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9화 (19/131)

〈 19화 〉 황금방패(5)

* * *

변호사 접견권은 헌법에 보장된 모든 국민들의 기본 권리이다.

특별 수사대가 아무리 근본없는 조직이라지만 일단 국가 기관인만큼,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형사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괜히 용의자들이 변호사부터 찾아대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체포된 성도율도 당연히 그 권리에 따라 변호사를 만났다.

놈은 변호사 접견이 끝나자마자 눈에 띄게 밝은 얼굴이 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지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지금 당장이라도 황금방패 길드의 본사를 수색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아니. 본사에 증거가 남아있을 리 없어."

나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오라클은 사내 인트라넷을 포함한 모든 데이터 저장 장치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오라클로 범죄의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증거 따윈 없는 것이다.

"그런 걸 하려고 했다면 어젯밤에 했어야지. 황금방패는 성도율과의 연락이 끊기자마자 상황을 눈치챘을 거야. 괜한데 힘 빼지 말자고."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근거는 또 있어."

어제 서지유가 정리해놓은 자료를 가리키자 팀원들의 눈이 모두 모였다.

해당 자료에는 황금방패 길드가 공매도 주식을 처리할 때까지 소요된 기간이 기재되어 있었다.

"봐봐. 어제도 말한건데, 황금방패 길드는 대략 60일을 기준으로 범행을 저질렀어. 거기서 더 길어져봤자 대충 3개월이야. 주식을 처리하는 기간에는 조금 더 차이를 뒀지만."

"뭐, 어차피 주가가 폭락한 뒤에는 언제 처분하든 자기 마음대로니까요."

"그렇지. 근데, 첫 번째 범죄만큼은 예외야."

"아. 그렇네요?"

5년 전의 PFG케미컬 화재 사건.

이번에 미수로 끝난 메타사이언스 사건과 똑같은 수법으로 주가를 폭락시켰던 바로 그 사건은 공매도 시작에서 사건까지의 기간이 훨씬 길었다.

이쪽은 60일을 훌쩍 넘겨서, 장장 반 년 가까이 끌었던 것이다.

"이것도 성도율 짓일텐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이상하지 않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처음이라서 시행착오가 있었다든지..."

"참고로 PFG케미컬은 이름 그대로 화학공학 회사였어. 다만 공매도 직전에 자체적으로 헌터 장비를 개발하기 시작했지."

"으음?"

그제야 대충 감을 잡은 듯, 작게 혀를 차는 앨리스.

나는 모두를 위해서 해설을 시작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추론이 아니라 상상의 영역이지만, 한 번 들어봐서 나쁘진 않을거야."

"상상이라니..."

"5년 전, 황금방패 길드는 경영적으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인데, 황금방패 같은 중소형급 길드가 치고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거든."

그런데, 그런 황금방패 운영진들의 귀에 아주 근사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PFG케미컬이라는 회사에 대한 기밀 정보였다.

"일반 기업이 갑자기 헌터 장비 개발에 뛰어들어봤자 잘 될 리가 없지. 보통은 망하는 게 정상이야. 그래서 황금방패의 수뇌부는 일생일대의 투자를 감행하기로 했어."

"서, 설마 그게 바로..."

"그래. PFG케미컬의 공매도야. 회사의 여유자금을 있는대로 다 긁어모아서 주식을 빌렸지."

문제는 PFG케미컬이 십중팔구 중 팔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분명 헌터 장비에 대해서 아무런 노하우도 없었던 그들은 뜻밖에도 대박을 내버리고 말았다.

나는 당시의 보도자료를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근데 의외로 괜찮은 물건을 만들어서, 주가가 폭락하긴 커녕 오히려 3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찍어댔어."

"세, 세상에."

"그래. 공매도 친 놈들의 입장에선 진짜 죽을 맛이지."

공매도는 시작할 때 빌린 주식을 나중에 사서 갚아야 하는데...

주가가 이런 식으로 폭등해버리면 손해가 끝도 없이 커진다.

최대 수익률은 100%로 한정되어 있지만, 최대 손실률은 주가가 올라갈수록 무한하게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덕분에 황금방패는 이득을 거두긴 커녕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언젠가는 주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믿고 기다려봤자, 나날이 늘어가는 수수료와 이자.

시간이 지나면서 거품이 조금 꺼지긴 했지만 그래도 터무니없이 올라버린 상태.

