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영속교(1)
* * *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 아침.
나는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팀원들에게 신혼여행 선물을 나눠줬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그런 과자나 소모품이었으나 팀원들은 감지덕지였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적당히 싸구려라서 미안해. 그래도 부담없이 받기 좋지?"
"싸구려라뇨. 전혀 그렇게 안 보입니다."
"때깔만 보고 샀거든. 정태야, 너도 나한테 줄 거 있지?"
"예."
이서우와 서지유가 오자마자 일한다고 혀를 내두르는 사이, 김정태는 즉시 브리핑을 시작했다.
기독교 계열 사이비 종교집단, 영속교 진리회.
우리 특별 수사대의 다음 목표물이다.
나는 모두를 위해서 이미 알고있는 내용도 한 번 더 듣기로 했다.
"영속교 진리회는 기독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집단입니다. 현 교주는 김우민. 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헌터죠."
"현 교주라면, 전 교주가 있었다는 뜻인가?"
앨리스가 웬일로 날카롭게 지적하자 김정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기존의 교주에게서 통째로 넘겨받았죠."
"죽은 거야?"
"아뇨. 멀쩡히 살아서 김우민의 측근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정태는 우리가 영속교를 주목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영속교는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헌터 신도들이 유달리 많습니다."
"그, 그건 좀 이상하네."
"명백하죠."
헌터들은 평균 수입이 상당히 높은 직업이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곳은 그리 지내기 편한 곳이 아니다.
교주의 권위를 강하게 내세우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선 반드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단은 다단계처럼 신도들을 착취하며 돈을 뽑아내곤 하니,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다.
교단에 출석한 신도들은 전도와 헌금을 강요받으며 끊임없이 교주를 찬양하게 된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우며 무의미한 것을 넘어서 하면 할수록 손해가 되는 집단 생활.
헌터같은 고급 인력이 그런 것을 참고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설명이 어느정도 진행됐을 즈음, 서지유는 나름대로 일리있는 추측을 내놓았다.
"저, 헌터라면 그래도 교단에선 중용이 되겠죠? 그런 능력을 지닌 헌터들은 흔치 않을테니까요."
"그렇죠."
"그럼 충분히 참고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구조의 집단이라면 계급을 올릴수록 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 저런 식으로 사람들을 꼬드기기도 한다.
하지만 영속교의 간부라고 해봤자 결국 교주인 김우민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신세다.
심지어 이 경우에는 그 떡고물이 그리 후하지도 않다.
"영속교는 그리 큰 집단이 아니야. 신도 수가 1만도 안 되니까, 거기서 나오는 돈은 뻔해."
"엑, 그럼 어째서..."
"몇 가지 가설이 있지. 첫 번째, 간부가 되면 돈 외에 다른 걸 얻을 수 있다는 것."
"아아..."
"그리고 두 번째. 전대 교주처럼 현 교주 김우민의 요상한 카리스마에 넘어갔다는 것."
과거에 영속교의 명단을 입수했던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높은 헌터의 비율에 주목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앨리스는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임무 도중 사망한 헌터들은 반드시 부검을 하게 되어있어. 헌터들의 업무 특성상 각종 사건 사고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으니까."
"그, 그렇지. 거기서 뭐가 나왔어?"
"그래. 이게 영속교 소속이었던 헌터의 부검 결과야. 참고로 해당 인원은 던전 공략 도중 사망했다."
이윽고 공개된 자료는 뇌의 투시도 같은 그림이었다.
나는 최대한 간단히 설명했다.
"사망자는 전두엽이 쪼그라들었고, 왼쪽 두정엽도 상당부분 손상됐어. 언어와 감정, 논리력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감소한 상태였다는 뜻이야."
"던전 공략 도중 사망했다면, 극도의 공포로 인한 변화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런 것 치고도 너무 심하게 변했어. 오랜 시간 동안 자극을 받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변화할 수는 없어."
