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 법인(1)
* * *
인원이 굉장히 부족한 특수대의 특성상, 지방 출장은 언제나 큰일이다.
업무량은 미쳐 날뛰는데 일손은 너무나도 부족한지라 몇몇 팀원들은 아예 지방 광역시에 상주할 정도.
나는 어떻게든 인원을 보충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출장을 다녀온 팀원들을 맞이했다.
"오, 다녀왔나?"
"예. 팀장님."
"별 일 없었지?"
"출장 건은 무난하게 끝났는데, 오는 길에 이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상한 사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사건의 세부사항을 밝혔다.
"헌터가 엮인 교통사고인데 상당히 이색적입니다."
"갑자기 교통사고라니..."
특수대에선 좀처럼 다루지 않던 사건이다보니 살짝 흥미가 생기긴 한다.
게다가 이번에 출장을 다녀온 것은 서번트 출신의 팀원들이었다.
감정표현이 희미한 녀석들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헌터가 엮였다면, 가해자야?"
"헌터는 이미 사망했죠."
"사망?"
설마 급이 그리 높지 않은 헌터였던 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팀원들이 내민 자료를 받아들었다.
사망자는 중소규모 길드 소속의 B랭크 육체강화계 헌터.
문제는 교통사고도 이 양반이 일으켰다는 것이다.
던전 공략을 끝내고 서울로 복귀하던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여 반대편 차량과 충돌한 사건이다.
"다른 차량은 비교적 멀쩡한 건가... 하지만 육체강화계 헌터가 교통사고로 사망이라니."
B랭크 정도면 그리 낮은 등급도 아니다.
혹시 지난번의 자전거 도둑처럼 헌터 능력이 많이 편중된 케이스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
앨리스는 현직 헌터답게 곧바로 흥미를 보였다.
"제대로 된 육체강화계라면 화물트럭에 치여도 목숨 정도는 건질 수 있을텐데?"
"그렇지? 보험사 친구들은 제 때 도착했나?"
"예. 이 자료도 그쪽을 참조한 겁니다."
팀원들은 아예 블랙박스 영상까지 확보해둔 상태였다.
차량이 완전히 박살난 것도 아니고, 그냥 도로가에 처박힌 것인데 육체강화계 헌터가 죽었다니.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옛날에 배운 사실인데... 그쪽 계열 헌터들은 죽이려고 작정해도 잘 안 죽는다.
이 정도의 교통사고는 육체강화계 헌터의 사인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가능한 결론은 하나다.
"교통사고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인 건가."
"응? 그게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사망자는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이미 죽었던 거야. 그 결과 차량을 통제할 수 없게 돼서 교통사고가 일어난 거지."
"아..."
보험사의 자료도 내 추론을 증명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사인은 다름아닌 심근경색.
이건 육체강화계 헌터는 커녕, 한창 일할 때의 남자에게선 어림도 없는 사인이다!
"말도 안 되네. 한창 일하던 중인 30대 남성... 그것도 육체강화계 헌터가 심장마비라고? 가슴에 총을 대고 쏴도 안 뚫릴텐데."
"맞은편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해본 결과, 피해자는 사고 직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 살인인가?"
"그건 부검 기록을 참조해주십시오."
그새 부검까지 해버린 건가?
확실히 심상찮다.
그 기록을 살펴보던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딱딱히 굳어갔다.
"뭐야 이게...육체의 나이가 이미 50대 수준이었다고?"
"어떻게 할까요? 수사합니까?"
"사망자 유족들 어디있어? 지금 당장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지금쯤 빈소로 자리를 옮겼을 겁니다. 그쪽도 수사에 굉장히 협조적이더군요."
"안내해."
유족들이 협조적이란 것은 뭔가 억울하거나 짚이는 곳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주저없이 그들을 찾아갔다.
나는 비로소 감을 잡았으나, 앨리스는 아직 이해가 잘 안 되는 모양.
그녀는 헌터에 대해서 잘 알고있기에 오히려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육체강화계는 단순히 팔힘만 강화해주는 능력이 아냐. 보통은 심혈관과 심근의 내구성도 강화되지. 그러지 않으면 몸이 버틸 수가 없으니까 말야."
"맞아."
"그런데 그런 헌터가 어떻게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거야?"
"그건 생각보다 간단해."
"간단하다고?"
"그래. 아주 기본적인 원리야. 아무리 강력한 능력이라도 마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인 거지."
내가 사용하는 그린 더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린 더스트의 효과를 정확히 말하자면, '마력 공유 결합 해제'다.
적용 대상에게서 마력을 강제로 분리시키는 방식으로 헌터 능력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헌터는 그 지경까지 갈 일이 거의 없다.
생명 활동이 정지될 때까지 마력을 소모한다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니까.
보통은 본능적으로 일정 분량을 남겨두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마력을 모두 소모했다는 것은...
"나는 지금 과로사를 의심하고 있어. 심각한 피로는 충분히 심근경색의 원인이 될 수 있지."
"헌터가... 과로사?!"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아니나 다를까.
사망자의 처는 나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쪽도 아직 30대 초반에 불과한 모습.
그녀의 곁에는 다섯 살은 될까 싶은 어린 아들이 무척 혼란스런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조금 진정시키며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남편분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최대한 진정하시고 제 질문에만 간단히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가능하시겠습니까?"
"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고 싶네요."
