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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33화 (33/131)

〈 33화 〉 영속교(3)

* * *

특별 집회로부터 일주일 전.

나는 특별히 개조된 잠복용 차량 안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화면을 주시했다.

넓은 교차로의 교통 카메라 영상 안쪽에서는 변신을 완료한 앨리스가 잔뜩 주눅든 채 걸어가고 있었다.

영속교의 본부에서 가까운 이곳은 신도들의 포교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비록 신도가 1만도 안 되는 종교집단이라지만, 영속교는 신규 신도들을 끌어들이는데에 매우 열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주와 간부들의 입장에서 신도들은 일종의 소모품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영속교 교주 김우민의 능력에 당하면 뇌가 빠르게 손상되니까, 신도들을 자주 갈아치울 필요가 있지.'

덕분에 영속교의 포교 방식은 사이비 종교들 중에서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볼 수 있었다.

번화가나 대학교 주변에서 포교하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기독교 계열 종파에서 신도들을 빼내오는 '추수'라는 방식도 사용한다.

신입 신도들의 친구와 가족, 직장 동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심지어 이러한 포교꾼들 중 대부분은 세뇌에 당하지도 않은, 비교적 멀쩡한 일반 신도들이다.

영속교는 포상금을 빵빵하게 걸어서 그들의 적극적인 포교를 권장하고 있다.

어차피 핵심 신도 한 명만 만들면 전재산을 쪽쪽 빨아먹고 내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남는 장사다.

그들은 교단 안에서 전속 대부업체까지 운영하며 신도들을 알뜰살뜰 뜯어냈다.

게다가 영속교의 주력 멤버들은 헌터 신도들이라서 규모에 비해서 자금력이 굉장히 좋다.

앨리스는 그런 포교꾼들의 그물망 한복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후줄근한 옷을 입은 채 쭈삣쭈삣 걷는 그녀에게선 평소의 자신감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고된 경험으로 빛이 바랜 여자라는 느낌이다.

영속교의 포교꾼들은 그런 앨리스를 발견하곤 너 나 할 것 없이 눈을 빛냈다.

척 봐도 만만해보이는 먹잇감.

게다가 앨리스와 같은 백인 여성을 데려가면 상당한 액수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된다.

교주인 김우민의 취향에 맞는 신도를 공급하기 위한 특별 조항이었다.

덕분에 포교꾼들은 무서울 정도의 기세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앨리스는 살짝 겁먹은 체 하며 두 명의 여성 포교꾼에게 붙잡혔다

"저기, 잠시 말씀 좀 여쭐 수 있을까요?"

"네에? 아... 그, 그, 무슨..."

일단은 장을 보고왔다는 설정이라서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건만.

포교꾼들은 그것을 신경도 쓰지 않으며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앨리스는 그동안의 코칭을 통하여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저, 이제 슬슬 가야하는데..."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이야기 하시죠."

"혹시 결혼하셨나요? 집에서 남편이 폭력을 휘두르진 않아요?"

"!"

가정폭력이라는 설정을 건드려진 앨리스가 일부러 반응을 보이자 포교꾼들의 입꼬리가 위로 휘었다.

결국 그녀는 꼬박 2시간을 더 붙잡혀 있다가 겨우 탈출했다.

차 안에 숨어있던 우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수를 쳤다.

"이야, 너무 쉽게 잘 됐군요."

"쉽다뇨?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저거 원래는 지유 씨 역할이잖아. 당연히 고생 좀 해야지."

"..."

어쨌든 잡입 작전의 1단계는 무사히 완수했다.

우리는 이제 교단의 초대를 받은 몸이다.

내가 슬슬 철수를 명령하려던 찰나. 화면을 주시하던 팀원 하나가 포교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앗, 팀장님. 이놈들 따라오는데요?"

"주소까지 파악할 생각인가... 집요하군. 도대체 포상금을 얼마나 걸어놓은 거야?"

[저도 따라붙습니다.]

밖에서 대기하던 팀원 한 명이 그들의 꼬리를 밟기 시작했다.

