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황금방패(6)
* * *
다음 날 아침.
성도율은 막 출근한 우리를 보자마자 자백했다.
자백의 녹취 및 기록을 담당하게 된 이서우는 그의 급격한 태도 변화에 무척 당황했다.
"서우 씨, 잘 끝났어?"
"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따로 보관해놓은 증거도 제공하겠다니, 지금 확인을..."
"서우 씨는 여기에 있어. 정태야, 보안팀에서 두어 명 보내줘."
"네!"
사실 증거물은 내가 어제 확보해놓아서 딱히 다녀올 필요도 없었다.
그것만 있으면 황금방패 길드까지 확실히 엮어넣을 수 있겠지.
서우는 자백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며 작게 감탄했다.
"팀장님의 추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았어요."
"그러게. 솔직히 좀 놀랐어. 나도 한두군데 정도는 틀릴 줄 알았는데."
완전 근거없는 상상은 아니었다지만 이렇게 딱딱 맞아떨어질 줄이야.
참고로 실종자인 안태양은 길드의 범죄행위를 눈치챈 탓에 억울하게 희생된 케이스였다.
이서우는 아직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혼란스런 얼굴이었다.
"그런데 놈이 왜 갑자기 자백한 걸까요? 어제까지만 해도 묵비로 일관하던 놈인데 갑자기 PFG케미컬 사건까지 모두 털어놓다니."
"글쎄. 밤에 산타라도 다녀갔나."
"..."
어젯밤의 불법 침입은 들키지 않았다.
헌터 장비와 능력들은 그린 더스트로 무력화시키고, 전자 출입 기록은 오라클로 지웠다.
조금 수상쩍은 정황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캐묻진 않는 이서우.
사정을 대충 알고있는 앨리스가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서 조금 더 자세히 캐물었다.
"만약 성도율이 그린 더스트를 봤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말해봤자 본인 손해야."
"뭐어?"
"어차피 성도율은 우리에게 잡힌 시점에서 100% 교도소행인데... 헌터 전용 교도소의 재소자들에게도 급이 있어. 보통 정치범이나 대형 길드 마스터를 최고로 쳐주고, 같은 헌터들에게 피해를 끼친 놈들이 밑바닥이지."
그러니까 지난번에 잡힌 유시현은 같은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푸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어차피 안에서는 헌터 능력을 봉인당하니까 현역 시절의 등급은 크게 의미가 없다.
"하지만 밑바닥 중의 밑바닥... 지하 계급은 따로있어."
"그게 뭔데?"
"그린 더스트 때문에 잡힌 죄수들. 걔들은 워낙 악질로 유명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린치 대상이야."
물론 내가 일부러 그런 놈들만 골라서 교도소로 보내버린 것도 있다.
성도율은 안 그래도 밀고자가 된 탓에 밑바닥 등급 확정인데, 여기서 그린 더스트까지 엮여있다는 게 밝혀지면 과장없이 감옥 안에서 살해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놈의 몸 속에는 아직 그린 더스트가 잠들어 있으니, 섣불리 내 심기를 거스르려 하진 않을 것이다.
앨리스는 그제야 조금 안심했다.
"서우 씨, 녹취록 다 정리했으면 출동 준비해. 황금방패 놈들 체포하러 가야지."
"예!"
사무실로 올라가서 옷을 갈아입던 이서우는 어제 봤던 보도자료가 떠오른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팀장님. 저희가 보도자료를 너무 빨리 넘긴 것 아닌가요? 지금 그것 때문에 난리던데요..."
"뭐, 어때. 나는 정확하게 사실대로만 전했어."
"그야 그렇지만요."
황금방패 길드, 주가조작 혐의로 수사중.
핵심 멤버인 성도율은 현장에서 체포!
내가 언론에 전달한 것은 딱 그정도였다.
그것도 황금방패는 100% 가해자라는 확신이 있어서 저질렀다.
나는 이서우가 경찰 시절 겪었던 사건을 떠올리며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서우 씨도 억울한 일 당했지? 한 번 언론에 찔러봐. 경험자로서 말하는데 그거 효과가 꽤 좋아. 기분은 더 좋고."
"엑... 아, 아뇨."