"좋습니다. 그럼, 혹시 고인께선 하루에 몇 시간이나 근무를 하셨나요?"
내가 과로사가 아닌지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그녀는 구세주를 본 것 같은 얼굴로 변했다.
"말도 안 되게 길었죠. 아침 6시에 나가서 12시에야 들어오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니까요!"
"... 잠깐, 고인께서 근무하시던 흑마 길드는 분명 서울 소재였을텐데요?"
흑마 길드.
전 직원 50명 이하의 중소규모 길드로, 대형 길드의 하청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있는 업체다.
대형 길드를 대신하여 낮은 등급의 던전을 수도없이 해치우는 종류.
어찌보면 헌터 길드의 정의에 가장 합당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지방이나 38선 위쪽에 출현하는 저등급 던전들은 대부분 이런 길드들이 담당하게 된다.
사망자의 부인은 내 말에 대놓고 역정을 냈다.
"서울 소재 길드면 뭐해요? 하루가 멀다하고 지방 출장만 보내는데..."
하긴. 안 그래도 던전의 생성이 점점 줄어들어서 난리인지라 경기도권에는 남은 던전이 거의 없다.
그래서 헌터들이 멀다고 기피하는 지방까지 내려가야 겨우 일거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 출장만 가는 하청 길드라니... 이래서야 하청의 의미가 없다.
"지방의 저등급 던전들까지 모두 대형 길드들이 선점한 건가..."
"원래 해당 던전을 찾아낸 길드에게 공략 우선권이 주어지니까 말야. 아무래도 장비도 인력도 빵빵한 대형 길드가 유리할 수밖에 없지."
앨리스의 설명이 맞다.
헌터들 중에는 미등록 던전을 찾아내는 일만 전문으로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대형 길드 소속의 탐색꾼들이 낮은 등급의 던전을 찾아내면, 흑마 길드같은 하청업체가 그것을 인계받는 방식이다.
"그럼 고인께선 보통 한 달에 출장을 몇 번 정도..."
"글쎄요... 적어도 다섯 번은 나간 것 같은데요?"
"다섯 번이요?"
국내에서 작년에 생성된 던전이 2천개가 안 된다.
그리고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물론 국경선 밖에서도 던전이 생성되는데다, 지금껏 방치된 던전들도 없진 않으니 총합은 2천개보다 훨씬 많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주 나가는데?
보통 던전 공략 사이에는 최소 1주일 정도 텀을 두는 것이 원칙이다.
"좀 말이 안 되는데... 도대체 회사 사람들은 언제 오는 거지?"
사원이 죽었는데 아직까지 코빼기조차 비추지 않는 꼴이라니.
내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자 마침내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마 길드의 사장과 헌터들, 그리고 직원들.
심지어 변호사까지 합세해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하청업체가 전속 변호사를 데리고 있을 리는 없을테고... 원청업체에서 파견해준 건가? 가지가지 하는군.'
사망자의 부인은 그들을 원수보듯 하며 몸을 굳혔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봐도 저러는 것이 당연했다.
길드 마스터로선 이색적이게도 일반인인 듯한 사장은 뒤늦게 우리를 발견하곤 눈을 크게 떴다.
"음? 여러분은..."
"협회 특수대입니다. 사건 조사에 협조해주시죠."
"트, 특수대?"
그들은 우리의 등장을 상상도 못한 듯, 아주 바쁘게 웅성거렸다.
이제야 눈치챈 것인데, 길드에 여성 직원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다.
특히 현장에서 뛰는 헌터들은 거의 다 여성이다.
사장은 우리를 보곤 무척 불쾌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특수대에서 조사라니? 이건 단순한 교통사고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이만 가보시는 게..."
"단순한 교통사고로 B급 육체강화계 헌터가 죽겠습니까? 사건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판단합니다."
나는 유난히 적대적이고 경계심 가득한 사장의 반응에 위화감을 느꼈다.
내 입으로 말하기도 좀 뭣하지만... 우리 특수대는 실세 중의 실세.
S랭크 헌터도, 현역 길드 간부들도 모조리 감옥에 처박아버릴 수 있는 집단이다.
이제 어지간한 헌터들은 내 얼굴만 봐도 겁먹는 수준인데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이놈들...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구나?'
원청에서 파견을 나온 듯한 변호사가 뒤늦게 수습을 시도했지만 이미 늦었다.
"잠깐만요, 사장님. 수사관 님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아니 이 사람이... 당신은 도대체 누구 편이야? 그냥 법대로 하면 되잖아 법대로! 어차피 우리는 잘못 없어!"
아직 심문 시작도 안 했는데 알아서 술술 불어주신다.
변호사는 이제 모두 틀렸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장은 그대로 몸을 돌려서 나가려 했으나... 내가 손을 한 번 까딱하자마자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출구를 막았다.
나는 당황한 사장의 앞에서 피식 웃었다.
"법대로 좋지. 나는 법대로 못할 것 같아? 당신은 헌터 길드 사장이니까 민간인 취급 못 받는 거 알지?"
"비, 비켜!"
"흑마 길드 사원 전원, 증거인멸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 구속한다. 정태야, 이 새끼들 싹 다 구속시켜."
"네, 팀장님!"
묘하게 신이 난 김정태가 놈들에게 줄줄이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
사장의 얼굴이 그제야 분노와 굴욕으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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