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황금방패(1)
* * *
신혼여행이니 뭐니 떠들어댔던 것이 무색하도록.
당장 다음 날부터 업무지옥이 시작됐다.
헌터 협회 특별 수사대의 공식적인 활동 개시!
다만 대부분의 팀원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그 형태가 좀 달랐다.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물 밀듯 물려드는 헌터들을 정리해야 했다.
"저, 경찰서에서 이쪽으로 가라고 하던데요..."
"네. 여기 차례대로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세요."
지난번에는 직접 수사를 했지만, 그건 안건이 워낙 심각했는데다 상부의 특별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경찰에서 사건을 송치받으면 그걸 제대로 정리해서 협회의 징계 위원회와 판사에게 넘겨주는 역할이다.
즉,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검찰의 역할과 비슷하다.
문제는 검찰에서 헌터 관련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탓에 업무량이 상당히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팀원들에게 대충 요령을 가르쳐준 뒤에 조서를 받으라고 시켰다.
당연하지만 서지유는 전과범이라서 일반 업무에선 제외다.
"지유 씨, 아래층 카페에서 팀원들 커피 좀 사와."
"엑... 저도 심문하면 안 돼요?"
"되겠냐?"
그녀를 내려보낸 나는 헌터 한 명을 맞은편에 앉혔다.
사실 내가 직접 할 필요까진 없지만 워낙 일손도 부족하고, 팀원들에게 시범도 보여줄 겸 나섰다.
헌터는 내 뒤에 장승처럼 버텨선 앨리스를 보곤 진땀을 뻘뻘 흘렸다.
대부분의 헌터들처럼, 그는 아예 변호사까지 대동했다.
나는 경찰에서 보내온 자료를 읽었다.
"유정하 씨. 민간인 폭행 신고가 들어왔네요. 세부사항은 이미 알고 계시죠? 지금부터 차근차근 다시 한 번 확인할 거에요."
"예에..."
"경찰에선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하셨는데, 지금도 여전합니까?"
"네. 그날 밤에는 제가 술을 마셔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지난번 범인은 마약사범에 납치 강간까지 갔는데, 이번은 단순폭행이라니.
갑자기 엄청나게 소박해진 느낌이지만 나쁘진 않다.
매번 그런 초강력 범죄만 상대하는 것도 피곤하다.
나는 괜히 길게 끌지 않고 곧바로 증거물을 내밀었다.
예리엘이 집에서 오라클을 이용하여 수집해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이었다.
"그럼 이건 뭐죠?"
"헉!"
정확한 신고 일자에, 신고 장소에서 한 남자를 때리는 헌터의 모습.
영상 속에서 본인의 얼굴을 발견한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부정했으나, 옆자리의 변호사는 이미 졌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강력한 증거물이 있는데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이건 제가 아니에요!"
"유정하 씨. 이런 증거물이 대놓고 있는데 무작정 부인하는 건 피의자의 권리도 뭣도 아닙니다. 그냥 허위진술이죠."
"마... 말씀 드렸다시피 그날 밤에는 제가 술을 마셔서..."
"헌터 협회에선 술 마셨다고 감형 안 해줍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거 몰라요? 손 한 번 휘두르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헌터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건 자랑이 아니죠."
"특별 수사관님. 잠깐 제 의뢰인과 논의하고 와도 될까요?"
"그러시죠."
보아하니 길드의 전속인 듯한 변호사는 협회법에 대해서 나름대로 공부하고 온 모양이었다.
잠시 뒤 자리로 돌아온 피의자는 깔끔하게 죄를 인정했다.
여기서 계속 잡아떼봤자 괘씸죄만 추가된다.
물론 진짜로 그런 죄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사관인 나를 굳이 열받게 해서 좋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한 것 같습니다."
"사과는 제가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하셔야죠. 아마 영업정지 3개월 정도 나올겁니다."
"아, 예에..."
처벌도 대충 예상한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피의자.
나는 거기에 조건을 추가했다.
상부에서 이 정도는 허락해줄 것이다.
"피해자의 용서를 받아오면 감형이 좀 되겠죠."
"그, 그렇군요."
"영업정지 3개월이면 금전적 손해가 상당하죠? 아무쪼록 원만하게 합의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사관님."
