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 선상 카지노(5)
* *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게임에 참여하고 있었던 헌터들은 카지노 지배인과 직원들을 무슨 부모님의 원수처럼 노려봤다.
나는 그런 놈들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따지고 보면 저들도 그저 선량한 피해자라고 보긴 힘든 것이다.
선상 카지노측은 확실히 사기도박을 했다.
이번에는 내가 철저하게 방지해서 그렇지, 평소에는 반칙도 거리낌없이 써먹었을 것이다.
본인들이 실력을 발휘할때만 마력 감지기를 끄거나 하는 식으로 하면 얼마든지 부정을 저지를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플레이어들도 그것을 아예 모르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이 방에 들어와보지도 않았던 내가 그것을 일찌감치 짐작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도박에 참여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자긴 다를 줄 알았으니까.'
이들도 헌터인지라 나름대로 실력에 자신은 있었을 것이다.
분명 본인들도 부정행위를 몇 번이나 시도했으리라.
게다가 카지노 측과 내통하지 않은 플레이어를 노린다고 치면 승산이 없지도 않았다.
실제로 하루이틀 정도는 돈을 따서 돌아간 기억도 있을 것이다.
아직 법의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았을 뿐, 이들도 어엿한 도박중독자들이다.
그런 놈들이 본인들은 무고하다는 듯 지배인을 노려보고 있으니 기가 찬다.
지배인은 도저히 카드를 칠 엄두가 나지 않는 듯 내게 물었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두 눈에는 독기가 어려있었다.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지금 여기 있는 돈에 더해서 오늘의 피해액을 모두 환불해드리면..."
"에이, 어디서 그 정도로 그냥 넘어가시려고?"
"큭!"
이놈들이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오늘의 손실 따윈 새발의 피다.
나는 그를 체포하기로 결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죄목을 읊었다.
"거기에 더해서 세금까지 내시지."
"엇?!"
"여기, 5년 전부터 영업했는데 세금은 한 푼도 안 냈잖아. 뇌물 진짜 빡세게 돌리셨나보네."
지배인은 내 말에 발끈했다.
"그야 이 배는 테레인 소속이니까..."
"테레인은 이제 없잖아."
"이 배가 바로 테레인이다!"
그는 내게 그동안의 설움을 토해내려는 듯 매섭게 내뱉었다.
"너희 나라는 우리가 몬스터들을 피해서 여기로 왔을 때 몇 번이나 내쫓으려고 했지. 우리들이 부두에 내려가지도 못하게 하면서 몇 달이나 격리시켰어!"
"그게 불만이라면 옆에 있는 중국이나 일본으로 가지 그랬냐."
나는 작게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
이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 때문이 아니다.
내 애국심은 5년 전, 검찰에서 쫓겨났을 때 이미 말라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은 이래저래 익숙한데다 고등급 헌터들도 많고 인구밀도까지 높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로 참여했던 헌터들은 갑자기 애국심이 발휘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이 새낀 나라를 버리고 도망쳐온 주제에 뭐 이렇게 말이 많아?"
"너흰 인마 다른 나라에 갔으면 배랑 같이 통째로 수장당했어!"
"여러분들은 좀 닥쳐보세요."
당연하지만 지배인은 세금을 곧이곧대로 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 카지노 같은 사행업종은 세금 비율이 장난 아니게 높은데...
그걸 5년씩 미뤘으니까 이제와서 한꺼번에 내면 진짜 파산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배인의 대답은 정해져있었다.
"모, 못 내! 절대로 못 내!"
"한국의 항구에서 한국 헌터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한국의 도박 중독자들에게서 긁어모은 돈인데 세금은 못 내겠다고? 너흰 얼마 전의 몬스터 웨이브 때에도 가만히 있었겠지?"
"이 정도는 당연히 받아도 되는 거야! 우린 다른 일 따윈 얻을 수도 없었다고. 이 카지노도 배에 있던 설비를 겨우 재활용해서 시작한 거다!"
다른 놈들이라면 또 몰라.
A랭크는 거뜬할 것이 분명한 헌터가 말하니까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하긴, 두려운 것이 당연하다.
