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2화 〉 티나(124)
* * *
"으음..."
기술에 대해 고민하면서 밤을 지새우다시피한 기레스는 목이 말라 평소보다 이른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후우...."
물을 한잔 하면서 기레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피아가 가르쳐 준 기술을 바탕으로 방향성은 생각해 뒀다지만, 아직도 추상적인 느낌인데다 하고 많은 기술들 중에 선택을 해야 된다는 사실에 고민은 늘어만 갔던 것이다.
'대부분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고르기 힘들어...'
'어떤 소원이든지' '단 한가지만' 들어준다고 하면 인간이라면 선택장애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피아가 추천하지 않아서 선택할 마음은 없지만, 가령 젤가의 기술이나 소피아가 보여준 공기를 퉁기는 기술은 물론이고 기레스가 바란다면 그것보다 더한 기술들도 바란다면 얼마든지 익힐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선택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레스도 남자. 단순하게 강해 보이는 기술에 대한 로망이 없는 건 아닌 것이다.
"하아..."
'배부른 고민이긴 한데...'
"뭔 한숨을 그렇게 쉬어?"
기척 하나 없이 부엌 뒤쪽에 나타난 티나의 목소리에 기레스는 호들갑을 떨면서 놀라며 말했다.
"!? 깜짝이야."
화들짝 놀라는 기레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티나는 요망한 미소를 보이며 실실 거렸다.
"뭐하냐? 이런 아침부터?"
"어? 그냥.. 물이나 한잔 하려고 내려왔는데.. 오빠가 있길래.."
"아.. 그래? 자.."
고민하느라 바쁜 기레스는 시큰둥한 얼굴로 티나에게 물병을 건네주었다. 티나는 그런 기레스를 흘끗 거리다가 물었다.
"오빠는 다 마신거야?"
"다 마시긴 했는데 왜?"
"아니.. 새 컵 꺼내는 거 귀찮으니까 다 마셨으면 그냥 그 컵으로 마시고 치우는 게 좋지 않나 싶어서.."
슬쩍 눈치를 살피다가 티나는 태연하게 지나가는 듯한 어조로 기레스에게 말했다.
"뭐? 내가 마시던 건데?"
"뭐 어때? 당연히 씻어서 마실건데.. 그렇게 색골에 귀축인 주제에 꼴에 간접키스라도 의식한거야?"
도발이라도 하는 듯, 조롱 섞인 어투로 실실 쪼개면서 티나는 기레스에게 말했다.
'뻔뻔한 년.. 뭐, 이게 티나의 매력이긴 하지만..'
떡하니 간접키스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발언을 본인이 꺼내놓고는 마치 이런 일에 간접키스를 의식한 기레스가 팔푼이 같다는 듯이 몰아가는 티나의 뻔뻔스러운 귀여움에 기레스는 고민하던 것도 잠시 잊어 버렸다.
"지가 나한테 컵을 달라고 해놓고는 뭐라는거야? 의식해도 네가 의식해야지."
"그러니까 같이 사는 가족끼린데 그렇게 의식할 일은 아니라고 말하는 거잖아? 그렇게 따지면 오빠가 지금 들고 마신 그 컵, 당연히 나도 몇번이나 입을 댔는걸?"
"음... 그건 뭐.. 확실히 그렇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하는 기레스를 보면서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티나는 속으로 배시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몸으로 오빠의 시야를 가리고 씻는 척 하면서 안 씻어야지.'
이제와 간접키스 따위야 행위 자체만 따지면 애무도 뭣도 아닌 지극히 별 것 아닌 행위였지만, 불순하기 짝이 없는 변태적인 행위라는 것을 자각하고 의식하면서도 뻔뻔스럽게 기레스의 눈앞에서 실행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티나의 몸은 기레스에게 부드럽게 애무라도 당한 것마냥 달달히 달아올라 버렸다.
소고기는 소고기의 맛이 있고 돼지고기는 돼지고기의 맛이 있고, 닭고기는 닭고기의 맛이 있다고 애무나 섹스와는 또 다른 정신적인 흥분의 감칠맛에 티나는 살짝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나같이 오빠에 환장하는 변태는 없을.... 응?'
그렇게 자화자찬하면서 싱글거리던 티나는 기레스가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 물을 트는 것을 보고 멈칫거리며 물었다.
"아니, 오빠 뭐해?"
"뭐하기는 씻어주는거지. 자.. 옛다."