이대로 가면 길드원들 전체가 길바닥에 나앉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실제로 당시 길드원들의 계좌를 살펴보면 임금 체불까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불굴의 의지를 지닌 헌터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길드 마스터와 형동생 하던 성도율이 포기하지 못했다.

주가가 내려가지 않는다면 직접 내려버릴 수밖에 없다.

성도율은 그렇게 생각하고 범행을 시도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PFG케미컬의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는 그 원인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황금방패는 의심받지 않았어."

왜냐하면 PFG케미컬은 헌터 장비를 개발하고 있었으니까.

마석이나 몬스터의 사체, 또는 헌터 능력 따위를 잘못 취급해서 사고를 치는 것은 헌터 시대의 초창기부터 줄곧 있었던 일이다.

PFG케미컬처럼 노하우가 부족한 기업이라면 더더욱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처음에는 아예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없었던 거군요?"

"아마도. 궁지에 몰린 나머지 우발적으로 저질렀던 거지. 적어도 내 추측은 그래."

하지만 성도율은 들키지 않았다.

법의 심판을 받긴 커녕, 막대한 이익까지 거둬들였다.

덕분에 황금방패 길드는 더욱 대담해졌다.

놈들은 아예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범죄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하룻밤만에 지옥에서 천당까지 갔는데, 헌터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냐? 그때부터는 아주 본격적이 됐어. 내가 보기에 길드 마스터는 아예 직접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을 거야."

"그럼요?"

"일단 공매도를 쳐놓은 다음, 길드원들에게 은근슬쩍 눈치를 주는 거지. 덕분에 이득이 발생하면 그걸 보너스의 형식으로 배당하고 말야."

그야말로 가족같은 길드였기에 가능했던 방식이다.

심지어 실종자인 안태양의 계좌에도 소액이나마 보너스가 계속 입금됐다.

"실종된 안태양 씨는 보너스가 유독 적었어. 아마 동료들의 범행을 눈치챘거나, 지시를 거부해서 처분당했을 거야."

"... 일리가 있네요."

"전후사정은 대충 알겠어요. 그럼 저희가 뭘 할 수 있죠?"

서지유는 횡령범 주제에 괜히 의욕을 불태우며 말했다.

아니, 어쩌면 횡령 전과범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녀는 제대로 처벌을 받았는데, 남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지 못하면 그것도 억울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녀에게 수용시설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유 씨는 커피나 가져와."

"진심이에요?"

"지금으로선 성도율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팀장님의 가설이 맞다면, 성도율은 황금방패가 저지른 범죄의 시작이요 끝이나 다름없는데..."

심지어 그가 곧이곧대로 자백을 하면 5년 전의 PFG케미컬 사건까지 처벌받게 된다.

서지유는 그것을 지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차피 길드에서 입막음을 위해서라도 대우를 해줄테니까, 저놈은 교도소에서 예쁜 변호사를 불러서 노닥거릴지도 모른다구요."

"아, 그건 아냐."

생각보다 자세한 걱정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변호사 접견권을 악용하여 즐겁고 여유로운 감옥생활을 즐기는 것은 분명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성도율이 그 정도로 거물은 아니다.

"어째서요?"

"그런 서비스는 엄청나게 비싸거든. 예쁘고 젊은 변호사 같은 인재가 저렴한 줄 알아? 그짓 하려면 대충 시간당 50만원 정도는 들어간다."

"네에? 정말요?"

그런 건 정말로 어디 회장님 정도는 되어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성도율이 아무리 황금방패 길드의 개국공신이라지만 그런 사치까지 즐길 수는 없다.

그러나 성도율이 나름대로 잘 대우받으리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황금방패 길드에선 그의 감형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지.

만약 성도율이 길드에게 찬밥 취급을 당하다가 무기징역이라도 받거나, 감옥에서 예치금이 끊겨봐라. 그럼 놈은 억울해서라도 그동안의 범행을 모두 불어버릴 수 있다.

물론 나는 그렇게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한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근데 지유 씨, 내 커피는 멀었어?"

"이익!"

서지유는 작게 성을 내며 협회 로비의 카페로 향했다.

나는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린 뒤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그날 밤.

나는 밤 늦게 조용히 협회 본사로 숨어들었다.

협회 본사의 임시 수용 시설에는 전자 보안 설비는 물론이고 헌터 능력까지 걸려있었지만, 그것들 중 어느것도 나를 가로막진 못했다.

