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예리엘(1)
* * *
황금방패 사건이 끝난 뒤의 주말.
신혼집에는 쌀쌀한 냉기가 흘렀다.
내게서 살짝 떨어진 채 우물쭈물 하고있는 예리엘.
나는 그 모습이 불쌍하다고 느끼면서도 아직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됐다.
습관처럼 틀어놓은 뉴스 채널에서 황금방패 길드 사건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오는 중.
앨리스가 질리지도 않고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솔직히 주말인데 좀 너무하다.
"예리엘. 현관 비밀번호 바꾸자."
"알겠어요."
예리엘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편안한 복장의 앨리스가 곧바로 이상을 눈치챘다.
"뭐야, 여기 분위기 왜 이래?"
"분위기가 뭐 어때서."
"아니 딱 봐도 이상한데...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
앨리스가 저렇게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며칠전의 비공식 청문회 이후, 예리엘과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녀 또한 진심으로 상황을 개선하려고 한다는 것을 내가 절실히 느낀 덕분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떨구며 본인의 죄를 고백했다.
"내가 제현 씨의 취미를 완전히 망쳐버렸어."
"취미?"
내 유일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미니어쳐 게임 모델 조립이다.
직접 게임을 하진 못하지만, 그냥 완성만 시켜둬도 나름대로 장식품이 된다.
그런데 지난번에 자택을 처분할 때 한예진이 그걸 다 버려서 새로 만들려고 했는데...
어제 예리엘이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준비 작업 중이던 모델을 그냥 버렸다고."
"엑."
"정말 죄송해요. 제가 그런 건 잘 몰라서..."
앨리스는 예리엘이 앞에 모아놓은 주석 모델의 잔해를 보곤 그녀를 옹호했다.
"뭐야 이건... 누가 봐도 쓰레기잖아?"
"준비 작업 중이었다니까 그러네. 당연히 쓰레기처럼 보이지."
"이거 그냥 쓰면 안 돼?"
"못 써. 이미 망했어."
주석은 보기보다 엄청나게 섬세한 재료라서, 예리엘이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이미 못 써먹을 상태가 됐다.
진짜 문제는 저게 어디서 새로 구할 수도 없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해당 회사는 오래전에 주석 모델의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
앨리스는 어떻게든 예리엘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나를 탓했다.
"이거 애초에 이상하게 생겼네. 왜 이런 못생긴 외계종족 모델을 만드는 거야? 인간 종족은 없어?"
"나도 걔네들처럼 단순하게 살고싶어서."
"..."
생각보다 이유있는 선택에 할 말을 잃어버린 앨리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생각을 다잡았다.
한 때는 우리의 결혼생활을 다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예리엘이 일부러 이런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고 삐져있는 것도 좀 그렇다.
"아, 뭐 됐어. 주석 모델은 도색도 빡세고 구하는 건 더 빡세니까... 이번 기회에 플라스틱이나 파인캐스트로 갈아타지 뭐."
"뭐야. 다른 소재도 있었구나? 잘 생각했어."
"그럼 제가 살게요! 뭐든 주문해주세요."
겨우 예리엘과 화해한 나는 오랜만에 집 안에서 노닥거렸다.
회사 쪽은 정기 회의가 예정되어 있으니까, 그때까진 별 일 없다.
그리고 특별 수사대 쪽은 일을 워낙 성대하게 저질러놓아서 조금 쉬어야 한다.
이제 정부 부처의 수뇌부들이 내 정체를 알게 됐으니까 쓸데없는 견제나 방해 따윈 없을 것이다.
'내 정체는 둘째치고, 예리엘이 내게 붙어버린 건 역시 충격이었겠지.'
그녀도 지금의 정부에겐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내게 협조했다.
겨우 집의 평화를 되찾고 앨리스까지 쫓아내자, 어느덧 한밤중이다.
내가 오늘은 조금 일찍 잘까 생각하던 중. 예리엘이 갑자기 본인의 제복을 입은 채 거실로 나왔다.