기레스는 잽싸게 컵을 깨끗히 씻어 티나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독살스러운 시선으로 고깝게 컵을 노려보던 티나는 컵을 채가며 냉랭하게 빈정거렸다.
"웬일이래? 동생을 육변기 취급가지 하던 귀축새끼가 친절하게 컵까지 다 씻어주고?"
"아니, 요즘 너 나랑 몸 좀 섞어대서 그런지 좀 살가워진 것도 있고, 나도 오빠로서 모범을 좀 보이는게 낫지 않나 싶어서.. 그리고 아까 엄마랑 즐기고 있을 때, 아버지 데리고 가준 거 고맙기도 했고.."
이러니 저러니 이유를 가져다 붙히는 실력은 기레스도 티나 못지 않았다.
'으으...'
바라지 않았던 친절에 티나는 부글거리는 속풀이라도 하듯 기레스에게 쏘아붙혔다.
"흥, 고마운 것에 대한 보상이 고작해야 이깟 컵 하나 씻어주는거야?"
"? 귀찮다길래 씻어서 줬더니만 왜 또 그렇게 저기압이냐? 애무나 섹스 같이 기분 좋은 것도 아니고, 설마하니 간접키스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닐텐데 친절하게 씻어 줬더니 또 뭐에 뿔이난거야?"
하나하나 살살 약오르는 발언만 해대는 기레스의 말에 티나는 곧장 따지고 들었다.
"시발. 엄마랑 뒹굴라고 그렇게 아빠를 빼줬는데 이딴 걸로 퉁치려는 게 맘에 안들어서 그렇지. 누가 간접키스 하고 싶대?"
"시발년.. 급하기는. 안그래도 원하는 거 있음 말해보라 하려 했는데.."
기레스의 대답에 순간 티나의 표독스러운 표정은 부드럽게 풀렸다.
"어? 그런거야?"
"그래. 이제 돈도 없는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거래봐야 애무 같은 거 밖에 더 있냐? 근데 그렇다고 내가 너한테 포상으로 애무라도 해줄까? 권유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엄마 없을 때 따먹어달라고 내가 부탁까지 했는데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반문하면서 티나는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저것마저 연기는 아니겠지..? 하여간 이상한 부분에서 찐따같다니까...'
"엄마나 클로에도 매일 같이 발정나는 건 아닌데 네가 하고 싶을 때면 몰라도, 하고 싶지 않을때 권유하게 되면 내 모양새가 어떨 거 같냐? 약점 잡아서 주인 행세하고 있을 때도 아니고.. 자의식 과잉인 사람처럼 권유하다가 거절이라도 당하면 얼마나 쪽팔리겠냐고."
'엄마나 언니는 매일 발정이 안난다고?'
방금까지 독살스러운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냉랭하게 쏘아붙히던 게 거짓말처럼 티나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반짝거렸다.
'그런 애무를 맛봤는데 그게 가능한가..? 음흉하기 짝이 없는 오빠의 말이니까 곧이 곧대로 믿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남들보다 좀 더 음탕한 변태인 건 사실이고.. 엄마나 언니는 그정도는 아닐 가능성도...'
빈말일게 뻔히 예상되는데도 티나는 어딘지 모를 우월감에 속이 근질거린 나머지 살짝 몸을 떨었다.
"어차피 너야 쾌락만 얻으면 되고, 나는 욕구불만을 풀어주는 도구같은 느낌이니까, 내가 나서서 애무하자고 권유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건데, 꼬라지를 보아하니까 애무 당하고 싶긴 했나보구만?"
"..... 그래."
여기서 괜히 퉁겼다가는 방금 전 설거지처럼 기레스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한 티나는 입을 삐쭉이며 순순히 애무 당하고 싶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직 식사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이른 아침인 만큼 조금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기레스에게 어떻게 애무 당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던 중, 문득 티나의 머릿 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어? 잠깐만.. 오빠가 원하는거 말하라고 했으니까 이거.. 단발성 애무로 날려버릴 필요 없잖아!?'
"오빠. 그럼 나 이제 원하는 거 말하면 되는거야?"
"애무 해달라며?"
'그건 당연한거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필사적으로 삼키면서 티나는 기레스에게 말했다.
"일단 애무는 됐고, 나 오늘부터 잘 때 오빠 방에 가서 자고 싶은데.."
"뭐?"
