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막간(4)
* * *
우리는 퇴근 시간이 되기 무섭도록 과자를 깨작이며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다.
차마 술을 까진 못했지만, 과자와 음료수 정도만 있어도 그럭저럭 괜찮다.
티아가 사과사탕을 사먹은 시점에서 이미 SNS 출연은 확정이니까 굳이 몸 사릴 필요 없겠지.
학생회는 어떻게든 우리를 쫓아내고 싶은 눈치였으나, 아무리 그래도 수사기관을 상대로 덤비진 못했다.
원래 대학교 축제는 외부인들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것 아니던가.
게다가 우리도 이 축제에서 실시간으로 진행중인 수많은 범법행위들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자잘한 건 관심없어. 큰 거 하나만 걸려라.'
"저, 선배님. 나중에 학생회 놈들이 민원 넣는 거 아닙니까?"
일종의 방진을 형성하고 있는 헌터학과 학생들에게 선배라고 불린 앨리스가 피식 웃었다.
그녀도 나와 함께 다니면서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
"민원을 어디로 넣을 건데?"
"그, 그야 협회로 넣겠죠?"
"우리 특수대는 민원창구 없어. 범죄자들 잡아처넣을 때마다 일일이 민원 받으면 일을 어떻게 해?"
애초에 헌터 협회 자체가 민원을 그리 잘 받아주는 기관이 아니다.
헌터 협회는 그 역사가 무척 짧은데다 다른 정부 부처들과도 동떨어져있어서 굉장히 독립적이고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강한 힘을 지닌 헌터들을 통제하기 위해선 이 정도 권한은 있어야 한다.
나는 너무도 행복해하는 티아의 옆에서 환타를 홀짝이며 서지유에게 물었다.
"야, 사기꾼."
"넵, 횡령 사기꾼 대령했습니다."
"너 축제에서 직접 횡령했다고 했지? 학생회였어? 그렇게 안 보였는데."
"경리였죠. 학생회에도 일 잘 하는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그럼 축제에서 주로 어떤 방식으로 횡령을 한다는 거야?"
이런 축제에선 기본적으로 현금 거래를 하기 때문에 횡령하기 딱 좋다지만...
어차피 주점을 하는 대부분의 점포들은 본전도 겨우 뽑을까 말까다.
S대의 축제가 제법 유명하긴 해도, 외부 손님들이 넘치는 수준까진 아니다.
서지유는 내 말에 당당히 대꾸했다.
"보통 저런 공연 행사가 메인이죠."
"연예인 초대 말하는 거지?"
"네. 인디 밴드는 몇 팀을 부르든 거의 공짜 수준이니까 크게 신경쓸 필요 없어요. 하지만 유명 가수는 20분 공연하고 4천만원 정도 받아가요. 20분이면 3,4곡 정도 부르죠."
나는 서지유의 설명을 들으며 오늘의 공연 팜플렛을 살펴봤다.
시대가 시대인만큼, 출연하는 연예인들도 대부분 헌터 연예인이다.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이름이 많은 것을 보니 돈을 팍팍 쓴 것 같다.
"앨리스, 컴온."
"뭐야?"
"혹시 출연자들 중에서 출연료 아는 애들 있어? 대충이라도 괜찮은데."
"아, 여기 애들은 우리 길드 소속이네. 한 번 물어볼까?"
앨리스가 팜플렛의 이름을 짚기 무섭도록 저 멀리서 한 무리의 헌터들이 잽싸게 다가왔다.
오늘의 공연에 참여하기로 되어있던 출연자들이 앨리스를 발견하곤 인사를 건네러 온 것이다.
앨리스의 경력이 좀 짧긴 해도, 같은 길드 소속의 S랭크 헌터니까 무조건 선배 취급이다.
"애, 앨리스 선배. 왜 여기 있어? 혹시 우리 보러 온 거야?"
앨리스보다 최소 다섯 살은 많아보이는 연예인이 깍듯이 인사를 건네는 것은 제법 오묘한 광경이었다.
앨리스는 내가 웃는 것을 못 본 체 하며 그들에게 조용히 물었다.
"일하다가 잠깐 들렀어. 이런 질문 하기 좀 미안하지만... 다들 여기에 얼마나 받고 왔어?"
"에이. 같은 길드끼리 미안하긴. 나는 한 2천 정도 받았을 걸?"
"와, 많네. 나는 1천 5백인데."
"저희도 2천이요."
3팀 불렀는데 벌써 5천 5백인가.
서지유가 축제의 메인이라고 표현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이런 대학들 중에서는 축제 예산의 30% 이상을 연예인 초청에 쓰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는 앨리스에게 감사를 표하곤 서지유에게 질문을 계속했다.
"확실히 출연료가 세긴 하네."
"그렇죠? 심지어 최강은 아직 오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출연료는 어차피 등록금에서 내잖아? 그걸로 어떻게 횡령을 한다는 거야?"
내가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자 서지유가 사악하게 웃었다.
"등록금이라서 좋은 거죠."