혹시나 싶어서 이미 사망한 헌터들의 자료도 조사해보자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영속교 소속의 헌터들은 대부분 비슷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들은 같은 영속교끼리 뭉쳐다녀서 티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나는 이쯤에서 예상 혐의를 밝혔다.
"영속교의 교주 김우민은 세뇌 능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아."
"세, 세뇌라니..."
"그 정도가 아니면 교단을 통째로 넘겨받고, 현역 헌터들의 충성까지 얻어내진 못했을 거야."
피해자 헌터들의 상태는 마약 중독자들보다도 심각했는데...
그러한 변이가 교주인 김우민에게 너무도 유리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오직 교주에게 돈을 바치고 충성을 다할 생각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금 흐름으로 봐도 그렇고, 기밀 유지도 너무 완벽하고... 세뇌 능력은 확정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그 비슷한 것 정도는 가지고 있을 거다."
게다가 이서우와 서지유의 앞에선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지만, 영속교는 오라클로 털어봐도 나오는 게 없다.
고발을 걱정해서 전자기기의 사용을 극도로 제한한다고 해도 신도가 한두명이 아닌지라 뭔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내겐 그것이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가까운 신도들을 무의식의 단계에서 통제하고 있는 거야.'
겨우 내 가설을 납득한 앨리스가 더듬더듬 물었다.
"만약 그게 맞다면, 어떻게 체포해야하지?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전염병 같은 거라도 뿌렸다고 주장해야 하나?"
"그, 그건 좀 기발한 방법인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어. 교주인 김우민은 정식 협회원이니까."
"아앗?"
그제야 대충 감을 잡은 듯한 앨리스.
반면 이서우와 서지유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정식 협회원인 게 어째서..."
"생각해봐. 김우민이 협회에 등록을 했을 때, 본인이 세뇌 능력자라고 곧이곧대로 밝혔겠어?"
"아, 아뇨. 그럴 리가 없죠."
"그렇지. 그런 식으로 본인의 계통과 등급을 속이는 건 중대한 협회법 위반이야. 경우에 따라서는 협회원 자격 박탈도 가능해."
협회도 바보가 아닌지라 그런 특수한 능력자들은 따로 철저하게 관리한다.
하지만 김우민은 그러한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
협회 데이터베이스 상으로는 고작 C랭크니까, 분명 등급까지 속였으리라.
"그러니까 놈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만 촬영하면 무조건 잡아넣을 수 있어."
"오오... 근데 그걸 누가 촬영하죠?"
"서지유, 출동."
"네, 네에?"
서지유는 금세 울상이 되어서 나를 올려봤다.
내 대답에는 어쩔 수 없이 사심이 좀 섞였다.
"뭘 놀라고 앉았냐? 너 이럴 때 쓰려고 채용한 건데."
"아, 아니... 상대는 세뇌 능력을 사용한다면서요? 제가 세뇌당하면 말짱 도루묵이잖아요!"
"완전히 당해버리기 전에 후딱 찍고 튀는 거지. 만약 네가 당해버리면 난 정말 슬플거야."
"말도 없이 카페를 사버린 건 정말 죄송하다니까요... 근데 팀장님도 자주 시켜먹고 계시잖아요."
"압수수색은 안 됩니까?"
서지유의 헛소리가 끝나자마자 냉큼 질문하는 이서우.
나는 그것이 묘하게 반가웠다.
"서우 씨, 압수수색에 재미들렸구나? 영장없이 한 번 해보니까 끊질 못하겠지?"
"그, 그런 건 아닙니다."
"아쉽지만 이번에는 안 돼. 정찰도 안 하고 무작정 덮칠 수는 없잖아. 게다가 상부에서 당분간 조용하게 좀 처리해달래."
"아..."
내 설명이 끝나자 김정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모르는 내용... 즉, 영속교 진리회 본부에 대한 조사 내용이었다.
정태와 팀원들은 내 명령을 받자마자 즉시 놈들에 대한 감시를 시작했다.
