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기러기의 노래(3)
* * *
블랙마켓에서 잡아온 범죄자들은 협회의 본사를 보자마자 발광했다.
나는 몸부림치는 놈들을 구속실에 처넣곤 심문을 준비했다.
아직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듯한 앨리스가 핵심부터 물었다.
"도대체 누가 피해자의 살인을 청부했다는 거야?"
"김우주 씨."
"뭣?"
내 생각이 맞다면, 김우주 씨는 살인범이 아니라 살인교사범이다.
그야 억울할만도 하지.
나는 브로커에게서 압수해온 자료들을 살펴보며 시간 순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번 설명하기 번거로우니까 타임라인 따라서 이야기해줄게. 잘 들어봐."
"좋아."
"자, 잠깐만요!"
구속실 밖에서 호다닥 커피를 들고 달려오는 서지유.
나는 그녀를 냉큼 돌려보냈다.
"지유 씨, 나 커피는 하루 한 잔이야. 카페인을 잘 받는 체질이라... 달지 않은 음료수로 가져와."
"배달 시킬게요."
"이야, 돈도 많다."
"저 이래봬도 카페 사장이잖아요."
"..."
진지하게 얘 그냥 감옥에 처넣을까?
나는 어렵사리 고개를 털어내곤 설명을 시작했다.
"내 추론이 맞는지 한 번 봐줘. 김우주 씨는 외국에 다년간 파견을 나가있던 기러기 아빠야. 지금까지 성실하게 일해왔고, 가족들에게 송금이 끊긴 적도 없었지."
"..."
"그런데, 김우주 씨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부인의 외도를 의심하게 돼. 하지만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에는 직접 조사할 수가 없으니까 전문 업체에 의뢰했지."
그것이 바로 김우주 씨가 이혼 소송에서 제출했던 증거자료들이다.
여기까지는 앨리스와 서지유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겠지.
앨리스는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질문했다.
"그럼 김우주 씨는 그때부터 부인을 죽이려고 마음먹었던 거야?"
"아니. 내 생각은 달라. 처음에는 죽일 생각까진 없었을 거야. 만약 죽이려고 했으면 굳이 이혼 소송을 걸진 않았겠지."
김우주 씨의 사연은 인터넷에서 널리 퍼져서 나름대로 화제가 됐다.
물론 소문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은 살인 사건이 되어버린 이후부터였지만, 그 전부터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가 이혼 소송을 걸지 않았다면 부인을 훨씬 조용하고 은밀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리라.
앨리스도 내 논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말이 맞네."
"계속할게. 처음에는 죽일 생각까진 없었어. 그냥 이혼 소송 걸고 곱게 헤어질 생각이었겠지. 그런데, 이혼 소송 과정에서 김우주 씨가 상상도 못했던 문제가 발생하게 돼."
"상상도 못했던 문제?"
"혹시 재산분할인가요?"
나는 서지유의 풋풋한 의견에 피식 웃었다.
"아니. 보통 이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재산분할이나 위자료부터 떠올리지 않을까?"
"아앗... 그건 그렇네요."
"법원은 피해자의 외도 사실을 인정해줬어. 덕분에 위자료는 김우주 씨가 아니라 피해자 측에서 내게 됐지. 게다가 재산분할도 김우주 씨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돌아갔어."
김우주는 철저히 준비를 마치고 이혼 소송에 들어갔다.
뛰어난 헌터인 그는 뛰어난 전술가이기도 했다.
100% 승리를 확신하고 뛰어든 싸움.
그가 준비해놓은 자료들은 재산분할 과정에서 효과를 톡톡히 발휘했다.
"원래 유책배우자... 그러니까,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라고 해도 재산분할 과정에 그 사실이 반영되진 않아."
"뭐, 뭐라구요?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배우자에게 위자료를 받아낼 수는 있지만, 재산분할은 완전 별개야."
그리고 보통은 그 위자료도 많아봤자 3천만원 정도다.