이서우는 내가 겪었던 북두칠성 길드 사건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확실히 그 사건에선 언론의 역할이 지대했던 것이다.
"팀장님께서 증거 영상까지 넘겨주셨으니까, 저는 그냥 법대로 처리하고 싶습니다."
"음, 훌륭한 자세야."
우리는 그대로 황금방패의 본사로 향해서 길드원들을 구속했다.
놈들은 성도율이 자백하리라곤 상상도 못하고 있었는지라 도망치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일단 성도율의 형량을 최대한 낮추고 주가 조작 혐의를 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이거 놓으세요! 해당 사건은 성도율 길드원의 독단이라니까..."
"그 성도율이 다 불었어요."
나는 성도율이 제공한 증거물의 사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길드 마스터의 말문을 막았다.
결국 황금방패 길드도 단숨에 해결 완료.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앨리스가 조용히 말했다.
"성도율이 증거물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네."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냐?"
만약 성도율에게 증거물 따윈 없었다면?
앨리스는 그렇게 묻고싶은 눈치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운이 좋았지. 황금방패 놈들도 마찬가지고."
"뭐?"
"안 그럼 내가 따로 길드 마스터를 심문해야 할 뻔 했잖아."
앨리스도 참 눈치가 나쁘다.
만약 증거물이 없었다면 내가 곱게 포기했을 줄 아는 건가?
이제야 내 방식에 익숙해진 그녀가 말을 아꼈다.
"..."
"근데 좀 궁금하네."
"뭐가?"
"과연 예리엘이라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그, 글쎄. 언니라면 방송에 출연해서 의혹만 제시했어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끝장내줬을 것 같은데?"
제법 일리있는 말을 하는 앨리스.
하지만 예리엘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대중을 선동했다면 그녀가 여신 취급을 받진 못했겠지.
일단은 은퇴했으니까 당분간은 그녀의 솜씨를 구경하진 못할 것이다.
'지금은 내 방식으로 충분해.'
사무실로 돌아온 우리는 놈들을 구속하곤 자백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부르지도 않은 예리엘이 돌연 사무실에 찾아온 것이 아닌가.
내가 살짝 당황하고 있자 그녀가 내 개인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설명했다.
"여, 여보?"
"이제 호칭도 많이 익숙해지셨네요. 기뻐요."
"갑자기 무슨 일이야?"
"협회장님께 출석 요청을 받아서요. 아무래도 협회의 외부에서 강한 압박이 들어온 것 같아요."
출석 요청이라면... 무슨 청문회라도 하는 건가?
나는 그제야 상황을 대충 눈치챘다.
사실 언젠가는 반드시 맞이하게 될 일이었다.
"예상보다 빠르네."
"당신이 일을 너무 잘 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렇긴 해."
협회 특별 수사대의 출범은 사실상 기습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정부 부서에서 좋아할 리가 없고, 좋아해서도 안 되는 행위인 것이다.
게다가 나는 특별 수사대가 출범한지 2주도 채 되지 않아서 S랭크 헌터 한 명을 현장에서 체포하고, 조금 전에는 황금방패 길드의 전원을 구속했다.
이래서야 사람들이 기겁하는 것도 당연하다.
예리엘은 내게 최대한 맞춰주겠다는 듯 의견을 구했다.
"어떻게 하고 싶으신가요?"
"이번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현 상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야? 게이트와 던전의 수명에 대해서 말이야."
"대부분이요."
"그럼... 여기선 내 방식대로 해도 될까?"
"그렇게 하세요."
의외로 흔쾌히 허락해주며 나와 팔짱을 끼는 예리엘.
나는 덕분에 큰 용기를 얻은 채 사무실을 나섰다.
"팀장님?"
"너희들 계속 일 좀 하고있어. 시간 되면 그냥 퇴근해."
"아, 알겠습니다."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끼고 당황하는 팀원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예리엘은 윗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나는 당황한 협회장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게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가?"
"황금방패 길드의 전원을 주가 조작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확실한 증거도 있습니다."
"그, 그렇군. 대통령 각하와 법무부, 검찰청과 관련 부서들에서 항의가 들어왔네. 화상회의로 질문을 몇 가지 주고받게 될테니 조심히 해주게."
