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 법인(3)
* * *
모든 안전 수칙은 피로 쓰였다.
헌터들의 경우에는 그것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아무리 미디어에서 포장을 열심히 해줘도, 대부분의 헌터는 능력을 사용하는 육체노동자다.
그리고 개중에는 몬스터와 싸우는 이들도 적지 않다.
따라서 협회는 안전 수칙에 굉장히 집착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헌터 협회라고 해봤자 결국은 공무원 조직.
창설부터 지금까지, 인력이 충분한 때는 단 한 순간도 없었다.
특히 저등급 던전 공략에 할애할 인력은 더더욱 모자랐다.
흑마 길드의 경우에는 그러한 허점을 아주 잘 파고들었다.
"보니까 안전수칙 위반을 아주 전략적으로 하셨더라고. 이 정도로 악질적인 케이스는 협회 전체를 뒤져봐도 잘 없겠지."
"흑마 길드는 딱 남들이 하는 만큼만..."
"목록이 좀 기니까 잘 듣고 틀린 부분이 있으면 말해. 일단 던전 공략 사이에 최소 1주간 텀을 둬야하는데, 흑마 길드는 그걸 지난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지키지 않았어. 사망자 하민성 씨의 던전 공략은 1개월당 '공식적인 것만' 최소 5건이었지."
내 단어 선정에 굳은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키는 사장.
그렇다. 비공식적인 부분도 이미 들킨지 오래다.
"이 정도면 협회에서 권고 조치 받고 끝이지만, 당신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어. 기어코 편법을 써서 출장 횟수를 늘렸지."
원래 흑마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던 헌터들은 20명 남짓이다.
그리고 던전 공략은 아무리 낮은 등급이라도 6인 이상의 팀을 구성해서 진행하도록 되어있다.
길드원이라고 해도 언제나 함께 다닐 수는 없는데다, 지방 출장은 사원들이 더더욱 꺼리는 만큼...
사망자 하민성 씨는 다른 하청 회사원들과 함께 공략을 진행하게 됐다.
흑마 길드는 이러한 구조를 아주 지능적으로 이용했다.
"원래는 다른 사원이 나가기로 되어있던 출장인데, 매번 하민성 씨가 나갔다더라고."
현장에 감시를 나가있던 공무원은 당연히 당황했으나...
흑마 길드는 감기 몸살이니, 가족의 경조사이니 하는 핑계를 대며 기어코 하민성을 땜빵으로 내세웠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예정이 틀어질 경우, 던전 공략을 취소해야하지만, 지방 공무원들의 행정은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다들 먼 길을 와서 던전 공략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오늘은 그냥 돌아가라'고 하겠는가?
그런 식으로 던전의 공략이 지연되면 근처의 주민들이 민원을 넣을 것이 뻔한데.
그래서 그냥 강행한다.
심지어 흑마 길드는 같은 지방에 똑같은 사원을 계속 보내면 공무원들이 눈치를 챌까봐, 일부러 출장 지역을 조절하는 치밀함까지 선보였다.
처음에는 경상도로 보내고, 그 다음에는 전라도, 그 다음에는 광역시에 보내는 식이었다.
나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아까 구속실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흑마 길드의 사원들은 대부분 케르가 짖어대는 소리에 무척 괴로워했으나...
그들 중 일부, 아무런 불평불만도 없이 죽은 듯 누워있는 사원들이 있었다.
바로 끊임없는 지방 출장에 시달렸던 남성 헌터들이었다.
보통 한 명이 과로사하면 그 동료들도 이미 위험한 상태이기 마련이다.
나는 그들의 정밀검진을 명령해서 추가적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시켰다.
"남성 헌터들은 지방 출장 보낸다고 정기 검진도 빼먹게 시켰는데, 여성 헌터들은 아예 경기도 밖으로 나간 적도 없더군.차량 블랙박스 조사로 알았다. 너무하다는 생각도 안 해봤나?"
"너무하긴 뭐가 너무해! 우리 남자들은 엄연한 특권층이라고!"
"특권층?"
내가 정말 상상도 못했던 소리에 굳어있자 그가 이때다 싶어서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제대로 주장하면 역전이라도 할 수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국의 여자들은 언제나 차별에 시달려왔지. 나는 그녀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진정한 남성이니까, 출장에서 조금이나마 편의를 봐준 것 뿐이야!"
"무슨 차별?"
"여자들은 대학에 간다고 싫은 소리를 듣거나, 숨 쉬듯이 성추행을 당하곤 하지. 유리천장 때문에 사회 진출이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고."
지난번에 블루 라이트닝과 교전한 이래로, 이토록 강한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이 인간, 정말로 무슨 90년대에 살고있는 건가?
나는 정신이 멍한 가운데 더듬더듬 딴지를 걸었다.
"잠깐. 흑마 길드 간부진도 전부 남자잖아? 그리고 요즘 시대에 무슨 대학 진학 가지고 헛소리를 듣는다고 그래? 당신은 대학 문턱 근처도 가본 적 없으면서."
"우리 회사는 너무 작아서 그런 것뿐이야! 간부진이라고 해봤자 나 포함해서 3명밖에 없으니 어쩔 수가..."
