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정당방위
* * *
경찰과 피해자들이 반 강제적으로 돌아간 뒤에도...
폭행 사건을 저지른 헌터는 뻘쭘한 표정으로 굳어있었다.
나는 그를 맞은편에 앉혀두곤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강성안 씨. 불기소 처분이 뭔지 잘 알고 계십니까?"
"아, 아뇨.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불기소는 말 그대로 기소 자체를 안 한다는 건데, 크게 무혐의와 기소유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사실 다른 분류도 있지만 당장은 신경쓸 필요가 없다.
눈앞의 헌터는 불안하다는 듯 몸을 살짝 떨었다.
"기소유예요?"
"네. 성안 씨의 경우가 바로 기소유예입니다.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인정되지만, 기소까지 갈 필요까진 없다는 거죠. 어차피 크게 의미없는 판결이 나올테니까요."
사람을 한 명 기소하고 재판까지 치루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우리 특수대는 일손이 부족해서 더더욱 그렇다.
한밤중에도 한창 돌아가고 있는사무실을 본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군요."
"그래서 돈과 시간을 아낄 겸, 기소를 하지 않는 겁니다."
내 설명에도 불구하고 헌터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아직 제대로 이해가 안 된 것 같다.
나는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정리해주기로 했다.
"성안 씨, 민간인 폭행 하셨죠?"
"그... 렇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어요."
"폭행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미 영상도 찍혀버렸으니까요. 그래서 무혐의는 불가능합니다. 정당방위를 노려볼 수는 있지만, 돈도 시간도 제법 낭비될 겁니다. 성안 씨는 헌터니까 가중처벌을 받을 확률도 높구요."
"... 이해했습니다."
강성안도 본인의 폭행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래봤자 의미없다.
"하지만 범죄 사실이 경미하고, 정상참작을 받을 여지도 없지 않아서 기소유예로 처리하게 된 겁니다. 이제 반성문 한 장 쓰고 집에 가시면 됩니다."
"아, 저... 정말 그거면 끝입니까?"
"네. 성안 씨께서 이미 반성하고 계셔서 그런 겁니다. 아까는 잘 참으신 겁니다. 완전 끝까지 참을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다음에는 최대한 빨리 자리를 피하세요. 그런 놈들과 엮여봤자 성안 씨만 손해입니다."
강성안은 반신반의하며 내가 내민 종이에 반성문을 써내려갔다.
그러자 앨리스가 옆에서 질문을 던졌다.
"근데 기소유예와 집행유예는 무슨 차이야?"
"오, 괜찮은 질문이네. 범죄자의 전과라는 건 재판을 거쳐서 유죄 판결을 받아야만 생기는 거야. 그래서 집행유예도 사실상 전과가 남는다고 할 수 있지."
나는 잠시 뜸을 들인 뒤에 계속해서 설명했다.
"하지만 기소유예는 재판까지 안 가니까, 사실상 전과가 남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그, 그게 정말입니까? 기소유예는 전과가 아니라구요?"
내 말에 대답한 것은 앨리스가 아니라 강성안이었다.
그는 펜을 딱 멈추더니 눈을 크게 뜨며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기록이 말소되기 전에 유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그 때는 또다시 기소유예를 받기 힘들어집니다. 앞으로 5년 정도는 얌전히 지내세요."
"5, 5년이 뭡니까. 다신 사람을 때리지 않겠습니다."
그제야 활짝 웃으며 안심하는 강성안.
역시 기소유예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앨리스는 아직 불만이 남아있는 눈치였다.
"상대가 칼까지 꺼내들었는데 정당방위가 아니라니..."
"재판까지 가는 게 훨씬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니까? 강성안 씨, 그냥 재판 가실래요?"
"아닙니다! 저는 기소유예면 만족합니다. 제가 민간인을 때린 건 사실이니까요."
이건 내가 굳이 억지를 부리거나 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정당방위 각이 나오는 사건들은 이렇게 검찰 선에서 불기소로 끊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불기소를 해버리면 다른 수사기관이 손쓸 방법이 거의 없다.
덕분에 불기소야말로 검찰의 특권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심지어 헌터 사건의 경우에는 다른 수사기관 자체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끝나는가 싶었지만...
진짜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나는 출근길에서 다른 협회 직원들의 시선이 심상찮은 것을 보곤 곧바로 이상을 눈치챘다.
"기레기들이 또 한 건 했나?"
"엑, 설마..."
불안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꺼낸 앨리스는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화면을 훔쳐보고 있자 절로 욕이 나왔다.
[현역 헌터 민간인 폭행 사건, 불기소 처분... 특수대의 권한 남용에 시민들 불안...]
"이런 씹새들이... 평소에는 헌터들 너무 막 때려잡는다고 지랄해놓곤."
"기레기들이 다 그렇지 뭐."
출근 엘리베이터에 함께 탑승한 직원들이 소리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건의 세부사항이 잘 알려진 덕에 여론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제 시민들도 똑똑해져서, 인터넷 기사를 무턱대고 믿진 않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들이 나이프를 꺼내들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앨리스는 아직도 납득이 안 된다는 듯, 사무실로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느정도로 대응했어야 정당방위로 인정이 된다는 거야?"
"뭐, 기껏해야 칼을 떨어뜨리게 한다거나 정도겠지."
