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막간(1)
* * *
은행강도 사건이 개운하지 못하게 종결된지 얼마 뒤.
예리엘은 기어이 지난번의 저녁 식사 약속을 실현시켰다.
그러나 부득이하게도 식당은 바꿀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랜만의 외식인만큼 지난번보다 급이 떨어지진 않았다.
한국 최고수준의 셰프들이 직접 내주고 설명까지 해주는 코스 요리.
푸른 기와지붕 위주의 한옥 인테리어도 적당히 마음에 들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식당의 주인이 대통령이라는 것인데, 맞은편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있으니 식욕이 조금씩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물론 티아는 그딴 건 조금도 개의치 않고 맛있게 음식을 해치웠다.
그렇다, 이곳은 청와대였다.
"와구와구... 혹시 이 양고기 더 있나요? 진짜 맛있네요."
"적당히 좀 먹어라. 네가 초대받았냐? 이럴 줄 알았으면 놔두고 왔어."
"히, 히잉. 죄송해요 주인님."
"하하, 아닙니다. 저희 요리사들이 간만에 실력발휘를 할 수 있게 됐으니..."
청문회에서 나를 직접 심문했던 대통령은 열심히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이 양반은 내 정체를 알고있을텐데, 갑자기 왜 이렇게 불러들였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악감정은 없지만 정치적인 이야기가 나올까봐 괜히 불편했다.
나는 조금 심란한 기분으로 식사를 마치곤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특수대와 상담하실 일이란 것은..."
"아. 다름이 아니라 지난번 은행강도 사건 이후로 헌터 범죄의 중대함을 깨달았습니다."
확실히, 그 사건은 파장이 상당했다.
자그마치 200억원 어치 규모의 은행강도 사건!
200억이면 노벨피아 작가 정산금 이벤트도 할 수 있는 돈이다.
심지어 그 중 40억은 결국 회수에 실패했다.
게다가 피해자가 대형 은행이란 것도 한 몫 했다.
고조선 은행은 명백히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기업.
그런 기업도 헌터 범죄의 마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대통령에게 물었다.
"혹시 특수대 예산 올려주시는 겁니까? 딱히 필요없는데..."
"아뇨, 그건 절대 아닙니다."
굉장히 딱 잘라서 말한 대통령이 비로소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 특별 수사관께서 보시기에 우리나라의 요인 경호는 어떻습니까?"
"요인 경호라 하시면... 대통령 경호 같은 것 말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대통령의 속내를 눈치챈 나와 예리엘의 얼굴에 쓴웃음이 깃들었다.
이 양반, 정말로 헌터들에게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까 부랴부랴 나와 예리엘을 청와대로 초대한 것이다.
사실 이해못할 일도 아니다.
지난번의 은행털이 사건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사실 요인 경호는 제가 전문이 아니라서... 오히려 그 반대죠."
"하, 하하... 그 반대라서 더욱 믿음직하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내 본업을 암시하는 농담에 대통령이 어렵사리 웃었다.
나는 그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경호체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답을 드리기가 좀 힘들고... 아예 직접 테스트를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테스트요? 어떤 테스트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앞으로 일주일 안에 각하를 암살해보겠습니다. 물론 진짜로 죽이겠다는 소린 아니구요."
대통령은 내 말에 살짝 움찔거리면서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보니까 진짜로 살고싶은 모양이다.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해주십시오."
어차피 임기도 별로 안 남은 것으로 알고있는데, 대충 좀 해줬으면 좋겠지만...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번 짚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사실 나도 좀 궁금하긴 했다.
'대통령 경호팀이라면 정태의 전 직장이었지?'
김정태는 언제나 흡족한 일처리를 보여주고 있는 에스콰이어다.
나는 그의 서비스에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을 정도.
과연 그를 쫓아내고 어떤 놈들이 빈자리를 차지했을지, 조금 정도는 흥미가 있었다.
"다만 미디어에 노출되는 건..."
"은밀하게 진행하죠. 아무리 테스트라고 해도 모양새가 좋진 않을테니까요."
"역시 이해해주시는군요."
당연하지. 괜히 미디어같은 곳에 노출되었다가 대통령 살인미수범으로 오해받는 건 사양이다.
그대로 무난하게 합의를 마치고 나오자, 앨리스가 차에서 한시름 놓으며 중얼거렸다.
"의외네. 언니가 그걸 허락할 줄이야."
"그야 그래봬도 대통령이니까."
어차피 실세는 예리엘이라지만 저 감투가 보통 감투인가.
저 정도 요구는 들어줄 수밖에 없다.
예리엘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저도 대통령의 경호가 좀 신경쓰이긴 해요. 현 대통령은 이용해먹기 좋은 소인배란 말이에요. 갑자기 암살 따윌 당하면 저도 곤란해요."
"엑... 그, 그래서 찬성한 거였어?"
"네. 되도록 재선됐으면 좋을 정도에요."
이제보니 완전 호구잡히셨군.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이 정도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며 인원을 각출했다.
"정태야, 그렇게 됐으니까 네가 한 번 모의 암살 계획을 짜봐."
"예. 팀장님."
김정태는 조금 싱숭생숭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옛 직장을 테스트하게 되다니, 기분이 굉장히 묘할 것이다.
내가 다른 대원들에게도 사건을 나눠주고 있자 옆에서 서지유가 살짝 당황했다.
"자, 잠깐만요 팀장님."
"무슨 문제 있어 지유 씨?"
"아까 설명하신 모의 암살 건, 보안팀장님 혼자서 담당하시는 거에요?"
