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238화 (238/238)

〈 238화 〉 티나(130)

* * *

"그래? 그냥 예의 상 하는 말은 아니지?"

"응. 기레스한테 딱 맞는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해."

"그래도 이거보다 더 효율 좋은 기술이라던가.. 뭔가 생각해 둔 거 있지 않아?"

사실 기레스는 소피아의 잠행 기술에 대한 큰 미련은 없었다.

다소 자신의 생각을 인정 받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서 필사적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달리 말하면 그것 뿐으로.. 소피아가 자신이 생각한 기술보다 더 좋은 기술을 가르쳐 주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고심했던 시간을 내버릴 수 있는 기레스였다.

"생각해 둔 건 있지만... 기레스가 생각한 것보다는... 좋지 않아."

"뭐? 그럴리가 없잖아? 아부는 그만 떨고.. 생각한 게 있으면.."

소피아는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는 듯 너스레를 떠는 기레스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으응. 아부가 아냐. 정말로 내가 생각한 건 기레스 네가 생각한 것보다 별로야. 아무래도 기레스는 강해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쪽도 고려하면서 생각하고 있었거든."

'진짜냐...'

나름 실용적이라 자부했고, 자신도 있었다지만, 사실 티나나 클로에로부터 영감을 받아 대충 포장한 면도 없지 않았던 터라, 기레스는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은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생각했다.

'하지만, 소피아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

기레스바라기니 뭐니 하지만, 소피아는 기레스에 대한 올바른 선택에 대해서는 어지간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기레스에게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토록이나 빠져 있는 기레스를 학대하다시피까지 하면서 기술을 몸에 주입시킬 각오까지도 다지는 소피아다.

기레스가 억지를 부리면서 밀어붙힌다면 몰라도, 이렇게 본인이 나서서 더 좋은 기술이 있다면 가르쳐 달라고 청하고 있음에도 기레스의 기술이 더 낫다고 말하는 건 빈말일 리가 없는 것이다.

'흐음..'

"근데.. 내가 가르쳐 달라고 해놓고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내가 생각한 이 기술이 그정도로 대단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네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럼 조금.. 보여줄까?"

"응?"

소피아의 말에 반문하기가 무섭게 기레스는 뭔가 혼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버렸다.

'어...?'

소피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눈을 부라리고 집중해서 보면 분명 소피아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상이 흐릿한 것이, 마치 심령사진에 찍힌 무언가의 유령이나, 어둑한 배경의 일부 같은 느낌으로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가 힘들었다.

'뭐야... 이게..'

분명히 눈앞에 소피아가 있다는 것이 보이는데도 인지하기가 힘든 마법같은 감각에 기레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투명이라기보다는 카멜레온의 위장 같은 느낌이지만, 단순히 위장이라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비현실적인 느낌이 뒤섞인 감각이었다.

"음?"

살짝 소피아가 소리를 내고, 문득 정신을 차린 기레스는 소피아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윽..."

그리고 다시 소피아가 있는 곳을 돌아 보았을 때, 그곳에 소피아는 없었다.

'아니...!'

두리번 거려봐도 한번 시야에서 놓쳐버린 소피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보여준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방에 있을텐데..'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건 기본이요, 움직이는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사람 특유의 기척조차도 전혀 나지 않는 상황, 마치 소피아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 듯한 느낌에 정신없이 두리번 거리는 기레스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얍."

"우와악."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 정신없이 두리번 거리던 기레스는 무언가 어깨에 닿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며 고꾸라졌다.

"기레스 답지 않게 엄청 놀라네."

놀란 기레스에게 소피아는 장난스레 어깨에 올려두었던 검지손가락으로 뺨을 꾹 누르면서 살포시 미소지었다.

"뭐, 이런 느낌인 거야."

"내가 기술을 배우면 이런 말도 안되는 짓거리를 할 수 있다는 거야?"

"전부는 안되겠지만, 비슷하게는? 마지막에 보여준 건 시야보다 빠르게 사각을 점하는 거니까.. 그런 건 무리겠지.. 지금이 밤이니까 더 잘 먹힌 것도 있을거고.."

'낮이라면 아까보다는 좀 더 잘 보인다는 건가? 그렇다 해도 대단한데.. 이러니 마을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을리가 있나.'

한번 눈앞에서 몸소 체감하고 나니 마을 사람은 물론이고, 젤가 같은 날고 기던 무인조차 소피아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게 십분 이해가 되는 기레스였다.

'좋아..'

실실 비틀린 악당의 미소를 짓는 기레스를 보고 소피아는 어딘지 소박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마음에 든 모양이네.'

"그럼 이제.. 마석인가 마핵인가 하는 그걸 가져오면 되나? 기술이라는 건 어떻게 전해지는거야? 오늘 내로 배울 수 있는건가?"

"일단 내가 기술의 감각을 마핵에 담으면 기레스가 사용하는 걸로 배울 수 있기는 해서, 원한다면 오늘에라도 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하지만?"

"좀 더 정교하게 갈고 닦아서 담는 게 좋지 않을까?"

조심스레 묻는 소피아의 말에 기레스는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맞는거겠지. 그러니까 일단 담아야 된다 이거지?"

기레스는 구석에 숨겨 둔 마핵을 꺼내와 소피아에게 건네주면서 그대로 몸을 밀착해 그녀의 몽글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응하아...♥"

얇은 천 하나를 두고 아슬아슬하게 쓸어내린 기레스의 음흉한 손가락에 소피아는 그대로 끊어질 듯한 달콤한 숨소리를 내면서 슬그머니 기레스의 손을 뿌리쳤다.

"!?"

"안돼. 기레스."

"왜?"

"말했잖아. 집중해야 한다고.. 이대로 하게 되면, 계속 생각나서 집중하지 못할 것 같단 말야."

소피아의 변명을 들은 기레스는 아쉬워 죽겠다는 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오히려 안하면 욕구불만으로 집중 못하는 거 아냐?"

그런 기레스의 표정을 보면 소피아는 기술이니 뭐니를 떠나서 순수하게 자신이 요구받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 버린다.

"그렇게 말해도 오늘은 안돼. 중요한 기술이잖아?"

한때 모성 때문에 감미롭기 짝이없는 쾌락마저 저버렸던 소피아의 고지식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기레스는 목까지 넘어온 성욕을 꾸역꾸역 삼켰다.

"알았어. 그럼."

찌뿌둥한 얼굴로 기레스는 아쉬움을 감출 생각도 않고 툴툴 거렸다.

"그럼... 갈게. 잘 자. 기레스."

'이상하네. 소피아도 상당히 발정 났을 줄 알았는데...'

소피아가 나간 문을 보면서 기레스는 아쉬움에 발을 살짝 구르면서 생각했다.

'으으.. 그냥 오늘은 즐기고 기술은 나중에 천천히 집중해달라고 할걸... 실수했어.. 설마 여기서 거절을 할 줄이야..'

'아무리 집중하는 게 필요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포상이라고 하면 좋아라 아양을 부리면서 안길 줄 알았는데.. 너무 자신했나.. 티나를 불러도 좋겠지만.. 소피아도 저렇게 참아가면서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데 바로 티나를 부르기도 염치 없고, 애초에 오늘은 소피아를 안고 싶었는데..'

눈앞에 아른 거리는 소피아의 잘록풍만한 신체에 방금 손가락에 걸렸던 말랑한 소피아의 살결의 감촉이 머릿 속에 떠오른 기레스는 슬쩍 침대에 시선을 옮기고는 군침을 삼키며 애단 걸음으로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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