"뭐?"
"어차피 섭외 비용은 축제 예산에서 나가니까 아까울 게 없어요. 그러니까 섭외 비용을 후하게 쳐주고, 대신 리베이트를 받아야죠. 행사 한 번에 2천, 4천씩 받는데 리베이트를 안 주겠어요?"
"그럼 리베이트를 얼마나 받는데?"
"최소 10% 이상이요. 공연 말고 다른 곳에서도 리베이트를 받으면 2천 정도는 금방 모아요."
"학생회장 하면서 차 한 대 못 뽑으면 병신이란 소리가 농담이 아니었다니..."
나는 듣다가 갑자기 목이 타서 종이컵을 비웠다.
옆에서 공손히 페트병을 들고있던 티아는 내 컵이 비자마자 도로 채워줬다.
"여기선 프리미엄 구역이랍시고 추가금까지 받아먹고 있으니까... 예전보다 수법이 더 발전했네요. 저도 진작 좀 저렇게 할 걸 그랬어요."
"통장 추적해봤자 소용없겠지?"
"당연하죠. 누가 리베이트를 통장으로 받아요? 무조건 현금이지."
"현장을 덮치는 건 어때?"
"리베이트는 한참 전에 받았을 거에요."
앨리스는 우리의 대화를 엿듣곤 화들짝 놀랐다.
"잠깐, 우리 길드가 그런 걸 줄 리가 없잖아?"
"100% 확실해?"
"윈터킹덤 시총이 얼마인지 몰라? 연예계 사업은 우리 길드의 극히 일부분이야. 그리고 어차피 헌터 연예인 쪽은 우리랑 다른 회사 하나가 꽉 쥐고 있어서, 리베이트 같은 거 안 받아도 일거리 넘쳐. 이런 대학교 축제 따윈 안 나가도 그만이야."
듣고 보니 그렇다.
오만 잡스런 깡패들이 연예계에 기웃거리던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바다 이재한 사건 같은 불상사가 일어나긴 했으나...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동안 연예계가 조금이나마 발전했어도 크게 이상하진 않다.
"게다가 우리가 이재한 잡아서 그쪽 라인도 싹 쓸려나갔잖아?"
"그렇지."
서지유도 머지않아 앨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리베이트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네요. 어차피 행사에 초청할만한 헌터 연예인들은 거의 다 2대 기획사 소속이니까."
"2대 기획사? 하나는 윈터킹덤 자사일테고, 다른 하나는 뭔데?"
"너도 알잖아. 신소이 씨가 소속된..."
"아, 거기?"
큰바다 이재한 사건의 피해자인 신소이라면 아직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갑자기 급격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S대의 학생회는 헌터 재학생들을 상대로 무고를 시도했던 양아치 같은 놈들이다.
저런 삼류 쓰레기 놈들이 리베이트를 받지 못하게 됐다고 곧이곧대로 포기했을 리는 없다.
분명 다른 방식으로 수익 창출에 나섰을 것이다.
프리미엄석을 팔아먹는 것도 그 일환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규모가 너무 작다.
저 조막만한 공간에 1인당 1만원 정도 받고 꽉꽉 채워봤자 300도 안 나온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횡령을 하려는 거지?"
"글쎄요. 슬슬 공연 시간인데..."
"잠깐만요. 아직 다른 연예인들이 오지 않았어요. 지금 도착한 것은 윈터킹덤 소속 연예인들 뿐입니다."
"뭐?"
나는 이서우의 지적에 겨우 이상을 눈치챘다.
확실히, 너무 늦다.
아무리 비싼 몸이라지만 지금쯤은 도착했어야 정상이다.
우리가 의혹을 품기 무섭도록.
학생회 측에서 알림이 시작됐다.
[아아, 오늘의 행사에 참여하기로 되어있던 미레이 씨께서 교통사고로 인해 부득이하게 참여하지 못하신다고... 가벼운 교통사고라서 심각한 부상은 없다고 하니 팬들 여러분들께선 안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엥? 미레이가 안 와?"
"아니 입장권까지 팔아먹어놓고 무슨!"
"그, 그래도 다른 연예인들은 다 왔으니까..."
"교통사고라면 어쩔 수 없지."
미레이라면 오늘 행사의 메인이 될 예정이었던 연예인이다.
일찌감치 무대 주변에 모여있던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우리는 너무도 절묘한 타이밍의 사고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잠깐. 미레이 소속이 어디야?"
"신소이랑 같은 길드야."
"전화를 해봐야겠어."
내가 길드에 전화를 걸어서 이름을 대자, 접수원이 무척 당황하며 전화를 돌렸다.
이윽고 내 전화를 받은 것은 다름아닌 신소이였다.
아무래도 큰바다 건으로 전화한 줄 알고 연결해준 것 같다.
신소이는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수사관님. 오랜만이네요.]
"신소이 씨. 그 때는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녜요. 수사관님의 말씀과 예리엘 선배님의 격려 덕분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사실 크게 틀린 부분도 없었구요.]
