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 막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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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소재의 S대는 인서울 중에서는 하위권으로 분류되는 대학이었다.
공부는 아주 잘한다고 볼 수 없지만, 노는 것은 그럭저럭이라는 평가.
하지만 S대의 축제도 다른 대학들과 특별히 다르진 않았다.
천막의 대부분이 주점 영업을 준비하고 있는, 몰개성한 축제.
간간이 보이는 푸드트럭이나 카페트럭도 썩 믿음직해 보이진 않았다.
그나마 대학로에 전시된 미술과의 작품들이 간간이 개성을 더해주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대학로의 한켠에선 팔각모를 쓴 해병대 전우회가 대학생들을 긴빠이 치고있었다.
정말 완벽하게 평범한 대학 축제였다.
대학 경험자들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었으나, 티아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
우리를 열심히 따라오던 녀석은 해병대 전우회를 보곤 화들짝 놀랐다.
"주인님, 저 사람들은 뭐에요?"
"축제에는 외부인들도 많이 들어오니까, 순찰을 돕기 위해서 해병대 전우회를 동원하는 거지."
"순찰을 돌아요? 사람을 납치하는 게 아니라?"
"어허. 저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거라고 할 수 있지."
대한민국 국군의 노동력은 기본적으로 공짜라서, 저런 식으로 본인의 몫을 챙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대로 교정을 통과하던 티아는 각 과의 천막을 기웃거리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대학교 축제의 포차들은 요리와 관련된 동아리나 학과가 아닌 이상 형편없기 마련이다.
아무런 노하우도 없는 신입생과 재학생들을 데려와서 억지로 장사를 시키는데, 잘 해내면 그게 이상하다.
게다가 아무리 퀄리티가 형편없어도 지인들과 선배들이 와서 팔아주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다.
"히잉... 죄다 술집밖에 없어요. 그마저도 지저분해보이구요."
"베이커리 쪽이나 오타쿠 동아리 쪽을 찾아봐."
"오타쿠 동아리는 왜요?"
"걔네는 아직 로망이 남아있어서 좀 이상한 거 할 확률이 높아."
내 충고를 받아들인 티아는 천막 사이를 열심히 가로지르다가 사과 사탕을 가져왔다.
그새 앨리스를 알아본 축제 참가자들이 멀찍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오, 앨리스 윈터다. 사인 받아볼까?"
"그냥 도망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맞아. 요즘 저 사람들 뜨면 누구 하나 개박살난다던데..."
아무래도 우리들의 명성이 좀 안 좋은 쪽으로 퍼져나간 모양이다.
그래도 앨리스는 확실히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그야 입만 얌전히 다물고 있으면 굉장히 귀여운 얼굴이다.
인파를 헤쳐나가던 우리는 마침내 광장의 무대 앞에 닿았다.
현장에는 이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은 크게 두 패로 나뉘어져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구경꾼들도 이미 잔뜩 몰렸다.
'분명 헌터가 엮여있는 폭행 사건이라고 했지?'
이곳 S대는 나름대로 전통있는 헌터학과가 있는 대학이었다.
헌터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아주 발빠르게 도입했던 것이다.
척 봐도 헌터학과로 보이는 패거리는 곧바로 우리를 알아봤다.
"애, 앨리스 윈터랑 특별 수사관..."
"뭐야, 특별 수사관이 직접 왔다고?"
경찰들도 우리가 직접 올 줄은 몰랐는 듯 눈에 띄게 당황했다.
이서우가 경찰들에게서 상황을 전달받는 사이, 다른 쪽의 패거리들이 우리를 보고 희희낙락했다.
그들은 저마다 축제 운영위원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보아하니 학생회 관계자가 분명했다.
"무슨 일입니까?"
"수사관님! 저 헌터 놈들이 저희를 공격했어요!"
"공격은 무슨! 저 새끼들 지금 거짓말..."
내가 한 마디 하자 서로 아우성치는 대학생들.
나는 이서우에게 현장을 맡기곤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현장 민원의 전문가인 그는 잠시 뒤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왔다.
"학생회와 헌터학과 사이에 평소부터 다툼이 있었는데, 축제 때 결국 사고가 터진 것 같습니다."
"폭행이라고 했지?"
