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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8화 (18/131)

〈 18화 〉 황금방패(4)

* * *

불행 중 다행으로, 목적지인 메타사이언스의 본사는 서울에 있었다.

잠복용 차량 안에서 적당히 뒹굴거리던 나는 거래소로 향했던 김정태와 팀원들의 보고를 받게 됐다.

[팀장님.]

"거래소에서 뭐라도 나왔어?"

[죄송합니다. 여긴 꽝입니다.]

"알겠다. 너흰 사무실로 돌아가있어."

역시 거래소만 뒤져봤자 놈들을 구속시키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전화를 끊자 서지유가 득달같이 물어왔다.

"무차입 공매도는 아니었나요?"

"아냐."

"무차입?"

이서우가 옆에서 눈을 크게 떨고있자 서지유가 간단히 설명해줬다.

"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를 하는 거죠.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이에요."

"아, 하긴..."

"보통 공매도라고 하면 주식을 빌려서 하는 차입 공매도가 기본이니까 그렇게 알아두시면 돼요."

황금방패 길드는 헌터 능력을 이용하여 주가를 하락시키는 방법을 썼다.

그러니 놈들이 굳이 무차입 공매도까지 저지를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어서 예리엘에게서 날아온 문자를 확인했다.

[전산상에는 딱히 기록이 남아있지 않네요. 메신저 앱이나 문자, 통화기록도 마찬가지고... 아주 용의주도하게 움직인 것 같아요.]

[고마워.]

오라클을 이용해서 길드 마스터가 불법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나 찾아봤지만, 그것도 실패.

메신저 앱은 물론이고 통화 기록과 문자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니.

이 정도면 범죄자 업계 상위 5% 정도로 봐줘도 된다.

'솔직히 막 출범한 특별 수사대에겐 좀 버거운 상대야.'

황금방패 길드는 헌터 길드로선 2류에 불과하지만, 범죄조직으로선 1류다.

아마 실행범을 붙잡아도 냉큼 꼬리자르기에 들어가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예리엘에게서 추가로 알림이 왔다.

[황금방패 소속 성도율 헌터, 메타사이언스 본사 방향으로 이동 중.]

나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아무렴. 지금처럼 범죄를 저지르러 가도, 스마트폰을 빼놓을 수는 없지.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지금의 황금방패에게, 이미 빌려놓은 주식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우리에게 들키기 전에 최대한 빨리 던져버리고 싶을 거야.'

"성도율이 온다. 그 자식 발화 능력자였지? 모두 위치로!"

드르륵!

중무장한 대원들이 잠행용 밴에서 호다닥 뛰어나갔다.

앨리스는 나를 따라오며 불안하다는 듯 물었다.

"메타사이언스 측에는 경고해주지 않아도 돼?"

"안 돼. 성도율이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칠지도 몰라. 게다가 내부에 첩자가 있을 가능성도 있어."

어마어마한 돈이 걸린 금융범죄인만큼,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겠지.

게다가 지금은 밤이라서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성도율이 능력을 사용하는 걸 포착해야 하잖아?"

"그러니까 앨리스 너는 메타사이언스 주변에 머물다가 놈의 공격을 막아줘."

"뭐? 그럼 체포는 누가 하고?"

"걱정하지 마. 이미 지원군을 불렀어."

앨리스는 내 지시대로 다른 건물로 숨어들었다.

나와 팀원들은 성도율의 공격 예상 지점으로 이동했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성도율의 위치는 천천히, 그러나 막힘없이 가까워졌다.

놈은 이미 CCTV나 차량이 있을만한 위치를 미리 숙지한 것이 틀림없다.

헌터 특유의 신체능력을 발휘하여 지붕에서 지붕으로 이동 중이다.

"철저하게 준비했군. 우리도 촬영 준비 끝났지?"

"예. 멀리 떨어진 건물에 있습니다. 망원렌즈로 촬영할 겁니다."

