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 헌터펫 살인사건(1)
* * *
샌드킹 체포 이후 며칠 뒤.
나는 새까맣게 탄화된 시체를 마주하게 됐다.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죽은 피해자는 한 중소규모 길드의 마스터였다.
아직까지 풍기고 있는 매캐한 냄새는 다른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나는 티아와 앨리스, 서지유를 밖으로 내보내곤 최대한 빨리 조사를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등에 맞았군."
"그렇습니다."
"마력 반응 검출 확인. 직격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급히 오긴 했지만, 아직까지 마력 반응이 남아있다니.
이건 직격당한 게 아니면 불가능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헌터 범죄.
그것도 살인사건이다.
고온으로 탄화된 피부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후두둑 부서질 정도였다.
게다가 열이 깊게 침투해서, 이 정도면 심장이 아예 익어버리지 않을까 싶은 수준.
"사인이 정확히 어떻게 되죠?"
"심인성 쇼크사입니다. 고열의 탄환으로 심장을 정확하게 관통당했죠. 저희 병원에 왔을 때엔 이미..."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 범죄가 확실하다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방 밖으로 나가서 용의자를 쳐다봤다.
복도에는 죄인처럼 서있는 사내와 그의 헌터펫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개처럼 생긴 헌터펫을 내려다보며 착잡한 기분이 됐다.
얼마전에 헌터펫 카페를 다녀왔는데, 곧바로 헌터 펫 관련 사건이 발생하다니.
"끼잉..."
"얘가 그랬다구요?"
"그, 그렇습니다 수사관님."
헌터펫의 주인인 사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이름은 장민호.
피해자와 같은 길드 소속이었던 길드원이다.
그의 옆에 버텨선 것은 개처럼 생긴 헌터펫.
흔히 케르베로스라고 불리는 몬스터였는데, 그렇다고 머리가 세 개씩 달리진 않았다.
대신 이 녀석은 몬스터도 태워죽일 수 있는 불길을 내뿜는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과 강력한 전투 능력, 높은 지능 덕분에 인기가 있는 품종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피해자의 부인이자 길드원이었던 여성이 등 뒤에서 흐느끼는 사이.
우리는 협회로 자리를 옮겨서 조사를 시작했다.
"일이 정확히 어떻게 된 겁니까?"
"저... 저는 진욱 형과 길드 하우스에서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해자인 길드 마스터의 이름이 바로 박진욱.
길드 소속의 힐러가 자리를 비우고 있었던 탓에, 병원으로 이송이 되기도 전에 사망해버린 비운의 사내였다.
다만 상처가 워낙 심각해서 만약 힐러가 있었더라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삼키며 자세히 캐물었다.
"무슨 내용의 말다툼이었죠?"
"그, 그게..."
헌터펫의 주인인 장민호는 잠시 말을 더듬다가, 내 표정을 보곤 곧바로 대꾸했다.
직접 죽였든, 헌터펫이 죽였든. 이것은 엄연한 살인사건이다.
그냥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다.
"사실은 제 고용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고용 문제요?"
"네. 수사관 님도 아시겠지만, 요즘 업계가 예전같지 않잖아요. 던전 생성은 줄어들고 있는데 경쟁사는 점점 더 늘어나서..."
그거야 예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업계에 불황이 다가올 경우, 회사들은 보통 가장 먼저 인력을 감축한다.
들어오는 돈이 줄어들고 있으니까 나가는 돈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일거리 자체가 줄어든 상황인만큼 무조건 나쁜 선택은 아니다.
"장민호 씨는 길드의 창립 멤버셨죠?"
"그렇습니다."
다만 중소규모 길드인만큼 창립 멤버라 해도 아주 거창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인력감축 같은 걸 당하고 있지.
장민호는 죄스런 얼굴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서로 언성이 격해지고 있었는데, 이 녀석이 위협을 느꼈는지 그만 실수를..."
"그렇게 된거군요."
나는 그린 더스트 목줄을 찬 케르베로스를 내려보며 한숨을 삼켰다.
원래 목줄은 저런 게 아니었는데 특수대에서 채운 것이다.
물론 헌터펫이라곤 해도 원래는 몬스터인만큼, 갖가지 안전장치를 착용하도록 되어있지만...
하필이면 사건이 길드 하우스에서 터졌다.
이쪽은 자택과 동급으로 쳐서 따로 목줄 같은 것을 차지 않아도 된다.
