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7화 (17/131)

〈 17화 〉 황금방패(3)

* * *

황금방패 길드.

대형으로 분류되기엔 한참 규모가 부족한 중견급 헌터 길드다.

길드 멤버들의 실력은 상당하지만, 레이드나 던전을 열성적으로 돌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

황금방패 길드의 활동량은 상당히 아슬아슬하다.

길드별로 내려진 할당량을 간신히 채우는 수준이다.

평균 연봉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신규 입사자는 거의 없다.

동시에 퇴사자도 거의 없는 폐쇄적인 환경.

게다가 대부분의 멤버들이 길드 마스터와 함께 헌터 생활을 시작했다.

'좋게 말하면 가족같은 길드고, 나쁘게 말하면 발전이 없는 길드지.'

헌터의 본분인 사냥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돈벌이를 하는 길드.

앨리스는 그런 설명을 늘어놓으며 작게 혀를 찼다.

"하여간 마음에 안 드는 놈들이야."

"그런가? 몬스터들과 목숨 걸고 싸우기 싫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냥 외의 수입원을 원하는 것도 합리적이고."

솔직히 지금이 무슨 수렵 및 채집 사회도 아니고.

헌터들의 본분인 사냥에 집중하라는 것도 좀 웃긴 말이다.

앨리스는 내 솔직한 소감에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

"정의."

"잘도 태연하게 그런 소리를 하네."

"그렇게 말해도... 길드의 수입을 다각화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

그와중에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말이지만.

내가 그렇게 덧붙이자 앨리스가 그제야 피식 웃었다.

사실 돈벌이에 환장한 헌터 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경우가 더 드물 것이다.

일반 기업들도 그러는데, 그야말로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헌터들은 오죽할까?

참고인 조사가 대충 끝난 이후.

서지유는 아까 참고인으로 방문했던 성도율의 조사 결과를 가져왔다.

그녀는 금융계 공무원 출신답게 그의 계좌정보부터 훑어봤다.

그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팀장님, 이게 성도율의 계좌 내역입니다."

"수상한 정황이 있어?"

"네. 예금은 빵빵하고, 은행 적금까지 들고있네요. 근데 수입이 너무 많아요. 이것 보세요."

"음."

성도율의 연봉은 업계에서도 상위권 수준이었으나...

그것과는 별개로 분기마다 거액의 보너스를 받고 있었다.

이 보너스가 연봉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

이래서야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확실히 수상하네. A랭크 평균 연봉의 5배는 받고있잖아? 황금방패가 그렇게 잘 나가는 길드도 아닌데 말야."

"그렇죠. 이건 대형 길드 1군 멤버 정도는 돼야 받을 수 있는 돈이에요."

"뭐야, 황금방패 길드원이 이렇게나 받는다고? 말이 안 되는데?"

옆에서 계좌내역을 훔쳐본 앨리스도 깜짝 놀란 반응.

서지유는 주저없이 다음 자료를 꺼내들었다.

"보니까 다른 길드원들도 비슷하게 받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봤죠."

그녀가 꺼내든 것은 황금방패 길드 측에서 협회에 제출한 회계 자료였다.

서지유는 금융계 공무원 출신이라서 당연히 그것을 볼 줄 알았다.

그녀는 회사의 수입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에요. 사냥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거의 없고, 대부분 투자로 벌고 있어요. 사실상 헌터 길드가 아니라 투자 회사죠."

"투자? 투자라면... 주식?"

"네. 그것도 공매도에요. 장장 5년 이상 꾸준하게 엄청난 이득을 내고 있죠."

"뭐라고?"

이 자식들, 사기꾼이다.

나는 서지유의 설명을 듣자마자 그렇게 단정지어버렸다.

반면 이서우와 앨리스는 아직 이해가 잘 되지 않은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공매도가 뭐더라?"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거야. 쉽게 설명하면, 대상 기업의 가치가 하락할수록 이득을 보는 투자 방법이지."

"나도 대충은 알고 있어.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된다는 거야?"

"그야 대상 기업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보다 하락시키는 게 훨씬 쉬우니까."

자고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게 쌓는 것보다 훨씬 쉽기 마련이다.

나는 구구절절 떠드는 대신 곧바로 검증에 들어갔다.

"황금방패에서 공매도 쳤던 대상 기업들 볼 수 있어?"

