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티나(119)
* * *
한동안 클로에는 말 없이 하일즈를 꼭 안아주었다.
더 왈가왈부 하지 않고 자신의 치부를 꼬옥 감싸주는 클로에의 곱디 고운 마음이 얼마나 따스한지 하일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치태를 보였는데도 나를 이렇게...'
클로에와 티나, 기레스의 앞에서 주정을 부리며 자위를 했다니.. 기억에는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질 정도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하긴 싫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파혼을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추태였음에도, 자신을 위로한답시고 다정하게 먼저 사과를 해준 클로에를 생각하면 마음이 흐물흐물 요동쳐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는 하일즈였다.
'클로에..'
마을은 물론 나라에서도 내로라 할 미모도 미모지만, 하일즈는 클로에의 따뜻한 마음씨에 다시 한번 홀딱 반해 버렸다.
실로 일생의 반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반려자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 버린 것이다.
'흐음...'
그런 하일즈의 행복과 안도로 잔뜩 칠해진 표정을 보면서 티나는 피식 조소를 머금었다.
하일즈의 머리 위에 오줌을 싸지르면서 미칠듯이 자지러진 클로에다. 저 끌어안은 하일즈의 뒤로 클로에가 어떤 미소를 짓고 있는지는 보지 않아도 훤히 보이는 것이다.
저 도도하고 청순한 클로에가 등 뒤로 어떤 미소를 짓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티나의 음부는 흥분으로 촉촉히 젖어버린다.
살짝 흥분해 버린 티나는 문득 기레스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하일즈와 클로에가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레스는 숨길 생각도 없이 실실 쪼개고 있었다.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니까..'
기레스의 본성을 알고 보면 저 실실 쪼개는 모습이 어떤 웃음인지 그야말로 훤히 보이지만, 모르고 보면 어딘지 덜떨어지게 훈훈한 미소처럼도 보이는 것이다.
기레스를 바보만도 못한 인간으로 보고 있는 하일즈가 저 웃음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두 말할 것도 없다.
"아... 저기.."
끌어안고 얼마나 지났을까, 기레스는 특유의 어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응?"
"슬슬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아.. 그렇네."
기레스의 말에 클로에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면서 살포시 끌어 안았던 몸을 열었다. 아직 이르다면 이르지만 확실히 슬슬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기는 한 것이다.
'끄으.. 시발...'
슬슬 떨어질 때가 되기는 했다지만, 클로에의 포근한 포옹을 방해한 게 기레스라는 사실이 하일즈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덜떨어진 새끼는 왜 이리 하나하나 거슬리는 행동을 골라서 하는건지..'
"하일즈도 옷이 술에 젖은 채로는 찝찝할 테니까.. 얼른 몸부터 씻고 와. 마지막이기도 하고 식사 준비는 내가 하고 있을게."
"어? 어어.. 고마워 클로에."
하일즈의 감사를 클로에는 요사스러운 웃음으로 화답해 주었다.
'읏..!'
방금 전의 포근함과는 백만 광년 떨어진 듯한 클로에의 남자를 호리는 요망한 웃음에 하일즈의 성기는 빳빳히 서버렸다.
자신이 보인 추태의 창피함과, 클로에의 따스한 위로에 지금까지 잊고 있었지만, 방금까지 클로에를 껴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클로에의 웃음으로 자각해 버린 것이다.
요염한 웃음으로 자극받아 버린 성욕에 하일즈의 머릿속에는 방금까지 껴안아 눌린 몽글거리는 가슴과, 살내음이 선명히 떠올라 버렸다.
'이, 이런...'
"그, 그럼 씻고 올게.."
그 말도 안되는 추태를 저지르고도 주책도 없이 클로에 앞에서 발기를 해버렸다는 사실에 혹여나 들킬까 당황하면서, 하일즈는 도망치듯 욕실을 향해 달려가 버렸다.
"으음~♥"
하일즈가 부랴부랴 욕실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클로에는 그대로 기레스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을 걸어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하일즈를 속여 넘기고, 근처에서 입을 맞추며 배신하는 행위는 이미 클로에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감미로운 것이 되어 버렸다.
'음...'
혀를 걸어 요리조리 놀리면서 좋아라 분위기를 내는 클로에의 음탕한 모습을 보면서 티나는 배신할 대상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오빠도 저런 걸 좋아하는 거 같고.. 나도 조금 거들어 볼까..?'
이왕 기레스를 도와주는 거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 주는게 좋겠다고 생각한 티나는 따로 챙겨뒀던 물건을 가져와 클로에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지금부터 요리할 거지?"
"츄릅. 응? 으응.."
티나의 물음에 기레스의 입에서 얼굴을 뗀 클로에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혹시 이거.. 필요해?"
티나가 준비한 물건을 보자마자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왔던 클로에의 얼굴에 이채가 서렸다.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하고 싶어 죽겠다는 듯 머뭇거리던 클로에는 이내 고민을 끝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응... 필요해..♥"
'음.. 오늘 요리는 스프인가?'
몸을 씻고 나온 하일즈는 클로에와 티나가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래 저래 미안하기도 하고, 좀 도와줘 볼까..?'
"클로에, 뭐 도와줄 거 없어?"
"응? 아, 아냐. 괜찮아. 티나가 도와주고 있기도 하고.. 거의 다 끝났거든."
"그래?"
"응, 기다리고 있어."
어째선지 오늘따라 웃음기가 많은 클로에의 모습에 하일즈는 눈호강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클로에와 동거하면서 좀처럼 보기 힘든 여러 표정을 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클로에는 하일즈의 앞에서만큼은 무뚝뚝하고 쿨한 소녀로, 오늘처럼 농밀한 표정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쩐지 애교스러우면서도 살가워 보이는 클로에의 태도에 하일즈의 마음은 들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항상 완벽하려고 노력해서 몰랐는데, 의외로 클로에는 약한 모습에 약한건가..? 아니면... 동거를 해서 더 편해진 걸수도..'