"말도 안 돼."
뭐, 사실 여론을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밖에서 무어라 짖어대든 간에, 우리 특수대는 헌터들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수사기관이다.
덕분에 내가 불기소를 때리면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다.
"꼬우면 항고하든지."
"만약 그놈들이 항고하면 어떻게 되는데?"
"원래는 고등검찰청으로 넘어가는데, 우린 고등 기관이 없지."
그래서 무조건 항고 기각이다.
항고가 기각되면 법원으로 넘어가는데, 이쪽은 협회장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이 앉아있다.
"즉... 우리의 불기소처분 결정은 절대로 뒤집을 수 없어. 아무도 우리를 심판하지 못해. 그게 이 나라 사법의 한계다."
"..."
즐거운 설명이 끝나기 무섭도록.
서지유가 내게 다가와서 다급히 알렸다.
"저, 팀장님. 협회장실에서 호출이 왔는데요..."
"회장이?"
바쁜데 오라가라 난리도 아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이 내 생각보다 훨씬 이슈가 된 모양.
나는 다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앨리스와 티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탑승해서 내 곁을 지켰다.
협회장은 내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은 아니고, 적지않은 인물 중 한 명이라서 말이 비교적 잘 통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특수대 일을 시작한지 꽤 됐는데 그와 엮인 적은 거의 없었다.
나는 협회장실에 들어서자마자 불평을 터뜨렸다.
"여긴 왜 또 이렇게 쓸데없이 높아요?"
"어, 어서오게."
썩 떳떳하지 못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인 듯, 비서는 이미 내보내둔 상태였다.
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재촉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강성안 씨 민간인 폭행 사건, 정말 불기소로 넘어갈 건가?"
"회장님도 그 사건에 관심 있으신 줄은 몰랐는데요. 그럼 뭐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다시 기소해서 감옥에 처넣을까요? 제가 장담하는데, 이번에 맞은 놈들 전치 3주도 안 나옵니다."
내 노골적인 말투에 붉어진 회장의 얼굴.
하지만 나는 되도록 시간낭비를 하고싶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뭐라고 합니까? 어차피 임기 막바지라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이번 불기소 처분은 사람들이 특수대에게 기대하던 역할과 많이 다르지 않은가."
역시 특수대가 헌터를 감싸고 도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사실 정치권에서 특수대를 가만히 방치하는 것은 우리가 헌터들을 통제할 수 있을것이라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대는 실제로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기대 따윈 처음부터 신경쓰지 않았다.
"이건 정당방위 관련 판례를 만들기엔 그리 좋지 않은 사건입니다. 오히려 불기소가 맞아요. 이유는 그 밖에도 하나 더 있습니다."
"그건 또 뭔가?"
"이제 게이트가 닫힐 때까지 8개월도 안 남았습니다. 앞으로는 그 어느때보다도 헌터들의 지지가 필요한 시대가 될텐데, 무작정 헌터들을 감옥에 처넣는 모습만 보여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끔씩 선처도 해줘야지."
구구절절 떠들어대는 내 마음은 썩 편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자질구레한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협회장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답답하다는 듯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쾅!
"아무리 그래도 일반 시민에게 주먹질을 해버린 놈이야!"
"뭔놈의 일반 시민이 시비 좀 붙었다고 바로 나이프를 꺼냅니까? 그 새끼들도 절대 떳떳한 놈들은 아니라니까요?"
"사정이 어찌됐든 민간인 상대로 그런 짓을 해버리면 협회의 위신이..."
드르륵...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회장에게 성큼성큼 다가가서, 권총을 뽑아들자 그가 움찔했다.
나는 안전장치를 풀곤 총구를 그에게 들이댔다.
당연하지만 회장은 기겁했다.
"무... 무슨 짓인가!"
"회장, 당신도 헌터잖아. 근데 왜 권총 좀 들이댔다고 쫄고 난리야?"
움찔하면서도 도로 노성을 토해내는 회장.
"그 총에 뭐가 들어있을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왜, 내가 그린 더스트라서?"
"그래!"
그가 제대로 짚었다.
이 권총에는 그린 더스트 탄환이 장전되어 있다.
나는 탄창을 빼내서 그것을 보여주곤 도로 총기와 결합시켰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겁니다."
"뭣?"
"강성안 씨랑 시비 붙은 놈들이 헌터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우리같은 헌터들은 마빡에 헌터라고 쓰여있기라도 합니까?"
민간인이 칼 들고 덤비면 확실히 별다른 위협이 안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같은 헌터가 칼을 들고 덤벼든다면? 그것도 위협이 안 될까?
나는 잠시 할말을 잃어버린 그의 앞에서 권총을 치워줬다.
"제발 한 번만 강성안 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십쇼.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턱대고 가만히 있으란 게 말이 돼요? 자기들은 식칼만 들이대도 기겁할거면서... 애초에 불기소라는 게 이런 거 넘기라고 있는 거잖아요."
"..."
"정치권에서 계속 뭐라고 하면 그냥 그놈들 명단이나 제게 보내주십쇼."
"아, 아니... 됐네. 그냥 자네 마음대로 하게."
협회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나를 내보냈다.
티아가 비서의 책상 위에 있던 과자를 하나 집어들더니, 위풍당당하게 사무실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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