"당연하죠. 여기 정리해놓았습니다."

서지유도 나와 똑같은 의심을 품은 듯, 다음 자료를 공개했다.

"가장 예전 대상 기업이 바로 5년 전의 'PFG케미컬'이라는 기업인데요, 지금은 도산했습니다."

"도산 이유는?"

"회사 창고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죠. 덕분에 황금방패는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었습니다."

"!"

그제야 상황을 대충 눈치챈 듯한 앨리스와 이서우.

황금방패가 공매도를 쳤던 기업에서 하필이면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다니.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이하지 않은가.

그러나 한 번은 우연일 수도 있다.

서지유는 그런 딴지가 나오기 전에 다음 기록을 발표했다.

"4년 전, 황금방패는 유성코퍼레이션을 공매도했습니다. 동년 3월에 해당 기업 대표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 신체검사는 통과했지만 자택에서 마약이 발견되어 소지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당연히 주가는 폭락하고 황금방패는 기록적인 수익을 거뒀습니다."

"서, 설마 황금방패가 그렇게 했다는..."

"그렇지."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이서우.

때마침 보안 담당인 김정태가 압수해놓은 스마트폰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한데 모아서 젠가처럼 탑을 쌓았다.

"서우 씨, 잘 들어. 이 스마트폰 탑이 바로 기업이야."

"네, 팀장님."

"나는 이제부터 이걸로 젠가를 할거야. 기업을 운영하는 거지. 그런데, 앨리스는 이 기업이 폭삭 무너진다는데에 돈을 걸었어. 그게 바로 공매도야."

나는 신중하게 스마트폰 탑을 톡톡 두드려보며 젠가를 시작했다.

당연하지만 처음 몇 번 만에 무너지진 않는다.

"기업이 무너지지 않으면, 앨리스는 돈을 벌지 못해. 하지만 주식시장에 상장까지 해놓은 기업이라는 게 그리 쉽게 폭삭 무너지진 않아. 그럼, 앨리스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그야... 직접 탑을 무너뜨려야겠죠."

이서우의 설명대로 스마트폰 탑을 향해서 손을 뻗는 앨리스.

나는 그녀의 작은 손을 찰싹 때려서 쫓아냈다.

"일반적인 방법은 통하지 않아. 황금방패가 그 정도로 거대한 기업도 아니고."

"그, 그럼..."

"간단해. 염동력을 써서 다른 사람들 몰래 기업을 무너뜨리면 돼.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바로 황금방패가 하고있는 짓이야."

내가 손짓하자 김정태가 스마트폰 탑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그냥 곱게 가져가란 뜻이었는데... 충성심이 좀 과했다.

이서우는 그제야 이해가 된 듯 했다.

"그러니까, 일단 공매도를 걸어놓고 헌터 능력을 써서 사고를 일으켰단 말인가요?"

"바로 그거야. 헌터 능력을 쓰면 증거가 남지 않아. 아주 편하고 안전하게 이득을 챙길 수 있어."

"그건 좀 과대해석인 게..."

"황금방패가 공매도쳤던 기업 13개 중 11곳이 하락했어요. 그 중 7곳은 완전히 문을 닫았구요. 그럼 이게 우연이란 말인가요?"

서지유가 한숨을 삼키며 말하자 하는 수 없이 납득하는 이서우.

앨리스는 내게 딴지를 걸었다.

"잠깐, 헌터는 금융범죄 같은 거 저지르지 않는다면서?"

"그렇지. 개인으로서의 헌터는 금융범죄 따윈 저지르지 않아. 만약 저질러봤자 금방 붙잡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저없이 긍정했다.

내 이론은 전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헌터 길드는 금융범죄를 저질러. 헌터 개인보다 힘이 훨씬 막강하니까, 금융인들을 상대로도 충분히 해볼만해."

"그, 그럼..."

"이건 성도율 개인의 일탈이 아니야. 황금방패 길드 전체가 엮여있는 사기지."

길드원들이 이런 범죄에 참여하고 있다면, 황금방패 길드의 터무니 없는 보너스도 이해가 된다.

그건 멤버들에게 범죄 수익을 분배한 것이다.

나는 이번 건의 발단인 실종자 안태양까지 한꺼번에 엮어버렸다.