"네. 여기서 서로 말싸움을 하던 도중에, 헌터 학생 한 명이 능력을 사용해서 학생회 소속 한 명을 때렸다고..."
이서우는 학생회측의 주장을 전달하며 못미더운 얼굴을 보였다.
나는 신고자에게 다가가서 조사를 시작했다.
"헌터 재학생에게 공격 당했다고 하신 분, 맞습니까?"
"네! 접니다. 저 새끼가 염동력으로 제 배를 쳤어요!"
"염동력이요? 상처를 한 번 볼 수 있을까요?"
하필이면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 염동력이라니. 골치아프게 됐다.
신고자는 즉석에서 배를 깠으나, 이렇다할 상처는 남아있지 않았다.
염동력으로 때렸다곤 해도 가볍게 툭 밀친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헌터가 일반인에게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엄연한 죄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학생은 벌써부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내 경험상 이런 건 정식 재판까지 가는 것도 힘들지만, 가해자로 지목된 입장에선 안절부절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이서우에게 손짓하자 그가 우리 특수대의 신병기를 가져왔다.
얼마전에 매튜 마누엘이 중장갑 전투복을 수리해서 보내줬는데, 그것과 함께 보내준 선물이다.
이서우는 길쭉한 검은색 막대기 형태의 전자기기로 피해자의 복부를 훑었다.
"이, 이게 뭐죠?"
"휴대용 마력 검출기입니다. 마력 반응은 없군요."
원래는 조금 더 커다란 설비가 필요한 물건이지만 회사의 기술력으로 소형화에 성공했다.
당연히 제작 단가는 하늘로 치솟았으나... 내가 그것까지 신경써줄 필요는 없겠지.
어쨌든 이 휴대용 마력 검출기는 대형 버전과 비교해도 손색이 거의 없다.
피해자는 이서우의 설명에 왈칵 성질을 부렸다.
"댁들이 너무 늦게와서 그런 거잖아요!"
"댁들?"
이서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내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자 저쪽의 말투가 한층 공손해졌다.
"이, 이미 50분도 더 지났으니까..."
"확실히 마력은 휘발성이 있어서, 50분이면 대부분 날아가버리겠죠. 그럼 혹시 사건을 촬영한 동영상 같은 거라도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 축제 광장이라는 개방된 공간인데다, 구경꾼도 많이 몰려있어서 사건을 촬영한 영상이 존재했다.
무슨 일이 터지면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들고보는 요즘의 풍조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었다니.
나는 속으로 웃음을 머금은 채 구경꾼 중 한 명이 내민 촬영본을 감상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저, 혹시 사인이라도 하나..."
"티아야, 해줘."
"네!"
티아의 꼬리와 악수를 나눈 제보자는 제법 만족스런 얼굴이 됐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블랑쉬에게 요청했다.
"블랑쉬, 영상 판독 가능해?"
[물론입니다.]
"어디 한 번 보자고."
제법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는 학생회와 헌터학과.
그들이 말다툼을 벌이던 중, 사건의 피해자가 갑자기 뒤로 쓰러졌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몸놀림은 무척 어색했다.
'이상한데? 분명 배를 맞았다고 했잖아?'
때마침 축제 때라서, 피해자는 팔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옷차림이었다.
덕분에 블랑쉬는 근육의 움직임을 차분히 분석할 수 있었다.
[영상 판독 결과, 배보다 다리가 훨씬 먼저 움직였습니다. 복부를 타격당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럼?"
[의도적으로 쓰러졌을 확률이 약 95%, 분위기에 휩쓸려서 얼떨결에 넘어졌을 확률이 5% 정도 됩니다.]
'무고인가.'
염동력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만큼, 없는 죄를 뒤집어쓸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나는 양측의 학생들에게 영상을 공개하며 설명했다.
"자, 보시면 배보다 다리가 먼저 움직였죠? 아무래도 놀란 나머지 얼떨결에 쓰러진 것 같은데..."
"아, 아니. 여기 보세요! 여기서 배를 맞았잖아요!"
"배를 맞았는데 옷이 왜 그대로입니까? 마력 검출도 안 되고, 영상도 진술이랑 안 맞고. 상처도 없고. 이래서야 폭행을 당했다고 보기 어렵겠는데요."
"뭐라구요? 그럼 우리가 거짓말을 했다고..."