김우주 씨가 가족들에게 송금했던 금액에 비하면 턱도 없이 모자란 돈!
그런데, 김우주 씨는 위자료를 받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의 재산을 거의 전부 지켜내는데에 성공했다.
"피해자는 전업주부였는데, 가족들의 재산 형성 과정에 기여한 사실이 거의 없었어. 재테크를 성공하거나 돈을 저축하긴 커녕 오히려 돈을 받는 족족 펑펑 써댔지. 결혼할 때 혼수도 거의 안 해왔어."
"..."
"덕분에 재산분할 비율은 거의 100대 0이었어."
"그, 그건 정의구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나는 서지유의 말에 차마 동의하지 못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결과는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앨리스는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사실상 김우주 씨가 거의 다 이겼던 거잖아? 근데 왜 부인을 죽이려고 했지?"
"재산은 잘 지켜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지켜내지 못했거든."
"가장 중요한 것? 아앗..."
김우주 씨의 가족사항을 떠올린 앨리스가 뒤늦게 사정을 눈치챘다.
나는 무거운 심정으로 그것을 긍정했다.
"그래, 두 아이의 양육권이야."
"마, 말도 안 돼..."
앞서 설명했듯, 김우주 씨에겐 각각 7,8세의 자녀들이 있었다.
둘 다 여자아이였는데... 김우주 씨는 그 딸들의 양육권을 따오지 못했다.
놀랍게도 이혼 조정 위원회에선 김우주 씨가 아니라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던 것이다.
"불륜을 저질렀는데... 그런 사람이 양육권을 받을 수 있다구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능한 일이야."
아내의 외도로 인해서 결혼생활이 끝장났다 해도, 아내가 아이들을 데려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가정법원과 조정 위원회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고려하여 양육권을 분배하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것이 아주 절묘하게 작용했다.
"우선, 김우주 씨는 기러기 아빠라서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어. 따라서 아이들도 김우주 씨에게 가고싶어하진 않았지. 그렇게 어린 아이들이 뭘 알겠어?"
"그, 그야 어쩔 수 없잖아요. 아내의 외도는요? 아무래 그래도 그게 아예 영향을 끼치지 않는 건 아니죠?"
어느새 김우주 씨의 편이 되어버린 서지유.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진행했다.
"아내가 상간남과 놀아나느라 양육을 소홀히 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양육권 분쟁에서 유리하지. 근데 이번엔 아냐."
피해자가 상간남과 만났던 것은 고작 3회...
속칭 먹고 버리기 당했다.
양육권 분쟁에선 그것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꼴랑 3번 만났으니, 불륜 때문에 양육을 소홀히 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는 거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네."
"더 만나고 싶었는데 만나지 못했을 뿐이잖아요..."
"거기다 자녀들이 둘 다 딸이라는 것도 한 몫 했어."
작게 치를 떨던 서지유가 돌연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잠깐. 그런데 피해자는 왜 굳이 양육권을 가져가려고 했죠? 의외로 아이들에겐 잘 해줬다거나..."
"아마 양육비 때문이었을 거야."
"양육비?"
여기서 더 듣는 것이 두렵다는 듯 오싹한 얼굴이 된 서지유.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김우주 씨는 억대 연봉을 받는 고소득층이야. 앞으로도 10년 이상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지. 현재 자녀가 2인에 배우자 측 수입은 거의 없으니까, 만약 피해자가 양육권을 얻었을 때에 매달 받게 될 양육비는... 약 460만원 정도 되지."
"460..."
아이 2명은 물론이고 피해자 본인까지 여유롭게 먹고 살 수 있을만한 돈!
심지어 양육비의 액수는 아이들이 18세가 될 때까지 점점 더 상승한다.
애들이 각각 7,8세였으니까, 피해자는 장장 10년 동안 달마다 따박따박 연금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혼 후 수입원이 마땅찮았던 피해자는 주저없이 그것을 노렸다.
