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 은퇴 헌터(1)
* * *
영국 출장 뒤의 첫 출근.
서지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내게 커피를 배달해줬다.
그녀가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그저 부끄럽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서번트들이 정리해준 보도자료를 살피며 그동안 한국에서 별 일이 없었는지 확인했다.
이제 던전의 출현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헌터들도 불길한 전조를 대충이나마 눈치채고 있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헌터 범죄의 발생은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헌터 범죄가 늘긴 커녕 줄어들고 있는 국가가 딱 두 군데 있었으니...
바로 중국과 한국이었다.
나는 우리나라보다 헌터 범죄율이 훨씬 적다는 중국의 주장을 보곤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 새끼들은 입만 열만 구라야."
"진짜일 수도 있지. 문제가 될만한 헌터들을 다 죽였다거나..."
"... 그럴 수도 있겠군."
확실히, 이번에는 내 편견이 너무 강했다.
앨리스는 아예 내 보도자료 파일을 탁탁 치며 말했다.
"그나저나 우리나라의 자료는 믿을 수 있는 거야?"
"헌터 범죄가 줄어들고 있지 않으면 내가 뭐하러 이 짓을 하고 있는데?"
"그야 그렇지만..."
특수대의 활동 덕분에, 우리나라의 헌터 범죄율은 확실히 격감했다.
이것은 가짜 통계 따위가 아니었다.
이전에는 헌터들을 제어할만한 기관이 딱 하나, 협회 뿐이었는데다 그마저도 정식 수사기관은 없었지만...
특수대가 개설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특히 현직, 전직 S랭크 헌터들과 길드의 중역들까지 잡아넣은 것이 굉장히 크게 작용했다.
놈들로 제대로 본보기를 보여준 덕분에 헌터들이 무척 잠잠해졌다.
"모든 헌터들을 일일이 다 처벌할 필요는 없어. 본인들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범죄율은 크게 줄어들어. 헌터들의 인식은 이미 바뀌었어."
"그런 건가..."
헌터들은 나름대로 사회에서 알아주는 직업인데다, 수입도 그럭저럭 괜찮다.
그런 그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위험을 섣불리 감수할 리가 없다.
지금까지는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져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수지가 맞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일시적인 변화일 뿐이고, 게이트가 완전히 닫혀버린 뒤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그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놓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도 큰 사건은 없는 듯 했다.
지난번에 은행털이를 잡는 것을 보곤 강력범들도 몸을 사리는 모양.
덕분에 나는 참고인 조사만 조금 거들게 됐다.
"어흥."
티아가 뒤에서 애써 무서운 표정을 하고있는 사이, 출석 요구를 받은 참고인들이 속속 입장했다.
나는 약속시간이 되기 전에 참고인의 프로필부터 잽싸게 살폈다.
"오늘 상대는... 전직 헌터인가."
한국에서 은퇴한 헌터는 그리 드물지도 않다.
당장 예리엘이나, 지난번에 잡았던 큰바다 이재한만 봐도 은퇴한 헌터다.
보통 헌터 생활이 체질에 안 맞거나 하면 그냥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우고 후딱 은퇴하는 경우도 흔하다.
다행히 대한민국의 은퇴 헌터 관리는 객관적으로 봐도 아주 훌륭했다.
헌터 연금도 꼬박꼬박 잘 나오고, 여차할 때엔 비상소집 해야하니까 주소지도 파악을 잘 해놓는다.
심지어 외국 드라마 같은 것에서 흔히 하던 트라우마 치료 같은 것도 한다.
덕분에 은퇴 헌터가 범죄에 엮이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다.
지난번에 잡혀왔던 큰바다 이재한도 은퇴 헌터라기엔 너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반면 이번의 참고인은 정말로 능력이 약화돼서 은퇴하게 된 케이스.
헌터 생활에 딱히 미련도 없는 것 같다.
현역 시절에 차근차근 돈을 모아놓은 다음, 헌터 연금까지 합쳐서 음식점을 개업한 훌륭한 소시민이다.
나는 이런 양반이 왜 갑자기 특수대에 불려왔는지 궁금해져서 잽싸게 사건 파일을 살폈다.
그런데, 파일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얼굴이 급격히 딱딱해졌다.
"뭐야 이건..."
"왜 그래?"
"아니, 참고인으로 불려올만한 건덕지가 없는데?"
이번에는 전후사정이 제법 길다.
나는 앨리스에게 최대한 간단히 그것을 설명해줬다.
"학폭 관련이네."
"학폭?"
왕따 경험자라서 그런지 벌써부터 주먹을 꽉 쥐는 앨리스.
"참고인에게 딸이 한 명 있는데,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 그래서 참고인이 걔들을 헌터 능력으로 손봐준 거야?"
"아니. 아직 한참 남았어."
내가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오늘의 주인공이 입장했다.
무척 주눅든 걸음걸이로 책상 앞에 도달한 사내는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전체적으로 무해한 중년이라는 느낌.
그는 현역 헌터들과 달리 변호사조차 대동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나치게 겁먹은 모습이 살짝 불쌍하기도 하다.
"안녕하십니까. 정태한 씨, 맞으시죠? JINK길드 소속 B랭크 헌터로 현재는 은퇴한 상태..."
"마,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만 잘 듣고 사실대로 대답해주시면 돼요. 아시겠죠?"
내가 몇 번이고 했던 멘트에 티아가 먼 산을 쳐다봤다.
여기서 딴지를 걸었다간 혼난다는 것을 드디어 학습한 것이다.
참고인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저, 그런데 제가 범인으로 의심받고 있는 건 아니죠?"
"정태한 씨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고 계신 겁니다. 피의자가 아니라요."
"아아..."