"지금으로선 실종된 안태양 씨도 해당 사건에 엮여있을 확률이 높아. 길드의 비리를 발견하고 제보하려다가 멤버들에게 살해당했다든지... 일단 황금방패 길드 사건부터 조사한다."

"그럼 지난번처럼 곧바로 압수수색 들어갑니까?"

영장없는 압수수색에 재미가 들린 듯, 주저없이 장비를 챙기려고 하는 이서우.

그러자 서지유가 빼액 소리를 지르듯 말렸다.

"안 돼요!"

"예?"

"본사 압수수색 같은 걸 해봐도 증거를 남겨뒀을 리가 없잖아요. 아직 금감원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는데."

당연하지만 이서우도 아무 생각없이 압수수색을 제안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매도는 현재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빌려서 파는 거라면서요? 그럼 당연히 상대 기업이나 개인, 또는 거래소에 기록이 남아있을텐데요?"

"원래 그게 맞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예? 그게 도대체 무슨..."

"우리나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매도 과정이 전산화 되어있지 않았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기록이 조작되어 있지 않다는 보장이 없어요."

이서우는 서지유의 설명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반응했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럼 공매도를 할 때마다 일일이 종이에 글자를 써서 기록했다구요?"

"바로 그거죠. 최악의 경우에는 무차입 공매도일 수도 있어요."

"세상에."

공매도의 관리가 그딴 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면 조작의 가능성도 충분하다.

나는 이쯤에서 서지유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지금은 전산화 됐잖아? 황금방패는 5년 전부터 최근까지 줄곧 공매도를 진행하고 있으니까, 일단 덮치면 뭐라도 나오는 거 아니야?"

"그 전산화라는 것도 완전 개판이라서... 수기 자료를 디카로 찍어서 업로드하는 식으로 처리하는 곳까지 있었어요."

"..."

하여간 우리나라는 사기꾼들에게 너무 편하고 좋은 나라라니까.

나는 새삼 서지유를 다시보며 박수를 쳐줬다.

확실히 이쪽 분야는 전문가가 맞다.

"대단하군. 역시 횡령 전과범!"

"아앗! 저 정말 열심히 했는데 이러시기에요?"

"열심히 한다고 죄가 지워지는 건 아니지."

그래도 활약은 활약이다.

나는 당분간 그녀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김정태를 불러냈다.

"정태야. 혹시 모르니까, 거래소 가서 관련 기록 찾아봐. 황금방패 측에게 들키지 않도록 해줄 수 있지?"

"조용히 움직이겠습니다 팀장님."

김정태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팀원 둘을 데리고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나머지 팀원들과 함께 작전을 짰다.

"놈들을 잡아넣기 위해선 지난번처럼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게 최고야. 현재 황금방패 길드가 공매도 진행 중인 기업 있어?"

"네! 메타사이언스, 현재 실적발표가 코앞에 있는 제약 회사에요."

"숏친지 얼마나 됐는데? 거기까진 못 알아보나?"

"아뇨. 지금 보니까... 55일 경과됐네요."

"55일? 다들 당장 출동 준비해! 메타사이언스 본사 주변에 잠복한다."

내 불호령에 부랴부랴 무기고로 달려가는 팀원들.

혼자서 한가한 표정인 앨리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갑자기 서둘러?"

"아까 설명했지만, 공매도는 남의 주식을 빌려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당연히 주기적으로 이자가 발생해."

한국 주식 시장은 기관과 외국인들의 공매도에 굉장히 호의적인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자 때문에 시간제한이 존재한다.

즉, 황금방패로선 시간이 길게 끌릴수록 손해가 커지는 구조다.

"근데 55일이라면 이미 아슬아슬하지. 대차 조건에 따라선 시간이 경과될수록 이자율이 커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놈들이 무조건 60일 안쪽으로 움직일거라고 생각했어."

실제로도 그렇다.

황금방패는 지금의 범죄 체제를 완성시킨 뒤에는 대략 60일을 기준으로 대상 회사에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너무 빠르게 일을 저지르면 금융당국에게 들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게다가 얼마전에는 우리 사무실에서 참고인 조사까지 받고 갔으니, 최대한 빨리 공매도를 털어내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놈들이 오늘 당장 일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아. 날이 저물기 전에 잠복을 시작해야 해."

"아하."

나는 간단히 개인화기만 챙기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야근 보고를 받은 예리엘이 메신저 앱으로 엉엉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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