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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71화 (71/131)

〈 71화 〉 은퇴 헌터(2)

* * *

조금 갑작스런 질문이지만... 대한민국의 인구 중 범죄자 비율이 얼마나 될까?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범죄 경력이 있는 인구수의 비율은 170만 명 정도 된다.

당연하지만 이 많은 인원들이 모두 감옥에 다녀왔을 리는 없 고, 경범죄나 집유 등도 모두 포함해서 센 것이리라.

그러나 170만이라는 숫자는 확실히 크다.

170만 명.

대한민국 인구수의 3%가 조금 넘는 수치다.

진짜 문제는 범죄자들 중 75% 이상이 남성이란 것이다.

특히 강력범죄로 한정하면 남성의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나는 갑자기 성별 문제를 끄집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연령대의 남성이란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범죄자들을 가둬두는데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일반 죄수들도 한달에 150이상 깨진다.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서 세금을 내야할 놈들이 오히려 세금을 까먹고 있다니.

이건 국가로서 굉장히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다.

그렇다고 경범죄는 사정이 좀 다르냐면... 그것도 아니다.

경범죄를 처리하는데에도 엄연히 돈이 들어간다.

원래 경찰 같은 공무원들은 딱 필요한만큼 뽑긴 커녕, 그보다 좀 모자라게 뽑는 것이 정석이다.

쉽게 해고할 수도 없는 공무원들을 많이 뽑았다가 나중에 필요없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덕분에 한국의 공무원들은 언제나 인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사소한 것들까지 엄격하게 처벌하면, 사람들이 좀 올바르게 행동할까?

글쎄...

엄벌주의가 만능이 아니란 것은 고대 중국에서 이미 검증했다.

우리가 그것을 굳이 한 번 더 실험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했다.

국민들 중 범죄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소한 범죄는 아예 처벌하지 않기로 해버린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학교 폭력과 식당 테러만 봐도 그렇다.

사실 저것들도 국가 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한국은 범죄자들을 검거하고 처벌하기에 매우 쉽고 편한 환경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일단 경찰 인력이 부족한 것은 둘째치고...

보통 그런 사건의 가해자들은 한창 경제활동을 하고있거나, 곧 시작할 이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섣불리 처벌했다간 자포자기해서 범죄의 길로 빠져들거나 할 수도 있다.

"범죄가 충분히 보편화되면, 사실상 범죄가 아니게 되어버리는 거죠. 성매매나 도박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불법인데 제대로 처벌이 된다고 보긴 힘들죠."

"..."

참고인으로 불려온 정태한은 내 일장연설에 뜨악한 얼굴을 보였다.

과연 이게 현직 수사관이 해도 되는 말인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아직 납득이 안 된 기색이었다.

"그렇다고 가해자들 편만 들어주는 건..."

"가해자들 편만 들어주는 게 아닙니다."

"예?"

"법은 피해자의 입장도, 가해자의 입장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법률은 오직 국가의 입장만 신경씁니다."

정태한은 그제야 조금 차게 가라앉은 표정이 됐다.

나는 작게 안도하며 뒷말을 삼켰다.

'이번에는 좀 예외인 것 같지만...'

사실 정태한이 지금 이렇게 특수대에 불려왔다는 것 자체가 억울하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것은 맞다.

그저 의심이 간다고 경찰에서 이렇게 사건을 넘겨준 것을 보니...

아마 피해자들의 부모님들이 경찰에 힘 좀 쓰는 모양이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사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저희 특수대도 상당히 골때리는 곳이죠. 저희가 열심히 일해서 헌터 범죄자들을 잡아들일수록, 국가적인 손해가 생기니까요."

"아, 아니 그런..."

실제로 우리가 잡아넣은 S랭크 헌터, 유시현은 달마다 2500만원의 세금을 까먹고 있다.

놈은 등급이 높아서 돈도 그만큼 많이 깨진다.

그러자 내 뒤에서 얌전히 있던 티아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녜요. 주인님께선 지난번에 도둑맞은 160억을 회수하셨잖아요."

"아, 그게 있었군."

게다가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런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은 무조건 잡아서 처넣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다.

농담 반, 푸념 반의 이야기를 들은 정태한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단 알겠습니다. 혹시 더 궁금하신 것은..."

"혹시 사건 당일의 이동 경로를 증명할만한 자료가 있습니까? 그게 있으면 무죄를 입증하는 게 훨씬 쉬워지거든요."

"알리바이... 말씀이십니까? 그 날은 제가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야 통쾌하기 짝이 없는 소식이 들려온 날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

정태한은 내게 차량 블랙박스 자료를 내밀었다.

"그날은 시외로 출장을 나갔죠. 가게 재료 공급 계약을 새로 맺어야 했거든요."

"그렇군요."

나는 자료를 직접 돌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태한이 차량 정면에서 접근하는 모습이 똑똑히 찍혀있는데다, 범행 시간에는 아예 서울 안에 없어서 확실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 자료였다.

"태한 씨는 마지막 등급 측정이 C랭크셨죠?"

"예, 부끄럽게도..."

"C랭크의 화염계 헌터가 100km 밖에서 테러를 일으킨 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죠. 좋습니다.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아, 이 자료가 원본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저희측에서 보관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사본은 태한 씨께서..."

"사본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사관님."

"저야말로 귀중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믿는다곤 안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볍게 악수를 나누곤 그를 보내줬다.

