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기러기의 노래(4)
* * *
김우주 씨는 이미 상황을 대충 눈치챈 듯, 이미 체념한 얼굴이었다.
아마 브로커와 업자가 잡혀온 것을 인지했으리라.
협회 본부의 구속실은 사실상 헌터 교도소와 비슷한 수준의 설비가 갖춰져 있지만, 그래도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정도는 볼 수 있었다.
"정말 빠르시군요. 아직 하루도 안 됐는데..."
"운이 좋았죠."
김우주에겐 처음부터 승산이 없었다.
그의 승리 조건은 내가 사건의 진상을 대충이나마 눈치채고, 브로커와 업자들이 무사히 달아나는 것이었다.
본인이 피해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증거물 부족으로 풀려나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처음부터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본인 말고 다른 사람이 청부를 넣었다고 착각시키고 싶었겠지.'
하지만 실행범은 몰라도 브로커는 결국 붙잡혔을 것이다.
저런 류의 일을 하는 놈들은 언제나 꼬리를 길게 빼놓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고작 하루만에 잡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는 이미 대충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예의상 물어봤다.
"왜 그러셨습니까?"
"... 처음에는 곱게 헤어질 생각이었습니다."
김우주 씨는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며 사실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도 전부 맞춘 것은 아니었다.
틀린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자란 부분이 있었다.
"2년만에 두 딸을 만났습니다. 저처럼 외국으로 파견을 나간 헌터들은 출입국이 굉장히 까다로워서, 도저히 더 자주 볼 수가 없었죠."
그야 그렇겠지.
파견을 받은 나라는 그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붙잡을테고, 파견을 보낸 나라는 그가 완전히 귀화할까봐 또 불안해할테니...
그래서 그나마 기혼자인 김우주 씨에게 파견 허가가 나온 것이었다.
본국에 가족이 있으면 아무래도 귀화할 위험이 적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책을 결정한 이들은 정작 기러기들의 가족사가 어떻게 될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처음부터 파견 따윈 가고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길드원들 중 파견 허가가 나올만한 인원이라곤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액 연봉과 진급을 약속받고 어쩔 수 없이 다녀왔죠. 만약 가지 않으면 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런데... 2년만에 마주친 딸들이 저보고 한남충이라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나조차도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작게 손사래를 치며 쓰게 웃었다.
"애들이 뭘 알겠습니까? 다 배운대로 한 것뿐이지. 하지만 애 엄마는 용서가 안 되더군요. 그 여자는 아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 놓았습니다."
"정확히 뭐라고 했죠?"
"제가 가족들을 버렸다고. 외국에서 신나게 놀면서 바람을 피운다고 가르쳤습니다. 도대체가... 아이들에게 해도 되는 소리가 아니잖습니까."
김우주 씨가 양육권 분쟁에서 패배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이 어쨌든간에, 최근 2년간 피해자는 두 아이들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녀석들은 피해자의 말을 굳게 믿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는 자백을 모두 마치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이제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건 당시, 아이들은 피해자의 친가에서 보살피고 있더군요."
"맞습니다."
"조금 전에 그쪽에서 양육권 포기 신청이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의 엄마가 죽었으니 더 이상 맡아줄 수 없다는 거죠."
"그... 그런!"
당연하지만 김우주는 징역 확정이다.
그러니 친척들이 맡아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나는 마지막 희망까지 잃어버린 듯한 김우주에게 확인차 물었다.
"김우주 씨. 진정하시고 대답하세요. 따로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친척은 없죠?"
"그, 그렇습니다."
"그럼 시설로 보내야겠군요."
"수사관님. 달리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딱 잘라서 말한 나는 망연자실한 김우주의 앞에서 늦지 않게 덧붙였다.
"요즘은 보육 시설도 꽤 괜찮습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시설인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니까요. 혹시 프로스트 재단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그렇다. 예리엘이 운영하는 자선 재단은 아이들의 보육이 메인이다.
년간 100만원 이하의 소액 기부는 받지도 않는 호화로운 재단.
수혜자는 비교적 적지만, 그만큼 돈과 정성을 들인다.
김우주는 본인의 행운을 믿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설마..."
"조금 전에 통화했습니다. 2명 정도는 받아주겠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가, 감사합니다 수사관님. 정말로..."
프로스트 재단 정도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에는 최상급...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선택이 불가능했던 옵션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곤 마음을 굳혔다.
그 아이들은 확실히 교정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일단락시킨 나는 김우주 씨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아, 그리고 피해자를 직접 살해하지 않은 건 정말 잘 하신 겁니다. 이번 건에서 유일하게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네요."
"... 죄송합니다."
조금 전의 말은 비아냥 따위가 아니었다.
원래 살인과 살인교사는 법적으로 동일하게 처벌하도록 되어있지만...
실제로 판결이 그렇게 나오진 않는다.
왜냐하면 실행범 쪽이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형량을 가중시키는 요소가 잔뜩 추가되기 때문이다.
독극물이나 흉기를 사용하거나, 피해자를 유인 및 납치하거나, 시체를 처리하는 것 등등...
그래서 실제로는 실행범 쪽이 교사범보다 1.5배 ~ 2배 정도의 형량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래봤자 살인은 살인이라서 최소 10년 정도는 나오겠지.
나는 잔뜩 주눅든 그에게 희망적인 소식을 전했다.
"이제부터 할인 들어갑니다. 일단 자백을 하셨으니..."