"그럼 끝났으니 어서 가보시죠. 저와 다시 만날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내가 대충 일을 끝내고 피의자를 보내자 뒤쪽에서 앨리스가 작게 궁시렁거렸다.
"민간인 폭행인데 고작해야 영업정지 3개월... 너무 적은 거 아냐?"
"전혀 그렇지 않아. 유정하 씨는 초범이야. 거기에 고작 전치 2주짜리 단순폭행죄... 만약 헌터가 아니라 일반인이었다면 무조건 기소유예가 나왔을 거야."
이건 오히려 피의자가 헌터라서 처벌이 가중된 것이라고 봐야한다.
나는 살짝 놀란 얼굴로 자세히 물어오는 앨리스에게 설명을 보충했다.
"폭행죄 처벌이 그렇게 가벼워?"
"초범이니까. 만약 또다시 죄를 저지르면 처벌이 훨씬 가중될 거야. 나도 개인적으로 경범죄에 한해서 초범은 감형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미국식 엄벌주의가 만능은 아니지."
"... 그렇게 생각하는 놈이 사적으로 암살활동 같은 걸 하고 앉았냐?"
목소리를 팍 줄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항의하는 앨리스.
아무래도 내가 피의자들을 동정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
내가 엄벌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그런 감정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저런 놈들까지 무턱대고 죽여버릴 수는 없잖아? 감옥에 보내는 것도 한계가 있고."
"그런가..."
"앨리스, 너 대한민국에 헌터 범죄자를 수용할 수 있는 교도소가 몇 군데나 되는 줄 알아?"
"몇 군데인데?"
아예 생각도 안 해본 듯, 크게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쉽게 대꾸하는 앨리스.
나는 작게 두통을 느끼면서도 알려줬다.
"딱 한 곳이야. 서울 교외의 헌터 전용 교도소."
"적네."
"애초에 많을 필요가 없지. 헌터가 교도소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
참고로 지난번에 체포한 유시현과 놈의 휘하에 있던 마약 제조범도 그곳에 수용될 예정이다.
"진짜 문제는 비용이야. 그 한 곳... 국내 유일의 헌터 전용 교도소는 일반 교도소 10개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운영비를 사용하고 있어."
"10배?"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헌터 죄수들은 일반 죄수들보다 통제가 훨씬 힘드니까."
헌터 전용 교도소는 모든 것이 특제다.
감시 카메라에는 열화상 기능이 있고, 감방 문은 3중. 전자식과 기계식 혼용... 바닥에는 압력 감지 센서가 붙어있다. 물론 최신식 레이저 보안 장치도 빼놓을 수 없다.
교도관들도 엄청나게 많고, 개중에는 헌터 능력을 지닌 교도관도 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헌터들을 가둬두는 곳이다보니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잡범들까지 일일이 교도소로 보내버리는 건 돈낭비에 인력낭비야. 차라리 암살해버리는 쪽이 훨씬 깔끔하지."
"결국 몰살이 최고라는 결론이냐."
"내가 예전부터 말했잖아."
"... 그나저나 오늘은 대부분 잡범이네."
당연하다.
지난번 같은 강력범죄도 아무나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범죄는 단순히, 충동적으로 저질러지기 마련.
그런 강력범죄는 흔하게 일어날 수 없고, 흔하게 일어나도 안 된다.
'만약 발생한다 쳐도 오라클을 이용하면 대부분 쉽게 해결되겠지만.'
이런 잡범들에게 약한 처벌을 가하기만 해도 헌터 범죄율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이들은 지금껏 본인들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자각 자체가 없었다.
그동안 검찰이 일을 좀 심하게 대충 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이런 잡범들이 아니라 지난번의 유시현 같은 사이코패스들이다.
명확한 악의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헌터들!
경찰에서 송치해준 사건들을 빠르게 처리하던 나는 그런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피의자를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번 사건은 다름아닌 절도죄였다.
보통 헌터 범죄는 생활고와 연이 없다는 내 이론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듯한 사건.
나는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잡혔다는 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성준 씨, 고개 들고 질문에 답하세요."
"네, 수사관님."
"이성준 씨 본인 맞죠? 현직 A랭크 헌터. 가시나무 길드 소속. 32세. 틀린 사항 있습니까?"
"아뇨, 모두 맞습니다."
"전자기기 상점에서 제품을 훔친 것으로 고발당했는데, 왜 그러셨죠?"
