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서장(10)
* * *
오라클은 사용하기 무척 어려운 컴퓨터였다.
전자적으로 처리되는 일이라면 거의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자유도와 함께 조작 난이도까지 덩달아서 급상승해버린 케이스.
한예진의 표현에 따르면 매번 일일이 새로 코딩을 하는 수준의 난이도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다른 마스터들과 에스콰이어들이 만들어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써먹었다.
그러나 예리엘은 아주 빠르게 오라클의 사용법을 익혀나갔다.
옆에서 보고 있으니 살짝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게 천재라는 건가.'
그래도 처음이다보니 막히는 부분이 없을 수는 없다.
나는 내 스마트폰에 직접 오라클의 접속 코드를 입력하며 시범을 보여주기로 했다.
이 접속 코드를 이용하면 외국에 있는 오라클의 본체에서 힘을 빌려올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
"자, 이게 전자장비 원격 조작용 앱이고, 이건 특정 홈페이지를 마비시킬 때 쓰는 거야. 이걸 쓰면 은행 전산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지."
"설마 프로그램을 직접 만드신 건가요?"
"아니. 다른 마스터들과 에스콰이어들이 만들어줬어."
"아하. 확실히 편하겠네요. 감사해요."
순수하게 감사를 표하는 예리엘과 달리, 앨리스는 앱의 기능을 보곤 혀를 내둘렀다.
"이러니까 그린 더스트를 잡을 수가 없었지."
"혹시 서방님의 취향 같은 걸 찾는 앱은 없나요?"
"그냥 당신이라고 불러."
너무도 낯뜨거운 호칭에 당황하고 있자 쿡쿡 웃는 예리엘.
이 여자가 이렇게 장난기가 많은 줄은 몰랐다.
매번 이런 식으로 놀림받느라 가장의 권위가 위태위태하다.
애초에 내가 가장이 맞는가도 좀 애매하지만, 예리엘은 명목상 은퇴했으니까 그냥 가장이라고 쳐도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취향?"
"성적 취향이라든가..."
내가 진짜 완전 호구 취급을 당하고 있구나.
왜, 취향을 밝히면 맞춰주시려고?
예리엘을 당황시키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자 그녀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내 취향은... 남존여비라고 해야하나?"
"엣..."
"역시 침대에선 고분고분한 여자가 좋지. 여자가 남자한테 기어오르거나 하면 못 할 것 같아."
"..."
너무 대놓고 개소리를 해대서 그런지 이번에는 앨리스조차 별 말이 없었다.
녀석은 나를 뻔히 쳐다보며 불쌍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뿐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확실히 예리엘에게 한 방 먹였다.
예리엘은 입을 가린 채 한참동안 아무말도 못했다.
"아앗..."
"애초에 다른 사람 있는데 그런 질문 하지마."
"네, 죄송해요. 앨리스는 정말 동생 같은 친구라서."
"..."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내 업무에 집중하자...
머지않아 눈에 띄는 인재가 하나 나타났다.
헌터 협회 특별 수사대의 사실상 첫 팀원.
징계 기록이 있어도 능력 위주로 보자고 마음먹은 것이 통했다.
"오, 이 여자 괜찮네."
"여자인가요?"
"응. 횡령범."
"네에?"
나는 대답 대신 예리엘과 앨리스에게 자료를 보여줬다.
일단 다른 범죄가 아니라 횡령이라는 것부터 플러스 요소다.
"한국에서 범죄를 꼭 하나 저질러야 한다면 역시 횡령이지. 사기죄보다 집행유예 비율이 훨씬 높고, 처벌도 솜방망이니까."
"서지유. 금융계 공무원. 횡령 금액은... 10억? 이 인간은 이제 공무원도 뭣도 아닌 전과자잖아?"
"그렇지."
하지만 보통 전과자가 아니다.