지난번의 은퇴식 이후로 처음 보는 제복 차림이었다.
"뭐야, 어디 나가?"
"아뇨."
예리엘은 엷게 웃더니 그대로 내 손을 잡곤 침실로 향했다.
내가 기이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에 살짝 당황하고 있자...
그녀는 침실의 문을 닫더니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예, 예리엘?"
"분명 이런 게 좋다고 하셨죠?"
태연히 웃으며 침대에 걸터앉은 나를 올려다보는 예리엘.
그녀의 시선은 평소보다 훨씬 공손한 느낌이었다.
나는 마침내 올 것이 와버렸다는 생각에 속으로 혀를 찼다.
사실 나도 남자인 이상, 예리엘 같은 여자를 싫어할 수는 없다.
계약이 걸려있었다곤 해도 이미 결혼까지 해버린 몸이다.
하지만 그녀와 자버리면 뭔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원래는 여기서 그냥 대놓고 거절해도 괜찮지만...
최근에 이래저래 그녀의 도움을 받은 것이 많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거절당하게 되면 예리엘도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여기선 예리엘이 스스로 물러나주는 게 가장 좋은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예리엘이 갑자기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두꺼운 제복의 아래쪽에는 볼륨감있는 몸매가 숨겨져 있었다.
원체 노출이 희귀하던 예리엘이라서 나도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스르륵...
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저히 군살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몸.
제복을 잘 개어둔 그녀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낮의 일은 부디 용서해주세요."
"그, 그건 이미 용서했잖아."
"그럼 오늘밤에는 안아주시는 거죠? 제가 못돼게 굴어서 계약 결혼까지 하셨는데, 그걸 제대로 즐기지 못하시는 것도 좀 억울하잖아요."
팔로 국부만 살짝 가린 채 몸을 배배꼬는 예리엘.
나는 그것이 그녀의 수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냥 당해줄 수는 없어서 필사적으로 그녀를 설득했다.
"내 취향 진짜 이상해. 완전 변태야."
"색다른 취향이라서 재밌겠네요."
"그... 그래! 나 사진이랑 동영상 같은 것도 찍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싫지?"
"아뇨. 감상용이라면 얼마든지..."
이 여자, 좀 다른 의미로 철벽이다.
예리엘은 급기야 공손한 느낌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원래부터 장난이 아닌 몸매가 바닥에 눌려서 더욱 부각됐다.
"남존여비... 좋다고 생각해요. 낮에는 건방지게 굴어서 면목이 없어요."
"으윽..."
정말이지 알고도 속아넘어가고 싶을만한 수작질.
내가 몸을 굳히고 있자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그녀가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촬영, 안 하시나요?"
"..."
정말로 동영상 앱을 켜도 얼굴만 살짝 붉히는 예리엘.
이쯤되면 나도 남자로서 흥분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아까부터 참기 힘들었다.
예리엘은 살살 떨리는 손을 움직여서 내 바지를 벗기려 했다.
평소처럼 표정이 희미한 얼굴이지만, 살짝 긴장한 모습.
그녀도 딱히 경험이 있거나 한 건 아닌 모양이다.
"이리와."
나는 아예 폰을 탁자 위에 세워놓곤 발가벗은 예리엘을 내 옆에 앉혔다.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얌전히 앉았다.
속으로 제발 좀 물러나라고 빌면서 가볍게 꾸짖어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설마 성녀님께서 먼저 하자고 할 줄이야... 부끄럽지도 않아?"
"엣... 그, 그치만 일단은 결혼했잖아요."
"그래. 은퇴식에서 나 대놓고 엿먹이면서 결혼했지."
"그, 그것도 정말 죄송... 아앗!"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예리엘의 몸을 와락 움켜잡았다.
목욕재계라도 하고왔는지 달콤한 냄새까지 났다.
분명 아내의 몸을 만지는 것인데 예술품을 더럽히는 듯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내 심술 가득한 입은 그와중에도 멋대로 지껄여댔다.
"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천박하게 알몸으로 조아리면서 엉덩이 흔들어대고 말야."
