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막간(2)
* * *
"그, 계산이 좀 잘못된 것 아닙니까?"
테스트의 처참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대통령은 벌써부터 현실부정 단계에 들어갔다.
그는 예리엘과 나를 눈짓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그야 예리엘 씨가 저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미 수천번도 더 죽었겠지만..."
"아, 그건 당연히 노 카운트입니다. 예리엘은 반칙이니까요."
대충 예상하고 있었던 반응이라서, 미리 준비해둔 자료를 내밀었다.
나는 놀란 경호원들이 도끼눈을 뜨고있는 가운데 그 내용을 천천히 읊었다.
"어제 오전 행사 참석 당시 저격 기회가 최소 다섯 번 있었습니다. 경호원들은 방탄 방패도 휴대하지 않았고, 저격 포인트를 체크하지도 않았죠. 이게 첫 번째입니다."
"아니. 한국에서 어떻게 저격을..."
"요즘은 사냥용 장비들이 워낙 많이 풀려서 완전 딴 나라 이야기도 아닙니다. 헌터 능력을 사용하면 더욱 쉽구요."
나는 주저없이 다음 차례로 넘어갔다.
불행히도 아직 한참 남았다.
"정찬에서도 저격 기회가 당연히 있었고, 독살 기회는 세 번. 뒷문과 식당 쪽은 아예 제대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세, 세상에..."
김정태가 갖다준 자료에는 사진이 엄청나게 많았다.
이걸 일일이 다 찍고있었던 동안, 경호원들은 조금도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는 다른 자리에서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그제야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대통령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자 경호원들은 안절부절 못하게 됐다.
나는 그들이 끼어들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최악인 것은 대통령 관저의 경호체계입니다. 도대체 왜 감시카메라에 사각이 존재하는 겁니까?"
"그, 그게..."
"차량이 들어오는데 보디체크도 없고, 야간 순찰도 제대로 안 돌고, 방범장치 고장도 방치하고 있죠."
김정태가 기겁했던 것도 당연했다.
이놈들은 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이 식칼 들고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안 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헌터 능력 위주로 뽑았다지만 기본 태도 자체가 글러먹었다.
물론 그들도 변명이 없진 않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죠."
"그, 조금 전은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각하. 보통 암살 때는 이름이라도 외치는 게 보통이라..."
일단 대통령이 직접 목격해버린 부분부터 해명을 시도하는 경호팀장이었으나, 그게 될 리가 없다.
티아는 그의 황당한 변명을 듣곤 무척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였다.
"주인님, 쟤 뭐라는 거에요? 머리가 많이 나쁜가봐요."
"야야."
솔직히 말해서 티아에게 이런 소리 들을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거다.
녀석은 이내 손뼉을 짝! 하고 치더니 장난감총을 다시 장전하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제가 대사를 안 쳐서 그래요? 다시 한 번 해볼게요."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라..."
"각하,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아니다. 이게 아니라... '야, 너도 죽어봐!' 이거 맞죠?"
"넌 어디서 그렇게 이상한 것만 배웠냐?"
내가 눈을 질끈 감고있자 또다시 구차한 변명이 이어졌다.
"저희는 헌터 능력으로 경호를 하기 때문에 유사시에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저희들의 앞에서 저격 시도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조금 전에는 너프건도 못 막던데."
"넌 좀 조용히 하고있어."
내가 신나게 까불어대던 티아를 침묵시키자 경호팀장이 발끈했다.
그는 머리에 열이 오른 나머지 해선 안 될 말을 뱉어버렸다.
"애초에 예리엘 프로스트가 있는데 저희가 뭘 한다고 해도..."
"뭐라구요?"
예리엘이 불쾌하다는 듯 눈썹을 살짝 떨자 방 안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본인을 변명거리로 써먹어서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다만, 저들은 뭘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렸다.
대통령이 몸을 부르르 떠는 사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푸욱 새어나왔다.
사실 나도 매일 아침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헌터 범죄는 그 수단이 정말 한도끝도 없어서 상대할 때마다 절망감이 느껴질 정도다.
우리 특수대가 열심히 뛰어다니곤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범인을 붙잡는 식이 된다.
오라클의 초월적인 능력과 계엄령 선포에 준하는 법적 권한이 주어져도 이 정도다!
자고로 공든탑은 쌓는 것보다 부수는 것이 훨씬 쉽기 마련.
암살을 사전에 저지해야 하는 경호원들이 지레 겁먹고 결국 포기해버리는 것도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지금의 심각한 실태도 그들이 마음 속에서 이미 희망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완성된 것이리라.
그래도.
저런 식으로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면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 돈을 받아먹는 프로는 절대로 해선 안 될 소리다.
"... 나가."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대통령은 결국 경호원들을 모두 쫓아내버렸다.
앨리스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여기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놈들 도대체 뭐야? 헌터들 중에서 아무나 붙잡아서 앉혀놓은 거야?"
"아니. 저래봬도 대부분 경호학과 정도는 나온 인원들이야."
"그, 그럼 어째서..."
"근데 저 양반들 선임들은 그렇지 않았거든."
김정태를 쫓아내고 대통령 경호팀을 차지한 인원들이 바로 앨리스가 말한 케이스였다.
