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81화 (81/131)

〈 81화 〉 자전거 도둑(2)

* * *

미끼로 쓰인 자전거가 옮겨진 장소는 현재 공실로 처리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범인이 상가 건물의 일부를 멋대로 점거해서 사용하고 있는 모양.

상가 안에 사람들도 돌아다닐텐데, 배짱도 좋다.

"덕분에 진입하긴 쉽네. 안에 사람 있는 거 맞지?"

"확실합니다. 안쪽에서 반복적으로 조명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절도한 품목을 확인하는 것 같군요."

김정태가 정찰대의 보고를 전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좀 더 기다릴까요?"

"너무 시간을 끌었다가 집에 가버리면 안 되지. 여긴 놈의 자택이 아니잖아. 준비가 끝나는대로 돌입하자."

[정문 담당 1팀 준비 완료.]

[후문 담당 2팀 준비 완료.]

"창문은 우리가 담당한다. 절대로 실수하지 마라. 작전 개시!"

나는 명령을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차량에서 뛰어나갔다.

허리춤에서 연막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낸 다음, 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는 창문을 향해서 주저없이 투척.

유리를 깨고 실내로 들어간 연막 수류탄은 순식간에 녹색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린 더스트를 분말의 형태로 가공해서 만든 저것은 시야 차단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다만 헌터 능력의 무효화 기능은 상당히 괜찮았다.

특히 저런 실내에선 발군의 위력을 자랑한다.

"와앗!"

안쪽에서 비명이 터져나오기 무섭도록 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대원들.

범인은 하는 수 없이 깨진 창문으로 달아나려 했으나...

케르가 늦지 않게 온몸으로 블로킹을 감행해서 놈을 튕겨냈다.

"끼잉."

"우왁!"

"능력은 쓰지마라. 그린 더스트는 공간이동처럼 정밀한 능력과 아주 상성이 좋지."

물론 이건 내 입장에서 상성이 좋다는 뜻이다.

그린 더스트의 영향하에서 사용자의 체외로 영향을 미치는 능력을 사용했다간 최소 불발.

최악의 경우에는 헌터 본인이 다칠 수도 있다.

그런데 예상보다 앳된 인상의 자전거 도둑은 영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뭐, 뭐야 이 초록색 가루는... 놔! 놔달라고!"

이 녀석, 아무래도 그린 더스트가 뭔지 모르는 눈치다.

복도에서 진입한 대원들이 놈에게 총구를 겨누자 그제서야 놈이 좀 얌전해졌다.

"히... 히이익! 잠깐, 쏘지마!"

"입 닥쳐. 우린 헌터 협회 특별 수사대다. 너를 자전거 절도 혐의로 체포한다."

"어, 어어? 그...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특별 수사대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왜 저 같은 잡범을..."

"잡범이라니. 자전거 절도라는 흉악 범죄를 저질러놓고 잘도 그딴 소리를 하네. 이건 반성의 기미가 없는 걸로 봐도 되겠지?"

내가 진심을 듬뿍 담아서 녀석을 갈구자 옆에서 케르가 크게 짖었다.

"컹컹!"

우리가 범인을 철저하게 구속하는 사이.

뒤늦게 연락을 받고 도착한 이서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자전거들을 살펴봤다.

실내에는 앞서 미끼로 내걸었던 자전거는 물론이고, 다른 자전거들도 몇 대나 보관되어 있었다.

"이게 도대체 몇 대야... 다 합치면 10대 좀 안 되겠네요."

"서우 씨, 자전거 찾았어?"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이서우의 자전거도 나름대로 고가품인데...

다른 자전거들에 비하면 좀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그는 곧바로 다른 도난품들을 알아보곤 기겁했다.

"이, 이건 오베아 오르카잖아?"

"서우 씨, 나는 숫자를 좋아하니까 숫자로 말해."

"아. 이 자전거는 최소 400만원 짜리입니다."

"뭐? 에이, 하이엔드급 치곤 별로 비싸지도 않ㄴ..."