혹시 몰라서 근처에 임시 숙소를 마련해두길 잘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앨리스에게 미행이 붙은 것을 알리고, 잠복용 차량으로 그녀를 앞질러갔다.

앨리스를 따라가던 포교꾼들은 긴장감 없는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저 여자 자세히 보니까 꽤 예쁘네. 집회에 데리고 가면 평소의 5배는 받을 수 있을 거야.]

[근데 스마트폰 못 쓰는 거 너무 불편하지 않아?]

[잠깐, 입 조심해. 이 근처에 우리같은 포교꾼들 널려있는 거 몰라? 혹시라도 밀고당하면 큰일난다고.]

[그, 그렇지...]

[스마트폰 정도는 잠깐 참자. 이거 너무 짭짤해서 그만두질 못하겠어.]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일석이조네.]

대원들은 포교꾼들의 대화를 엿듣곤 작게 혀를 찼다.

아무리 그래도 진심으로 저렇게 믿는 것은 아니겠지만...

마치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끌어내리다니.

저 정도면 피해자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나는 차에서 뛰어내린 다음 서둘러 임시 숙소로 들어갔다.

슬슬 날이 어두워져서 불을 켜놓자 이내 앨리스가 도착했다.

포교꾼들은 기어이 집주소를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갔다.

"지독한 놈들이네."

"너는 미인이라서 데리고가면 포상금이 빵빵하대."

"그런 칭찬 받아봤자 기분나쁘거든?"

진심으로 소름이 돋은 듯 인상을 찌푸리며 장바구니를 내려놓는 앨리스.

나는 그것을 넘겨받아서 주방에 정리해뒀다.

저렇게까지 하는 것을 보니까 결행일까진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다.

앨리스는 적당히 옷을 던져놓더니 소파에 늘어진 채 휴식을 취했다.

내가 대충 저녁 식사를 만들어서 가져가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근데 너 파마 진짜 안 어울린다."

"일부러 인상을 바꾼 거잖아... 너는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지만."

"아앗, 한 소리 들었다고 그러기야? 남자가 왜 그렇게 속이 좁아?"

적당히 농을 하며 저녁 식사를 마치자 오래지 않아 예리엘에게서 화상 통화가 걸려왔다.

오라클을 이용한 기밀 통신.

집에 혼자 있느라 좀 외로운 모양이다.

물론 그녀는 그녀대로 업무를 하느라 무척 바쁘다.

[오늘은 외박하시는 건가요?]

"포교꾼들이 집까지 쫓아오더라고."

"진짜 기분 나빴어."

[그건 좀 소름 돋았겠네. 그래도 열심히 해야 한다?]

"실망시키지 않을게."

의욕을 가득 담아서 대꾸한 앨리스는 오래지 않아 침실로 들어갔다.

아마 정신적으로 무척 피곤했으리라.

나는 그녀와 한 집을 쓰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캘리포니아 여행 이후 앨리스와의 분위기가 많이 나아져서 아주 괴롭진 않았다.

다음 날부터는 서로의 프로필을 복습할 겸, 거실에서 수다를 떨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네가 언니에게 선물해준 결혼반지 완전 구려."

"야, 그게 얼마나 비싼 반지인데. 실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디자인도 엄청 신경썼다고."

"디자인이랑 색깔이 최악이야. 완전 그린랜턴 같아."

"..."

나는 이번만큼은 차마 반박하지 못했다.

새삼 변장 상태의 녀석을 눈에 담자 묘한 감상이 생겼다.

예리엘에겐 조금 미안했지만 어제의 농담은 완전 거짓말이 아니었다.

리본을 묶지 않은 앨리스도 나름대로 봐줄만했던 것이다.

물론 원본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겠지만 한쪽 눈을 가린 것도 제법 괜찮은 느낌이다.

"근데 머리칼 염색한 거, 나중에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있어?"

"응, 이거 길드 멤버에게 비밀리에 부탁한 거야. 자연산 같지?"

"그렇네."