나도 헌터펫을 한 마리 키우는 입장이라서 아주 잘 알고있다.
화제가 화제인지라, 티아는 사무실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고있었다.
나는 벌써부터 일이 골치아파질 것을 예감했다.
이번 사건은 업계 전체에서 큰 이슈가 될 것이다.
'일단 이 녀석은 살처분이겠지.'
이 녀석은 애초에 사냥용으로 분류되는 품종이다.
그런데 아예 몰랐던 사람도 아니고, 동료나 다름없던 길드 마스터를 죽였으니... 안락사는 필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주인쪽도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
어찌보면 그야말로 이 사태의 원흉이다.
나는 그에게 담담히 설명했다.
"그럼 장민호 씨는 이대로 구속하겠습니다."
"넷? 그, 그런..."
설마 구속수사를 당할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듯, 화들짝 놀라는 장민호.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윽박지르고 싶은 기분이 됐다.
"사람 한 명 죽여놓곤 당당하시군요. 장민호 씨 본인은 안전 관리 의무 위반은 물론이고 불법 무기 사용죄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부, 불법 무기 사용이라니!"
내 말에 장민호의 몸이 크게 흠칫 떨렸다.
확실히 헌터펫과 불법 무기라는 게 썩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다.
케르베로스 품종의 헌터펫은 엄연히 몬스터 사냥용으로 쓰이는 '무기'다.
"서우 씨, 장민호 씨를 안내해줘요. 헌터펫도 같이 데려가고."
"네, 팀장님."
사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내가 그대로 창가로 자리를 옮겨서 시선을 내리자... 벌써 소식을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은 기자들이지만, 동물 보호 단체도 심심찮게 섞여있었다.
그들은 급조된 피켓을 흔들어대며 고함을 질러댔다.
"벌써 시작이군."
"설마 살처분 하지 말라고 저러는 거야?"
"그런 것 같은데?"
동물 보호 단체들 중에는 일반인들도 헌터펫을 키울 수 있게 해달라는, 급진적인 부류도 적지 않다.
티아는 사무실의 무거운 공기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제자리에 얌전히 앉아있었다.
내가 녀석을 돌아보자 녀석이 흠칫 몸을 떨었다.
"주, 주인님! 저 앞으로 콜라 안 마셔도 돼요. 간식도 조금만 먹을게요."
"간식은 완전히 포기 못 하는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내를 조금 토로했다.
사실 나도 헌터펫을 안락사 시키는 것이 그리 마음 편하진 않다.
"까놓고 말해서 헌터펫이 무슨 잘못이야? 원래 몬스터였던 놈들을 길들여서 헌터펫으로 부려먹은 게 바로 인간인데. 차라리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주인을 안락사 시켜야지."
"엑..."
뭐, 말은 이렇게 해도 일단 사고가 터져버린 이상 살처분이 맞다고 생각한다.
한 번 인간을... 그것도 헌터를 공격한 몬스터는 언제든지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류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여 놔뒀지만 이젠 망설임 없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다른 팀원들도 그것을 의심하진 않는 눈치였다.
그 사이, 용의자를 데리고 구속실에 다녀온 이서우는 유독 착잡한 얼굴이 돼서 자리에 앉았다.
나는 그런 그를 격려할 겸 애써 가볍게 말을 걸어봤다.
"왜 그래, 서우 씨도 개빠야?"
"네?"
"개빠, 고양이빠. 어느쪽이냐고."
"아, 저는 개가 더 좋습니다."
어렵사리 웃으며 침음을 삼키는 이서우.
그는 이내 한층 진지한 표정으로 망설이다 말을 걸었다.
"저... 팀장님. 이번 사건, 정말로 사고일까요?"
"...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자세히 이야기해봐."
이서우가 저렇게 느꼈다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질책하지 않고 물어봤다.
이서우는 본인의 생각을 뒤늦게 정리하듯, 차근차근 설명했다.
"헌터 범죄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크게 두 가지... 범행 동기와 범행 방법입니다. 이번 사건은 범행 방법이 중요 포인트죠."
"그런데?"
"언뜻보면 헌터펫이 범행 방법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피해자의 사인은 어디까지나 심인성 쇼크사... 더 정확하게는 심각한 화상이죠."
나는 그제야 이서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인지 눈치챘다.
"사실 화염계 능력은 헌터 업계에서 그리 드문 능력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그렇습니다."
실제로 우리 특수대가 잡아들인 놈들 중에는 화염계 능력자가 몇 명이나 있다.