서지유의 수법은 매우 지능적이고 치밀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타고난 미모를 이용하여 주변 사람들의 '자발적인 호의'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실제로 재판 당시에는 그녀를 변호하러 왔던 증인들이 한가득이었다고 한다.
법률에도 비교적 해박해서, 결국 최종형은 집행유예.
"만약 운이 조금만 좋았다면 걸리지 않았을지도 몰라.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인재야."
"도대체 어딜봐서... 아앗."
뒤늦게 내 뜻을 눈치챈 앨리스가 작게 혀를 찼다.
오라클 덕분에, 우리는 전자전에서 거의 무적이다.
하지만 서지유의 전문분야인 아날로그 쪽에서는 비교적 힘이 약하다.
서지유는 이 약점을 보강해줄 수 있는 인재다.
"어차피 인성은 다들 개판인 것 같으니까 능력 위주로 뽑자고."
"아무리 그래도 횡령범은 좀 그렇지 않아?"
"괜찮아. 내 밑에선 횡령할 필요 없으니까."
"..."
앨리스는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침묵했다.
예리엘은 아예 처음부터 내게 맡겼다.
그렇게 겨우 3번째 팀원을 찾았으나...
4명째는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음지에서 활동해줄 인원들도 필요한지라, 남은 팀원들을 모두 에스콰이어나 서번트로 채울 수도 없는 노릇.
지루한 탐색을 이어나가던 나는 저녁 즈음에야 적합자를 발견했다.
"오, 이 녀석은 좀 쓸만하겠는데... 예리엘. 내일 나랑 같이 좀 나가줄래?"
"물론이죠. 어디로 가나요?"
"경찰청."
예리엘은 말이 나오자마자 내일의 외출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서대문구의 경찰청 본청은 썩 세련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멋대가리 없는 육면체 건물에, 쇠창살 같은 느낌의 기둥들이 빼곡하게 늘어서있는 모습.
나는 예리엘과 함께 차를 주차하곤 곧바로 입장했다.
당연하지만 앨리스도 함께였다.
앨리스는 벌써 인내심이 바닥난 듯, 나를 채근했다.
"4번째 팀원은 경찰청 본청 근무자야? 그럼 나름대로 엘리트네?"
"아니. 그 양반은 오늘 징계 위원회 때문에 여기에 온 거야."
"징계 위원회?"
원래 굳이 본청에서 징계 위원회를 해야하는 사안은 아니었으나...
아무래도 기를 죽이기 위해서 일부러 여기까지 불러낸 것 같았다.
예리엘과 찰싹 붙은 채 본청 건물에 입장하자, 우리를 막아설 타이밍조차 잊어버린 듯한 직원들.
나는 그들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이서우 씨 징계 위원회, 어디서 진행중입니까?"
"저, 징계 위원회는 외부인 출입 금지인데..."
콰앙!
직원이 잠시 망설이고 있자 위층에서 거친 소음이 터져나왔다.
누가 책상이라도 걷어찬 것 같은 소리.
나는 피식 웃으며 그곳으로 향했다.
문제의 장소 근처에선 경찰들이 괜히 서성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네가 경찰조직 전체의 위신을 크게 떨어뜨린 거 몰라!"
징계 위원회를 개최한 사람은 어지간히도 분노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쪽의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중앙에 앉혀진 징계 대상자는 안색이 검게 죽어있었다.
"여, 여긴 외부인 출입 금지입니다! 나가세요!"
"저희는 신경쓰지 말고 계속하시죠."
징계위원의 자리에 앉은 사내가 내게 눈을 부라렸으나, 정작 징계위원회장은 마지못해 납득했다.
아마 예리엘이 미리 손을 써둔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도, 한국에서 감히 예리엘에게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우리에게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은 듯 최대한 빠르게 진행했다.
위원회장이 징계 대상자에게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말했다.
"이서우 경사.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세요. 그럼 바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어야 용서를 구하죠."
