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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1위 헌터의 남편이 됐다-13화 (13/131)

〈 13화 〉 서장(13)

* * *

나는 예리엘과 함께 내 개인 사무실로 들어갔다.

원래는 팀장급에게 개인 사무실이 있을 리 없지만, 나는 자칭 팀장일 뿐이다.

예리엘은 아직 휑한 감이 있는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뜯어줬다.

그녀가 매일 이곳으로 출퇴근하는 것은 조금 어색할테니 내일부터는 오라클을 이용해서 후방 지원에 집중할 예정이다.

"오늘은 늦을 것 같으니까 먼저 돌아가."

"그냥 기다리면 안 되나요?"

"안 돼. 클럽이 문 닫기 직전에 돌입할거야. 한창 영업중일 때 돌입하면 민간인들도 많을테니..."

"그렇군요."

서지유가 조사하고 있는 클럽, k1의 현 소유주는 S랭크 헌터인 유시현이다.

따라서 해당 업소는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 가능한 대상.

나는 오라클을 이용해서 유시현이 k1에 머무르고 있는 것까지 확인했다.

납치 사건 희생자들의 스마트폰은 다른 곳에 버린 것 같지만, 본인의 것까지 내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오늘 하루, 내가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던 예리엘은 살짝 미안하다는 듯 물었다.

"혹시 양지에서 움직이는 게 너무 번거롭거나 한 건 아니죠?"

"무슨 소리를... 오히려 너무 쉬워서 감탄이 나오는데? 진작 이럴 걸 그랬어."

"그런가요?"

"당연하지. 공권력 몰래 음지에서 일을 준비하는 게 훨씬 힘들어. 예를 들면..."

나는 말을 하다가 눈앞의 여자가 누구인지 떠올리곤 그만뒀다.

그러나 예리엘은 내 밑천을 탈탈 털어먹겠다는 듯,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예를 들면요?"

"이거 본인 앞에서 말하긴 좀 그런데... 우린 일 벌이기 전에 당신 공식 일정부터 확인했어."

"네에? 어째서요?"

"그야 당신이 끼어들면 보통 파토나곤 하니까..."

"아하. 어쩐지 어느날부터 잘 안 보이더라구요. 저는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하시네요."

예리엘은 분하다는 듯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보면 거품을 물어댈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지금이 훨씬 편해."

공권력 그 자체가 된 덕분에, 사건 수사부터 해결까지 24시간 안에 가능하다니.

솔직히 말해서 예리엘이 오늘처럼 예뻐보인 적이 없다.

만약 그녀라는 뒷배가 없었다면 특별 수사관 임명 따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예리엘은 기분 좋게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정말 잘 됐네요. 우리 모두를 위해서요."

"그렇지. 나는 이거 정말 제대로 해볼거야."

만약 특별 수사대라는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되면 모든 헌터들을 제거할 필요 따윈 없을 것이다.

나는 그 뒤로도 예리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과거의 적수와 함께 살다보니 이야깃거리가 넘칠 수밖에 없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서 작전 회의를 실시했다.

서지유는 그새 마약까지 입수하는데에 성공한 듯 했으나...

나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다.

[팀장님, 이제 돌아가면 안 돼요?]

"안 돼. 그 정도론 한참 모자라."

[네? 어째서요? 제가 증거물까지 입수했는데요?]

"그야 저쪽 변호사가 엄청 유능하니까."

신입 변호사들이 꿈꾸는 직장 1위가 대형 로펌이라던 것도 옛말이다.

현대의 변호사들은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아니라 헌터 길드의 전속 변호사 자리를 노린다.

헌터 길드는 업무 특성상 변호사가 활약할 여지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에, 일거리도 엄청 많다.

길드의 벌이가 워낙 좋아서 보수도 빵빵하고, 대형 로펌보다는 업무량이 훨씬 적기 때문에 워라밸도 좋다고 한다.

물론 나는 거기까진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저쪽의 변호사가 유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스피커폰으로 전환해두곤 모두의 앞에서 공언했다.

"잘 들어, 우리 특별 수사대가 범인을 잡는 건 당연한 거야. 너무 당연해서 자랑할 것도 안 돼! 진짜 중요한 건 증거를 확보하는 거다."

"..."

"서지유가 증거물을 확보했지만, 그걸론 클럽 소유주인 유시현의 범행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어. 여차하면 종업원에게 덮어씌우고 빠져나갈 거야. 실종 사건과의 관계도 좀 애매해."

[그럼 어떻게 하죠?]

"최고는 역시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거지. 바디캠 같은 걸로 증거 영상도 찍으면서 말야. 아침 7시에 영업이 끝나면 그 때 압수수색 한다. 유시현은 현재 클럽에 머무르고 있어. 놈이 빠져나가려고 하면 조금 더 일찍 덮칠 수도 있다."

나는 무기고의 열쇠를 김정태에게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지유는 현장에서 대기. 유시현의 동향을 최대한 자세히 파악해. 놈이 떠날 것 같으면 바로 연락하고."