정태한이 자리를 떠나자, 뒤에서 앨리스가 벌떡 일어났다.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부터 눈이 조금 무서워졌던 그녀는 정태한 씨에게 완벽하게 공감하고 있었다.

"이거 애초에 여기까지 올만한 케이스가 아닌데?"

"아, 그건 아니야."

고개를 살짝 저으며 나머지 사건 자료를 보여주자 앨리스가 도끼눈을 떴다.

"어째서?"

"스마트폰이 헌터 능력으로 인해서 폭발했다는 것은 확실해. 같은 장소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서로 다른 기종의 스마트폰이 일제히 기능고장을 일으켰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그, 그건 그렇지만... 저 사람은 화염계 능력자잖아?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맞아. 정태한 씨는 실행범이 아니야.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야."

정태한의 능력으로는 절대로 이런 짓을 저지를 수 없다.

헌터 범죄 수사의 기본인 범죄능력 부분에서 이미 아웃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내 미묘한 단어 선택을 눈치챘다.

"실행범이 아니라면, 교사범일 수도 있단 말야?"

"그렇지. 범죄능력은 충족이 안되지만, 범행동기는 차고 넘치니까."

나는 순간 크흐, 하고 탄성을 삼키며 설명했다.

앨리스도 나를 따라다니다보니 이렇게 똘똘해졌다.

서당개 3년...이라는 속담이 완전 거짓말이 아니었다.

다만 이번 사건은 주색잡기나 마약이 동기가 아닌만큼, 여러모로 예외적인 부분이 많았다.

앨리스는 이제 본격적으로 풍월을 읊어대기 시작했다.

여기서 수사를 하지말라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있는 눈치였다.

차라리 제대로 수사를 한 번 해보는 것이 정태한의 결백을 밝힐 수 있는 길이다.

"그럼 오라클을 써서 계좌추적이라도 해볼거야? 다른 헌터를 부렸다면 상당한 돈이 들어갔을 텐데..."

"오라클은 당분간 사용 중단이야. 영국 출장 때문에 할당량이 간당간당해서."

애초에 이건 오라클을 쓸 것도 없는 사건이다.

내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멀리서 서지유가 정태한의 통장 내역을 뽑아서 가져왔다.

그녀는 아직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요 팀장님."

"고마워. 그리고 커피 한 잔 더."

"네에? 팀장님, 커피는 하루에 한 잔이라고 하셨잖아요? 카페인을 잘 받는 체질이라고..."

"오, 제대로 기억하고 있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지 한 번 봤어. 그럼 녹차라떼로 부탁해."

내게 놀림을 받곤 얼굴을 푹 숙이며 달아나는 서지유.

티아가 그녀를 쪼르르 쫓아가서 추가 주문을 넣었다.

하여간 뭐 하나 얻어먹을 수 있는 기회는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

"잠깐만요, 저는 복숭아 아이스티로 부탁해요! 앨리스 언니는요?"

"나는 카페라떼."

간단히 주문을 완료한 앨리스가 득달같이 계촤 추적 결과를 살폈다.

"뭐야, 큰 돈을 뽑은 내역도 거의 없네. 헌터 범죄를 사주하려면 현금이 꽤 많이 필요할텐데?"

"돈을 주고 사주한 것은 아닌 건가? 하긴, 헌터 범죄 브로커들은 이미 잡아넣었으니까..."

"잠깐. 아직도 정태한 씨를 의심하고 있는 거야?"

"현재로선 의심할 곳이 거기밖에 없어."

이번 사건은 명백한 헌터 범죄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주변에 헌터라곤 오직 정태한 한 명 뿐이었다.

그토록 강력한 범행동기를 가지고 있는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앨리스는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살짝 야속하다고 느끼는 눈치였다.

"알리바이가 너무 깔끔해. 하필이면 당일에 시외로 나갔던 것도 그렇고, 본인 차량의 블랙박스에 정면으로 찍힌 구도도 조금 이상했지."

"그, 그렇게 의심하면 끝도 없는 것 아니야?"

"그래. 그렇게 딴지를 거는 게 네 역할이지. 의심하는 것은 내 역할이고. 계속 서로의 역할에 충실하자고."

앨리스는 내 반응에 반쯤 포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을 차분히 정리했다.

'정태한 본인은 절대로 실행범이 될 수 없어. 그렇다고 블랙마켓 같은 곳에 돈을 주고 청부한 것도 아니야. 생각해보자. 내가 만약 정태한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사실 범죄능력이 충족되는 경우보다 범행동기가 충족되는 경우가 훨씬 의심스럽다.

헌터들은 일반인들이 상상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려고 마음먹으면 어떻게든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가르침에 따라 가능성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정태한 씨의 2차 각성? 말도 안 되지. 이미 각성한 사람이 새로운 능력을 얻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여유자금도 거의 없는 은퇴 헌터가 도대체 어떻게 그런 범죄를...'

"!"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훑던 도중.

마침내 가능성이 보이는 부분을 발견했다.

때마침 아래층의 카페에 직접 내려갔다온 서지유가 음료를 들고오자, 나는 그것을 받아들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나갔다올게. 오래는 안 걸릴거야."

"어, 어디가세요 팀장님?"

"몇 층 아래. 헌터 협회 트라우마 치료센터."

"네... 네에?"

서지유는 살짝 당황하면서도 앨리스와 티아의 뒤를 따랐다.

세 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나는 주저없이 버튼을 눌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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