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서지유(1)
* * *
이른 아침.
괴로운 기분으로 출근한 나는 가장 먼저 신문을 펼쳐들었다.
요즘은 종이신문을 잘 안 봐서 찍어내자마자 파지로 팔아버린다고 하지만...
우리 사무실은 각 주요 신문사를 모두 구독하고 있다.
나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기사를 발견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 폭행 사건 피해자들, 흉기 휴대 및 사용 시도로 입건...]
아무래도 당일에 동행했던 경찰들이 일을 아주 대충 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에서 칼을 소지하는 것 정도로는 제대로 처벌받기 힘들지만, 운이 좋으면 벌금형 정도는 나올지도 모른다.
대충 구독을 마친 나는 앨리스가 묘하게 흥분한 것을 발견하곤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오늘은 인상 안 쓰고있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내가 지난번에 말했던 그거, 오늘부터 시작이야."
"아, 그래?"
나는 예전에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아도 따라서 일어서자 마침 커피를 다 돌렸던 서지유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아침부터 어디 나가셔요?"
"출장이다. 이번에 헌터 펫 카페가 신장개업하는데, 문제가 될만한 여지가 없는지 보고 오는 거야."
"헌터 펫 카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서지유도 살짝 흥분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것이지만...
몬스터 중에도 인간에게 그리 위협적이지 않고, 오히려 잘 따르는 녀석들이 있다.
사실상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수준의 생물인 것이다.
이번에 개업하는 헌터 펫 카페는 그런 녀석들을 엄선해서 기르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이건 굉장히 이례적인 케이스라서 우리도 한 번 살펴보러 가게 됐다.
나는 너무 늦지 않게 예리엘을 떠올리곤 냉큼 전화를 걸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통화를 하는 것도 좀 아니다 싶지만, 상대가 상대라서 다들 이해해주는 분위기다.
"여보세요, 예리엘. 혹시 나랑 같이..."
[지금 바로 나갈게요.]
"... 아직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
[어디든지 상관없어요.]
그렇다고 한다.
나는 잽싸게 가게의 주소를 전달하곤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목 좋은 곳의 흔치 않은 가게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바글거리는 손님들.
예리엘과 합류한 나는 수사관의 신분을 내세워서 당당하게 새치기를 했다.
2층과 3층을 통째로 쓰고있는 가게에 들어서자 예리엘의 방문까진 예상치 못했던 종업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로 안내해줬다.
"어, 어서오세요. 아이들을 만지셔도 되지만, 가만히 계셔도 알아서 다가올 거에요. 그리고 음료는..."
"저건... 슈론인가요?"
예리엘은 유리창 안쪽에서 뽈뽈 돌아다니고 있는 몬스터들을 알아봤다.
토끼의 다리를 조금씩 늘리고, 날개를 붙여놓은 것 같은 모습의 몬스터.
귀여운 외모는 물론이고 인간에게 완전히 무해해서 인기가 좋지만 지금껏 민간인들이 접촉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참고로 날개는 닭의 날개 같은 느낌으로, 본격적인 비행용은 아니다.
슈론을 정신없이 찍어대고 있던 손님들은 예리엘과 앨리스를 발견하곤 소란을 떨어댔다.
다행히 예리엘은 카메라로 함부로 찍기도 부담스러운 상대라서, 카메라 플래쉬가 터져나오거나 하진 않았다.
"맞습니다. 협회의 허가를 얻느라 고생 좀 했죠."
"슈론 외에 다른 헌터펫은 취급하지 않고 있는 겁니까?"
"네. 아직 다른 헌터펫이나 동물들과 합사했을 때의 영향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아서요."
보아하니 무턱대고 인기를 끌려고 헌터펫을 선택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잘 보면 안쪽의 공간도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은퇴한 헌터인 점장은 제법 자신있게 설명했다.
"슈론들은 사람의 손도 잘 타고, 지능도 보기보다 높아서 배변 훈련까지 가능해요. 헌터펫으로서 이보다 더 적합하고 안전한 종은 없을 거에요."
"점장님께선 현역 시절에도 헌터펫 조련사 겸 연구원으로 활동하셨죠?"
"네. 슈론의 교배 방법을 확립한 게 바로 저예요."
일단은 일을 하러 온 것이라서 제법 지루한 질의응답이 이어지고 있건만.
예리엘은 뭐가 그리 좋은지 생글생글 웃었다.
그 사이 앨리스와 서지유는 먼저 입장해서 슈론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도 티아를 데리고 입장하자 시원한 냉방이 우리를 맞이했다.
날이 살짝 더웠는데 무척 반가운 기분이다.
슈론들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꼬물꼬물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헌터 펫 전용 간식을 팔고 있다는 공지를 발견하곤 종업원에게 요청했다.
"간식 하나만 주실래요?"
"죄송합니다. 간식은 시간마다 제한된 수량만 판매하고 있는데, 지금은 이미 다 나가버려서요..."
헌터펫들의 건강 유지를 위해서 너무 많이 팔진 않고 있는 모습.
나는 그걸 이해하면서도 재차 요구했다.
"괜찮아요. 얘한테 먹일거라서."
"엣? 저요?"
내가 티아를 가리키며 말하자 종업원이 울듯말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간식을 가져왔다.