"응."
내 명쾌한 대답에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반응하는 서지유.
나는 작게 한숨을 삼키며 조금 더 설명해줬다.
"우리 수사력은 너무 고급이라서 그딴 곳에 몇 명이나 투입할 수는 없어. 진짜로 암살 사건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뭘."
"아하, 하긴..."
"계획은 정태 혼자서 짜보고, 실행은 몇 명 더 동원해도 상관없어."
"주인님, 그냥 제가 가서 다 때려부수면 안 되나요?"
티아가 나름대로 의욕을 보였지만, 늘 그랬듯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분명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는데 얘는 어제 뭘 들은 걸까?
이쯤되면 설명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곱게 타일렀다.
"너를 쓰는 건 반칙이지."
"반칙? 그렇군요! 잘 모르겠지만 알겠어요!"
"그, 그래..."
완전 엉망진창인 대답.
그러나 티아의 말은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뉘앙스를 느껴야 한다.
'그래도 고분고분하니까 봐준다.'
"그리고 블랙 로터스 관련 정보를 입수하면 내게 바로 보고하도록. 언제 어디서든 그게 최우선 사항이다. 알겠지?"
"예."
"좋아. 다들 일 시작해."
박수를 한 번 치며 자리로 돌아가자 앨리스가 내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역시 신경쓰이나보네? 블랙 로터스."
"당연하지. 그 녀석은 질이 독보적으로 나빠. 범죄 계획을 짜주는 건 물론이고 훈련까지 시켜주니까."
더 이상 게이트가 열리지 않게 되면, 가장 신나게 날뛰게 될 것이 바로 그런 부류다.
은행강도 사건과 관계없이 최대한 빨리 잡아야한다.
나는 자리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자료를 챙겨서 일어났다.
오늘은 연예인 성상납 사건 때 잡아들였던 큰바다 이재한의 2심이 있는 날이다.
놈의 수족들도 모두 구속해놓은 상태인데다 기사도 크게 나갔으니까 역전은 힘들 것이다.
별다른 걱정 없이 재판정으로 향했던 나는 예정보다 훨씬 늦게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재한의 항소는 생각지도 못한 격전이었다.
서지유는 내 얼굴이 반쪽이 된 것을 보곤 호다닥 달려와서 걱정스레 물었다.
"팀장님, 어떻게 됐어요? 설마 뭉텅뭉텅 깎인 건 아니죠?"
"1심에서 3년 추가."
"네에? 왜 더 늘었어요?"
"이재한 그 새끼, 나랑 판사랑 증인이랑 변호사까지 모조리 협박했어. 법정모욕죄로 3년 추가야."
원래 이런 식으로 판결을 때리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해버릴 가능성이 생기지만...
아무리 그래도 판사에 대한 살해협박은 너무 나가버렸다.
끊임없이 소리를 질러대서 재판의 진행이 곤란했을 정도.
게다가 2심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저질러버려서 충분히 가중사유가 된다.
"세상에 그렇게까지 하다니..."
"큰바다 이재한은 원래 그런 놈이었어. 방송에선 호탕하다고 포장해준 것 같지만."
형량이 늘어났다곤 해도, 어차피 죽을 때까지 감방에 처박혀있을 놈이라서 큰 의미는 없다.
그래서오만 욕지거리를 받아냈던 나로선 이겨도 이긴 것 같지가 않다.
서지유는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마 상고하겠죠?"
"3심은 내가 출석할 필요 없어. 거의 다 서류로 진행하니까."
"그럼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지유 씨도 공부 좀 했구나? 나는 항소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저도 그 정도는 알거든요..."
우리가 잡담을 나누고 있자 김정태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마 대통령의 일정을 따라다니며 경비태세를 살펴보고 온 것이리라.
"어때, 가능할 것 같아?"
"제가 좀 보고 왔는데, 가능하고 불가능하고를 논의할 수준이 아닙니다."
"음?"
"그게 좀... 심각합니다."
김정태는 굉장히 심란한 얼굴로 우물거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난생 처음보는 그의 모습에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얼마나 심하길래?"
"그냥 내일 한 번 가보시죠."
"가긴 어딜 가?"
"청와대 말입니다. 이걸 한 번 보시죠."
"..."
김정태가 내민 자료들을 받아든 나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정오.
다시 대통령과 정찬을 즐기게 된 우리는 경호원들이 주욱 늘어선 앞에서 그와 악수를 나눴다.
대통령은 살짝 당혹스런 기색이었으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우리를 맞이해줬다.
시간이 좀 일러서, 간단히 차를 즐기러 들어가자,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이 슬슬 자리를 비키려 했다.
내가 그 전에 신호를 주자 티아가 옷 속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응?"
"에잇."
녀석의 손에 들린 것은 자그마한 장난감 총, 너프건이었다.
사람이 절대로 다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장난감 탄환이 뿅, 하고 날아가서 대통령의 가슴을 때렸다.
경호원들은 그와중에도 멍한 얼굴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나는 그가 들고있던 찻잔을 뒤집어서 바닥에 붙어있던 스티커를 보여줬다.
찻잔의 바닥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독' 이라고 쓰여있었다.
경호원들이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사이, 나는 그에게 설명해줬다.
"각하, 지금까지 13번 죽으셨습니다."
"뭐, 뭐요?"
우당탕!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지려는 대통령을 부축하며 경호원들을 노려봤다.
예리엘은 얼른 끝내고 나와의 식사를 즐기고 싶은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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