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서장(12)
* * *
여성 헌터 연속 실종 사건.
협회에서 우리에게 수사를 명령한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난제였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그러하듯, 4명의 실종자들은 전원이 크고 작은 길드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법한 대형 길드도 있었다.
'우리에게 이 사건이 넘어왔다는 건, 길드에서 실종자들을 자체적으로 찾아낼 수 없었다는 뜻이야.'
실종자들은 모두 현직 헌터였으니 당연히 주변에서 간단한 수색 정도는 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찾지 못했다.
온갖 헌터 능력과 인맥을 동원해도 그녀들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CCTV나 뒤져보는 건 시간낭비일 확률이 높다. 어차피 그 정도는 피해자들이 소속된 길드들과 경찰에서 이미 했을테니까."
"자택에서 실종된 건 아니죠?"
"그래. 피해자들의 자택에는 침입의 흔적도 없고, 모두 제 발로 걸어서 나갔어."
사실 오라클로 미리 검색해보고 하는 말이지만, 팀원들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나는 그대로 준비해놓았던 자료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게 실종자들의 계좌 내역이다."
"우왓... 이 자료, 본인 동의는 없었던 거죠?"
"실종됐는데 어떻게 동의하냐? 애초에 우린 그런 거 필요없어."
전직 경찰인 이서우가 자료를 받자마자 탄식했다.
벌써부터 특별 수사관의 막강한 권한을 실감한 것이다.
나는 자료의 출금액 부분을 짚었다.
"자, 보시다시피 실종 직전에 피해자 전원이 출금을 했는데, 액수가 상당히 애매해."
"실종 이후에 추가적으로 출금이 되거나 하진 않았군요?"
"맞아. 피해자들의 돈을 노린 건 아니야."
괜히 길게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계속 모르는 체 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래서 중간 부분을 살짝 건너뛰고 결론부터 말했다.
"아무래도 마약 관련 범죄같다."
"마약?"
"먼저, 주변에 흔적이 아예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해보자."
4명의 실종자들은 모두 마지막 목격정보가 묘연했다.
훈련이나 던전 공략이 없는 휴일에 연기처럼 실종!
오라클을 이용해서 거주지 근처의 CCTV와 블랙박스를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는 없다.
1명이면 몰라도 4명 모두 이렇게 사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본인이 의도적으로 모습을 숨겼다면? 목격정보가 없는 것도 당연하지."
"설마 실종 직전에 마약을 구하러 갔다는 겁니까?"
"그래. 마침 통장에 찍힌 출금액도 딱 그 정도의 금액이야."
주색잡기와 마약에서 일단 '주'는 제외.
그리고 도박도 제외다.
만약 도박에 재미가 들렸다면 출금액이 이것보다 훨씬 컸을 것이다.
일단 여기까지는 동의한 서지유가 일리있는 반박을 꺼내들었다.
"혹시 남자에게 홀린 거라면요? 헌터 전문 제비라던가, 아니면 내연 관계라던가."
"주색잡기 중 '색'일 확률도 있지만, 아주 낮아. 여기 실종자들의 메신저 앱 내역이다."
"아..."
치정 문제가 엮여있다면 메신저 앱에 흔적이 남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실종자들의 내역은 모두 깨끗했다.
그래서 '색'도 제외다.
"따라서 소거법으로 마약이지."
"확실히 마약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맞긴 한데... 결과적으로 실종된 이유는요?"
"그건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서지유, 출동."
"네에?"
내 명령에 화들짝 놀라는 서지유.
나는 실종자들의 거주지를 바탕으로 예상 지점을 짚어줬다.
모두 서울에 살고있어서 그리 어렵진 않았다.
"홍대 쪽에서 헌터들이 마약을 매입하는 창구를 찾아봐. 뒷골목 개인 판매상 말고, 클럽 같은 곳으로. 현직 헌터들을 실종시킬 정도라면 어느정도 규모가 있는 놈들일테니까."
"그, 그런 걸 제가 어떻게 해요?"
"못 하겠어? 감옥 갈래?"
"..."
진짜로 못 할 것 같았으면 시키지도 않았다.
서지유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본인의 장비가 있는 사무실로 이동했다.
잠시 뒤에 회의실로 돌아온 그녀는 변신을 마친 상태였다.
원래 베이스가 좋긴 했지만, 화장을 끝내자 어디 귀한 집 아가씨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이 정도면 화장이 아니라 사기의 영역.
솔직히 지금 당장 감방에 처넣고 싶다.
"아까 받은 카드, 써도 되죠? 아무래도 돈냄새를 풀풀 풍기는 게 좋을테니까요."
"보통 마약 구하러 가는데 그렇게까지 하냐? 어디 한 번 마음대로 해봐. 아, 정태야."
"예. 팀장님."
"지유한테 2명 정도만 붙여줘라."
부팀장 겸 에스콰이어인 김정태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서번트 2명을 차출해서 서지유에게 붙여줬다.
이쪽은 경호보다는 감시 담당이라고 봐야겠지.
또다시 한숨을 삼킨 서지유가 냉큼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내가 느긋하게 보고를 기다리기로 하자 묘하게 개운치 못한 얼굴의 이서우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팀장님. 질문해도 됩니까?"
"질문은 언제든지 해. 괜히 혼자 고민하다가 헛짓거리 하지말고."
"감사합니다. 그, 헌터들이 그렇게 마약과 가깝습니까? 실종자 4명 모두 중견급은 되는 헌터인데 마약에 손을 댔다는 게 좀..."
"가깝고말고."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멀찍이 앉아있던 앨리스가 눈을 좁게 떴다.