예전에는 테레인에서 몇 안 되는 A랭크 헌터랍시고 대접을 받았는데, 그 테레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걸 보면 헌터일을 하기 싫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전국의 도박 중독자들이 찾아와서 따박따박 돈을 갖다바치는데 뭐하러 힘들고 위험한 헌터 일 따위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러한 사정을 능히 이해하면서도 마지막으로 통보했다.
"세금 낼래, 아니면 그냥 잡혀갈래? 너희가 내게 될 세금으로 할 일이 정말 많아. 일단 도박 중독 치료부터 시작해야겠지."
"으윽!"
삐이익!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지배인은 방 안에 장치되어있던 버튼을 꾸욱 눌렀다.
그러자 배 전체에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거대한 크루즈쉽이 크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곤 살짝 당황했다.
"엇? 설마 이거... 움직이는 건가!"
"말도 안 돼. 정박된지 7년이 다 되어가는 배인데!"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듯, 순식간에 수면을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크루즈쉽.
나도 이게 진짜로 움직일 줄은 몰랐다.
카지노 지배인은 눈을 부릅뜬 헌터들에게 외쳤다.
"수사관을 잡아!"
"뭣?"
"저 인간, 예리엘 프로스트의 남편이라고. 저놈을 다른 나라에 데려가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어! 내가 블랙마켓에 현상금이 걸려있는 걸 똑똑히 봤다고!"
아... 그거 아직 안 없어졌구나?
서지유가 흠칫거리며 내 등 뒤로 숨자 가만히 있던 앨리스가 발끈했다.
지금 이 자리의 헌터들 중 그녀와 동수라고 느껴질만한 상대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이 새끼 아주 막 나가네? 넌 내가 허수아비로 보이냐?"
"엥?"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있던 티아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
녀석의 어리둥절한 모습에 지배인이 용기를 얻었다.
"앨리스 윈터가 있어봤자 소용없어. 저쪽은 일반인만 2명이다!"
사실 냉정하게 계산을 잘 하긴 했다.
이쪽에는 그린 더스트 결혼반지가 있다지만, 이걸 사용하게 되면 우리가 오히려 머릿수에서 크게 밀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심으로 치고박자니 나와 서지유를 지키면서 싸워야한다.
아무리 앨리스 윈터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헌터들이 저놈의 한 마디에 곧바로 변절하진 않았다.
"우리가 뭐하러?"
"야, 너희도 상습 도박범이야. 이 일이 끝나면 죄다 철창행이라고!"
"웃기지 마! 우린 너 같은 범죄자가 아니라 사기 피해자야! 그, 그렇죠 수사관님?"
나는 헌터들의 질문에 사실대로 답했다.
"액수와 횟수에 따라서 다르죠."
"엇?"
"안심하시죠. 설령 도박죄로 인정받는다고 해도 거의 100% 집행유예입니다. 헌터 전용 교도소는 여러분들 같은 잡범들까지 가두기엔 너무 비싸고 좁으니까."
그러나 헌터들은 내 정직한 대답을 썩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집행유예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사람들이 집행유예를 받은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안 봐도 뻔하지 않은가.
헌터들은 본인들이 죄를 지었다는 자각도, 벌을 받아야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앨리스는 헌터들의 시선이 눈에 띄게 적대적이 된 것을 보곤 내게 항의했다.
"... 너 분위기 읽을 줄 몰라? 그냥 봐준다고 하면 되잖아!"
"내가 명색이 특별 수사관인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냐? 어차피 기소는 다 할거야."
"저거 보라고! 수사관은 처음부터 너희를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어!"
카지노 지배인이 열심히 선동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시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꽤 일찍 왔으니까, 여기서 후딱 끝내면 10시 전에 귀가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업무량이 장난 아닌데 수면시간이 줄어드는 불상사는 피하고 싶다.
"테레인 출신 난민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무단으로 이탈하셨으므로 난민 인정 결정이 취소됐습니다."
"그런 소리 한다고 겁먹을 것 같았다면 배를 띄우지도 않았어!"
