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서장(14)
* * *
S랭크 헌터, 유시현의 체포 소식은 매우 빠르게 퍼져나갔다.
놈을 협회에 인계하고, 실종자들을 구출한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와서 간단히 축배를 들었다.
원래 이런 거 일일이 안 하려고 했지만... 이번 건은 여러모로 대박이다.
설마 범인이 S랭크일 줄은 기대도 못했다.
"사실 좀 불안했는데... 스스로 협회원 자격을 포기할 줄이야."
"불안했다뇨?"
"유시현은 스스로 마약을 조제할 능력이 없거든. 분명 다른 헌터가 조제를 담당했을 거야. 그러니까 기껏해야 납치 감금 및 성폭행 정도로 엮는 게 고작이었어. 그마저도 변호사를 써서 빠져나갈 수도 있었고."
이서우는 내 설명에 화들짝 놀랐다.
"말도 안 됩니다. 놈의 방에서 마약이 발견됐잖아요?"
"우리나라가 마약사범들에게 엄청 관대한 거 몰라? 놈이 일반 시민도 아니고... 나는 충분히 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젠 이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유시현은 대한민국 헌터 협회원 자격을 포기했으므로, 존재 자체가 불법이 됐다.
이제 놈을 구워먹든 삶아먹든 협회의 마음대로다.
게다가 하필이면 같은 헌터들을 납치해버린 것도 치명적이었다.
유시현이 소속된 길드는 벌써부터 부당한 체포다 뭐다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으나...
정작 그에 호응하는 길드들은 거의 없었다.
뻔뻔한 것으로는 둘째라가라면 서러울 것이 헌터 길드였으나, 이번에는 죄질이 너무나도 나빴다.
납치범에 성폭행범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자니. 말도 안 된다.
일부러 가족이 없는 여성 헌터들만 노린 수법 또한 무척 악질적이었다.
"혹시 유시현이 협회에 재가입 할 수는 없나요?"
"헌터 협회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진 않아. 신입 각성자들도 3주 안에 가입 안 하면 무조건 처벌받는 판국인데."
"아..."
'우리 특별 수사대의 첫 사건으론 정말이지 최고군.'
특별 수사대가 마음먹으면 S랭크 헌터도 잡을 수 있다.
헌터들은 이번 건을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서우는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열심히 물었다.
"만약 놈이 협회원 자격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희가 범인을 잡으면, 그대로 검찰에 송치하는 겁니까?"
"아니. 검찰은 헌터 관련 사건을 다룰 자격이 없어. 우리가 체포하면 협회장이 직접 임명한 판사가 판결을 내리게 되지. 나머지 자잘한 것들은 모두 협회에서 처리하고."
"예? 아, 설마..."
"그래. 북두칠성 길드 사건 때문이다."
경찰 출신이라 그런지 말귀를 무척 잘 알아듣는 이서우.
그러자 옆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서지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북두칠성 길드 사건이라면... 6년 전에 팀장님께서 엮이셨던 그거요?"
"맞아."
"그게 여기서 왜 나와요?"
아... 서지유는 모르는 건가?
하긴. 원래 시사 문제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물론 북두칠성 사건이란 이름 정도는 들어봤겠지만, 세부사항과 여파는 잘 모르는 것이다.
팀원들은 살짝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으나...
나는 서지유의 무지를 관대하게 이해해주기로 했다.
사실 이번 사건의 일등공신은 다름아닌 그녀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출격 명령을 내린지 불과 8시간도 안 돼서 마약이 유통되고 있던 클럽의 정보를 찾아내버렸다.
'물론 운이 좀 따라준 것도 있지만... 남자를 홀리는 솜씨는 진짜야. 상대가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만드는 능력이 있어.'
그래도 내 입으로 직접 설명하는 것은 조금 쑥쓰러워서, 김정태를 쳐다보자...
그가 내 대신 북두칠성 사건에 대해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북두칠성 스캔들은 한국 헌터계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라 불리는 초대형 비리입니다. 당시 한국 최대의 길드였던 북두칠성은 의도적으로 대형 레이드를 지연시켜서 엄청난 물적, 인적 피해를 발생시켰죠."
"아, 저는 딱 그 정도만 들어봤어요."
북두칠성이 그런 짓을 벌인 것은 오직 본인들의 욕심 때문이었다.
해당 레이드 몬스터의 진로에 경쟁사가 있어서 일부러 출동을 늦췄던 것이다.
당시에는 북두칠성 길드가 없으면 대형 레이드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다른 헌터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파헤친 것이 바로 팀장님입니다. 원래라면 어둠 속에 묻혀야 할 사건이었죠."
"와아. 정말요? 어떻게 파헤치신 건데요?"
"내부 고발자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내가 직접 설명하는 것이 맞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받았다.
그러자 서지유는 물론이고 이서우와 앨리스도 눈을 크게 뜨며 귀를 기울였다.
"북두칠성 길드의 2군 헌터였던 그는 목숨을 걸고 진술을 하러왔지. 하지만 다른 검사들은 진지하게 들어주지도 않았어."
"어째서..."