조금 안심한 얼굴이 된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의 앞에서 최대한 담담히 사실 확인을 시작했다.
"가족관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정태환 씨의 양친은 사망, 부인과는 5년 전에 사별하셨고, 고등학생 딸이 한 명 있습니다. 맞나요?"
"맞습니다."
그는 벌써부터 불편한 표정이 됐으나, 이번 사건에 대해서 논의하려면 그의 딸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불행히도, 정태한의 딸은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괴롭힘을 당하기에 딱 좋은 처지였다.
학생들에게 비교적 만만한 중위권의 성적. 거기다 편부모 가정인 것은 물론, 그나마 남아있는 아버지도 이미 은퇴한 헌터였다.
헌터들이 모두 화려한 삶을 사는 줄 알았던 동급생들은 제멋대로 배신감을 느끼며 그녀를 괴롭혔다.
여기까지는 흔하디 흔한 학창시절의 비극에 불과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소위 일진들 치고도 굉장히 대담했던 놈들은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까지 건드렸던 것이다.
물론 은퇴했다곤 해도 전직 헌터였던 남자를 직접 덮치진 않았다.
"그놈들이 가게에 찾아왔다고 들었는데요."
"마, 맞습니다."
처음에는 실수인 체 냉장고에 들어있던 술병을 깨부수곤 본인들에게 술을 팔았다고 경찰에게 신고를 하더니...
나중에는 어디서 붉은색 식용색소까지 가져온 다음, 그것을 입에 가득 머금곤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가게 앞에서 토했던 것이다.
놈들의 기발한 퍼포먼스 덕분에, 심심찮게 찾아오던 손님들은 그대로 격감했다.
지난번에 보였던 놈들이 그대로 있어서 경찰들까지 한소리 했지만, 녀석들은 되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에게 성을 냈다.
그러나 정말 최악의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정태한은 주먹을 꽉 쥔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했다.
"그 새끼들 때문에 저희 아이는..."
"아, 그 부분도 알고 있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으시면 하지 마시죠."
자살... 이라는 표현은 안 된다.
요즘은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불러야 한다.
어떤 문제든지 일단 축소시키려고 하는, 공무원들의 나쁜 버릇 때문이다.
어쨌거나 정태한의 딸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시도했다.
아마 본인 때문에 아버지가 그런 짓을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리라.
이런 류의 비극이 대개 그렇듯.
학교와 교육부는 사건을 터무니없이 축소시켰다.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처벌조차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전학을 가야하는 처지가 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건은 거기서 종료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눈앞의 사내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올 필요도 없었으리라.
하늘이 그저 무심하진 않았던 것일까?
학폭위원회의 심의가 끝난지 얼마 뒤.
가해자 학생들에게 사고가 일어났다.
아니. 사실 그것은 사고라기엔 지나치게 정의로웠다.
보통은 '불의의 사고'라는 표현을 쓰지, 그 반대로 부르진 않는다.
나는 가장 중요한 사고의 내용을 확인했다.
"학폭위에 회부됐던 가해자 학생들은 학교에서 폭발 사고를 당했습니다.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멋대로 폭발했던 거죠. 요즘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사고입니다."
"... 저도 들었습니다."
"두 명은 오른손의 손가락이 죄다 날아갔고, 한 명은 파편이 혈관에 박혀서 과다출혈로 사망... 성기를 절단하게 된 학생도 한 명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어뒀다고 하더군요."
참고인 정태한은 내 담담한 확인에 아주 조금이나마 개운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또 못된 짓이라도 하다가 다친 것 아니겠습니까? 그놈들이 하는 말은 전혀 믿을 수가 없으니까요."
"저도 본인들의 증언을 믿진 않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증거는 믿을 수밖에 없죠. 학급 안에 있던 동급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도 모두 증언했습니다."
"증언이라... 그놈들의 증언 덕분에 학폭위가 참으로 공정한 판결을 내렸죠."
정태한은 딸아이의 동급생들과 교사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대놓고 넌더리를 냈다.
그가 불쾌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경찰은 그를 폭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여 특수대에게 사건을 넘겨준 것이었다.
내 의무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잔뜩 화가난 그가 역정을 냈다.
"저희 가족에게 저질렀던 짓은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놓고, 그놈들이 손가락 좀 다쳤다고 저를 범인 취급 하시는 겁니까? 무슨 놈의 법이 이래요? 그놈들이 제 가게에 수작 부렸을 때 제대로 처벌하기만 했더라도..."
"조금 진정하시죠. 정태한 씨는 지금 두 가지를 오해하고 계십니다."
"오해요?"
내가 곱게 타이르자 말투를 조금 누그러뜨리는 참고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 설명했다.
아무리 나라도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을 마구 윽박지를 수는 없고,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첫 번째. 경찰들은 몰라도, 저는 정태한 씨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다. 정태한 씨가 피해자들의 스마트폰을 폭발시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엇..."
정태한은 내 담담한 말투에 겨우 진정했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원래 폭발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도록 만들고, 설령 폭발해도 파편이 튀는 것이 최소화 되어있다.
정태한은 화염계 능력자이지만...
화염계는 보통 위력이 강한 대신, 그만큼 느리고 화려하다.
스마트폰 배터리 따위를 이용해서 사고를 치려면 전자계 능력 쪽이 훨씬 쉽다.
"그리도 두 번째 오해. 법률은 놈들을 처벌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벌하지 '못한' 겁니다."
"처벌을... 못해요? 그런 짓까지 저질렀는데?"
"아쉽지만 그런 짓까지 저질러도 못합니다. 그런 범죄는 너무 흔하거든요."
"네에?"
나는 목소리를 조금 죽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태한의 이마가 눈에 띄게 좁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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