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영속교(4)
* * *
영속교의 환영 연회는 내 예상보다 훨씬 길게 이어졌다.
신입들의 경계심을 천천히 깎아내려는 수법.
앨리스는 내 곁에 찰싹 달라붙은 채 주눅든 모습을 연기했다.
교단의 신도들은 우리가 부부란 것을 아는지라 굳이 떼어놓으려 하진 않았다.
어차피 가족 단위로 끌어들이면 된다는 심산이다.
신도들 중에는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현역 헌터들은 물론이고 교수나 목사, 심지어 신부와 정치인들까지...
앨리스는 헌터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조용히 소감을 밝혔다.
"다른 종교의 사람들까지 있는 거야?"
"타 종교인이 영속교에 투신한 거야. 놀랄 일도 아니지."
영속교의 교리는 이런저런 종교에서 적당히 가져온 것이다.
개중에는 오래된 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부분도 있어서, 교주인 김우민에 대한 부분만 제외하면 제법 그럴싸하고 합리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영속교는 사이비 주제에 세금도 꼬박꼬박 잘 낸다.
원래 한국에서 개신교와 불교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는데 이놈들은 김우민에게 인수되기 전부터 계속 세금을 내고 있었다.
'본인들은 떳떳하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물론 요즘은 세금을 내는 대형 교회가 많기 때문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여튼 앨리스는 다른 신도들의 번듯한 직함에 감탄하는 체 하며 열심히 신도들을 속여넘겼다.
앨리스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교주를 위한 제물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 나는 신도들의 사이에서 미묘한 공기가 떠도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언뜻보면 사이가 좋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은근슬쩍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단순히 사이비 특유의 수직적인 계급구조 때문인 것 같진 않다.
'이상한데. 저건 마치...'
내가 그것을 눈여겨보던 중.
마침내 기나긴 연회가 끝나고 신도들이 본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어찌나 길게 먹고 마셨는지, 해는 이미 저물어있었다.
내가 비로소 옷 속의 카메라를 작동시키며 그들을 따라가자 신도들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부터 참석하실 특별 집회는 아주 귀중한 기회입니다. 교주님을 직접 뵐 수 있는 것은 신도들 중에서도 매우 드물죠."
"저, 저희는 오늘 처음 왔는데 정말로 참석해도 될지..."
"모처럼 길일에 맞춰서 오셨으니 당연히 참석하셔도 됩니다. 교주님께선 사람을 차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금방 교주님을 존경하게 될 거에요."
뻔한 접대 멘트를 들으며 본당에 들어가게 된 나는 남들 몰래 주먹을 꽈악 쥐었다.
팀원들이 사전에 조사할 수 있었던 것은 딱 여기까지다.
지금부터 참석하게 될 특별 집회는 내부 지침이나 교리 등에서도 전혀 단서를 얻을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것을 보게 될까.
마음 속으로 단단히 각오하던 찰나.
등 뒤에서 본당의 문이 굳게 닫혔다.
철컥, 하는 자물쇠 소리가 울려퍼지자 깔끔한 느낌의 내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오직 촛불로 밝혀졌으나 그렇게까지 어둡진 않은 실내.
교주인 김우민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집회의 준비를 위한 공간에 불과한 듯 했다.
혹시라도 몸수색 따윌 당할까봐 마음을 졸이던 것도 잠시.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신도들이 일제히 제자리에 멈춰서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옷을 벗기 시작했다.
스르륵...
"엑? 아앗?"
침묵 속에서 옷 벗는 소리만 분주한 가운데, 연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당황한 앨리스가 헛숨을 삼켰다.
나도 크게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남자 신도들은 물론이고 제법 예쁜 여신도들도 적지 않았는데 거리낌 없이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몸을 전혀 가리지 않은 신도들이 나와 앨리스를 가르치듯 말했다.
"부끄러워 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의 신도들은 모두 죄로부터 순결한 사람들이니..."
"자, 잠깐만요. 그런데 왜 다들 옷을 벗는 거죠?"
"속세의 더러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함이죠."
"그... 그럼 갈아입을 옷이라도 주시는 건가요?"
"걱정마세요. 어차피 교주님의 앞에선 그 무엇도 가릴 수 없답니다."
설마 특별 집회라는 게 이런 것이었을 줄이야.
교주놈 취향 한 번 고상하다.
이건 큰일이다.
단순히 알몸을 보여주기 싫은 것은 둘째치고... 나는 지금 옷 속에 특제 카메라를 숨기고 있는 것이다.
'옷을 벗으면 촬영을 할 수가 없는데... 신입이니까 봐달라는 건 안 되겠지?'
아쉽게도 그런 말이 통할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나는 앨리스의 반응이 그 무엇보다도 걱정됐다.
일단은 잠입 조사를 속행 하고싶지만...
저 자존심 강한 녀석이 과연 장단을 맞춰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옷을 벗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낯뜨거운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잘 하셨습니다. 역시 남자시군요."
"아까보다 훨씬 깨끗해진 기분이죠? 뭔가 시원하지 않나요?"
"이, 이야... 몸이 너무 좋으신데요?"
"근데 근육에 주사 꽂으면 거기가 작아지는 거 아니었나?"
'제발 좀 닥쳐봐...'
나를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신도들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어질 즈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앨리스도 옷을 스르륵 떨궜다.
그녀는 발갛게 물든 얼굴로 마지못해 알몸을 드러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속으로 몇 번이고 감사했다.
