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서장(11)
* * *
나를 비롯한 특별 수사대는 협회 본청의 층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무실과 회의실, 무기고는 물론이고 헬스 시설까지 한 층에 완비.
무척 넓으면서도 호화로운 사양의 본부는 그저 우리를 위한 것만이 아니다.
여차할 때엔 꼬리를 자르기 쉽도록 아예 층 하나를 따로 떼어준 것이다.
그래도 넓고 쾌적한 사무실은 역시 좋다.
이서우를 데리고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미리 도착해있던 멤버들을 간단히 소개해줬다.
책상이 듬성듬성 놓인 사무실에는 불과 10여명 정도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들 중 절반 정도는 내 호위역 에스콰이어인 김정태가 데리고 있던 서번트들이었다.
'회사의 인원은 가급적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사실상 내가 뽑은 것은 전직 경사인 이서우와 횡령범 서지유 둘 뿐이다.
이래서야 서번트들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소한 팀이 굴러갈만한 인원수는 확보해야 하니까.
"자, 모두 모여. 대충 다 왔네."
꼴랑 이게 전부라고?
이서우는 그렇게 생각하는 눈치였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나는 태연히 내 에스콰이어인 김정태부터 소개했다.
키가 190에 달하는데다 체격도 장난이 아니라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이쪽이 우리 부팀장인 김정태. 전직 대통령 경호원이야. 헌터들에게 밀려난 다음에는 용병 활동도 잠깐 했어."
"잘 부탁드립니다."
"정태는 우리 팀의 보안 담당이기도 하니까, 관련 지시는 반드시 이행할 것. 안 들어봤자 너희만 손해야."
김정태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모두에게 인사했다.
그의 뒤에 정렬한 서번트들의 소개는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이쪽은 서번트들 중에서도 지원자만 뽑았는데, 어차피 지원률이 100%라서 큰 의미는 없다.
원래 회사 생활이란 것이 이런 거 아니겠는가.
"이쪽은 정태랑 예전부터 함께했던 팀원들. 이름은 차차 알아봐."
"잠깐, 저는 여기에 왜 오게 된 건가요? 당신 그 예리엘 프로스트의 남편 맞죠?"
이서우와 마찬가지로 징집당한 횡령범, 서지유가 살짝 불만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김정태를 비롯한 호위팀의 분위기가 조금 살벌해졌다.
나는 그들에게 눈총을 주곤 서지유의 소개를 시작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예쁜 귀염상의 여자였다.
"여기는 서지유. 전직 금융계 공무원이고, 현직 횡령 전과범이다. 이 여자한테 돈 빌려주지 마라."
"뭣? 당신 정말..."
"서지유는 본인 동의 없이 강제로 징집당했다. 전과범이라서 여기서 쫓겨나면 교도소행이다. 팀원이라 생각하지 말고,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 여차할 땐 버려도 된다."
서지유는 좀 너무하다 싶은 대우에 참다못해 성을 냈다.
"잠깐만요! 저는 집행유예인데 교도소행이라니..."
"멍청한 소리 하지마라. 대한민국에서 징집 거부는 그 자체로 범죄야. 이거 여자들은 잘 모르더라."
"..."
"그렇다고 공짜로 일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놓은 카드를 꺼내서 서지유에게 휙 던져줬다.
보통 카드와는 조금 다른 감촉과 무게에 서지유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너는 첩보 담당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와 주변 인물들에게 접근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역할이지. 공작비는 그걸로 해결해라. 옷, 보석, 자동차, 가게... 필요하다면 뭐든 사도 좋다."
"지, 진심이에요?"
서지유는 내 말을 의심하는 듯 했으나...
지금 내 옆에는 예리엘 프로스트가 있었다.
한국에서 예리엘은 살아있는 여신으로 통한다.
아무리 헌터들에게 관심이 없어도 들어볼 수밖에 없는 이름.
진한 돈냄새를 맡게 된 서지유는 눈에 띄게 고분고분해졌다.
나는 다음으로 이서우를 소개했다.
그는 앞선 사람들의 화려한 스펙에 살짝 주눅든 것처럼 보였다.
"여기 있는 이서우 씨는 조금 전에 경찰에서 부당하게 쫓겨났다. 25세에 경사면 상당한 엘리트지. 혹시 최연소야?"
"잘 모르겠습니다. 제 근무처에선 최연소가 맞았는데..."
"맞네. 최연소래."
이서우의 경력도 결코 만만찮았으나...
정작 그는 그저 부끄러운 얼굴이었다.
내쪽을 빤히 쳐다보던 서지유가 방정맞게 끼어들었다.
"뉴스에서 봤는데, 팀장님은 25세 검사셨죠? 그것도 최연소인가요?"
"아니. 검사쪽은 60년대부터 이미 레전드가 있어서... 그쪽 최연소 기록은 21세야."
"우와."
"여튼 이서우 씨도 굉장히 유능한 사람이야. 알겠지?"
내가 그렇게 마무리를 하자 이서우가 주눅든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저는 무슨 역할입니까?"
"너? 특별히 역할 같은 건 없는데?"
"네?"
"아,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일거리는 차고 넘칠 거야."
나는 이서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며 말했다.
어차피 팀원이 너무 적어서 다들 죽어라 뛰어야 한다.
게다가 이 팀에 선발됐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엘리트라는 뜻이다.
"내가 며칠 동안 대한민국 정규 공무원 150만 명의 자료를 모두 뒤져서 뽑은 게 바로 너희들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아, 예..."
"아차. 마지막으로, 이쪽의 앨리스는 특별 수사대의 감찰위원이다."
"뭐라고?"
지금껏 가만히 있던 앨리스가 내 소개에 화들짝 놀랐다.
"나도 팀원이었어?"
