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큰바다(4)
* * *
큰바다 이재한은 신소이의 폭로가 끝나자마자 즉시 체포됐다.
놈의 침실에 있던 외장하드와 자료들도 압수 완료.
김정태의 설명에 따르면, 이재한은 협회로 연행되는 내내 큰소리를 쳐댔다고 한다.
정재계와 협회에 자기 친구들이 얼마나 있는 줄 아느냐는 내용이었다는데 굳이 자세히 듣고싶진 않았다.
이재한이 철창 안에 구속되어 있는 동안, 연예계에서는 이재한에 대한 고발이 빗발쳤다.
톱급의 배우인 신소이의 폭로가 터지자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던 피해자들도 앞다투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서 증인과 증거물을 수집할 수 있게 됐다.
그뿐이랴.
이재한의 밑에서 일하던 헌터 조폭 조직원들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얘들아. 이번 건, 폭처법은 좀 힘들 것 같으니까 그냥 범죄단체조직죄로 넣는다."
"네, 팀장님."
"둘이 무슨 차이죠?"
서지유가 너무도 솔직하게 묻자 나는 두통이 일었으나...
아직까지 삐져있는 앨리스에게 설명해줄 겸 그냥 이야기해줬다.
"폭처법의 처벌이 더 센데, 그만큼 인정을 받기가 까다롭지. 범죄단체조직죄는 조폭은 물론이고 보이스 피싱 조직, 중고나라 사기단까지 잡아넣을 수 있어."
"아하. 혹시 커피 드실래요?"
"이제야 눈치가 좀 생겼네."
내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스가 뒤에서 다가왔다.
그녀는 신소이를 찾아간 이후로 줄곧 삐져있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딱히 억하심정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앨리스의 미움과 질투는 내게 별다른 영향을 끼칠 수 없을 뿐더러...
그녀가 신소이를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던 것은 제법 감동적이었다.
피해자의 정신상태를 걱정해주는 것이 딱히 잘못은 아니다.
"너도 커피 마실래?"
"지난번에는 네가 잘못했던 게 맞아."
"뭐?"
"내가 찾아봤는데, 증인들의 증언이 꼭 필요한 건 성폭력 범죄 쪽이라면서? 성매매로 잡아넣었으면 신소이 씨를 괴롭힐 필요도 없었던 거 아니야?"
"이야, 살다살다 법에 대해서 너에게 한 수 배우게 될 줄이야."
나는 농담조로 대꾸하며 피식 웃었다.
내가 그 정도로 밖에 안 보인 것인가?
사실 너무 아니꼽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앨리스는 특수대의 감찰위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앨리스. 성매매 혐의를 들이댔으면 이재한을 협회에 구속시키지도 못했어."
"어째서?"
"그야 성매매가 상상 이상으로 가벼운 범죄니까."
사회적인 인식과 별개로.
한국에서 성매매에 대한 처벌은 초경범죄라고 해도 될 정도다.
단순 성 구매자에 대한 법정형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인데...
대충 이것만 봐도 얼마나 가벼운 취급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하다.
"애초에 성매매로는 구속 자체가 안 돼. 성매매로 유죄 판결을 받는 사람들 100명 중 80명은 집행유예고, 나머지 20명도 벌금형 수준이야. 징역까지 가는 건 100건 중 2건도 안 되지. 그런 경범죄로 구속을 시킬 수 있을 것 같냐?"
"엑... 그, 그 정도로 가볍다고?"
"그래. 완전 말도 안 되는 수준이지."
다시 말해서, 단순 구매로는 무슨 염병을 떨어도 감옥가기 힘들다.
이재한은 알선까지 엮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굳이 성매매를 들이댄다는 것 자체가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성매매로 잡아넣었으면,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합의가 있었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강간죄로 잡는 게 맞아."
"..."
앨리스는 본인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또다른 의견을 꺼내들었다.
"그럼 차라리 최나현의 친구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했으면 되잖아? 그 여자는 신상정보도 필요없다고 했으면서, 왜 신소이 씨에겐..."
"최나현 씨의 친구는 성상납 요구를 받았을 뿐이잖아. 그건 미수야. 끽해야 매니저 정도만 잡아넣고 끝나지. 이재한은 무조건 빠져나간다."
그렇다고 최나현의 친구를 미끼로 써먹을 수도 없는 노릇.
그것마저 인정하게 된 앨리스가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한 번 더 도전했다.
"하지만... 네겐 오라클이 있잖아."
"그런데?"
"그럼 증거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던 것 아니야? 왜, 메신저 앱을 조작한다거나 해서..."
"증거물을... 만들어?"
앨리스를 애써 호의적으로 봐주던 내 기분이 차갑게 식었다.
우리들의 대화를 듣지 못한 팀원들까지 이쪽의 분위기를 눈치채곤 동작을 딱 멈췄다.
순식간에 싸늘하게 얼어붙은 사무실.
앨리스도 본인이 뭔가 잘못 말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
'예전에 있었던 증거물'을 오라클로 복구하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허용범위 안쪽이다.
경찰에서 흔히 사용하는 디지털 포렌식도 비슷한 느낌이 아니던가.
하지만 있지도 않았던 증거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별개다.
나는 앨리스 뿐만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다짐하듯 말했다.
