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 영속교(2)
* * *
서지유와 함께 나온 앨리스에게선 평소의 신경질적이고 사나운 인상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명품을 둘둘 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주눅들고 자신감이 없는 모습.
원래 화장에 능숙했던 서지유였지만 다른 사람도 이렇게 바꿀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머리에는 여전히 예리엘이 묶어준 리본을 달고 있었지만, 그것은 앨리스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리라.
아주 엷은 화장인데 잡티와 주근깨 비슷한 것도 만들어 놓았다.
나는 정교한 솜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눈매는 어떻게 바꾼 거야?"
"테이핑이요. 머리카락 아래에 작게 하면 안 들켜요. 실전에선 헤어스타일도 좀 바꾸고, 염색도 할 수 있어요. 그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죠."
"엑..."
앨리스는 염색이라는 대목에서 살짝 기겁했으나 그 정도도 하지 않고 교단의 신도들을 속일 순 없다는 것을 납득했다.
서지유는 제법 즐거운 얼굴로 앨리스의 머리칼을 만졌다.
솔직히 워낙 인형 같은 녀석이라서 만지는 재미가 있을 것 같긴 했다.
"이렇게 한쪽 눈을 살짝 가리는 것도 괜찮을 걸요?"
"여기서 좀 더 음침해지는 건가?"
"그렇죠."
확실히 이러면 들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어차피 가장 중요한 신분증은 오라클을 이용해서 위조할 수 있을 것이다.
오라클로 데이터 베이스를 조작한 뒤, 재발급을 신청하면 당당하게 정식 신분증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당연히 학력 등의 경력도 위조가 가능하다.
심지어 특별 수사관이 잠입 수사를 위해서 가짜 신분을 만드는 것은 불법도 아니다.
"그럼 나는?"
"팀장 님도 가시려구요?"
"당연하지. 앨리스 혼자 어떻게 보내? 쟤는 그냥 감찰 위원인데."
그린 더스트는 마력과 반응하면 녹색으로 빛난다.
영속교 교주 김우민의 세뇌 능력을 막아내기 위해선 그린 더스트를 사용해야 하는데, 그린 더스트의 발광을 억제하기 위해선 내가 옆에 붙어있어야 한다.
물론 방사능의 누출도 막아줄 것이다.
내가 함께 있으면 그린 더스트의 단점 대부분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서지유는 손을 살짝 떨며 내 얼굴을 요리조리 만져봤다.
"팀장님은 펌을 하죠. 괜찮나요?"
"그 정도야 하지 뭐."
"좋아요. 그럼 테이핑도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무난하게 잠입수사로 방향을 잡았다.
김정태를 비롯한 팀원들이 시나리오를 짜보는 동안.
이서우는 살짝 걱정스레 물었다.
"사이비 종교 집회 그 자체로 처벌을 하는 건 힘들죠?"
"그래. 그놈의 종교의 자유가 뭔지 원."
"그런데 부인께 상의는 하셨나요?"
"상의? 예리엘은 외부인인데 왜 수사에 대해서 상의를 해?"
사실 지난번에 도움까지 받은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우습다.
이서우는 무척 진지하게 목소리를 낮춰서 내게 당부했다.
"그래도 이야기 하시는 게 좋을 걸요... 부인께선 완전 외부인이라고 하기도 뭣하고. 나중에 말하면 화낼지도 모릅니다."
"그, 그런가?"
"그렇습니다. 부인께서 팀장님께 말도 없이 잠입수사 같은 거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으음... 근데 서우 씨 왜 그렇게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거야?"
"그야 저도 유부남이니까요."
나는 이서우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서우 씨 결혼했어?"
"팀장님. 저 집에 애가 둘입니다..."
"이야. 요즘 시대에? 서우 씨는 애국자였구나? 내가 친인척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팀원들을 뽑느라 그쪽에는 관심이 좀..."
"하하, 괜찮습니다. 대한민국 공무원 150만명의 데이터를 모두 찾아보셨다니 그럴만도 하죠."
사실 25살에 경사를 달았다면 정말 괜찮은 결혼 매물이다.
경찰은 안정적이기도 하고.
이서우가 어디 인물이 모자란 것도 아니니까 일찍 결혼을 했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래도 벌써 애 둘은 좀 충격이지만.'
그나저나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는 고심 끝에 고개를 끄덕이곤 퇴근하자마자 예리엘을 찾아갔다.
당연하지만 앨리스도 함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예리엘은 잠입 수사에 대해서 듣자마자 인상을 아주 살짝 찌푸렸다.
그녀가 내 앞에서 저런 얼굴을 보이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애초에 표정이 약한 그녀로선 저 정도면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갑자기 사이비 교단에 잠입수사라니... 좀 당혹스럽네요."
"아, 아직 확정된 건 아냐."
"설마 호위도 없이 혼자 가시는 건 아니죠?"
"아무래도 내가 따라가게 될 것 같아."
앨리스가 옆에서 몸을 살살 떨며 말하자 눈에 띄게 안심하며 인상을 푸는 예리엘.
"앨리스가 같이 가준다면 다행이네요. 지난번처럼 실수하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언니, 그건 정말 미안하다니까..."
"걱정할 것 없어. 이번엔 근처에 민간인들도 없어."
나는 조금 음울한 기분으로 설명했다.
"영속교의 교주에게 세뇌당한 놈들은 영구적으로 뇌의 형태가 바뀌게 돼. 거기까지 가버리면 그린 더스트를 써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없지. 사실상 적밖에 없다고 보는 게 맞아."