자칭 맛잘알인 티아는 그것을 한 입 깨물어보더니 곧바로 웃었다.
"좋은 당근이네요. 신선하고, 유기농인 것 같은데요?"
"그래?"
"매일 이런 조사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슈론의 복실복실한 털을 쓰다듬던 서지유도 만족스런 반응을 보였다.
조금 걱정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합격이다.
적어도 헌터 범죄를 염려할 필요는 없겠다.
점검을 마친 우리는 적당히 카페를 즐기다 자리를 비워줬다.
그런데, 예리엘이 가게를 나오기 전에 점장에게 조용히 몇 마디 했다.
"실내 온도가 낮은 건 슈론들이 손님들에게 잘 다가가도록 하기 위한 건가요?"
"앗, 그... 마, 맞습니다."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순순히 인정하는 점장.
나는 예리엘의 관찰력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예리엘은 계속해서 조곤조곤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추운 것 같네요. 슈론들도 조금 불쌍하구요. 2도 정도는 올려도 문제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제 사진 광고에 쓰셔도 돼요."
"저, 정말요?"
예리엘은 돈을 내도 광고를 안 받아주기로 유명한데, 이렇게까지 해줄 줄이야.
우리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가게를 나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식당을 고르기도 전에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는 것이 아닌가.
[팀장님. 울산에 현상수배범이 하나 떴습니다. 현재 검거 작전 준비중입니다.]
"수배범? 누구?"
[샌드킹. 살인 전과가 있는 A랭크 범죄자 헌터입니다.]
"간만에 A급인가..."
원래 우리 특수대가 저런 수배범까지 일일이 체포하진 않는다.
그쪽 권한이야 가지고 있지만, 역할로 따지면 경찰 강력반이 아니라 검찰에 가까우니까.
저런 기존의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것은 헌터 협회 기동대의 역할이다.
하지만 A랭크 범죄자 헌터가 작정하고 도주나 전투를 감행하면 아무래도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놈은 결국 우리가 인계받아야 하는 범죄자다.
나는 짧은 고민 끝에 지방 출장을 결정했다.
"샌드킹이면 A랭크에서도 최상위권이었지? 내가 갈게."
[직접 가실 겁니까?]
"그래."
예리엘도 나를 따라나서려 했지만, 내가 극구 말렸다.
앨리스는 사무실에서 대기.
사실 나도 어지간해선 나서지 않을 생각이다.
"티아도 남아."
"저두요? 힝..."
"그, 그럼 저는 같이 가도 될까요?"
예리엘이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번쩍 손을 드는 서지유.
나는 떨떠름한 기분으로 그것을 허락했다.
"... 안 될 건 없지? 어지간히도 일하기 싫은가봐?"
"뭐, 그렇죠. 하하..."
"그럼 당장 서울역으로 가자."
나는 야구모자를 하나 꺼내서 착용한 다음 엑셀을 밟았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약 2시간 30분만에 도착.
다행히 밤에 시행된 수배범 체포 작전은 비교적 잘 끝났다.
완전히 제압되지 않았던 놈이 모래폭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협회의 기동대가 잘 대응해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야구모자를 끝까지 쓰고있었어야 했다.
놈이 일으킨 모래폭풍이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와 서지유를 살짝이나마 덮쳤던 것이다.
그로인해 부상을 입거나 한 것은 아니었으나, 옷이고 머리카락이고 모래투성이가 됐다.
"망할..."
"그러게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라고 했잖습니까."
협회의 기동대는 우리를 놀리면서도 열심히 모래먼지를 털어줬다.
체포 작전은 밤에 시작돼서, 날은 이미 완전히 저물어버렸다.
이젠 기차역까지 가도 상당히 아슬아슬 할 것 같다.
"그냥 차 가져올 걸 그랬죠?"
"지유 씨, 본인이 운전 안 한다고 막말하네... 장시간 운전도 엄연한 노동이거든?"
"아 뭐 그럼 어쩔 수 없구요."
결국 우리는 하룻밤을 자고 가게 됐다.
협회의 기동대는 우리를 위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범죄자를 인계해주기로 했다.
혼자였다면 그냥 대충 모텔에 숙박했겠지만, 서지유가 함께 있으니 제법 호화롭게 호텔로 결정.
원래는 2인실이 기본이라지만 차마 엄두가 안 나서 방을 2개 빌렸다.
욕실에서 몸을 제대로 씻은 나는 한층 상쾌한 기분으로 목욕 가운을 걸치고 나왔다.
'괜히 직접 온다고 했네.'
그런데, 나른한 기분으로 침대 위에 퍼져있자 갑자기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냉큼 가운을 잠그고 문을 열어보자 어색하게 웃고있는 서지유가 보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욕실로 직행한 듯 머리가 살짝 젖어있었다.
"저, 팀장님. 혹시 룸서비스 시켜도 될까요?"
"지유 씨, 맞을래요?"
내가 주먹을 흔들어보이자 살짝 기겁하면서도 방으로 쪼르르 들어와버리는 서지유.
나는 누가 볼까봐 황급히 문을 닫았다.
벽을 등진 그녀는 내 눈을 살살 피하면서도 달아나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