"물론 중고품 기준으로요."

"뭐라고?"

이거 보통 사악한 자식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대로 도난품을 회수하고 놈을 협회로 연행했다.

사실 구속 수사까지 갈만한 사안은 아니지만, 능력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특별히 가둬두기로 했다.

심지어 일단 잡고 보니 이놈은 미등록 헌터였던 것이다.

나는 무척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심문을 개시했지만...

쉽게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범인의 태도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놈은 협회에 오자마자 시종일관 바들바들 떨며 뭐든 순순히 대답했던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야, 너 훔친 자전거는 어디에 팔았어? 블랙 마켓이냐?"

"네? 블랙 마켓이요? 그런 것도 있나요? 저는 그냥 중고나라랑 당근마켓에서 팔았는데요..."

"뭐? 그럼 도난당한 놈이 알아보면 어떻게 하려고?"

"그야 못 알아보도록 프레임에 페인트칠을 했죠."

중고가 400만원짜리 자전거에 페인트칠을 하다니. 이거 진짜 미친 놈이다.

나는 그 뒤로도 녀석을 여러번 윽박질렀으나...

녀석은 업계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는 수준이었다.

아까 그린 더스트를 못 알아봤던 것도 그렇고, 이건 거짓말이라고 볼 수 없다.

녀석에 대한 기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던 나는 가장 궁금한 부분부터 물어봤다.

"야, 너는 공간이동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놈이 왜 자전거나 훔치고 앉았냐? 헌터 등록은 왜 또 안 하고?"

"아, 그... 헌터 등록이란 거, 한 번 해버리면 전쟁터에 끌려가잖아요. 달마다 연금도 엄청 뜯긴다고 들었고."

"이 새낀 도대체 언제적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놈의 오해를 하나하나 고쳐주기로 했다.

원래 사람 죽이고 다니던 중범죄자들을 주로 상대했던데다, 이놈이 워낙 얼빵해서 절로 기분이 누그러졌다.

"전쟁 나면 끌려가는 건 현역병도 똑같아 인마. 헌터 등록을 하면 군대는 자동 면제야. 게다가 너는 공간이동계 헌터라서 한국 헌터 협회의 최중요 자산으로 분류된다."

"엑? 저, 정말이요? 그래도 몬스터가 나오면..."

"야, 지금 한국에 남아도는 게 헌터인데 너처럼 얼빵한 새끼를 전선에 보내겠냐? 한 15년 전이라면 또 몰라."

심지어 좀 있으면 게이트도 완전히 닫힌다.

놈이 걱정했던 것들은 멋모르는 학생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담 같은 것이었다.

이놈을 상대하고 있자 1년치 한숨이 단번에 터져나왔다.

"공간이동계 헌터는 기본 연봉이 억대부터 시작하는데..."

"어, 억대?"

"너 진짜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자전거나 훔치고 앉았던 거냐? 왜 그렇게 멍청해?"

"아니... 수사관님. 왜 아까부터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왜, 수백만원짜리 물건 훔치다 걸렸는데 싫은 소리 좀 들으니까 꼽냐? 저기 다른 놈들처럼 대해줘?"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구속실에 갇혀있는 용의자들을 대충 둘러보고 왔던 놈이 잔뜩 주눅든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가슴을 탕탕 쳤다.

"와, 이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놈은 처음이네. 무슨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줘야 해!"

"죄, 죄송합니다."

"됐고 너 빨리 불어. 왜 그런 능력 가지고 자전거를 훔쳤냐니까?"

"아니. 애초에 제가 옮길 수 있는 게 자전거 밖에 없거든요?"

"... 뭐라고?"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녀석이 아주 열심히 변명했다.

"수사관님 말씀대로, 제가 뭐하러 자전거나 훔치고 있었겠어요? 다른 건 아예 이동시킬 수가 없으니까 그랬지."

"그게 무슨 소리야? 공간이동계 헌터면 기본적으로 자기 몸 정도는 이동시킬 수 있잖아? 너 순간이동 못해?"