"좋아. 지금부터는 숨소리도 내지마."

텅 빈 상가 건물에 잠입한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놈을 기다렸다.

그대로 얼마나 지났을까.

성도율의 스마트폰 신호가 마침내 우리의 위치와 겹쳤다.

건물의 옥상에 조용히 침입한 놈은 주변을 둘러보는 듯, 천천히 한 바퀴 돌았다.

그야 범죄를 저지를 것이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

내가 신호를 보내자 다른 건물에서 대기중이던 팀원들이 촬영을 개시했다.

비싼 장비를 사준 보람이 있는 듯,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의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거리와 그림자 때문에 누군지는 정확히 알아볼 수가 없다.

"..."

스마트폰의 화면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던 성도율은 옥상의 끄트머리로 걸어가서 제약회사 메타사이언스의 본사를 눈에 담았다.

이미 새벽이 다 되어서, 실적 발표가 코앞인데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 잠겨있는 건물.

놈은 그곳을 차분히 살피더니,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화륵!

직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밝은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덕분에 후드 아래에 있던 성도율의 얼굴이 드러났다.

놈은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화르르륵!

놈이 만들어낸 불덩어리의 온도가 빠르게 높아졌다.

A랭크 헌터의 공격력을 감안하면, 저건 방화라기 보다는 폭파에 가까운 행위다.

너무 요란하고 노골적인 방법이지만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엔 준비가 모자랐던 모양.

특별 수사대 때문에 예정보다 일정을 당긴 것이 분명하다.

어차피 발화 능력자는 굉장히 흔한 편이라서 용의자 특정도 힘들다.

슉!

적당히 힘을 끌어올린 성도율은 망설임 없이 화염구를 발사했다.

아주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가는 화염구.

그 때, 건물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앨리스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는 회중시계를 휘둘러서 화염구를 허공으로 쳐내버렸다.

까앙!

하늘 높이 치솟은 화염구가 엄청난 불길을 내뿜으며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성도율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나를 포함한 팀원들이 우르르 계단을 올랐다.

"성도율! 헌터 협회 특별 수사대다. 폭발물 사용 미수죄로 긴급 체포한다."

"뭐, 뭐라고?"

움찔!

성도율은 본인의 정체를 들켰다는 생각에 살짝 굳어버렸다.

그러나 놈은 이내 뒤늦게 도주를 감행했다.

보다못한 대원들이 발포하려 했으나, 나는 그것을 말렸다.

"쏘지 마! 저 새끼 죽으면 안 돼!"

"팀장님!"

퍽!

제법 살벌한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벽에 충돌한 성도율.

놈은 이내 옥상에 나타난 얼굴을 보곤 완전히 얼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예리엘 프로스트..."

"엇!"

뒤늦게 예리엘을 발견한 이서우와 서지유가 화들짝 놀랐다.

예리엘은 천천히 내게 걸어와서 인사했다.

"제가 늦은 건 아니죠?"

"딱 맞췄네. 새벽에 불러서 미안해."

"아녜요."

환하게 웃으며 성도율의 연행을 도와주는 예리엘.

그녀의 능력에 제압당한 성도율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덕분에 팀원들이 직접 놈을 들고 옮겨야했다.

총기에 다시 안전장치를 걸어놓은 이서우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무섭도록 빨리 해결됐네요."

"아냐.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야."

"예?"

"우리는 성도율을 폭파 미수 혐의로 체포했을 뿐이야. 이번 사건의 진범은 황금방패 길드 전체라고 봐야하는데 말이지."

"그, 그런..."

개인의 일탈!

이런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기업들이 애용하는 말이다.

황금방패 길드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기 때문에, 성도율에게 폭파를 지시했다는 증거 따윈 남겨두지 않았다.

만약 내가 황금방패라면 이번 건을 성도율 개인의 범죄로 몰고갈 것이다.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다.

