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법인(2)
* * *
구속 수사는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굉장히 편한 수법이다.
피의자를 이미 잡아놓은 상태로 수사를 하니 언제든지 불러내서 심문할 수 있는데다...
그쪽에서 증거를 없애거나 조작하지도 못한다.
세상에 완전히 깨끗한 사람은 없으니, 막말로 구속 수사를 하면 없던 죄도 만들 수 있다.
내가 괜히 특별 수사관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영장 없는 수사를 부르짖었던 것이 아니다.
검찰에서 공소제기 전에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0일 정도.
경찰들까지 끌어들이면 30일까지도 가둬놓을 수 있지만, 이놈들 상대로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다.
법대로 하자며 자신있게 떠들어댔던 흑마 길드의 사장은 죽을상이 된 채 철창 안에 갇혀있었다.
다른 사원들도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신명나는 개소리 속에서 섣불리 나를 도발했던 사장을 힐난하는 눈초리를 보였다.
"왈, 왈왈! 그르르르... 으르렁!"
그들이 갇힌 구속실에선 케르가 끊임없이 울어대고 있었다.
침을 줄줄 흘리며 철창 안쪽을 노려보는 녀석은 보통 위협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심약한 여직원 몇몇은 아예 눈물을 흘려댈 정도였다.
"제발 개 좀 치워주세요..."
"컹컹! 크르르!"
간만에 원없이 울어대던 케르는 내가 구속실로 입장하자마자 동작을 멈추곤 쪼르르 다가왔다.
나는 피의자들이 악을 쓰고 고함치는 것을 완전히 무시하며 녀석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골라."
"멍멍!"
케르는 신나게 꼬리를 흔들어대며 나를 쪼르르 따라왔다.
조금 전까지 미쳐 날뛰던 녀석이라곤 믿을 수 없을만큼 얌전한 태도였다.
흑마 길드의 사원 일동은 그것을 보곤 아연실색했으나...
나는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대로 사무실로 올라오자, 케르는 배달 앱을 아래로 슥슥 넘기다가 앞발로 구석을 콕 짚었다.
몬스터 사냥용 헌터펫인 케르베로스의 지능은 어지간한 천재견들 뺨때리는 수준이다.
"뭐냐, 일식? 지유 씨, 와서 적당히 주문해."
"네! 팀장님. 저, 계산은 어떻게..."
"아, 맞다."
나는 지난번에 서지유에게서 압수했던 카드를 다시 넘겨줬다.
그것을 받곤 감격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니 다시 압수해버리고 싶어졌다.
"팀장님..."
"뭐야. 주문 안 할거야? 도로 가져갈까?"
"아뇨! 그런데, 저 사람들 정말 계속 구속해도 되는 건가요? 나중에 손해배상 청구 같은 걸 하면 어떻게 해요?"
"우리가 지금까지 구속한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거 정말 일찍도 물어보는구나."
나는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서지유를 안심시켰다.
"무죄만 안 뜨면 문제없어. 설령 무죄가 뜬다고 해도 저쪽 손해지."
"저쪽 손해라니..."
구속 수사는 당하는 입장에선 무척 괴로운 일이다.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불려나가서 조사를 받다가 다시 감금되는 생활의 반복...
수사기관이 구속 수사를 하게 될 경우, 무고한 피해자는 나중에 보상금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액수라는 것이 터무니 없을 정도로 짜다.
설령 보상금을 받는다 해도 이미 잃어버린 시간과 신용은 되돌려줄 수 없다.
"원래 구속 수사라는 게 괜히 영장 받고 하는 게 아니지."
"세상에."
서지유는 만약 놈들이 무고한 피해자면 어쩌나 싶어서 걱정하는 눈치였으나...
내가 보기엔 100% 유죄였다.
아니면 굳이 내게 그렇게 덤벼들 필요가 없었다.
사장은 어딘가 제대로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과민반응했던 것이다.
우리가 점심을 해치우자, 흑마 길드의 본사로 향했던 김정태가 메세지를 보내왔다.
블랑쉬도 이런저런 증거물을 제출하며 소소하게나마 일을 도와줬다.
나는 밥을 다 먹자마자 그것을 보곤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이런 씹새들이..."
"뭔가 나왔나요?"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골라내기 힘들 정도야."