"알겠습니다."
역시 비공식 청문회 같은 느낌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특히 검찰은 나를 엄청나게 싫어하는데, 내가 협회의 특별 수사관이 되어 멋대로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있으니 아니꼬울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나는 조직에게 거스른 배신자요 반드시 묻어버려야하는 수치 그 자체인 것이다.
내가 특별 수사관으로서 활약하고 있으면 자연히 검찰의 위신이 떨어진다.
이윽고 대회의실에 입장한 나는 수많은 시선들을 마주한 채 중앙에 섰다.
예리엘은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내 곁을 지켰다.
우리가 사이좋게 입장한 것을 본 참석자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으나...
그들은 이내 목소리를 모아서 격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현재 특별 수사대의 수사는 지나치게 무책임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이제현 씨는 공직에서 해임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사람을...]
[지난번에는 저희쪽의 출석 요구도 무시하더군요.]
협회장은 쇄도하는 비난과 의혹을 요령 좋게 넘기기 시작했지만, 저쪽도 이번에 단단히 작정하고 온 것 같았다.
특히 지난번에 내가 납치당했던 사건부터 최근의 황금방패 사건까지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검찰.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 싶으면 일단 물어뜯고 본다.
[특히 수사대원인 서지유 씨는 아예 횡령 전과범입니다.]
"수사대원의 임명은 전적으로 수사관의 권한입니다. 서지유 대원은 이번 황금방패 수사에서도 크게 활약해줬죠."
[다짜고짜 주가 조작으로 길드원 전원을 체포하다니, 증거는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래서야 한국을 지킬 헌터들이 모두 감옥에 가게 생겼습니다!]
[민간 시설에 총기로 무장한 채 돌입하는 것부터 과잉 수사...]
정말 웃긴 것은, 그들 중 누구도 예리엘에 대한 불평불만을 제기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사건건 걸고 넘어지면서, 정작 예리엘이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는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역시 그녀는 일종의 성역이나 다름없다.
'이건 시간 낭비야.'
어차피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앞에서 진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협회장을 보는 것도 좀 미안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비로소 행동에 나섰다.
"협회장님, 제가 직접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제, 제현 씨?"
"아아. 잘 들리십니까?"
마이크를 점검하는 체 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폈다.
화면 너머에서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들.
[...]
짧은 정적의 직후.
나는 그런 그들의 앞에서 명확하게 선언했다.
"내가 그린 더스트다."
[뭐, 뭐야?]
[잠깐. 이제현 씨 방금 뭐라고...]
"나는 지난 5년간 범죄를 저지른 헌터들을 사적으로 심판했다. 당신들이 알고있는 사건도, 모르고 있는 사건도 있을 거다."
화아악!
아예 카메라 앞에서 직접 그린 더스트를 만들어서 보여주자, 회의실은 침묵에 빠졌다.
옆에서 협회장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
특히 검찰 측의 얼굴이 제법 볼만했다.
나는 사적인 감정을 잠시 접어두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서울을 폐허로 만들 수 있다. 내가 손을 쓰면 앞으로 반세기 정도는 사람이 못 사는 땅이 되겠지."
[예, 예리엘 씨!]
화상회의 참석자들 중 한 명이 도움을 청하듯 외쳤다.
그러나 예리엘은 나를 제압하긴 커녕 자리에서 일어나 냉큼 팔짱을 껴왔다.
명백히 내 편을 들어주는 행동에 사색으로 물드는 얼굴들.
그녀가 내 정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다.
"이번에는 예리엘도 막아주지 않을 것 같네."
[...]
"내 일을 방해하지 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와 특별수사대를 지탄하던 놈들이 양떼처럼 온순해졌다.
예리엘 프로스트와 그린 더스트. 둘을 모두 적대한다는 것은 그저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특히 전자가 좀 많이 세다.
통보를 마친 내가 그대로 예리엘과 함께 몸을 돌리려 하자 누군가 외쳤다.
[그, 그린 더스트... 도대체 뭘 하려는 거냐!]
사적인 감정을 접어두겠다고 마음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가슴 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당신들이 진작 했어야 하는 일!"
회의실은 완전한 침묵에 빠졌다.
예리엘과 나는 나란히 걸어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