"그, 그래도... 성도율이 증언을 해주면 승산이 없진 않죠? 놈이 몰래 증거물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구요."

"만약 증언을 해준다면 말이지."

성도율은 바보가 아니다.

참고인 조사에서 만났던 녀석은 제법 용의주도한 성격이었다.

이런 식으로 꼬리자르기를 당할 때에 대비하여 핵심적인 증거물 하나둘 정도는 숨겨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놈이 그것을 내놓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과연.

협회 내부의 수용시설로 이동된 놈은 입을 꾹 다문 채 진술을 거부했다.

내가 직접 심문을 진행해봤지만 제법 굳세게 버티는 것이다.

"변호사를 불러주세요."

"미안한데 우리는 규칙이 좀 달라. 정식 수사기관이 아니라 협회의 부속 조직이라서 그딴 거 들어줄 의무가 없지. 게다가 너는 죄질이 특별히 나빠서 안 돼."

"..."

"변호사는 나중에 만나게 해줄테니까, 나랑 이야기나 좀 하자.

"죄송하지만 수사관 님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 너 그러다가 주가조작 혐의는 물론이고 안태양 씨 실종 사건까지 모두 뒤집어쓴다? 길드에서 너를 보호해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

"네가 이렇게 입 닫고 있어봤자 어차피 그쪽에서 입 열면 가중처벌만 받는다니까? 좀 쉽게 가자."

결국 성도율은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내 심문을 지켜보던 이서우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중얼거렸다.

"왜 저렇게까지 버티는거죠?"

"본인의 자백이 없으면 길드까지 엮어넣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거야. 주가 조작이고 뭐고 모두 뒤집어쓸 작정이다."

"그, 그렇게까지 한다구요? 어째서요?"

"어차피 폭발물 사용 미수는 형량이 엄청 세거든. 아, 실제로 폭발까지 갔으니까 미수가 아니라 사용이군. 이 경우에는 최소 형량이 징역 7년이다. 일반적인 살인죄보다 훨씬 세지."

다만 법원에서 폭발물에 대한 판정을 굉장히 엄격하게 하는 탓에, 폭발물 사용죄가 실제로 적용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내 기억이 맞다면 관련 판례가 15개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범행 과정에서 다른 협회법도 왕창 어겼으니 성도율의 인생은 이미 끝장났다고 봐야한다.

"만약 성도율이 지금 섣불리 입을 열면, 5년 전의 PFG케미컬 화재 사건도 본인의 짓이라고 자백하는 꼴이 되어버려. 우리도 그 사건에 대한 물증까진 없어. 정황증거만 있을 뿐이지."

"그래도... 중형은 확정인 거죠?"

"그렇지. 헌터 협회에서 싫어하는 짓은 모조리 저질러주셨으니까. 근데 그걸 감안해도 묵비권을 행사하는 게 유리하긴 해."

어차피 평생 철창 신세라면 황금방패 길드에서 위로금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도율이 계속 입을 닫고 있으면 황금방패 길드도 나름대로 사례를 해줄 것이다.

이미 실종된 안태양처럼 처리해버릴 수도 없는 것이, 성도율은 이미 우리에게 붙잡혔기 때문에 암살 따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뭐, 서론이 길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놈은 그냥 법을 우습게 보고 있는 거야. 법률의 처벌이 두렵지 않다 이거지."

"그럼 이제 방법이 없는 건가요? 역시 황금방패는 가만히 내버려 둘 수밖에..."

"그건 아니지."

나는 이서우에게 피식 웃으며 예리엘에게 눈짓을 보냈다.

예리엘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을 표했다.

이미 공권력으론 할만큼 했다고 인정해줬다.

"법이 두렵지 않다면 다른 걸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주면 돼."

"예?"

"오늘은 여기까지. 다들 수고했어. 얼른 퇴근해."

예리엘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팔짱을 껴왔다.

나는 차마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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