"헌터들 잡아가는 특별 수사관이 왜 헌터들 편을 들어줘요?"
뭐가 그리 억울한지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이는 학생회.
나는 놈들에게 그린 버스트를 날리고 싶은 기분을 꾹꾹 눌러담으며 대답했다.
"전 누구 편 들어주려고 출동한 게 아닙니다. 추가로 제보하실 것이 없다면 여기서 끝내죠."
우리를 보고 지레 겁먹었던 헌터학과 학생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 가해자로 지목됐던 학생은 십년감수한 표정이었다.
헌터들도 본인들의 능력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런 식으로 몰리다보면 '진짜로 내가 한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회가 무어라 떠들어대든 내 답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명확한 증거는 커녕 제대로 된 피해조차 없는 이상 이게 맞다.
그 사이. 학생회의 항의를 듣다못한 이서우가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저 학생이 염동력 능력자라는 건 어떻게 아신 거죠?"
"네에?"
"헌터 능력도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왜 정확히 저 학생이 가해를 했다고 주장하셨던 겁니까?"
"그야 척 봐도 염동력을 쓴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된다.
학생회가 미리 상대를 범인으로 점찍어두고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훨씬 그럴듯하다.
결국 그들은 쓸데없이 성을 내다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버렸다.
나는 환호성을 지르는 헌터학과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조금 나누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특별 수사관님."
"혹시 저놈들을 무고죄로 고소할 수는 없나요?"
"현실적으로 힘들죠. 허위 신고 때문에 억울하게 형사처벌을 받은 것도 아니니까요. 저쪽에선 진짜로 맞은 줄 알았다고 주장하면 그만이고."
"그, 그렇군요. 그래도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가 정말 억울하고 불안했는데..."
"그런데 학생회와 무슨 이유로 분쟁이 발생했던 겁니까?"
헌터학과는 내 질문에 서로의 얼굴을 열심히 쳐다봤다.
"그건 일일이 다 말로 하기 힘든데요."
"저희 헌터학과는 똑같은 학비 내고 차별을 엄청 당했거든요. 아무래도 학과의 역사도 짧다보니..."
"각종 행사에서 배제당하는 건 기본이고 학과 내부 행사에도 사사건건 참견을..."
"조금만 짧게 해봐요."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이거죠."
학생들은 광장의 특설 무대를 가리켰다.
대학교 축제답게 연예인이나 밴드 등을 초청해서 즐기는 무대 공연.
그런데, 학생회 측 운영위원들이 그 앞에 차단선을 만들고 있었다.
"...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는 건가?"
"그것보다 훨씬 더하죠."
"저 앞자리는 프리미엄 구역이라고, 추가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대요."
"엑?"
당치도 않은 소리에 앨리스는 물론이고 티아까지 혀를 차는 모습.
그러나 이 정도면 축제 운영위원들의 패악질 치곤 제법 평범한 축에 속한다.
"그래도 인서울 대학은 수준이 좀 다르군. 적어도 조폭은 엮여있지 않잖아."
"도대체 기대치가 얼마나 낮은거야..."
"저, 끝나셨으면 빨리 좀 나가주시겠어요?"
"이게 누구보고 오라가라... 우웁!"
멀리서 불편한 티를 팍팍 내며 우리를 쫓아내고 싶어하는 학생회.
결국 참다못한 앨리스가 폭발하려 했으나, 내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표정이 영 좋지 않은 서지유가 내게 조용히 물었다.
"팀장님, 이대로 가실 거에요?"
"왜, 퇴근하기 싫냐?"
"그런 건 아니지만요. 저 꼬마들 너무 괘씸하지 않아요?"
그럼 사적 제재라도 할 생각이냐?
내가 그런 생각으로 서지유를 째려보자 그녀가 다급히 설명했다.
"저희 여기에 조금만 더 있죠. 이건 대학교 축제잖아요."
"축제가 뭐?"
"팀장님도 참... 이런 축제에선 무조건 횡령이 벌어진다구요. 제가 직접 해봤으니까 잘 알아요."
"..."
나는 너무도 믿음직한 서지유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미 단단히 화가난 듯한 앨리스가 웬일로 그녀의 편을 들어주며, 관중석에 털썩 앉았다.
아까부터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헌터학과 학생들이 잽싸게 다가와서 술과 안주를 나눠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