시체같은 얼굴의 사내는 이미 포기했다는 듯 영혼없이 대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그저 순찰 중에 현역 헌터의 성추행 현장을 발견하곤 끼어들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은 동료 경찰들의 비웃음과 징계위원회였다.
심지어 함께 순찰을 나갔던 동료까지 증언을 번복하며 그를 버렸다.
정작 성추행 피해자는 현장에서 달아나 완전히 잠적해버렸고, 유일한 증거물이 될 CCTV 영상도 온데간데 없었다.
그저 헌터나 헌터 길드에서 먼저 손을 썼을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성추행을 저질렀던 헌터는 아예 이서우에게 고소까지 걸어놓았다!
이쯤되면 본인이 진짜로 잘못봤던 것이 아닌가 헷갈릴 정도.
그러나 징계위원회의 사람들은 그의 결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경찰 조직의 위신을 추락시키고, 감히 상부에 거스른다는 것이다.
그들은 본인들의 권위가 이런 식으로 손상되는 사태를 참을 수 없었다.
일개 경사가 경찰청의 결정에 반발한다는 것은 너무도 모욕적이었다.
징계위원회장은 나무 망치를 집어들며 윽박질렀다.
"마지막 기회라니까!"
"몇 번을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투표로 이서우 경사의 처벌을 결정..."
"잠시만요. 투표 전에 추가적으로 제출하고 싶은 증거물이 있습니다."
"뭐요?"
내가 앞으로 나서자 무척 당황하는 위원장.
당사자인 이서우도 눈을 휘둥그레 뜬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들의 앞에서 영상을 하나 공개했다.
어제 오라클을 사용하여 입수해둔, 사건 당시의 CCTV 영상이었다.
없던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있었던 영상을 복구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다.
'가해자의 소속 길드에서 나름대로 빨리 손을 쓴 것 같지만,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이, 이건..."
[꺄악, 도, 도와주세요!]
피해자의 생생한 비명과 그것을 억누르는 성추행범.
뒤늦게 달려온 이서우 경사가 몸싸움을 벌이고, 동료 순경은 멀리서 구경. 심지어 피해자가 허둥지둥 도망치는 모습까지...
CCTV에는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이토록 강력한 증거물이라서 길드가 부랴부랴 움직인 것이리라.
그러나, 정작 경찰들의 얼굴은 불쾌함으로 물들어있었다.
역시 그들은 이서우의 결백 따윈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감히 상부의 권위에 도전한 이서우는 그들에게 있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반역자였다.
"잠깐, 그거 끄세요!"
"어디서 그런 조작 영상을 가지고 와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거 관심없죠?"
나는 쓰게 웃으며 이서우에게 스마트폰을 빌려줬다.
그는 그저 멍하니 영상을 확인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크흑, 흐윽..."
"나가! 당신, 지금 당장..."
"이 사람, 필요없으면 내가 받아가지."
"뭣?"
내가 이서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위원회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서우 본인까지 화들짝 놀랐다.
나는 특별 조사관 신분증을 들이밀며 간단히 설명했다.
"징집이다. 이제 이서우는 경찰청 소속이 아니니까 징계는 일시 중지야. 나가자. 아, 아직 경찰 조직에 미련이 남아있다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아."
그대로 자리를 떠나자 잠시 굳어있던 이서우가 허둥지둥 짐을 챙겨서 나를 따라서 나왔다.
아직 이해는 한참 모자란 것 같았으나...
저 공간에서 꺼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저, 저기..."
"팀장이라고 불러."
"팀장님. 징집이라뇨? 무슨 전쟁이라도 하러 갑니까?"
이서우는 많고 많은 질문을 놔두고 가장 궁금한 부분부터 물어봤다.
나는 그의 질문이 마음에 들어서 간단히 대답해줬다.
"그래."
"..."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이서우는 더 이상 아무 질문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를 차에 태우곤 협회 본청의 특별 수사본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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