"아주 지랄을 해요. 성추행은 또 뭐야? 네 경험담이냐?"
나는 그제야 흑마 길드의 사장이란 인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본인의 시대에 그러했으니, 후대들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던 사내.
술집의 여자들에게 죄를 짓고 회사의 여직원들에게 참회하는 타입이다.
물론 번듯한 것은 말뿐이고 실속은 전혀 없다.
내 반문에 잠시 말이 막혔던 놈은 나름대로 필살의 논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꺼내들었다.
"애초에 우리 사원들도 모두 동의했다고!"
"아, 그래? 계약서 같은 거라도 받아놓으셨나? 그거 아무 의미없는데."
"계약서는 무슨! 그놈들이 지금껏 퇴사하지 않은 게 동의나 다름없지!"
"..."
이놈을 상대하고 있으면 내 직업에 회의감이 든다.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헌터 범죄자들은 아주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게 아니라도 최소한의 알리바이 정도는 준비해왔는데...
이놈은 아예 본인의 행동이 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긴. 원래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이 정도 수준인 것은 맞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상대했던 놈들이 상위 5% 정도 된다고 볼 수 있겠지.
누가 뭐래도 A랭크 이상의 헌터들은 나름대로 엘리트들이다.
불행히도 흑마 길드의 헌터들은 퇴사하고 싶다고 퇴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현재 헌터 업계는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있던 길드도 사라지는 판국이니, 지금 퇴사하면 언제 다시 취직할 수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벌 수 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현재 흑마 길드에 남아있던 남성 헌터들은 전원이 기혼자다.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만두지 못하고 힘겹게 버텼을 뿐이다.
사실상 가족을 인질로 잡힌 상태!
그렇지 않은 이들은 진작 그만뒀다.
'더 이상은 시간낭비군. 어차피 법정에서 또 보게 될텐데, 이쯤해둬야지.'
나는 팀원들이 보내온 메세지를 확인하며 놈에게 통보했다.
"일단 과실치사랑 의도적·상습적 허위 보고, 정기 신체 검진 누락, 사내 협박, 성폭행으로 기소해줄게. 아직 실시간으로 추가되고 있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리면 될 것 같아."
"무... 무슨? 협박? 성폭행?"
"사원들이 이미 증언했어. 너같은 소리 하는 놈들 치고 성범죄 전력 없는 놈이 없더라. 이야, 이미 동종 전과도 있으셨네?"
"헛소리 집어치워! 네가... 네가 그놈들을 협박해서..."
나는 놈의 항변을 무시하며 심문실 밖으로 나갔다.
다른 방에서는 일반 사원들의 심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매직미러 앞에서 그것을 지켜보고있자 서지유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팀장님. 이번 건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까 들었겠지만, 법인에겐 살인의 책임을 물 수 없어. 법인은 해당 범죄 능력이 없으니까."
그러나 사원 개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가능하다.
원래는 수사인력이 부족해서 이렇게까지 하진 않지만...
이번에는 블랑쉬가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
녀석은 이제 대충대충 시켜도 척척 할 줄 알아서, 편의성이 대폭 향상된 것이다.
앞서 사원들의 차량 블랙박스를 조사한 것도 녀석의 솜씨다.
'인공지능의 도입을 가장 반대했던 내가 이걸 가장 유용하게 써먹고 있다니... 나중에 매튜에게 한 소리 듣겠군.'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서지유가 한숨 섞인 말투로 중얼거리자,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이게 당연하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건국 당시부터 지금까지 제값 주고 병사들을 부린 적이 없거든."
"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 대한민국!
그 찬란한 칭호의 실체는 헌터들의 시체로 쌓아올려진 금자탑이다.
한국은 늘 그랬듯, 국가를 위해서 그들의 희생을 묵인했다.
사실 다른 나라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법인보다 훨씬 악질인 게 바로 국가야. 이런 류의 단체들은 체급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끄럼도 거리낌도 없이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물론 그 책임도 제대로 지지 않아. 아주 안전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어."
"그, 그런..."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무고한 국민들이 그들 대신 죽어준다.
인류의 역사를 지탱해준, 아주 오래된 관습이다.
오랜만에 속내를 털어놓던 나는 뒤늦게 서지유에게 경고했다.
"아, 너무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돼. 내 사상은 좀 많이 극단적이니까."
"본인도 알고 계셨군요?"
"지유 씨도 나처럼 억울한 일 좀 당해보면 이렇게 돼."
북두칠성 사건은 내 영혼 그 자체를 바꿔놓았다.
이젠 도저히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서지유는 그것을 잘 아는지라 슬프게 웃었다.
"좀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덕분에 팀장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에요."
"너무하네 정말."
"아앗, 그럼 취소..."
"안 돼. 취소는 하지마. 이미 들어버렸는데, 그게 더 너무하잖아."
"알겠어요 팀장님."
나는 그녀를 꾸중하며 흑마 길드를 완전히 분해시켜버리기 위해서 다시 움직였다.
어차피 많고 많은 길드들을 정리해야하니까, 쓰레기 길드 하나 먼저 치웠다고 치면 될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