"네? 하, 하지만 저는 수사관님께서 놈들을 잡아오신 뒤에 말했는데요?"
"쉿."
매직미러 너머로 녹음을 꺼버리라고 손짓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최소한 거짓말을 하진 않았잖아요. 김우주 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실행범을 체포한 것도 사실이고."
"하, 하지만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법을 이용해도 되는 건가요?"
살인청부까지 해놓고 이제와서 깨끗한 체 하는 건가?
나는 그런 비아냥을 참으며 그에게 말했다.
"법은 원래 사람이 이용하라고 있는 겁니다."
"어엇..."
"사람이 이용하지 못하는 법에는 가치가 없어요. 보통 그런 법은 죽었다고 표현하죠."
"아, 예에..."
"김우주 씨. 지금 범행을 반성하고 계시죠? 참고로 반성 하셔야 합니다? 그런 못되먹은 어머니라도, 아이들에겐 없는 것보다 나았을지도 모르니까요. 이젠 아무도 알 수 없게 됐지만..."
"예.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김우주 씨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하루라도 빨리 나가서 아이들을 보고 싶겠지.
나는 그에게 대놓고 말했다.
"교도소엔 못 갈겁니다. 당신 같은 중범죄자 헌터들을 가둬두는데엔 한 달에 1500만원 이상 깨집니다. 일반 죄수들의 10배 수준이죠."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대체 형벌이요. 만약 제가 구형한대로 판결이 나온다면, 김우주 씨는 앞으로 위험하고 힘든 임무에 우선적으로 투입될 겁니다. 게이트 선발대, 위험 던전 처리... 보통 헌터들은 돈 줘도 안 하겠다는 임무들입니다. 잘 아시죠?"
김우주 씨는 다년간 해외에 파견을 나가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모범적인 헌터였다.
그런 그를 감옥에 처박아두는 것은 인력 손실이다.
까놓고 말해서 자리가 아깝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아이들을 보러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수, 수사관님..."
그는 결국 감격에 몸을 떨다가 눈물을 터뜨렸다.
기나긴 심문을 마치고 방을 나오자 서지유가 살짝 놀란 얼굴을 보였다.
"팀장님께서 웬일이셔요?"
"헌터 전용 교도소가 거의 다 찼대. 안 그래도 브로커랑 실행범 처넣어야 하는데, 자리를 아껴야지."
"아..."
김우주와 달리 브로커와 실행범 쪽은 동정의 여지가 아예 없다.
실행범은 전문 살인청부업자고, 브로커는 범죄 백화점.
김우주 덕분에 놈들을 잡았으니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나는 앨리스와 함께 퇴근하며 말했다.
"마냥 잔챙이들인 줄 알았는데... 언제 한 번 블랙마켓도 싹 털어야겠어."
"언니가 의외로 쉽게 허락해줬네."
"프로스트 재단은 아동 헌터 케어 전문인데, 헌터의 자녀는 헌터로 각성할 확률이 높잖아. 김우주 씨도 재산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어."
"켁... 그거 받아도 되는 거야?"
"오히려 모자라. 애들 키우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알아? 심지어 프로스트 재단에선 성적 상위자들을 뽑아서 대학까지 보내준다고."
"아하. 그렇다면야."
앨리스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 나는 예리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그녀는 포근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무릎 위에 뉘였다.
"갑자기 부탁했는데 고마워."
"아녜요. 마침 자리가 났거든요. 대신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이번 주말에 저랑 같이 재단 행사에 참석해주실래요?"
"아, 그 정도야 뭐."
내가 냉큼 동의를 표하자 예리엘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이 상태로 허리를 조금 숙이면 바로 가슴이 닿아버리는, 사기적인 피지컬.
갑자기 아기취급인가 싶어서 심란한데 그녀가 내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말투로 물었다.
"그런데, 둘이 왜 섹스한거야?"
"엇..."
싸아악.
전신에서 핏기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
실내의 온도가 분명 10도 가까이 내려갔다.
나는 물론이고 앨리스까지 완전히 굳었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예리엘의 손이 내 머리를 꽉 누르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가 힘을 주면 내 골통은 수박처럼 박살날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눈치챘는진 몰라도 여기서 일단 잡아떼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지가 아닐 것 같다.
예리엘은 확신 없이 일을 저지를만한 타입이 아니니까.
"저, 사모님. 저 무릎꿇으면 안 될까요?"
"가만히 있어."
"넵..."
"언니. 그건 사실 내가..."
"하아, 안 되겠어. 막상 들을 수 있게 되니까 듣고싶지 않아. 무슨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잘근잘근 씹듯이 말한 예리엘이 내게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인연은 쉽게 바뀌는 게 아닌가..."
"..."
"두 사람을 분별없이 방치해놓은 내가 나빴네. 잠깐 일어나보세요."
"넵."
나는 예리엘이 손을 치워주자마자 냉큼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앨리스도 내 옆에 나란히 앉아서 사죄.
예리엘은 무섭게 웃으면서도 자비심을 발휘해줬다.
"앨리스까진 허락해줄게요."
"뭣?"
"허락?"
"대신 세 번째는 안 돼요. 한 번 더 저 몰래 이런 일이 일어나면 저도 제가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그... 그야 당연하지. 앞으론 절대 이런 일 없을거야."
나와 앨리스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와중에도 생존본능 하나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리엘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