"못해요! 그런 게 가능했으면 아까 진작 도망쳤죠!"

물론 그린 더스트 때문에 그건 불가능했겠지만...

나는 너무 귀찮은 나머지 설명을 생략했다.

"자전거만 순간이동 시킬 수 있는 능력? 그런 게 가능한가?"

[그 정도로 특화된 능력이 없진 않죠. 아직 각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으니... 영상 기록 조사 결과 사실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블랑쉬의 말도 일리가 있다.

"제, 제가 어릴적부터 자전거를 굉장히 좋아해서... 그래서 이런 능력을 얻게 된 것 아닐까요?"

"좋아하는 걸 그렇게 마구 훔쳐대냐? 완전 뒤틀린 사랑이군."

"... 그건 면목없습니다."

나는 녀석에게 비아냥거리면서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의 사상과 정신상태는 실제로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세상의 모든 헌터들을 저주하던 내가 그린 더스트라는 능력을 얻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특화된 능력이라면 1km에 달하는 이동범위도 납득이 되는군.'

능력에 대해서 솔직하게 털어놓은 녀석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전거만 옮길 수 있는 능력으로 헌터가 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수사관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야, 너 각성한 지 얼마나 됐어?"

"각성이요? 체감상 한 1개월..."

도리도리.

나는 그의 앞에서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각성 3주 안에 헌터 등록 신고를 안 한 놈은 처벌 대상인 것이다.

그러자 놈은 내 제스쳐를 알아보곤 기간을 조금 수정했다.

"... 2개월?"

이번에는 검지를 세워서 아래쪽을 가리켰다.

놈은 그제야 제대로 감을 잡았다.

"다시 생각해보니까 한 2주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오케이, 각성 2주차면 미등록 처벌 대상은 아냐."

"아... 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자전거밖에 못 옮긴다고 해도, 그걸 1km씩 이동시키는 건 보통 능력이 아니야. 너는 충분히 장래성이 있어. 능력을 조금 더 개발하면 자전거 말고 다른 것도 옮길 수 있을지도 몰라."

실제로 헌터 능력은 시간에 따라서 발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특히 각성한 지 6개월 정도는 능력이 들쭉날쭉한다.

녀석은 내 설명에 감동을 받은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 헌터 등록하고 훈련받아. 아니, 자전거부터 돌려주는 게 좋겠네. 페인트칠 싹 벗기고 원래 있던 자리에 갖다놓아."

"아... 알겠습니다. 이미 팔아치운 건 어떻게 할까요?"

"똑같은 거 사서 주인에게 돌려줘야지. 모자란 돈은 내가 빌려줄테니까 나중에 갚아."

물론 이놈을 무턱대고 놓아줄 생각은 없다.

이런 공간이동계 능력자는 헌터 등록과 동시에 체내에 위치 확인용 칩을 삽입하게 된다.

나는 거기서 한 술 더 떠 그린 더스트가 첨가된 특제 칩을 선물해줄 생각이다.

"너는 연봉 10억짜리 헌터가 될 수 있어. 좀도둑질이나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겠지만, 더 나은 인생도 한 번 고려해봐."

"수, 수사관님..."

"그리고 한 번 더 내 부하직원의 자전거를 훔치면 죽여버린다."

"앗? 역시 그것 때문에 잡힌 건가요..."

"궁금하면 한 번 더 해봐."

"아뇨... 절대로 안 하겠습니다. 이제 정말 똑바로 살게요."

지금 내 앞에서 죄스럽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녀석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조차 너무 사치스런 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녀석의 등을 찰싹 때렸다.

"잘 생각했어. 내가 보기에 너는 범죄에 재능이 없거든. 어떻게 그런 개사기 능력을 가지고 경범죄로 잡히냐?"

"아... 그런데 저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진짜로 알고싶냐?"

"아뇨... 그냥 모르고 있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할테니까요!"

우리는 즉시 헌터 등록을 위해서 방을 떠났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