뭐, 사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육체강화계 헌터는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구력과 내구력도 굉장히 우월하다.
그런 그를 과로사로 몰고갔다면... 정말 어지간히도 혹사시켰어야 했으리라.
사망자 부인의 증언대로 해 뜨기 전에 나와서 자정에 들어오는 수준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자료를 천천히 살펴본 나는 가장 먼저 변호사를 불러냈다.
본인을 원청 길드의 전속 변호사라고 소개한 그는 주저없이 내게 말했다.
"수사관님, 저는 흑마 길드 및 사원들에 대한 변호를 포기하겠습니다."
"됐으니까 원청 길드 마스터부터 불러요."
툭.
내가 스마트폰을 빌려주자 그는 손을 벌벌 떨며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온 원청의 길드 마스터가 변호사의 옆에 얌전히 착석했다.
앞선 조사 결과 원청 길드까지 엮어넣는 것은 이래저래 힘들다고 판단했는지라... 나는 그냥 그들을 놓아주기로 했다.
"빈소는 다녀오셨습니까?"
"예... 다녀왔습니다. 이번 사건은 정말 유감입니다. 원청인 저희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사단법인 흑마 길드... 법인이라는 게 참 편하고 좋죠."
"?"
나는 두 남자의 앞에서 속내를 좀 털어놓기로 했다.
그들은 한 마디도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법인은 기본적으로 범죄 능력이란 게 없다고 취급됩니다. 회사가 살인을 저지를 수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죠."
"..."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번 사건은 분명 회사 차원에서 저지른 살인 사건인데,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되잖아요?"
"이... 이상하군요."
원청의 길드 마스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나는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조의금은 얼마나 내시겠습니까?"
"저... 당장 5천 정도는 가능합니다. 물론 추가로 더 낼 수도 있구요!"
"5천... 그래도 헌터들이 고급 인력이긴 하군요."
내가 쓰게 웃자 그들이 반색했으나...
뒤이어진 말을 듣곤 다시 불쌍한 얼굴로 돌아갔다.
"원래 산업현장 노동자가 사망하면 인당 500정도 벌금이 나오죠? 그런데 헌터는 10배네요."
"..."
"사장님. 지금까지 하청 덕 많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조금만 더 쓰시죠. 적어도 그 집 아들 대학은 보내야지 않겠습니까? 대형 길드의 체면도 있을테니 깔끔하게 1억은 어떻습니까?"
"예, 당연히 그 정도는 내야죠."
우리는 무난하게 합의를 마치곤 악수를 나눴다.
솔직히, 이번 건에 한해선 괜히 삥뜯는 것 같아서 미안한 기분마저 있다.
까놓고 말해서 공략 우선권을 팔아넘겼을 뿐인 원청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그래도 특수대에게 걸렸는데 1억이면 굉장히 싸게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다음으로 이번 사건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하청업체의 사장을 불러들였다.
그는 심문실에 들어서자마자 변호사를 찾았으나...
변호사는 이미 협회에서 나간지 오래였다.
"그 양반은 관뒀으니까 새 변호사를 불러와. 지금부터 딱 1시간 준다."
"뭐, 뭐요? 변호사가 갑자기 왜 일을 관둬?"
"왜냐하면 그 친구는 똑똑하거든."
내가 전화를 돌려주고 방을 나서자 놈이 허겁지겁 움직였다.
그러나 새로운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애초에 헌터 사건에 정통한 변호사 자체가 상당히 드문데다...
다른 길드와의 분쟁도 아니고, 특수대와의 싸움에 선뜻 끼어들고 싶어하는 변호사는 더더욱 없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죄율 100%를 자랑하고 있다.
결국 그는 변호사 없이 다시 심문을 받게 됐다.
놈은 이제야 일이 단단히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눈에 띄게 얌전해졌으나...
내가 차분히 말을 고르고 있자 금방 다시 언성을 높였다.
"먼저 길드의 성비가 상당히 이상하더라. 특히 현장에서 활동하는 헌터들 중 80%가 여성... 아, 이젠 90%지?"
"그, 그게 무슨 문제란 말입니까? 당신 지금 여자 헌터들을 무시하는 거요?"
"아니. 아직 그런 말은 한 적 없는데."