'너 철들었구나...'
만약 여기서 앨리스가 버텼다면, 최악의 경우엔 전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도저히 우리를 그냥 보내줄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신도들은 저마다의 옷을 잘 정리하여 벽면의 사물함에 넣어뒀다.
나도 카메라가 든 옷을 사물함에 숨기러 가는데, 내쪽으로 다가온 앨리스가 화들짝 놀라며 온몸을 움찔거렸다.
"엣... 자, 잠깐. 너 뭐야 그거?"
"응? 왜 그래?"
"다, 다가오지 마. 왜 이런 곳에서 커지고 난리야?"
"..."
나는 다리 사이를 살짝 가리며 앨리스를 진정시켰다.
당연하지만 발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긴장한 것도 있어서 평소보다 쪼그라들었다.
게다가 정작 나는 앨리스를 제대로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른 신도들은 우리가 얼굴을 붉히는 것을 보곤 피식 웃으며 다음 방으로 향했다.
쓸데없이 여유로운 모습이 열받아서 죄다 체포해주고 싶다.
"이... 이제 어떻게 할거야?"
마찬가지로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앨리스가 목소리를 죽여서 물었다.
나는 예정대로 조사의 속행을 결정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건져야지. 촬영은 못하게 됐지만, 어차피 밖에 팀원들이 대기하고 있어."
만약 조사 도중 긴급체포 요건이 충족된다면 그대로 끝이다.
내가 신호만 보내면 밖에서 대기중인 팀원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여전히 엉거주춤한 자세의 앨리스가 목소리를 조금 더 낮췄다.
"만약 교주가 능력을 쓰면, 체포할 수 있어?"
"가능해. 그 자리에서 헌터 등급 위조 및 계통 위조 혐의로 체포야. 게다가 세뇌 능력은 특별 취급 대상이고."
"좋아. 그럼 조금만 더 참아볼게."
"장하다 우리 앨리스."
앨리스는 내 발목을 걷어차며 쭈삣쭈삣 걸음을 옮겼다.
다음 방의 입구에서 기다리던 신도들이 포근하게 웃으며 우리를 환영했다.
이윽고 들어선 공간은 전보다 한층 퇴폐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클럽과 같은 조명 아래에 늘어선 테이블과 바들.
아까 환영 잔치 때엔 구경하지 못했던 술들이며 물담배 따위까지 잔뜩 준비되어 있었다.
앨리스와 나는 이 타락의 현장을 발견하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여, 여긴?"
"너무 멋지죠? 이제부터가 교주님을 직접 모시는 신도들을 위한 행사죠."
"이렇게 술을 마셔도 되는 건가요?"
"문제없습니다. 예수님도 잔치 때 술을 만드셨으니까요."
실내에는 조금 높은 무대가 있었는데, 신도들 중 일부는 그곳에 돈다발을 턱턱 쌓아놓았다.
벌써부터 문란하게 붙어있는 남녀가 있는가 하면 여자와 남자들끼리도 분별없이 엮여있었다.
이래서야 특별 집회고 개뿔이고 그냥 난교 파티다.
"이야, 그래도 슬슬 여기가 좋아지려고 하는데?"
"유부남이 그런 소리 하지마."
앨리스에게 꾸중을 받으며 최대한 구석진 자리로 향했으나, 신도들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아주 심하게 압박을 주진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풀어놓는 것도 아니다.
"자자, 조금 더 가까이 앉으세요. 어차피 부부신데."
"죄송합니다. 이런 느낌의 장소는 처음이라..."
"아녜요. 다들 자기 페이스로 즐기는 거죠 뭐."
"곧 교주님께서 오실테니까 그때까진 자유롭게 즐기시면 돼요. 여기가 바로 실낙원이라구요."
"어차피 부부사이인데 너무 부끄러워 하시는 거 아녜요?"
나는 신도들 중 한 명의 꾸중에 못이겨서 겨우 앨리스를 돌아봤다.
녀석의 몸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밝게 빛났다.
희고 깨끗한 피부는 예리엘과 비견되는 수준.
그나마 화장으로 조금 죽여놓은 것이 저 정도다.
그새 겨우 내 곁으로 다가온 녀석이 보란듯이 찰싹 붙어서 앉았다.
옷이 없는 탓에 서로의 체온이 너무 직설적으로 전해졌다.
핏기도 거의 안 보이는 주제에 몸은 완전 불덩이처럼 뜨겁다.
신도들은 혹시 몰라서 만들어놓은 가짜 멍자국을 곧바로 발견했다.
"앗, 이건 뭔가요? 꽤 오래된 상처 같네요."
"아... 이건 어릴적에 부모님들께 맞아서..."
"세상에. 아무리 훈육이라도 이건 좀 너무했네요. 부모님들께서 영속교인들이었다면 이런 일은 절대로 없었을텐데..."
"저, 남편분은 몸관리를 어떻게 하고 계신 건가요?"
집요하게, 그리고 끝없이 시도되는 가스라이팅.
이래서야 진짜로 세뇌 능력 같은 게 필요할까 싶다.
게다가 아까와 달리 왠지 모르게 내쪽도 표적이 됐다.
나와 앨리스가 그것을 겨우 받아주고 있자 마침내 교주가 온다는 신호가 울려퍼졌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광란의 파티를 즐기던 신도들은 너나할 것 없이 냉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하는 수 없이 그들을 따라했다.
앨리스가 내 옆에서 희고 작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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