카지노 지배인이 발악하듯 대꾸하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그럼 앞으로도 바다에서 강하게 살아가렴."
"뎃?"
콰아앙!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성대한 폭발음과 충격이 크루즈쉽 전체를 휩쓸었다.
티아는 몬스터답게 꼬리로 균형감각을 발휘해서 넘어지는 것을 면했고, 서지유는 아예 앨리스에게 안겼다.
선체가 크게 기울어지자 카지노 지배인이 악을 질렀다.
"무, 무슨 짓을!"
"가자."
"네!"
나는 앨리스와 티아에게 손짓해서 미련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다른 헌터들은 방에 남아있는 돈을 챙기려고 애쓰다가 바닥을 구르는 등, 아주 난리가 났다.
그들 중 몇몇은 일찌감치 돈을 포기하곤 우리를 쫓아왔다.
실전에서 폭발물을 다뤄봤던 헌터들은 조금 전의 진동이 매우 심상찮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으아악!"
콰드드득!
심하게 기울어지며, 순식간에 침몰해가는 크루즈쉽.
물론 이런 류의 배가 그렇듯 물에 완전히 잠길 때까진 아직 한참 남았다.
본인을 향해서 넘어지는 슬롯머신을 가볍게 걷어차버린 티아가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주인님, 제가 모실게요!"
"기특하다 진짜. 돌아가면 과자 사줄게."
"정말요?"
티아는 애가 참 단순해서 좋다.
그대로 갑판까지 빠져나온 우리는 냉큼 구명보트를 내렸다.
다행히 구명보트는 7년만에 출항한 크루즈쉽 못지않게 관리가 잘 되어있었다.
카지노 측이 이 배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만큼은 진심이었던 것 같다.
하긴, 망국의 유일한 영토라고 생각하면 정이 들 수밖에 없었겠지.
"저거 어떻게 쓰는 거야?"
"도르래로 보트를 내려서 탑승하는 거야. 근처에 설명서 표지판이 있을텐데?"
"... 어두워서 안 보여. 그냥 대충 타!"
앨리스는 살인 토끼를 소환해서 도르래의 줄을 잘라버리곤 구명보트를 갑판 위에 내려놓았다.
배가 조금 더 기울어지자, 안에 남아있던 헌터들과 카지노 직원들도 호다닥 도망쳐 나왔다.
"자, 다 왔나?"
"아직... 아직 사장님이 안 왔어요!"
"뭐? 너희 사장님 어디 있는데?"
"안쪽 방에 남아있습니다! 금이나 뭐 그런 걸 덜 챙겨서..."
끼이잉...
직원이 말하는 사이, 또다시 신음을 토해내며 좀 더 가라앉는 배.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갑판으로 내려가서 안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선내는 아까보다도 훨씬 개판이 되어있었다.
오랫동안 정박한 상태로 영업을 하다보니, 테이블이나 머신 따위를 제대로 고정시켜놓지 않은 것이다.
'역시 침몰시키길 잘 했네.'
당연하지만, 이건 선착장에 남아있던 김정태의 작품이다.
희미한 마력 반응을 쫓아서 안으로 향하자 카지노의 지배인이 골드바와 문서 따위를 열심히 챙기고 있었다.
나는 결혼반지를 발동시키며 그를 제압하기로 했다.
"친구야, 늦기 전에 나가야지!"
"입 닥쳐! 네, 네가 무슨 수를 쓴 거지? 나는 다 알아!"
"야, 네가 7년 동안 방치된 배를 억지로 출항시키니까 그런 거잖아. 닥치고 나가자니까? 애들이 기다려."
"웃기지 말고 꺼져!"
부웅!
지배인의 단단한 주먹이 내 코를 스친 직후.
내 구두가 놈의 복부를 강타했다.
나는 일격에 무력화된 놈을 붙잡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그대로 구명보트에 놈을 던져넣자 바닷물이 발목까지 밀려들어왔다.
"갑시다."
"예, 예에..."
모두를 태운 구명보트가 즐겁고 상쾌한 분위기 속에서 인천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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