"그럼... 김우주 씨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건가요?"
"그렇지."
돈은 둘째치고, 상간남과 놀아난 아내에게 아이들의 양육권을 맡기고 싶었을 리가 없다.
실제로 김우주 씨는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했다.
매달 460이 아니라 600만원씩 보내줄테니, 딸들의 양육권을 온전히 양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피해자는 김우주 씨의 약속을 믿지 못해서 그것을 거부했다.
"그럼 결국..."
"그래. 아마 그때부터 청부살인을 결심했을 거야."
물론 대낮에 카페에서 대놓고 죽이는 것은 김우주 씨의 의도가 아니었다.
나는 이쯤에서 앨리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앨리스, 네가 사람을 죽이고 싶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그야 던전 같은 곳에 묻어버리겠지."
"아니... 그, 미안하다. 네겐 너무 수준이 높은 질문이었나보네."
"뭐어?"
작게 손사래를 치며 사과한 나는 앨리스의 대답을 못 들은 셈 치고 다시 설명했다.
"그래. 네가 직접 죽이는 게 아니라, 남에게 시키겠지. 너는 돈도 많고 유명한 헌터니까!"
"아..."
그제야 감을 잡은 앨리스가 입을 가렸다.
그래도 배우는 것은 빨라서 다행이다.
"게다가 요즘은 우리 특별 수사대 때문에 시끌시끌하잖아? 이런 판국에 가까운 사람에게 직접 헌터 범죄를 저지르는 건 멍청한 짓이지. 어차피 본인이 가장 먼저 의심받을테니까. 실제로도 그렇게 됐고."
"근데 청부살인 시켰는데 망했잖아? 그건 왜 그런데?"
"흔하디 흔한 하청의 비극이야."
보통 사람 하나 청부살인 시키는데에 3천 ~ 5천만원 정도 든다.
이번에 붙잡은 헌터 업자들은 훨씬 비싸서, 적어도 2억은 줬겠지.
헌터 업자들은 능력을 이용해서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에 발각될 위험이 훨씬 적다.
하지만, 하청의 비극은 여기서도 건재하다.
브로커는 손님과 업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본인이 중간에서 많이 떼먹으면 떼먹을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김우주 씨가 주문했던 것보다 훨씬 허접한 수준의 업자가 나서게 됐던 것이다.
"소송기일이 다가오고 있어서, 김우주 씨는 급한 마음에 브로커에게 선입금을 해줬어. 그게 최대의 실수였지."
"아..."
블랙마켓의 브로커는 이름만 브로커지, 실제로는 사기와 절도, 살인 등등 각종 범죄를 가리지 않고 저지르는 범죄의 백화점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기회만 있으면 손님도 속인다.
그 결과.
브로커에게 일을 받게 된 암살자는 못된 꾀를 떠올렸다.
때마침 의뢰주인 김우주의 능력이 본인과 같은 염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럼 결국 피해자를 죽인 것은 김우주 씨가 아니라 업자였군요?"
"그렇지. 무조건 김우주 씨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죽여서 체포를 당하게 만든 거야. 일단은 의뢰를 수행했으니까 보수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겠지. 사건을 사고로 위장하고, 수사를 피해서 도망치는 건 전문 업자들에게도 힘들고 위험한 일이니까..."
그나마 놈의 도주가 늦어서 다행이었다.
보아하니 임금 지불로 인해서 트러블이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범죄자답게 협동이 안 돼서 망했다.
나는 브로커의 컴퓨터에서 김우주의 의뢰가 당긴 자료를 발견하며 추측을 확신으로 바꿨다.
"역시 남겨뒀군."
"왜 굳이 이런 증거물을 남겨둔 거지?"
"그래야 나중에 협박하면서 두고두고 뜯어먹을 수 있으니까. 완전 삼류 건달이라니까. 원래 저런 놈들하곤 상종도 하면 안 돼."
"..."
나는 김우주 씨를 심문실로 불러내서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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