하일즈가 이런 저런 착각을 하고 있는 사이, 클로에와 티나는 요리를 끝마쳤다.
"다 됐다."
한차례 클로에와 티나가 시선을 교환하며 싱긋 웃는 모습을 본 하일즈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티나랑도 꽤나 친해진 모양이네. 어젯 밤에 실수한 건 아쉽지만, 역시 동거하길 잘했어..'
"자, 하일즈. 기레스도.. 맛있게 먹어."
"잘 먹을게."
'음?'
한 숟가락 스프를 먹은 하일즈의 손이 멈춘다.
'뭐지..?'
스프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뭔가가 들어가 있는 것만 같은 이상한 맛을 느낀 것이다.
"음~~! 클로에. 고소하면서 진한게 엄청 맛있는데?"
찝찝한 맛을 느끼고 있는 와중에 건너편에서는 기레스가 맛있다고 야단법석이어서 더욱 마음이 불편한 하일즈였다.
"고마워 기레스."
'뭔가... 좀... 이상한데....'
"응? 왜 그래? 하일즈? 혹시 맛이 없어?"
살짝 불안함과, 걱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클로에는 조심스럽게 하일즈에게 물었다.
"어? 아... 아니.. 맛있어!"
세상 어느 남자가 이 상황에서 맛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하일즈는 허겁지겁 들이키듯 스프를 먹기 시작했다.
굳이 기레스가 바람잡이를 하지 않았어도 맛이 없다고 할 수 없을진대, 기레스가 맛있다고 말했다면 이미 하일즈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끄으...'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클로에의 신선한 모습이 또 귀엽기 짝이 없는지라 하일즈의 퇴로는 완전히 끊겨 버렸다.
"오빠도 참, 누가 뺏어갈 사람도 없는데 천천히 먹어♥"
"맞아. 급하게 먹다가 또 어제처럼 탈이라도 나면 좋지 않잖아? 정성껏 만들었으니까 음미하면서 먹어줘♥"
"어....? 어어.."
어딘지 키득거리는 두 미녀 사이에서 하일즈는 묘한 맛의 스프를 천천히 음미하며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식사를 끝마치고 등교준비를 끝마친 클로에는 짐을 가지고 집 밖으로 나왔다. 짐을 가지고 등교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단 클로에는 짐을 자신의 집에 가져다 놓고 등교하기로 했다.
'으.. 메슥거려..'
꽤 시간이 지났지만 하일즈는 아직도 아침의 묘한 식사로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일즈. 어디 안좋아?"
"어? 아... 오늘이 클로에랑 동거하는 마지막 날인게 아쉬워서...."
자신이 생각해도 잘 둘러댔다고 생각하면서 하일즈는 침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음... 그렇네.. 나도.. '정말로 아쉬워.'"
'어우..'
오늘따라 자주 보이는 소름끼치게 요염한 클로에의 미소에 하일즈는 몸을 움찔 거렸다.
집에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딱히 노출이 있는 복장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차림이었지만, 물씬 풍기는 요염한 분위기에 발정난 자지는 빨딱 서버린지가 오래였고,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에라도 집으로 돌아가 정신없이 문질러 한발 빼버리고 싶을 정도로 하일즈의 몸은 달아올라 있었다.
일주일 간을 집에서 함께 지냈는데도 질리기는커녕 간이고 쓸개고 다 줘버릴 정도로 하일즈는 더욱 흠뻑 클로에에게 빠져 버렸다.
'클로에가 나를 얼마나 사랑해 주는지도 알았고..'
어젯밤 미친사람마냥 주정을 부리고 자위한 일은 앞으로 수십년은 이불킥을 해버릴 정도로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덕분에 클로에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지를 알 수 있었다 생각한 하일즈는 잠시 수치심도 잊고 헤실거렸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런 추태를 보여도 저 클로에가 변함없이 날 사랑해 준다는거니까... 크으..!'
창피한 건 창피한거고, 클로에가 자신의 치부마저 사랑해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하일즈는 행복해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이 클로에를 사랑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지금껏 매사 감정표현이 무심한 클로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크게 자신이 없었던 하일즈에게 어제의 일은 클로에의 따사로운 애정을 확인할 계기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저.. 클로에."
"응?"
"우리 집에 초대까지 해놓고 어제는 정말로 미안해. 마지막이니까 최대한 즐겁게 마무리 짓고 싶었는데.."
"그 말은 그만하기로 했잖아? 그리고.. 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는걸?"
"고맙다고?"
"집에 초대해 준 덕분에 정말로..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전부 '하일즈 덕분이야.'"
하일즈가 '약혼자로 존재해 줬기 때문에', '하일즈가 초대해 줬기 때문에' 기레스와 숨이 멎어버릴 정도의 쾌락을 탐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클로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싱긋 미소지었다.
'으읏.. 클로에... 안고 싶다...'
거짓말 없이, 살살 사랑을 속삭이는 듯 마음을 희롱해대는 클로에의 속삭임에 하일즈는 애간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손만 뻗으면 금방이라도 끌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이 신기루라는 것을 하일즈는 잘 알고 있었다.
'티나의 말로는 클로에한테 들이대는건 역효과만 나는거 같으니까.... 참아야지... 아니, 티나 말이 아니어도 어제 그런 짓을 해놓고 들이댈 순 없지...'
닿을 듯 말듯 아른거리는 클로에의 매력에 끙끙 앓으면서 하일즈는 클로에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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