나는 그를 쏘아보며 침묵시키곤 최대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지금까지 얻은 증거만 봐도 버럭 윽박지르고 싶은 기분이지만 겨우 참고있다.
"한 가지 재밌는 건, 처음부터 남녀 성비가 이렇게 극단적이진 않았다는 거야.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흑마 길드의 직원들 중에는 남자가 더 많았어."
"..."
"하지만 2년 전부터 신규 헌터 고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6개월 전부터는 남성 헌터들이 집단으로 퇴사하기 시작했지. 혹시 짐작가는 이유 같은 거 없나?"
"남자 놈들이 일하기 싫다는데 뭐 어쩌겠습니까. 요즘은 이쪽 업계도 예전같지 않단 말입니다."
그건 나도 아주 잘 알고있다.
나는 그가 의도적으로 생략한 부분을 친절하게 짚어줬다.
"남성 헌터들이 왜 갑자기 일하기 싫어졌는지가 중요하지. 갑자기 다들 돈이 필요없어진 건 아닐 거 아니야?"
"..."
"당신 말대로 헌터 업계도 예전같지가 않아. 최근 몇년간 던전의 생성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어서, 흑마 길드의 지방 출장이 자연스럽게 늘어났지. 원래는 경기도에 있는 던전만 처리해도 밥벌이가 됐지만, 이젠 지방까지 내려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야."
사장은 무거운 침묵으로 내 이야기를 긍정했다.
여기까진 그의 확인이고 뭐고 필요없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지만 지방 출장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야. 하루종일 차를 몰아서 던전까지 간 다음, 일이 끝나면 다시 혼자서 차를 몰고 돌아와야 하지. 따로 운전기사 같은 게 있다면 좋겠지만... 영세한 하청업체가 그런 걸 해줄 리도 없고 말야."
대부분의 하청업체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조건적으로 비용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본인들에게 떨어지는 돈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비용을 줄이면 줄일수록 운영자의 몫이 늘어난다.
흑마 길드는 대형 길드에게서 공략 우선권을 구매하는 식으로 운영을 했으나, 어차피 체급이 작은 이상 한계가 있었다.
원청에게서 공략권을 구매하는 것도 돈과 인맥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흑마길드의 여성 헌터들은 지방 출장을 거의 나가지 않았어. 끽해봤자 경기도권이었지."
"본인들이 나가지 않는다고 하는 걸 어떻게 하라고!"
"그럼 뭐 남자들은 기꺼이 나가겠다고 하던가? 그게 싫어서 다들 퇴사한 것 같은데?"
"..."
남성 헌터들이 집단으로 퇴사한 시점에서 이미 균형은 깨졌다.
하지만 흑마 길드는 일을 가려서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원청이 주는 일을 골라서 받을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하청 따윈 하지 않는다.
흑마의 사장은 헌터들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출장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대신, 훨씬 간편하고 경제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바로 남성 헌터들을 지방 출장 전용으로 사용하는 거지."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됩니까?"
"글쎄. 문제가 있으니까 사람이 죽었겠지?"
"본인들도 동의했단 말입니다! 출장비도 확실히 지불하고..."
"한 달에 최소 5번씩 내려보내면서 꼴랑 20 더 주는 게 말이 되냐? 이건 기름값이 더 나오겠다!"
"유루비도 당연히 따로 지급..."
뭐가 그리 억울한지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사장.
나는 그의 앞에서 조사해온 자료를 내리쳤다.
탕!
"일주일에 60시간씩 굴려대면서 야간 수당도 없어, 심지어 출장 나갔다가 복귀하는 시간은 업무시간에 포함도 안 시켜... 너는 씨발 무슨 혼자서 90년대에 살고있냐?"
이 정도면 사망자가 지금까지 버틴 것이 용하다.
물론 사장은 아직도 반성의 기미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놈이 미련하게 일만 하다가 못 버티고 죽은 게 내 탓이란 말인가!"
"아직 한참 남았다. 너희 길드에서 어긴 안전수칙이 몇 개나 되는지, 지금부터 차근차근 짚어줄게."
보통 이런 사고는 아주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무시해서 일어나곤 한다.
이것만 지키면 사고가 안 난다며 만들어놓은 것인데, 회사의 사정이라며 기어코 어기는 것이다.
사장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놀랍게도 저것이 나름대로 성질을 죽이고 있는 것 같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