[... 알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즉시 출동 준비 마치고 클럽 근처에 잠복한다. 클럽 k1은 협회원의 소유라서 영장 없는 압수수색이 가능하다. 절대로 들키지 마라. 돌입팀은 전원 완전무장 실시."

"예!"

김정태와 팀원들이 빠릿빠릿하게 대꾸하며 무기고로 달려갔다.

반면 이서우는 몹시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아직 팀에 온지 12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완전무장하고 출동이라니, 당황스러울 법도 하다.

나는 그의 등을 탁 때리며 무기고로 향했다.

"기관단총 써본 적 있어?"

"예, 예전에 훈련에서 딱 한 번..."

"역시 엘리트네. 앨리스, 너는 어지간하면 뒤에서 구경만 해."

"글쎄. 과연 유시현이 순순히 잡혀줄까? 걔도 S랭크인데."

앨리스는 살짝 불안하다는 듯 읊조리며 나를 뒤따랐다.

나는 냉큼 팀원들과 함께 최신형 헌터 수트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방탄 방검은 물론이고 근력 보조 기능도 있는 우수한 장비다.

앨리스는 남자들이 옷을 갈아입는데 굳이 나가지도 않았다.

"너 유시현이랑 친하냐?"

"아니. 그 자식은 음흉하게 생겨서 예전부터 싫었어."

"... 생각해보니까 질문이 잘못됐군. 예리엘 빼고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긴 하냐?"

그제야 등을 홱 돌려서 무기고에서 나가는 앨리스.

내가 그대로 탄약 지급까지 마치자 이시우가 걱정스레 물었다.

"앨리스 감찰위원 님은 무장 안 하셔도 괜찮나요?"

"괜찮아. 쟤 장비가 우리 것보다 훨씬 비싸."

"예?"

"쟤 코트만 100단위였나? 무슨 개목걸이처럼 생긴 것도 꼴에 명품이래. 회중시계도 당연히 명품."

"회중시계는 능력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군요?"

"그러게 말야. 나도 어디 동화 나라에서 주워온 줄 알았는데."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준비를 마친 뒤에는 예리엘을 집으로 보낸 뒤, 지하 주차장으로 이동.

완전무장한 팀원들은 적당히 낡은 중고 승합차 2대를 나눠탔다.

앨리스는 살짝 불평했으나, 택도 없는 소리였다.

"이건 너무 낡은 거 아니야?"

"잠복용 차량이라서 어쩔 수 없어."

"조금 더 좋은 차도 있잖아."

"이게 제일 흔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굴러다니는 승합차야."

잠복용 차량은 다른 거 다 필요없고 눈에 안 띄는 것이 최고다.

다행히 안쪽은 청소가 잘 되어있어서 퀴퀴한 냄새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부우웅!

승합차는 전원을 태우자마자 지하 주차장을 뛰쳐나갔다.

이서우는 몹시 긴장되는 듯 몸을 살살 떨고 있다.

나도 첫 출동이다보니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그러나, 긴장감은 기나긴 대기시간 덕분에 완전히 녹아내렸다.

혹시 몰라서 일찍 나왔지만 클럽의 영업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은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거리에 사람이 그리 많진 않았다.

"날을 잘 잡았네."

"서지유 팀원에게서 정기 보고... 유시현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좋아."

"용의자가 도망치거나 하진 않을까요?"

"어차피 포위할건데 뭘. 유시현은 기동력이 좋은 타입은 아냐. 앨리스와 마찬가지지."

내 평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도 부정하진 못하는 앨리스.

그 단점 때문에 나를 놓쳐서 예리엘에게 꾸중까지 받았으니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지루한 대기시간을 거쳐서 겨우 영업 종료 시간이 되자, 안쪽의 서지유에게서 마지막 신호가 왔다.

우리는 차에서 우르르 내려 클럽을 완전히 포위했다.

클럽의 문지기로 보이는 헌터가 우리를 발견하곤 바짝 굳었다.

"무, 무슨..."

"협회 특별 수사대다. 헌터 연속 실종사건 때문에 압수 수색 나왔으니까 문 열어!"

"뭐, 뭐요? 그럼 영장이라도..."

공무원증을 내밀어도 도통 비키지 않는 문지기.

어디서 이상한 형사 드라마라도 봤는지, 아예 헛소리를 해대며 우리를 가로막았다.

그러자 김정태가 놈을 가볍게 제압해서 옆으로 밀쳤다.

"윽!"

"우린 그런 거 필요없어. 여기 총 안 보이냐?"

"돌입!"

완전무장한 대원들이 클럽 안으로 우르르 들어가자 테이블석에 앉아있던 서지유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나는 그녀를 도로 자리에 앉히며 수색을 지휘했다.

"너는 까불지 말고 가만히 앉아있어."

"아앗, 팀장님!"

"2조, CCTV 자료 압수해. 야, 유시현 어디있어? 너희 사장님 나오라고 해!"