"... 당신은 괜한 죄책감 느끼지 마세요."
내 손을 덥썩 잡더니, 웬일로 조금 엄한 말투로 타이르는 예리엘.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무슨 공구처럼 단단하게 느껴졌다.
"그건 전부 교주의 잘못이죠. 아무리 당신이라도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
예리엘의 말에 고마움과 부끄럼을 동시에 느끼던 중.
사무실에서 야근하던 김정태와 팀원들이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우리는 아예 자료를 보면서 화상 회의 형식으로 의견을 나눴다.
"다들 수고했어. 한 번 볼까?"
내 잠입용 신분은 굉장히 평범했다.
어차피 메인은 앨리스니까, 그쪽에 스포트라이트가 가도록 맞춘 것이다.
그리고 앨리스 쪽은 조금 다른 의미로 화려했다.
녀석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본인의 잠입용 프로필을 읽어내려갔다.
"뭐, 뭐야 이게... 영국인 혼혈인데 왕따로 고등학교 중퇴. 친구 없음. 재산 없음. 약한 대인기피증. 부모님은 두 분 다 사망?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한 거 아냐?"
"아니. 그 정도는 돼야 쉽게 섞여들어갈 수 있을 거야."
영속교 진리회 같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하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집단생활을 견딜 수 있는 인재처럼 보일 것이다.
교단 측에서 착취하기 딱 좋은 약자!
그것이 이번 위장 신분의 컨셉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이 정도면 몸이랑 얼굴밖에 없군. 훌륭해."
"훌륭하긴 개뿔이."
"야, 그래도 넌 끽해야 히키코모리 경증이지. 나는 패션 헬창인데 맞지도 않은 스테로이드를 맞았대."
내가 옆에서 투덜거리자 서지유가 화면 너머에서 변명했다.
[팀장님의 근육을 진짜로 빼버릴 수는 없잖아요... 빼실 거에요?]
"아니."
주방 쪽에서 식후의 다과를 준비해주던 예리엘이 우리의 대화를 듣곤 쿡쿡 웃었다.
아무래도 귀는 활짝 열고 있었나보다.
서지유는 전직 횡령범이자 사기꾼으로서 우리의 계획을 진두지휘했다.
"그리고 두 분은 부부로 위장해주세요."
쨍그랑!
서지유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방에서 뭔가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뒤 무서운 눈의 예리엘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녀는 무척 혼란스런 얼굴로 중얼거렸다.
"부부로... 위장?"
"예, 예리엘! 식칼 들고 오면 어떻게 해?"
"아앗, 죄송해요. 그런데 왜 하필 부부로 위장한다는 거에요?"
[그야 팀장님과 앨리스 씨가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요. 역시 부부인 게 좋죠.]
"아니. 그럼 친구 사이라든가... 그렇게 하면 되는 거잖아요?"
웬일로 집요하게 물어오는 예리엘.
서지유는 차마 무시할 생각도 못하고 울상을 지은 채 열심히 설명했다.
[친구 사이라면 그냥 떼어놓으려고 할걸요? 특별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건 앨리스 씨 뿐이니까요.]
"..."
[하지만 부부관계라면 달라요! 부부가 쌍으로 입교하면 둘 다 뜯어먹기 좋은 봉으로 보일 거에요.]
보통 사이비 종교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이 바로 신도 주변의 친구와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특히 가족을 제대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신도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쳐버린다.
김정태는 앞서 입수해놓은 영속교의 내부 지침을 근거로 서지유를 옹호했다.
[가족은 특별 취급이 맞습니다. 두 분께서 부부관계라고 하시면 교주가 참석하는 특별 집회에 동석하실 수 있을 겁니다.]
"... 알겠어요."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내 대신 허락을 내리는 예리엘.
그러나 나는 감히 딴지를 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앨리스도 새삼 후회가 되는 듯 했으나 이제와서 발을 뺄 수는 없었다.
다른 세부사항을 점검한 뒤, 밤새도록 예리엘을 설득한 나는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잠입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수사들은 행운이 좀 따라준 것도 있어서,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해치웠으나...
이번에는 다르다.
영속교는 상당한 강적이라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특별 집회가 코앞이지만, 이번에는 준비가 안 되었으니까 그냥 패스합니다."
"그럼 다음 특별 집회는 언제인데?"
"2주 뒤입니다."
"특별 집회를 무슨 격주 단위로 하고 앉았냐. 교주가 많이 한가한가봐?"
일단 오라클이 제대로 안 먹히는 시점에서 이미 범죄자 상위 5%인데, 거기에 더해서 사이비 교단답게 폐쇄적인 환경까지.
심지어 헌터 능력 때문에 전자기기도 제대로 못 쓴다.
세뇌라는 능력을 지닌 헌터답게 무섭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교단 안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가야겠어. 이건 일단 파고들기만 하면 100% 뭐라도 나올 거야."
"그럼 지금부터 코칭 들어갈게요. 먼저 앨리스 씨는 어깨를 조금 더 움츠려주세요. 사회 부적응자답게 행동해야죠."
"아... 이렇게?"
"네. 등도 조금 굽히고, 얼굴도 주눅든 느낌으로... 좋아요. 어릴적에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생각해봐요. 사람이 무섭고, 남편을 제외한 남성은 특히 더 무섭죠."
앨리스는 헛웃음을 보이면서도 성실히 코칭을 따랐다.
나도 그녀의 옆에서 천천히 보조를 맞춰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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