"그러니까 잘 때 오빠 방 가서 자고 싶다고. 딱히 엄마가 오빠 방 와서 자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노예 생활 할때도 방음 마법 가지고 그렇게 살았으니까 별 상관 없잖아."
"그래도 그건 좀 곤란한데.."
"또 뭐가? 살 부비면서 자는 거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좋은 게 문제지. 넌 어떻게 된 게 네 생각 밖에 안하냐. 시발 네가 내 방에서 자면 난 맨날 발정날 거 아냐."
"!?"
[꿀꺽]
자신 때문에 발정난다는 기레스의 말에 노예 생활 때의 문란한 시절이 떠오른 티나의 입 안에는 군침이 가득 고여 버렸다.
머리가 오싹오싹 저리는 것을 느끼면서 티나는 얼굴을 붉히곤 툴툴거리며 물었다.
"뭐가 문젠데? 내가 안 대줄까봐? 나라고 놀고만 있을 거 아니니까 애무도 해줄거지만.. 정히 꼴려서 못 참겠으면.. 대주면 되잖아?"
"매일 해달라고 하면 어쩔건데? 매일 뒹구를거냐?"
'아흐..'
아주 잠깐 상상한 것만으로도 티나의 속옷은 질척 거리는 게 선명히 느껴질 정도로 흥건히 젖어 버렸다.
"까짓꺼 하면 되잖아? 나도 기분 좋으니까 거의 항상 하고 싶은데 뭐 어때?"
은근히 자신을 항상 발정하는 변태라고 시인했다는 사실에 티나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너, 지금 내가 엄마랑 클로에랑 하고 있다는 건 잊고 있지?"
"응?"
"전에도 말했지만, 남자의 정력에는 한계라는 게 있다니까? 가뜩이나 사관학교 준비한다고 힘들어 뒤질거 같은데 너랑 매일 하게 되면 클로에나 엄마는 어쩔건데?"
'시발 그렇게 내가 꼴리면 그냥 나만 안으면 되지. 기레스 주제에..'
'엄마나 언니만 아니었다면 강하게 나갔을텐데...'
자신보다 매력이 떨어지는 여자가 상대였다면 몰라도, 소피아와 클로에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티나가 생각해도 열등감을 느낄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었다.
거기다 기레스가 자신을 대하는 취급을 생각해 보면 저 둘과 대놓고 맞붙으면 버림 받는 것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것도 티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같이 자는 건 포기하기 싫은데..'
티나는 기레스의 방에서 곁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여자라는 입장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알았어."
"음?"
"그러니까 오빠 말은 엄마나 언니도 범해야 되니까 나랑 매일 잘 수 없다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범한다니 말은 바로 해라. 누가 들으면 내가 강간마라도 되는 줄 알 거 아냐?"
"됐고, 그럼. 매일이 아니면 되겠네?"
"어? 음.."
"나랑 자면 발정난다는거 보면 딱히 오빠도 나랑 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닌거잖아?"
"크흠.. 그렇긴 하지."
"그러면 일주일에 적어도 3일은 자게 해줘."
'하여간 욕심은..'
그 와중에 일주일의 거의 절반은 자신에게 할당하려는 욕심이 티나답다고 기레스는 생각했다.
"3일... 음.."
"미리 말해두는 데 최소 3일인거야. 더 부르고 싶으면 더 불러도 되고, 대신 힘들어서 애무하기 힘들면 애무 같은 건 안 해도 돼. 하지만 일주일에 3일이상은 꼭 부르는 거야."
혹시나 기레스가 빠져나갈까 갖가지 옵션을 죄다 가져다 붙히면서 티나는 신신당부라도 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응? 잠깐만.. 근데 애무나 섹스를 안 할거면 나랑 자는게 너한테 뭔 도움이 되냐?"
"읏..! 나, 나도 사실 살 비비면서 자는 거 싫지 않단 말야. 남자친구도 없는데 내가 오빠 말고 어디가서 이딴 부탁을 하겠어?"
"음.. 하기사... 그런데 나같은 원수새끼랑 살 비비면서 자는 게 싫지 않다고?"
"시발.. 오빠 같은 남자한테 애무는 왜 당하고 싶어할까부터 생각해 보지 그래?"
"큭.."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해야지.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하읏♥'
기레스의 새삼스레 뭘 묻냐는 듯한 투박한 답변에 티나는 작은 절정감과 함께 보짓물을 적셨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