"그, 그야 돈이 없어서..."
'이 새끼, 시작부터 헛소리군.'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절도는 재력이 있는 사람들도 적잖게 저지르는 범죄다.
돈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물건을 훔치는 케이스.
내 경험상 이런 놈들이야말로 악질적인 사이코패스들이다.
놈은 이미 범죄의 스릴 그 자체에 중독됐을 확률이 높다.
'보통 이런 놈들이 나중에 유시현처럼 되는거지.'
콰앙!
대충 각이 나왔다고 판단한 나는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내 행동에 화들짝 놀란 놈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사무실의 인원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보고, 옆에 있던 변호사도 놀란 나머지 감히 무어라 하지 못했다.
대놓고 헛소리부터 하는 이런 악질들에겐 조금 세게 나갈 필요가 있다.
"똑바로 말해! 현직 A랭크 헌터가 전자기기 하나 살 돈이 없긴 개뿔!"
"아, 아니 그게..."
"내가 헌터들 최소 연봉도 모르는 줄 알아? 현직 A랭크 헌터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억단위 연봉이잖아? 당신 지금 내가 우습게 보여?"
뒤쪽의 앨리스도 이건 말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계좌 정보를 훑어본 나는 극도로 수상한 정황을 발견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법 빵빵했던 계좌에서 한꺼번에 엄청난 돈이 빠져나갔던 것이다.
게다가 그것 외에 정기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출금한 흔적도 보였다.
나는 그것을 보여주며 그를 윽박질렀다.
"자, 여기 당신 통장 내역! 결혼까지 한 사람이 이 돈을 어디에 다 쓴거야? 지금 똑바로 말 안 하면 오늘 집에 못 돌아가."
"수사관 님!"
변호사가 기겁하는 사이, 고개를 숙인 채 울먹거리는 피의자.
놈은 이윽고 또다시 거짓말을 하며 열이 오르게 만들었다.
"그건... 아내가 투자로 다 날려먹었습니다. 제 월급은 모두 아내가 관리하고, 저는 용돈 받아서 쓴다구요!"
"아내? 아내같은 소리 하고 있네. 당신 아내 정보도 내가 조사하면 다 나와."
잠시 자료를 찾아본 나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이성준의 아내는 취직 경험조차 없는 전업주부였다.
"당신 아내는 그냥 전업 주부잖아? 현재 거주중인 자택도 혼인신고 이후에 당신 봉급으로 다 샀지."
"그, 그런데요?"
"근데 그런 여자에게 자금 관리를 완전히 맡겼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투자로 다 날려먹고? 당신 병신이야? 계속 이딴 식으로 거짓말 해봤자 통할 것 같아?"
"으극..."
이제야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본모습을 드러내려는 피의자.
나는 놈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거 마약하거나 도박하다가 다 날려먹은 거지?"
"아, 아닙니다! 정말로..."
"계속 아내 핑계 대는 게 부끄럽지도 않아?"
"...@#끼."
"뭐어?"
내 공격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놈은 표독스런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러나 놈의 대답은 내가 기대했던 종류가 아니었다.
"십... 새끼. 지는 S랭크랑 결혼했다 이거지?"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티, 팀장님. 진정하십시오!"
저 멀리서 달려와서 나를 말리는 김정태.
나는 그가 그렇게 나오는 것을 보고 뭔가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김정태의 충성심은 에스콰이어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그는 나를 간곡히 뜯어말리며 피의자를 변호했다.
"이 자식은 그냥 결혼을 잘못했을 뿐이라구요!"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집에 억대 연봉을 갖다주는데 용돈을 받아서 쓰긴 개뿔..."
"세상에는 그렇게 살아가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김정태가 나를 뜯어말리는 사이. 예리엘이 메신저 앱으로 조사 결과를 보내줬다.
놀랍게도 피의자의 진술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의 부인은 남편 몰래 친가에 알뜰살뜰 돈을 보내주다가, 부동산 투자 실패로 전재산을 날려먹고 거액의 빚까지 져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시발 어떻게 이런 일이..."
"흑, 흐흑..."
퐁, 퐁...
피의자가 내 앞에서 흐느끼는 가운데, 서지유가 사온 커피의 물방울이 퐁퐁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나는 예리엘에게 조금 더 잘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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