"어, 너 팔렸어. 협회법상 특별 수사대에는 감찰위원 겸 헌터 지원 인력이 한 명 있어야 하거든."
"..."
앨리스는 환하게 웃고있는 예리엘을 쳐다보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의 역할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현역 헌터가 특별 수사대와 어울려다니면 동료들에게 따돌려지기 딱 좋다.
게다가 여차할 때엔 수사팀을 지원해줘야 하니까 수준급의 전투력은 필수다.
다행히 앨리스는 예리엘 외의 인맥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는 녀석이었다.
전투력이야 뭐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내가 그대로 인사를 마무리하려고 하자 예리엘이 끼어들었다.
"이제현 팀장님의 처인 예리엘 프로스트입니다. 부군을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
이서우가 인사를 받고 있자 에스콰이어인 김정태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190cm의 장신이 깍듯이 인사하는 것은 제법 기이하면서도 압력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뒤늦게 허리를 꺾으며 인사했다.
나는 박수를 한 번 치며 자리를 정리했다.
짜악!
"좋아. 인사는 이 정도로 하자고."
"앗, 팀장님은 건너뛰는 건가요?"
"어차피 내 경력은 뉴스에서 다 봤잖아."
나는 서지유의 딴죽을 가볍게 받아넘기곤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리팀의 경사스런 첫 수사는 협회에서 직접 지정해줬다."
당연하지만 우리에게 거부권은 없다.
협회장은 이번에 특별 수사팀을 출범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무리를 해줬기 때문이다.
이건 사회로 치면 대통령이 멋대로 계염령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따라서 헌터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빠르게 사건 하나를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여성 헌터 연속 실종 사건! 상당히 괜찮은 건이지."
"다짜고짜 연속 실종 사건이라니..."
"그런 사건이 있었나요?"
"아직 제대로 보도는 안 됐어. 이런 뉴스는 헌터 길드들이 엄청나게 싫어하거든. 지금까지 실종된 인원은 총 4명. 등급의 격차는 좀 있지만, 전원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여성 헌터들이다."
협회에서 굳이 이런 사건을 지정해준 이유는 뻔했다.
우리가 헌터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뜻이다.
나도 상당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을 해결하면 헌터들도 특별 수사대의 출범을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하자면 헌터 범죄가 아니라, 헌터 대상 범죄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
어차피 헌터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시점에서 평범한 범죄는 아니다.
명목상 외부인인 예리엘은 이쯤에서 한 발 빠졌다.
나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서 관련 자료를 나눠줬다.
물론 팀원들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린 경검 소속이 아니니까, 오직 협회 소속의 헌터들 상대로만 개입할 수 있어. 그건 언제 어디서나 명심해라."
"협회 소속의 헌터들을 상대로는 뭐든지 해도 되는 겁니까?"
김정태가 다소 과격하면서도 좋은 느낌의 질문을 던져줬다.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함정수사, 감청, 영장 없는 압수수색... 뭐든지 가능하다."
"그, 그런..."
불과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현역 경찰이었던 이서우가 내 말에 치를 떨었다.
사실 이거 법리적으로는 진짜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인 것이다.
특별 수사대의 권한을 활용하면 멀쩡한 헌터를 범죄자로 만들어버리는 것도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헌터들 상대로 수사를 할 것이라면 이런 권한은 필수다.
나는 차분히 이서우를 비롯한 팀원들에게 그것을 설명해줬다.
"헌터 범죄 뿐만이 아니라, 원래 모든 범죄의 수사는 유죄 추정에서 시작된다. 아, 경찰은 사후처리 전문이라서 개념이 좀 다른가?"
"..."
이서우는 경찰을 낮잡아보는 말에 발끈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경찰에 대한 모든 애정과 자부심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놈들은 헌터 능력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니까, 이런 초월적인 권한을 활용하지 않으면 절대로 못 잡아. 그건 서우 너도 잘 알겠지?"
"... 그렇습니다."
이서우가 당했던 것처럼, 투명화 능력을 지닌 헌터가 CCTV 자료를 훔친다든가, 전자계 능력을 지닌 헌터가 말소시킨다든가 하면 증거물 따윈 남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상 그림자와 싸워야 한다.
헌터들은 자금력도 빵빵해서 증인 매수 정도는 태연히 저지른다.
나는 마지못해 납득한 이서우의 앞에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직접 정립한 헌터 범죄학 이론이었다.
"민간인이 헌터를 납치한다거나 하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연속 실종 사건의 배후는 아주 높은 확률로 헌터일 거다. 가장 먼저 실종자들의 정보부터 조사해봐. 특히 마약과 술, 섹스, 그리고 도박 관련을 중점적으로 조사해라."
"마약, 술, 섹스, 도박이요?"
"그래."
마약과 술, 섹스, 그리고 도박.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리는 4가지 요소!
옛말에는 주색잡기라고 했는데, 현대로 오면서 마약이 추가됐다.
자고로 강력범죄는 이 4가지 요소와 뗄래야 뗄 수가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헌터 범죄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헌터들은 완전 밑바닥이 아닌 이상, 의식주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만큼 돈을 벌기 때문이다.
즉. 보통 헌터 범죄는 생활고와 연관이 없다.
이건 내가 관련 자료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며 얻어낸 결론이었다.
"4명의 피해자들은 평소에 술을 크게 즐기진 않았다. 그러니까 술은 일단 제외."
"혹시 금전이 목적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아직 몸값 요구 같은 건 없다고 하지만."
"가능성이 매우 낮다. 헌터가 돈을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고 마음먹으면, 같은 헌터를 납치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 얼마든지 있거든."
"아하..."
"물론 나처럼 몸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경우는 제외하고."
나는 지난번의 납치 시도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회의실의 팀원들도 쓰게 웃으며 피해자들의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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