저런 식으로 변화가 끝난 경우에는 그린 더스트를 써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

영속교의 핵심 신도들을 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 수심을 대충 읽은 듯한 앨리스가 애써 희망적으 물었다.

"김우민의 능력 때문에 신도들의 머리가 망가졌으니까, 똑같은 능력을 써서 고칠 수는 없을까?"

"글쎄. 뭐든 고치는 것보다 부수는 게 훨씬 쉬운 법이지. 김우민의 세뇌 능력은 대상의 두뇌를 본인에게 유리하도록 파괴하는 종류야."

게다가 뇌처럼 섬세한 기관의 경우에는 복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예리엘이 옳다.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영속교의 피해자들은 포기할 각오를 해야한다.

앨리스는 애써 화제를 돌렸으나 새로운 화제도 별로 달갑진 않았다.

"그, 그런데 오라클의 개발자도 보기보단 좋은 사람이었네. 자기 딸을 살리려고 하다니..."

"아니. 매튜는 그렇게 좋은 아빠가 아냐."

"응?"

"매튜 마누엘에게 오라클은 본인의 위대한 발명품이지, 딸의 환생이 아니야. 오라클을 딸처럼 여기는 마음은 그냥 겸사겸사라고 봐야겠지."

"그, 그치만 오라클에게 인공지능을 부여하려고 했잖아? 그건?"

"그것도 진짜로 개발이 막혀서 그런 것 뿐이야. 오라클이 의식을 갖게 된다 해도, 그게 매튜의 딸인 에이미와 동일한 자아를 유지하고 있으리란 보장은 없어. 이미 이것저것 너무 많이 섞여버렸으니까."

거 참... 내가 봐도 나는 결코 좋은 대화 상대라고 할 수 없었다.

예리엘은 이런 남자를 잘도 데리고 사는군.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돌렸다.

이윽고 특별 집회 당일.

우리는 사랑이 적당히 식어버린 부부를 연기하며 영속교의 본부로 걸음을 옮겼다.

앨리스에게 접촉했던 포교꾼들은 거의 스팸처럼 느껴질만큼 메세지 폭탄을 부어넣으며 그녀를 초대했다.

정작 본인들은 특별 집회에 참석도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웃기는 일이다.

아내에게 이끌려서 산책 겸 나오게 된 나는 못마땅한 얼굴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앨리스는 간신히 내 손을 잡은 채 자신감 없이 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속교의 신도들은 앨리스를 아주 열렬히 환영했다.

그들의 눈은 탐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자매님! 영속교 진리회 행복교회의 특별 집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옆의 분은... 남편분이신가요? 아하. 정말 잘 오셨습니다 형제님."

옷 속에 특제 카메라를 숨긴 채 본부의 안뜰에 들어서자 전통 가옥과 양옥의 양식을 두서없이 섞어놓은 건물이 보였다.

본당 앞에서는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제법 괜찮은 음료와 음식들이 제한없이 제공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먹통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제출한 뒤에 주춤주춤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도통 어깨를 펴지 못하는 앨리스의 연기는 살짝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운 맛이 있었다.

'평소에도 지금의 반 정도만 얌전할 것이지.'

오늘의 고가치 표적인 앨리스는 단숨에 연회장의 스타가 됐다.

특별 집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교단의 핵심 신도들인 듯 했다.

우리 말고 다른 신입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여기 있는 음식들은 모두 공짜니까 마음껏 드셔도 돼요."

"다들 자매님의 입교를 축하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인 거에요. 꼭 교주님을 뵙고 좋은 말씀 듣고 가세요."

"자매님 머리카락이 너무 예뻐요.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 건가요? 안 해요? 말도 안 돼..."

반면 나는 비교적 찬밥 신세.

예상했던 것처럼 앨리스의 덤이라는 느낌이다.

'나도 프로필 열심히 외우고 연기 연습도 많이 했단 말이다 이것들아.'

조금 심란한 기분으로 간식을 깨작이고 있자 비로소 한가한 신도들이 나를 꼬드기기 위해서 다가왔다.

나는 들고있던 음료를 대충 넘겨버리곤 마음의 준비를 갖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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