

"아, 그러셔... 잘 됐네."

"지금 바로 피해자들을 만나러 가자."

원래는 참고인으로 소환을 해야겠지만, 그쪽 설비도 좀 보고싶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사무실은 범행현장이기도 하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멤버로, 신소이의 소속 길드에서 운영하는 사무실에 찾아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를 맞이하러 나온 것은 다름아닌 신소이였다.

생각보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어서 살짝 머리가 아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아는 사람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와 악수를 나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별로 오랜만도 아닌 것 같은데요?"

신소이는 피식 웃으며 내 등 뒤에 숨은 티아를 힐끔거렸다.

작게 쪼그라든 상태의 녀석은 아예 다른 사람인 체 행동했으나, 그게 제대로 먹힐 리가 없다.

우리는 일단 안으로 자리를 옮겨서 피해자들을 대면했다.

"아, 안녕하세요 수사관님."

"안녕하십니까."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총 3명.

버튜버 전문가가 된 내 소견이 맞다면, 이건 상당한 난제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세 명의 연기자들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쪽에선 흔히 '안의 사람'이라고 부른다는 모양이다.

세 여자들은 어제보다 명백히 미모의 수준이 높았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신소이가 기획사의 직원들 대신해서 조용히 설명해줬다.

"무슨 연예인 지망생 출신입니까?"

"이미 데뷔했던 아이들도 있어요. 평범한 버튜버를 해봤자 경쟁력이 없으니까... 저희 길드 소속 버튜버들은 음악 방송 위주로 활동하고 있죠. 아예 작사 작곡까지 직접 하는 아이들도 있다구요."

"그건 대단하네요."

신소이는 자랑스런 후배들을 소개해주기 위해서 흔치 않은 텐션을 보여줬다.

덕분에 피해자들의 얼굴만 붉어졌다.

나는 그녀들에게 확인차 질문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총 세 분. 세 분 모두 악성 팬에게 사이버 테러를 받았다고 주장하셨습니다. 틀린 사항이 있습니까?"

"아뇨."

"사이버 테러?"

티아가 뒤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을 무시하며 작업을 속행.

연기자들은 무척 쑥스러운 듯, 내 앞에서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사이버 테러의 내용은... 방송 도중 사용하던 아바타를 해제하여, 진짜 얼굴을 노출시키는 것. 맞습니까?"

"맞아요. 그것 때문에 저희 신상도 이미 다 털려서..."

"응? 그런 게 헌터 범죄인가요?"

티아가 뒤에서 군소리를 하자, 나는 녀석을 돌아보며 엄히 말했다.

"헌터가 엮여있으니까 헌터 범죄는 맞지. 그리고 버튜버들에게 신상 노출은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야. 흔히들 빨간약이라고 하지. 이게 잘못되면 계약 해지까지 갈 수도 있다고."

"수사관님... 뭔가 굉장히 잘 알고 계시는군요?"

나는 신소이의 감탄에 어제의 앨리스처럼 변명했다.

"벼락치기입니다."

"주인님께선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공부하셨어요!"

"멍!"

티아와 케르도 나를 열심히 두둔해주자 신소이가 피식 웃었다.

나는 나중에 간식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사건에 집중하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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