"상부에서 압력이 있었거든. 하지만 나는 수사를 강행했다. 되든 안 되든 해보겠다는 식으로 진술을 받고, 녹음본도 만들고, 고발자가 가져온 증거 자료도 제출했어. 모두 다 완벽하게 합법적인 증거물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어리고 멍청했다.
'되든 안 되든 해보겠다...' 같은 마음가짐으론 어림도 없었다.
어떻게든 되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결과. 사건은 모두가 알다시피 비극으로 끝났다.
"설마 무죄 판결이 나온 건가요?"
"그것보다 훨씬 나쁘지."
"엇..."
"당시의 검찰은 헌터 사건의 증거물을 보관할만한 능력이 없었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 최상급 헌터가 작정하고 보관실을 털면 뚫릴 수밖에 없어."
당시의 헌터 업계는 너무도 빠르게 발전했다.
헌터들의 실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나마 대응 능력이 있는 헌터 협회에서 증거물을 보관하고, 증인을 보호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청했으나... 아주 당연하다는 듯 무시당했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권위적인 조직들 중 하나인 검찰이 본인들의 역할을 그리 쉽게 양보할 리가 없었다.
결국 증인은 사망하고 증거물은 소실됐다.
범인은 해당 사건의 증거물만 정확하게 골라서 훔쳐갔다.
그리고 나는 과잉 수사를 이유로 해임 처분을 당했다.
"..."
"그 때는 정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지."
"그럼... 어떻게 북두칠성 길드가 해체된 거죠?"
"내가 가지고 있던 증거물과 녹취록의 사본을 익명으로 언론사에 뿌렸어."
"!"
굉장히 극단적인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그만큼 확실했다.
검찰은 본인들의 능력 부족을 들킨 나머지 사방에서 얻어맞았다.
특히 정치권에서 신이 나서 물어뜯었다.
북두칠성 길드는 사건의 여파로 해체.
관련자들은 나중에 내가 그린 더스트로서 직접 처벌했다.
"하여간, 해당 사건 이후로 검찰은 헌터 관련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되었어. 관련 기능과 권한은 모두 협회가 넘겨받았지."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내셨네요..."
"내가 아니라, 한 남자의 양심이 해낸 거지."
나는 불행하게 희생된 내부 고발자를 떠올리며 무겁게 중얼거렸다.
그 때 이후로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기로 했다.
사무실에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이서우가 조심스레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특별 수사대의 권한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이네요. 심지어 판결도 협회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한다니."
"그 말이 맞아. 사실 정상적인 법치국가라면 특별 수사관 같은 게 존재해선 안 돼."
나는 이서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저렇게 부담을 느끼는 게 당연한 것이다.
저런 의문을 가지지 않으면 수사관의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섣불리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래도, 우리밖에 없어."
"예?"
"우리는 국가가 인정한 유일한 안전장치야. 우리가 없으면, 범죄를 저지르는 헌터들을 견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은 아예 없어. 모든 국민들이 헌터 범죄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거야."
"..."
나는 팀원들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우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헌터 범죄자들을 체포한다. 국가가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이상, 다른 건 신경쓸 필요없어."
이서우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위로할 겸 작게 덧붙였다.
"나중에 감옥갈 때 내 이름 대고 감형받아."
"뭐, 뭐라구요? 저희 감옥 가요?"
"당연하지. 우리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법을 몇 개씩 어기고 있는 줄 알아? 나중에 쓸모가 다하면 바로 감옥행 확정일걸?"
옆에서 기겁하는 서지유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꾸하자 그녀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이서우는 변함없이 진지한 얼굴로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팀장님, 공무원 시험은 도대체 어떻게 통과하신 겁니까?"
"... 나 낙하산인 거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 자, 일 끝났으면 다들 퇴근해서 쉬어. 내일 아침에 보자."
수사대는 박수와 웃음소리 속에서 해산했다.
굉장히 뿌듯한 기분으로 귀가한 나는 예리엘이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작게 혀를 찼다.
여러모로 아슬아슬한 차림새인 그녀는 조금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아, 오셨네요."
"먼저 자라고 했잖아?"
"명색이 신혼인데 서방님 없이 어떻게 혼자서 자요?"
"또 그런다."
나는 작게 핀잔을 주다가 잠시 말을 아꼈다.
예리엘은 기껏 은퇴했는데, 여행은 커녕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있는 신세라니.
물론 나를 배려한 것이겠지만 괜히 미안해졌다.
"... 수사대 일이 조금 안정되면 신혼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정말요? 좋아요! 어디로 갈까요?"
"일단 외국이 좋겠지. 국내는 아무래도 사람들 눈이 좀 부담스러울테니..."
예리엘에겐 어디가 그렇지 않겠느냐만, 되도록 조용한 곳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예리엘은 나와 핀트가 미묘하게 어긋났다.
"뭣하면 호텔로 가버리죠 뭐. 여행은 헌터 시절에 워낙 많이 다녀서... 물론 출장을 겸해서요."
"그, 그런가? 나는 레이드 같은 걸 다녀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어."
"후훗. 얼른 식사하고 쉬셔요."
나는 예리엘과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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