화염계는 전자계와 신체강화처럼 비교적 흔한 종류의 능력인 것이다.
다만 피의자인 장민호는 화염계 능력자가 아니었다.
해당 길드는 화염계 헌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서우는 내 맞장구에 용기를 얻은 채 계속 주장했다.
"만약 헌터펫을 이용한 범행이 맞다고 쳐도, 사고를 가장한 살인이었다면요? 이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사건 현장에는 CCTV도 없었잖아요."
"그야 길드 하우스의 생활 공간이었으니까."
이서우의 말도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헌터가 능력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면 최소 10년은 나온다.
그러나, 헌터펫의 안전 관리 의무 위반으로 기소되면?
이쪽은 협회법을 적용해도 5년 이하다.
실전에서는 3년이하로 판결이 나와서 대체복무로 빠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서 몇 번이나 설명했듯, 헌터 한 명을 가둬두는데엔 엄청난 비용이 소모되니까.
"사람 하나 죽이고 대체복무 3년... 남는 장사가 아니라곤 못하겠네. 고용 문제로 말다툼까지 벌였다니 살해동기도 충분하고."
"장민호가 헌터펫에게 명령을 내려서 피해자를 죽였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지."
내가 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이서우가 갑자기 살짝 머뭇거렸다.
나는 주저없이 그를 독려했다.
"망설이지 말고 말해. 느낌이든 뭐든, 의심가는 게 있으면 공유해도 좋아."
"아, 네. 그리고 이건 아까 들었던 위화감인데... 팀장님께서 '불법 무기 사용죄'를 주장하셨을 때, 장민호가 아주 심하게 동요하더군요."
"음? 아... 그랬지."
당시에는 너무 터무니없는 죄목이라고 느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이상할 정도로 민감한 반응이었다.
이서우의 의견을 받아들인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구속실로 간다. 따라와."
"팀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마침 적당한 판독 방법이 떠올랐어. 이번 사건이 사고인지 아닌지 간단하게 밝혀낼 수는 있을 거야."
"어, 어떻게..."
대원들과 함께 구속실로 내려간 나는 문제의 케르베로스를 철창 밖으로 꺼냈다.
목줄은 물론이고 입마개까지 채워놓은 상태라서 전혀 위협이 될 수 없는 상태.
잔뜩 주눅든 눈초리의 녀석을 데리고 장민호가 갇혀있는 방으로 향했다.
"엇, 수사관님!"
장민호는 내가 본인을 꺼내주러 온 줄 알고 반색했으나...
나는 그대로 철창을 닫아놓은 채, 케르베로스를 그의 앞에 세웠다.
두쪽 다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면서도 가만히 있는 사이.
차가운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철컥!
"우, 우왓!"
"그르르..."
나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 장민호를 겨눴다.
그러자 내 행동을 알아본 케르베로스가 미친 듯 날뛰며 나와 장민호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입마개 때문에 제대로 울지도 못하는데 아주 용감한 모습이었다.
"무... 무슨 짓입니까!"
"왈, 크르르르르!"
"확실해졌군."
내가 총을 다시 집어넣자 그제야 조금 얌전해지는 케르베로스.
나는 티아를 시켜서 녀석을 다시 집어넣은 다음, 장민호의 앞에서 말했다.
"주인은 개를 버리려고 하는데, 개는 그것도 모르고 주인을 감싼단 말이지..."
"수사관님? 방금 그게 도대체..."
"가자."
나는 그에게 눈길도 던지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어차피 곱게 입을 열만한 놈이 아니다.
아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앨리스가 뒤늦게 설명을 요구했다.
"방금 그게 무슨 뜻이야?"
"앨리스, 기억해봐. 피해자는 등 뒤에서 공격을 받았어."
"응?"
그제야 위화감을 눈치채는 앨리스.
나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며 괴로운 기분으로 설명했다.
"만약 장민호와 피해자가 말다툼을 벌여서 위협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면, 케르베로스는 방금 전처럼 둘 사이에 끼어들어서 주인을 보호하려고 했을 거야. 등 뒤에서 다짜고짜 공격하는 게 아니라."
"아, 아앗..."
케르베로스에겐 어디까지나 주인의 보호가 우선이었으니까.
저런 충견은 주인밖에 모르니까.
"지금 당장 피해자의 부인을 데려와. 아직 진정이 안 됐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예, 팀장님."
김정태와 팀원들이 다급히 로비를 향해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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