"헌터라고 해봤자 극소수의 최상급을 제외하면 대부분 현장에서 구르고 뛰는 육체 노동자야. 사실상 소모품 신세지. 언제 죽거나 다칠지 모르고, 심각한 부상이라도 입으면 현장 복귀가 불가능할 수도 있어."
"으음..."
"그런 극한의 환경에서 일하는 헌터들은 아무래도 육체적 쾌락에 대한 내성이 낮을 수밖에 없어.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어차피 돈도 많겠다... 하루하루를 마음껏 즐겨야 하지 않겠어?"
헌터들의 금융범죄율이 유달리 낮은 것도 이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들은 한가하게 금융범죄나 저지르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차라리 술 먹고 마약하면서 떡치거나 도박하는 쪽이 훨씬 재미있고 유익하다.
"게다가 금융인들은 약삭빨라서, 헌터들에게 쉽게 당해주지도 않아."
금융인들은 국가가 헌터들에게서 그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채자마자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물론 그래봤자 A등급 이상의 헌터가 작정하고 털어버리면 뚫리겠지만...
일반적인 헌터들에게 금융 범죄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이서우는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납득이 되지 않은 얼굴이었다.
"최근들어 마약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 접근성이 좋으리라곤..."
"의외인가? 그럴 수도 있지."
옛날에 한국은 마약 청정국이라는 소리가 국뽕 비슷하게 나돌긴 했는데...
사실 그게 아주 의미없는 헛소리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인구수에 비해서 땅이 굉장히 좁고, 북한 때문에 사회 감시망도 발달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사실상 섬나라라서 육로를 이용한 수출입이 아예 불가능하다.
즉, 마약을 단순히 유통하는 거라면 몰라도 직접 조제하기엔 굉장히 가혹한 환경이다.
"그런데 헌터들의 등장으로 사정이 많이 바뀌었지."
"아앗..."
그렇다. 당장 나만 봐도 체내에서 특수한 신물질을 합성할 수 있다.
헌터들 중 몇몇은 아예 걸어다니는 화학공장이나 다름없다.
놈들 때문에 국내의 마약 조제량은 급상승...
이젠 마약 청정국의 칭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러나 이서우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놈도 있지 않습니까. 그린 더스트라고..."
"뭣?"
"헌터 연쇄 살인귀. 이번 연속 실종 사건이 그린 더스트의 범행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설마 여기서 내 이름이 나올 줄이야.
멀리 떨어져서 앉은 앨리스는 소리없이 웃으며 나를 놀려댔다.
김정태와 휘하의 보안팀은 아예 이서우를 땅 속에 묻어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눈총을 주며 황급히 변명했다.
"야, 그린 더스트는 이런 짓 안 해."
"그런가요?"
"그래. 그 새끼는 관심종자라서, 헌터를 죽인 다음에 보란듯이 자랑한다고. 범행 수법이 아예 달라! 애초에 이런 잔챙이 헌터들은 어지간해선 건드리지도 않아. 만약 그린 더스트의 범행이었다면 연속 실종 사건이 아니라 연속 살인 사건이 됐겠지."
"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그린 더스트에 대해선 잘 몰라서..."
"그놈이 다녀간 현장에선 방사능이 검출되니까 싫어도 알 수밖에 없지."
그린 더스트로서의 활동은 일종의 숙청이라서, 매번 보란듯이 시체를 전시해놓곤 했다.
이서우는 내 진심이 가득 담긴 추리를 듣곤 겨우 납득했다.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헌터쪽은 잘 모르나보네. 틈틈이 공부해라. 계속 가만히 있기도 뭣하니까 자리를 좀 옮겨볼까? 무기고로 가자."
우르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팀원들도 일제히 나를 따랐다.
특별 수사대의 무기고에는 협회에서 직접 준비해준 장비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김정태는 창고에 가득한 신형 장비들을 발견하곤 드물게도 웃었다.
"최신형 헌터 수트... 자동화기도 쓸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적어도 기관단총 정도는 있어야 헌터들의 상대가 될테니까. 아, 이걸 봐라."
나는 탄통의 탄을 꺼내서 모두에게 보여줬다.
대부분은 평범한 탄이었지만 탄두가 초록색으로 칠해진 탄환도 한 통 있었다.
"이건 그린 더스트 탄두다. 한 통밖에 없으니까 아껴서 써."
"그린 더스트 탄두라면..."
"헌터들의 능력을 무효화하는 특수탄이지. 함량이 너무 적어서, 최상급 헌터는 힘들겠지만 그 밑으론 잘 먹힐거야. 놈이 현장에 남겨둔 물질로 만든 거다."
"이런 것도 있었군요."
이서우가 감탄하자 뒤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앨리스.
나는 그녀에게 주먹을 흔들어보이며 각자의 장비를 분배했다.
무기고의 문을 다시 봉인하고 밖으로 걸어나오던 중.
내 스마트폰에 서지유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녀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속사포처럼 말했다.
[찾았어요. 마포구, 클럽 k1이에요.]
"확실해?"
[며칠 전에 실종자들 중 한 명을 그곳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어요. 정작 이쪽은 아직 실종된 줄도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닌가봐요.]
"뉴스 보도가 늦어져서 살았군. 좋아, 그대로 잠입해봐."
[근데 저 반지랑 귀걸이 좀 샀는데 끝나고 가져도 돼요? 혹시 반품해야 하는 건 아니죠?]
"너 가져."
뚝.
나는 통화를 끊어버리곤 클럽 k1의 현 소유주를 찾아봤다.
"홍대의 클럽 k1. 현 소유주는... S랭크 헌터, 유시현입니다."
"빙ㄱ..."
"안 돼, 빙고는 금지야. 하지마."
"예, 팀장님. 죄송합니다."
내게 제지당한 김정태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것을 못 본 체 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아직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던 예리엘이 저녁 도시락을 주문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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