"앨리스."
"으, 으응?"
"앞으로 어떤 사건을 수사하든, 어떠한 강적을 만나든간에... 내가 증거물을 만들어낼 일은 절대로 없어."
나는 암살같은 극단적인 방법까지 사용하는 범죄자 헌터이지만 그것만은 할 수 없다.
내가 그린 더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수사는 용의자들의 결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해. 초월적인 능력과 권한을 가진 특수대가 수사를 해봤는데도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진짜로 없는 거야."
그리고 증거가 없으면 범인도 뭣도 아니다.
이것은 특수대가 수사기관으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인 것이다.
"특별 수사대는 실존하는 증거를 바탕으로 실존하는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기관이야. 마음에 안 드는 놈을 마구잡이로 잡아넣는 게 아니지."
"... 미안해. 내가 너무 아무렇게나 말한 것 같아."
"신경쓰지 마. 내가 그 정도로 보인 것뿐이니까."
앨리스의 인상에 남아있던 나는 미치광이 살인마이자 범죄자로서의 이미지가 강했을테니...
저럴 수도 있겠지.
나는 나중에 그녀 대신 예리엘을 마구 괴롭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후배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한 예리엘의 잘못도 있지 않겠는가.
'두고보자 예리엘!'
수사는 놀랄 정도로 수월해서, 이재한의 여죄는 물론이고 놈의 부하들까지 죄다 구속할 수 있게 됐다.
당연하지만 정재계와 협회에 있다던 이재한의 친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이 너무 커진 탓에 지금 나타나면 같이 돌 맞을 것이 뻔하다.
물론 나는 놈들도 남김없이 찾아냈다.
"헌터가 아닌 놈들은 자료 정리해서 검찰에 넘겨."
"거, 검찰에요? 과연 그쪽에서 제대로 처리해줄까요?"
"나도 별로 기대는 안 하지만, 적어도 기회 정도는 줘야지."
나와 검찰의 관계를 잘 아는 이서우가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으나, 나는 확신이 있었다.
검찰의 최상부는 이미 내 정체를 알고있다.
그러니까 암살당하기 싫으면 최소한의 성의 정도는 보여주겠지.
앞서 구속시킨 놈들의 재판에 참여해야 하는 것도 있어서 이번주는 미친듯이 바빴다.
그래도 유시현과 성도율, 그리고 황금방패 일당을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것은 굉장히 보람차고 즐거운 일이었다.
"팀장님, 잘 끝나셨습니까?"
"그럭저럭. 유시현은 징역 40년. 황금방패 쪽은 15년 정도야."
내 말에 앨리스와 서지유는 서로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40년은 그렇다 쳐도... 황금방패가 꼴랑 15년이라고?"
"15년이라니, 대단하네요."
"응? 아아..."
옆에 있는 서지유를 보고 비로소 뭔가를 깨달은 앨리스.
사실 주가 조작으로 15년 받아낸 것 자체가 엄청난 것이다.
서지유는 횡령으로 10억 해먹고도 집유 떴다.
우리나라가 경제사범에게 그만큼 관대하다.
"유시현 쪽은 납치 감금, 성폭행, 마약 유통 및 판매, 협회 무단 탈퇴까지 모두 인정돼서 40년... 이 정도면 좀처럼 보기 힘든 수준의 중형이지."
"황금방패 쪽은 순수하게 주가 조작으로 구형하신 건 아니죠?"
"당연하지. 조작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와 협회법 위반까지 모두 파헤쳐서 겨우 15년이야. 근데 황금방패 쪽에선 아마 항소할거야. 내 예상으로 최종은 한 10년 정도 뜨지 않을까 싶네."
물론 성도율과 길드 마스터를 비롯한 주범들은 훨씬 더 세게 맞고, 감형도 거의 안 될 것이다.
헌터 범죄자들을 가둬두기 위해선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잘도 이만큼이나 때려줬다.
상부가 내 눈치를 본다는 증거였으나... 그놈들은 눈치 좀 보는 게 맞다.
한편, 앨리스는 갑자기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잡아놓았던 범죄자들의 형량이 그녀의 기대에 못미쳤던 것이다.
"그럼 이재한 정도면 그냥 풀려나는 거 아냐?"
"그렇게는 안 되지. 내가 뭣 때문에 신소이 씨를 찾아갔는데."
큰바다 이재한의 여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쪽은 엮여있는 놈들이 워낙 많아서 이것저것 추가로 때리기도 좋다.
변태들이 대개 그렇듯, 이재한은 성접대를 혼자서 받은 것도 아니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표했다.
"지금 연예계는 물론이고 정재계까지 발칵 뒤집혔는데 그렇게 될 것 같아? 한국식 떼법 맛을 제대로 보여주지."
"..."
내가 증거 수집 단계에서나 최소한의 선을 지키지, 혐의가 확실해진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은 좀 고무줄이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범죄자들에게 사적제재를 일삼았던 내게 그럴만한 자격은 없다.
앨리스는 웬일로 피식 웃으며 내게 귓속말했다.
"그놈은 죽여버려도 괜찮아. 내가 눈 감아줄게."
"일단 형량 나오는 거나 보자고."
우리는 특수대 결성 이후 처음으로 사이좋게 퇴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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