"교주인 김우민이 머무르고 있는 영속교의 본부는 감시가 굉장히 삼엄합니다. 몰래 숨어들어가는 건 힘들겁니다. 게다가 24시간 내내 헌터 능력을 써서 전자기기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헌터 능력? 확실해?"
"예. 근처에서 드론을 띄웠더니 바로 추락하더군요. 김우민의 측근들 중 한 명에게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이건 상당히 골치아프게 됐다.
원래는 던전 탐사용 드론 같은 걸 써서 적당히 찍어볼 생각이었는데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기껏해야 전파방해 정도일 줄 알았는데... 그럼 클래식한 장치는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능력의 적용 반경에서 빠져나오면 통신도 아주 멀쩡하게 재개됩니다."
"아, 그래? 그럼 쉽네."
"네?"
나는 놀란 토끼눈의 팀원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그냥 카메라에 그린 더스트 묻혀놓고 찍으면 되는 거 아냐? 탄심에 박아놓은 거 회수해서 재활용하지 뭐."
"그게 그렇게 되나요?"
"그렇게 되지. 그린 더스트는 극소량으로도 모든 헌터 능력을 해제할 수 있으니까."
녹색으로 발광하는 것이야 그냥 내가 직접 조절하면 된다.
다만 이렇게 되면 역시 드론은 못 쓰겠다.
이래서야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가서 찍는 수밖에 없다.
물론 내 정체를 모르는 팀원들은 당황하며 만류했다.
"팀장님. 가까이 갔다간 김우민의 능력에 당할 수도 있잖아요."
"그린 더스트가 있으면 문제없어. 옷 속에 적당히 숨겨놓지 뭐. 저런 장치까지 있으면 검문이 그리 빡세진 않을 거야."
문제는 저곳에 어떻게 숨어드냐는 것이다.
평소 같았다면 에스콰이어나 서번트들의능력을 사용했겠지만...
그린 더스트를 사용한 채 능력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
교단의 경비는 평범하게 우수한 것 같으니, 아무리 나라도 능력 없이 침투하긴 힘들다.
"교단 본부에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는 없나?"
"아, 그게..."
김정태가 웬일로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는 내가 아니라 앨리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김우민이 직접 참석하는 특별 집회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처음 가입한 신도들도 끼어들 수 있죠."
"오, 정말? 조건이 뭔데?"
"영속교의 지침을 살펴봤는데, 백인 여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초대하도록 되어있더군요. 아무래도 김우민이 외국인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명색이 사이비 교주라면 색에 빠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비교적 멀쩡한 종교인들도 자주 그러는데 사이비는 오죽하겠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작게 혀를 찼다.
"거 참, 사이비라는 놈들까지 외국산을 밝히긴..."
"..."
사무실의 일동은 예리엘 프로스트의 남편인 나를 말없이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들의 한복판에서 주먹을 흔들었다.
"농담 한 번 해본거야. 백인 여성이라... 적당한 사람을 찾아봐야겠네."
"음?"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앨리스가 돌연 스스로를 가리켰다.
"잠깐, 내가 가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그 자식을 체포할 때엔 나도 현장에 있어야 하잖아?"
"되겠냐? 한국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여자 헌터가 그런 소리 하지마라."
"아니. 나는 예리엘 언니의 덤 같은 거니까 그렇게 유명하진 않아."
바보같은 소리.
초대형 길드 윈터킹덤의 마스코트 정도 되는 녀석이 저런 소리를 하고 있다니.
그런데 내 옆에서 서지유가 웬일로 그녀를 옹호했다.
"팀장님, 가능할 것 같은데요?"
"도대체 어딜봐서? 그린 더스트로 세뇌를 막아야 하니까 헌터 능력을 쓸 수 없는 건 알지?"
"아, 물론 이대로는 안 되죠. 하지만 제가 손을 좀 써주면 될거에요."
서지유는 자신만만하게 웃더니 앨리스의 손을 잡고 비어있는 방으로 향했다.
잠시 뒤. 앨리스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