"꺄아아악!"

적게나마 남아있던 손님들과 종업원들이 기관단총을 보곤 거의 발광했다.

하긴, 그들이 언제 이런 경험을 해봤겠는가.

나는 1조를 데리고 거침없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부로 이어지는 복도는 크고 튼튼한 철문으로 막혀있었다.

"앨리스."

"비켜!"

콰득!

그러나 앨리스가 뒤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들자 두꺼운 철문이 무슨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날카로운 잔해 사이로 몸을 던져넣자 비로소 유시현의 처소가 드러났다.

놈은 클럽의 안쪽, 넓은 사장실을 본인의 숙소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누, 누구야!"

"이런..."

나는 어둠 속에서 알몸의 남자를 발견하곤 인상을 찌푸렸다.

헌터 특유의 사기적인 체질 덕분에, 유시현의 몸은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본인이 무슨 마약왕이라도 되는 줄 아는 듯, 보기 흉한 장식물이나 조각상을 군데군데 놔둔 모습.

바닥에는 주사기와 약봉지, 그리고 의식을 잃은 여자들이 버려져 있었다.

여자들의 얼굴을 유심히 보던 김정태가 내게 말했다.

"실종자들입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그녀들은 마약을 구매하기 위해서 몰래 나왔다가 유시현에게 붙잡혀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나는 유시현에게 총을 들이밀며 윽박질렀다.

"유시현! 협회 특별 수사대다. 당장 바닥에 엎드려서 손 뒤로 돌려!"

"뭣? 특별 수사대?"

"그래, 헌터 연속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긴급 체포할테니까 순순히 항복해."

"시, 실종?"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유시현이 멍청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보아하니 정작 본인은 약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뭐 이런 치사한 놈이 다 있나 싶던 중.

놈이 뒤늦게 도주를 시도하려는 듯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앨리스가 앞으로 나서자 그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일단은 같은 S랭크라지만, 앨리스는 한국에서 한 손에 꼽히는 수준의 헌터.

게다가 지금처럼 기습을 당해서야 승산이 아예 없다.

만약 여기서 벗어난다 해도... 어디로 도망치겠는가?

내 뒷배는 다름아닌 예리엘 프로스트가 아니던가.

안 돌아가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던 놈은 이내 좋은 생각이라도 떠올린 듯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놈은 양손을 작게 들어올리며 내게 질문했다.

"잠깐, 잠깐만! 내가 인터넷 기사에서 봤는데... 협회 특별 수사대는 협회원만 수사할 수 있는 거 맞지?"

"그래. 너도 협회원이잖아. 그래서 이렇게 영장없이 압수수색도 할 수 있는 거야. 혹시 더 궁금한 거 있니?"

아까 예리엘에게 말했듯, 나는 공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돼서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드물게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데...

유시현이 곧바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놈은 보기 거북한 물건을 덜렁거리며 신나게 지껄였다.

"그럼 난 협회원 자격을 포기하겠어!"

"뭐?"

"나 유시현은, 현 시간부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에서 탈퇴하겠다고! 난 더 이상 협회원이 아니야. 알겠지?"

"... 너 잠깐만 기다려봐. 정태야? 방금 유시현 씨 발언,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거 맞아?"

"예, 팀장님. 지금 바디캠으로 녹화중이니까 구두로 탈퇴를 선언해도 효력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가 싶어서 김정태에게 묻자 예상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유시현은 이미 본인이 이겼다는 듯 제자리에서 방방 날뛰었다.

"그럼 이거 위법 수사지? 너희는 날 체포할 수 없어! 나는 이제 협회원이 아니니까! 너희가 확보한 증거물도 모두 위법..."

"푸, 푸하하핫!"

"하하하!"

"뭐, 뭐야... 다들 왜 웃는 거야? 내가 지금 농담하는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렇게 멋모르고 떠들어대는 꼴이라니.

이토록 시원하게 웃어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앨리스와 이서우를 제외한 팀원들도 모두 나를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한참동안 웃어대던 중. 앨리스가 뒤에서 작게 중얼거렸다.

"병신새끼.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뭐야?"

"우리 유시현 씨, 현대 사회가 아주 좆으로 보이셨구나?"

나는 앨리스를 대신해서 그에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오늘의 나는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한국에서 협회에 등록 안 된 헌터를 뭐라고 부르는지 몰라?"

"그게 무슨..."

"보통 몬스터라고 부르지. 보통 한국에서 협회원이 아닌 헌터는 존재 자체가 불법이거든."

"!"

유시현은 그제야 본인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깨달았다.

놈은 본인의 인권을 스스로 포기했다.

이젠 지금 당장 누가 유시현을 죽여도 죄가 아니다. 오히려 표창장을 받겠지.

"앨리스, 체포해."

"옷 입어 병신아."

앨리스는 당장이라도 유시현을 죽일 것처럼 사납게 쏘아붙였다.

바짝 얼어붙은 놈이 쭈삣쭈삣 옷을 챙겨입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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