"그, 그렇게까지는... 아, 아녜요."
혹시라도 내가 트집을 잡을까봐 잠시 입을 닫았던 예리엘이 열심히 고개를 저었다.
"멋대로 기대해주신 분들께는 미안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당신만 보고 있었으니까요."
"..."
망했다.
이 여자를 설득시키긴 커녕 오히려 내가 설득당했다.
다음 순간. 나는 멋대로 예리엘의 입술을 덮치고 있었다.
혼인 신고 때도 해본 적 없었던 입맞춤에 서로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웁..."
우리는 아예 조명을 꺼버리곤 어둠 속에서 정신없이 얽혀들었다.
그러나 정작 이어진 본게임은 내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분명 입술을 맞출 때만 해도 그야말로 숫처녀같은, 풋풋한 반응을 보이던 예리엘이었으나...
정작 천신만고 끝에 삽입을 시작하자 갑자기 목석이 되어버린 것이다.
"읏."
"예리엘, 별로야?"
"아뇨. 이런 건 처음이라... 더 안아주세요."
"그, 그래."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움직였으나, 예리엘은 이래저래 반응이 약했다.
혹시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녀는 숨을 헐떡이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며 은근한 웃음마저 머금었다.
마치 귀여운 동물이라도 보는 것 같은 반응에, 나는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뭐지? 뭔가 나 혼자 열심히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리 호락호락한 여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약할 줄이야.
순간, 내 머릿속에 묘한 가설이 떠올랐다.
나는 열심히 허리를 찔러넣으며 예리엘 몰래 엉덩이를 살짝 꼬집어봤다.
"..."
반응이 없다.
설마... 능력을 쓰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건 반칙일텐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예리엘이 나를 살짝 놀려댔다.
"후후, 남존여비니 뭐니 하셨던 것치곤 조금..."
"..."
퓨우웃!
나는 그녀의 안쪽에 사정하며 몸을 최대한 밀착시켰다.
비록 반응이 없다곤 하지만, 워낙 훌륭한 몸이라서 사정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참는 것이 고역이었다.
예리엘은 그런 내 몸을 안아줬으나...
나는 그녀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단단히 짓누르며 물었다.
"예리엘, 왜 능력 썼어?"
"엣... 드, 들켰나요?"
"그야 그 정도로 반응이 없으면 들키지."
예리엘의 능력은 정지.
그녀는 그것을 응용하여 본인의 감각을 차단시킨 것이리라.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새빨갛게 물든 얼굴의 그녀가 뒤늦게 설명했다.
"죄, 죄송해요. 그게, 아까 봤는데 너무 커서 아플까봐..."
"뭐?"
"제가 아파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하시면 그건 그것대로 죄송해서요."
그렇다.
답지않게 도발하던 것도 모두 내게 들키지 않으려는 발악이었다.
나는 의외의 배려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힘쓰는 꼴은 좀..."
"그렇죠? 그럼 이제부터 천천히 풀게요."
"아냐. 괜찮아."
위윙...
내 체내에서 생성된 그린 더스트가 작게 진동했다.
방사능은 최소화하고, 마력 무효화 기능만 발동.
그대로 예리엘의 아랫배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자 그녀의 마법이 풀렸다.
"응곡♥?!"
븃, 뷰븃!
다음 순간.
그녀의 비부에서 요란하게 액이 새어나왔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성감이 한꺼번에 느껴진 모양.
허리를 파들파들 떨던 예리엘은 멍청한 얼굴을 보이면서 그대로 고장나버렸다.
"옷♥ 오옥♥"
눈이 반쯤 뒤집혀버린 모습이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세계 최강의 헌터니까 괜찮겠지.
이것도 자업자득이다.
실신한 그녀에게서 허리를 빼내려 했지만, 오히려 제대로 쥐어짜였다.
"윽..."
퓨븃...
다시 한 번 사정을 하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진 예리엘.
나는 벽장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꺼내들었다.
그녀의 반칙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다.
"남존여비,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몰라."
예리엘이 정신을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