"그런 말 마시죠."
나는 뒤늦게 그녀에게 했던 폭언을 사과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혹시 같은 길드 소속인 미레이 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 들으셨습니까?"
[네에? 그럴 리가 없어요. 미레이라면 바로 제 옆에 있는 걸요?]
"..."
나는 비로소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대충 깨달았다.
S대의 축제 운영 측은 처음부터 미레이를 초대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일단 광고를 때려놓고, 교통사고로 불참했다고 한 다음 관심이 식어갈 즈음에 본인들이 섭외 비용을 꿀꺽할 생각이었겠지.
미레이는 출연료가 4천부터 시작하는 정상급 헌터 연예인이라서 조금만 떼어먹어도 큰 이득이 된다.
'처음부터 섭외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군. 나중에 걸려도 담당자의 실수 정도로 둘러대고 넘어갈 생각이었을 거야.'
수법이 많이 허접하지만, 어차피 대학생 수준이니까 너무 많은 것을 바랄 수는 없겠지.
나는 미레이와 신소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곤 협조를 구했다.
다행히 미레이는 소식을 듣자마자 길길이 날뛰며, 오히려 자기 쪽에서 부탁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시죠."
"티, 팀장님. 저희 민간인들 상대로는 수사 못하지 않습니까?"
이서우가 다급히 말리려 하자, 나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못하지. 그래서 수사는 안 할 거야."
"네에?"
"내가 규칙을 지켜줬을 때 잘 했어야지. 차라리 정식으로 수사를 받는 게 나았을텐데..."
이런 편법을 선호하는 놈들은 본인들만 잘난 줄 안다.
다른 사람들은 멍청하고 게을러서 본인들처럼 하지 않는 줄 아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기대를 배신해주기로 했다.
"블랑쉬."
[넵!]
내가 작게 속삭이자 관중들을 진정시키고 있던 학생회원들의 뒤에서 스크린이 탁 켜졌다.
환하게 빛나는 화면 속에선 미레이와 신소이가 나란히 앉아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와, 와아아아아!"
"뭐야? 다, 당장 꺼버려!"
"안 꺼져요! 스크린도 안 올라갑니다!"
무대장치가 고장난 가운데, 미레이는 차분히 인사를 마치고 진실을 전달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S대 축제, 잘 즐기고 계신가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저는 교통사고를 당하긴 커녕, S대 축제에 초대를 받은 적도 없는데...]
"잠깐. 저건 또 무슨 소리야?"
"교통사고를 당한 게 아니었어?"
"미레이가... 오는 게 아니었다고? 거짓말 한거야?"
프리미엄 티켓을 구매한 이들 중 대부분은 처음부터 연예인을 노리고 온 팬들이었다.
본인들이 낚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들은 주저없이 분노했다.
"저 새끼들 잡아! 사기꾼들이다!"
"입장료 돌려줘!"
"유명 연예인을 부른다고 특별 회비까지 거둬놓고 안 불렀다고?"
"학생회를 쫓아내자! 탄핵! 탄핵이다!"
학생회의 횡포가 어찌나 심했는지, 더 이상 참다못한 학생들도 들고 일어나기 시작할 즈음.
헌터학부 학생들이 내쪽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그들 중 학회장이란 놈이 부끄럼도 모르고 내게 부탁했다.
"수사관님! 저놈들 좀 잡아주세요! 분명히 횡령하다 걸린 겁니다."
"특수대는 민간인 체포 못해."
"네에? 그, 그런..."
짜악!
다음 순간. 나는 학회장의 귀싸대기를 쳤다.
그는 한 대 얻어맞고도 영문을 몰라서 그저 멍하니 굳어있었다.
"여기가 너희 대학교지, 내 대학이야?"
"그, 그런..."
"네가 선택해서 온 S대다! 더럽고 치사해도 참고 다니든지, 꼬우면 자퇴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너희 손으로 바꾸든지... 너희가 직접 선택해야 하는 거야. 아무도 너희들의 선택을 책임져주지 않아!"
그제야 진정한 대학생의 정신을 깨닫게 된 헌터학부 학생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잠시 뒤, 학생회의 인원들이 몰려있던 무대는 화염병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했지만 보답 따윈 없었다.
"해병대! 경비 지원 나와있던 해병대 전우회는 어디갔지?"
"그 새끼들 이미 도망쳤어!"
"저 사기꾼 새끼들 끌어내려요!"
임무를 완료한 우리는 한층 가벼운 기분으로 교정을 떠났다.
화염병이 요리조리 날아다니고, 해병대 전우회의 역돌격이 벌어지는 교정은 전보다 훨씬 친숙해보였다.
"이제야 좀 대학교같네. S대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 같아."
"도대체 어딜봐서?"
"주인님, 이제 진짜 축제 같아요!"
혼란스런 분위기에 잔뜩 흥분한 티아가 내 손을 잡고 신나게 춤을 췄다.
나는 녀석과 적당히 어울려주며 늦은 퇴근을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