'이 옷도 참 오랜만에 입네.'

헌터 전문 살인귀 그린 더스트의 복장은 비교적 단순했다.

어둠 속에 손쉽게 녹아들 수 있는 색깔의, 후드달린 코트.

당연하지만 헌터 능력이 부여된 장비다.

입에는 마스크를 썼다.

어차피 사람은 하관만 가리면 다들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얼굴 전면을 가리는 마스크는 아니었다.

여차하면 인파 속에 섞여들어갈 수 있을만큼 무난한 디자인이다.

녹색의 불씨 같은 물질을 휘감은 채 전진하던 나는 어렵지 않게 성도율을 대면했다.

어둠 속에서 잠들어있던 성도율이 내 인기척을 느끼곤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엇! 그, 그린 더스트?!"

어둠 속을 떠도는 녹색의 불씨는 내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는지라 놈은 곧바로 나를 알아봤다.

암살자가 이렇게 알아보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좀 우습지만... 사실 암살자 겸 처형인이라서 오히려 좋다.

나는 그린 더스트의 방출량을 조금 늘리며 변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성도율이 갇혀있는 철창 안팎이 한층 더 환하게 빛났다.

"성도율. 네 죄를 알고있다."

"잠깐만! 나는 잔챙이라고. 그런데 왜 굳이 나 같은 걸..."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주저없이 본인을 깎아내리는 성도율.

나는 진심을 가득 담아서 놈을 위로했다.

"자부심을 가져라. 너는 내가 봤던 쓰레기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악질이다."

"허, 헛소리 하지 마! 시장에서 눈 먼 돈 좀 가져간 게 대수야?"

"너 때문에 길바닥에 나앉게 된 PFG케미컬 사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건가? 심한 화상을 입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된 야간 근무자들은?"

파아앗!

철창 주변을 맴돌던 그린 더스트가 내 의지에 따라 놈을 덮쳤다.

대부분의 특수물질 생성계 헌터들이 그렇듯, 나는 이미 생성해놓은 그린 더스트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지니고 있었다.

허공을 부유하던 녹색의 가루들은 성도율의 몸 속으로 주저없이 파고들었다.

"크흡!"

애써 숨을 참아봤던 성도율이었으나, 그게 될 리가 없다.

놈은 결국 공기와 함께 그린 더스트를 흡입하게 됐다.

"허억, 허억... 멈춰! 그만하라고!"

"내 그린 더스트가 방사성 물질인 건 알고 있겠지? 혹시 몸 속이 천천히 썩어들어가는 기분을 느낀 적 있나?"

"안 돼! 하지마!"

놈은 아이처럼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래봤자 허무한 외침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한 번 튕겨서 놈이 흡입한 그린 더스트를 활성화시켰다.

직후, 몸이 아작나는 감각을 느낀 놈이 기겁하며 걸쭉한 핏물을 토해냈다.

이거 한 방에 수명이 5년은 줄었을 것이다.

"쿠, 쿨럭! 안 돼... 살려줘!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야. 모두 길드 마스터가 시킨 거야!"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지껄이는 성도율.

이 나라의 법률은 무섭지 않아도 죽음은 무서운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활짝 웃으면서도 고저차 없는 목소리로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이젠 동료까지 팔아먹는 건가?"

"정말이야! 증거가 있어. 길드 마스터의 지시가 담긴 증거 자료가 있다고! 처음에는 내가 자발적으로 했지만, 그 뒤로 계속 압박을 주길래 몰래 찍어뒀어!"

"증거 자료?"

"그래. 아주 깨끗한 촬영본이야. 물론 음성도 담겨있지. 내 사설 대여금고에 있으니까 제발... 한 번 확인이라도 해줘! 만약 확인해주면 법정에서 자백도 할게!"

"... 주소를 내놔."

성도율은 대여금고의 주소와 비밀번호를 단숨에 읊었다.

내 경험으로 짐작컨대, 이건 사실일 확률이 매우 높다.

역시 놈은 증거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치밀한 놈이 이런 안전장치도 마련해두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놈에게서 몸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약속을 지키는 게 좋을 거다. 네 몸 속의 그린 더스트는 언제든 다시 활성화 될 수 있다."

"자, 잠깐. 정말... 자백하면 살려주는 거 맞지?"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없었다.

철창 안에서 바들바들 떨고있는 성도율이 빠르게 멀어져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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