그 선배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이후에 들어온 놈들도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진 것이다.
나는 헛웃음을 머금은 채 진심을 조금 토로했다.
"사실은 처음부터 이기지 못할 싸움일지도 몰라. 진지하게 매달리는 게 오히려 바보같은 짓일 수도 있어."
그래도 누군가는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해야하는 일을 하는 팀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숨을 푹 내쉰 대통령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그냥 새로 싹 물갈이 하시면 될겁니다. 요즘은 사설 보안업체들도 헌터 인력을 고용하는 판국이니까요."
"그렇군요... 헌터들을 상대하는 게 이런 일이었다니."
작게 헛웃음까지 지은 그가 나와 악수를 나누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특수대 예산... 올려줄까요?"
"필요 없습니다. 협조만 원만하게 해주시죠."
그대로 청와대를 떠난 우리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김정태는 결과를 듣고 난 뒤에도 시원섭섭하게 웃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를 따로 데려가서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때, 속이 좀 시원한가?"
"우리나라 톱의 경호체계가 그 정도로 개판이라는데, 솔직하게 좋아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그래도 예전 직장이잖아?"
"어차피 큰 의미는 없습니다. 게이트 때문에 나라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대통령은 100명 이상 있죠."
피식 웃으며 이야기하던 김정태가 쑥쓰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돌렸다.
"지금 제가 모시는 분은 전 세계에 딱 한 명 뿐입니다."
"오라클 마스터는 셋이나 있는데?"
"특별 수사관은 한 명이잖습니까."
본인도 말하고 나서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김정태.
나는 고마운 기분으로 사무실에 돌아갔다.
내 자리에서는 몬스터 출신의 헌터펫이 금발 머리 한국인 혼혈에게 열심히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김재규가 당시 대통령에게 권총으로..."
"티아, 스톱! 우리 사무실에서 정치적 이슈는 금지야! 앨리스 너는 왜 얘한테 한국사 강의를 받고 앉았냐?"
"그게 듣다 보니까 꽤 흥미로워서..."
"그 정도는 공부 좀 해라."
나는 강한 두통을 느끼며 얼른 퇴근을 지시했다.
집에서 금방 재회한 예리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상냥했다.
가장 좋아하는 자세로 치유를 받던 나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오늘따라 왜 이래?"
"아뇨, 그냥... 서방님은 잘도 특수대 일을 하신다고 생각해서요. 낮의 일을 아직도 신경쓰고 계신가요?"
"솔직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지."
나는 고민 끝에 지난번에 한 번 했던 기억이 있는 질문을 다시 한 번 꺼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안 되는 문제였다.
"정말 나 같은 놈으로 괜찮아?"
"왜 또 그런 말씀을 하셔요? 낮의 일만 봐도 일목요연 하잖아요?"
"뭐가 일목요연하다는 건데?"
"해보기도 전에 포기해버리는 남자들과 해야할 일은 묵묵히 해내는 서방님."
"그렇게 들으니까 되게 부끄럽다."
오늘 다들 나를 수치사 시키려고 작정한 건가?
내가 조금 더 깊게 얼굴을 파묻자 예리엘이 위에서 웃었다.
"그래도 칭찬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건 좀 고쳤으면 해요."
"... 칭찬은 사치가 맞아."
"그건 또 왜 그래요?"
"나는 그린 더스트도 있고 오라클의 운용권한도 가지고 있어. 죽으라고 하면 진짜로 죽을만한 부하들도 여럿 있지. 다른 사람들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
나는 오랜만에 시원스레 본심을 토해냈다.
"만약 아까전의 놈들도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다면 경호 정도는 훌륭하게 해냈을지도 몰라."
"남들보다 우월한 능력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도 있죠. 블랙 로터스처럼요."
하여간 예리엘이 남편 기 살려주는 것은 제대로다.
그녀가 없었을 때엔 어떻게 살았는지, 이젠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헌신적인 아내의 원만한 협조 덕분에 무탈하게 잠든 나는 주말을 기대하며 아침 일찍 출근했다.
오늘은 웬일로 무난하게 끝나는가 싶었는데, 점심을 먹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불운한 전조가 나왔다.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던 이서우가 무척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팀장님. 방금 경찰 측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뭐? 어디서 살인 사건이라도 났대?"
우리는 경찰과 협조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경찰 측에서 우리를 불러주지도 않는다.
보통은 그냥 헌터 관련 사건을 전달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이서우는 내 말에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구요. 서울 시내 대학에서 축제를 하고 있는데, 주최측에서 헌터 재학생을 폭행으로 신고했다고..."
"축제? 세상에."
나는 사건 그 자체보다 대학교 축제라는 소리에 기겁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니.
"그럼 서우 씨랑 나만 가볼까?"
"주인님, 저도 갈래요!"
축제라는 소리를 듣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티아.
앨리스와 서지유도 그새 슬금슬금 거리를 좁혔다.
"놀러 가는 게 아니라고. 너희가 거기서 뭐라도 사먹다가 찍혀봐라. 바로 뉴스 나온다."
애초에 대학교 축제라서 사먹을 게 있을지나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녀석들을 차마 떨쳐내진 못했다.
결국 우리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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