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티나(118)
* * *
"어어.. 클로에도... 잘 잤어..?"
클로에의 인사에 답하는 하일즈의 표정은 그다지 곱지만은 않았다.
기레스를 향해 웅크려 잠들어 있는 클로에의 모습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안겨 있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딘지 새근새근, 다정하기 짝이 없어 보였던 클로에의 분위기가 잊혀지질 않는 하일즈였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별 것 아니지만, 일주일도 넘는 시간 이 집에서 클로에와 같이 자보고 싶어 그렇게나 안달이 났던 하일즈는 시원스레 넘길 수가 없었다.
'하아... 시발... 화를 낼 수도 없고..'
설사 품에 안겨 있었다 해도 강하게 화내기 힘들진대, 단순히 기레스의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가지고 하일즈가 클로에에게 화를 낼 수 있을 리 없다.
화를 내면 내는 쪽이 속 좁은 인간이고, 의처증에 미친 사람 취급 받기 딱 좋은 일이라, 하일즈는 울분을 삭히고 속앓이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좁은 모포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저렇게 좁은 곳에서 저 병신이랑 잘거라면 그냥 이부자리를 따로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아... 시발.. 내가 자지만 않았어도... 음..?'
"저기.. 클로에."
"응?'
"어제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하일즈는 옷가짐을 들어올리고, 킁킁 거리면서 의심쩍다는 듯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물었다.
"아니... 왠지 옷도 축축하고.. 뭔가 이상한 냄새에, 또 나는 왜 여기 엎드려서 자고 있었던 건가 싶어서..."
다시금 옷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뭔가 술냄새에 쩔어서 잘 나진 않지만, 시큼하면서도 어딘지 친숙한 불쾌한 냄새가 풍겨온다는 사실에 하일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무슨 냄새지..'
"무슨 일이.. 있기는 했지..."
발그레 풀어진 얼굴로 클로에는 요망함이 듬뿍 담긴 웃음을 지으면서 말 끝을 흐렸다.
"아아앙... 하우으..♥"
"헤으으... 아아~♥"
원없이 싸질러진 백탁 속, 정취 속에서 클로에와 티나는 숨을 쌕쌕 거리며 더할 나위 없는 황홀한 표정으로 기레스의 품에 안겨 있었다.
햇살이 서서히 들어오는 새벽, 문득 클로에는 주변을 둘러보고는 불안해 하며 기레스에게 물었다.
"읏..! 저.. 기레스.. 근데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왜?"
"아니.. 냄새도 날거고... 주변이야 치우면 될 수도 있지만.. 하일즈한테 뿌린...... 것들은 치울 방법도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클로에는 몸을 파르르 떨면서 흥분하는데, 그 음탕한 심취에 기레스도 마음이 동해 다시금 자지가 빨딱 서버릴 정도였다.
"그러게... 언니.. 너무 즐긴 거 아냐?"
"즈, 즐기다니... 티나 너도 아까 쌌으면서.."
"나야.. 언니가 하니까 얼마나 기분 좋은지 궁금해서 한거고.. 아음~"
기레스의 몸에 달라붙은 정액을 핥으며 티나는 만족스럽다는 듯, 살포시 눈웃음 지으며 가볍게 대꾸했다.
"그나저나 확실히 좋기는 했지만... 아무리 하일즈 오빠가 사정을 몰라도 이건 들킬 거 같긴 한데.."
애액과 정액은 물론이고 소변까지 범벅이 된 하일즈의 몰골은 상당히 처참한 상태였다.
아주 찌들어 버릴 정도로 백탁에 물들어 버린 꼬라지는 티나마저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정도였던 것이다.
"들켜...?"
티나의 말에 클로에는 흥분한 건지, 두려운 건지, 알기 힘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을거야. 이게 있으니까."
기레스는 술병을 들고 악역에 어울리는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술?"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이 있지."
"오빠, 그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잖아?"
기레스의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 티나는 가볍게 핀잔주며 조잘거렸다.
"그냥 대충 알아듣지 하나하나 따져대기는... 여튼 '술에 취해' 인사불성으로 기절한 하일즈한테는 변명할 입이 없다는 말이야."
그렇게 실실 쪼개면서 기레스는 하일즈의 머리에 남은 독한 술을 졸졸 붓기 시작했다.
"음.. 으으으... 끙.."
머리에 쏟아지는 액체에 끙끙 거리면서도 수면제와 술에 취한 하일즈는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아.... 우으.......♥'
그렇게 기레스가 하일즈의 얼굴에 술을 붓는 것을 클로에는 부러워 죽겠다는 듯, 꿀이 떨어질 것만 같은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
"클로에도 해볼래?"
"응..♥"
기레스에게 술을 받아든 클로에는 흥분으로 신이 날대로 났는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하일즈의 머리에 술을 들이 부었다.
"잠깐만 언니.. 나도.."
"아............."
그런 하일즈를 더럽히는 클로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기레스를 보는 티나도 질새라, 클로에에게서 술을 받아 하일즈의 몸에 술을 뿌려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일즈는 애액과 정액, 소변에 이어 술까지 홀딱 젖은 꼬라지가 되어 버렸다.
"이걸로.. 냄새는 꽤 지워 졌겠지?"
"음.. 그래도 조금은 나지 않아? 거기다 술에 젖은 건 또 어쩔거고.."
"그러니까 골아 떨어진 하일즈는 말이 없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니까 그러네..."
단순히 아름답다를 넘어 소피아를 보는 것만 같은 요염함이 물씬 풍기는 클로에의 분위기에 하일즈는 순간 멈칫 거리면서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사실에 되물었다.
"뭐? 무슨 일이라니...?"
"오빠.. 모르는 게 약인 일도 있는거야."
"티나, 나.. 무슨 일 있었어?"
불난데 부채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살살 간을 보는 티나의 발언에 더욱 궁금해진 하일즈는 눈을 부릅뜨고 기레스를 바라보았다.
"크흠."
시선을 마주친 기레스마저 할 말 없다는 듯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홱 돌리자, 하일즈는 당황하며 생각했다.
'어제 내가 뭔 실수라도 했나? 생각해보자.. 내가 어제.. 술을 마시다가... 기분이 좋아서 좀 술을 연이어 마셨고.... 그리고... 클로에가 너무 독한 술을 마시지 말라 했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은 거기까지로,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하일즈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생각이.... 생각이 안나...!'
애초에 잠들어 버렸으니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리가 없지만, 설마하니 자신이 수면제를 먹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하일즈는 만취한 까닭에 기억이 끊긴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반응을 보니, 뭔가 실수한 것 같기는 한데....'
제 잘난 맛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 세우고 살아가던 하일즈에게 '술에 취해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실수했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기레스라는 존재가 눈에 밟힌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치부'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기레스가 알고 있다? 그것만은 하일즈에게 있어선 안될 일이었다.
'나중에 티나한테 따로 물어볼 수도 있긴 하지만, 어차피 듣게될 거라면 여기서 어떤 실수를 했는지 남자답게 들어 보고 내 손으로 해결하는 쪽이...'
실수를 하면 했지 얼마나 했겠냐고 생각한 하일즈는 한차례 심호흡을 가다듬고 시원스럽게 물었다.
"저.. 내가 무슨 실수라도 한거야? 도대체 어젯 밤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간 보는거야? 오히려 신경 쓰이니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꼭... 들어야 겠어?"
"응."
"후우... 알았어. 대신 괜히 들었다고 후회하진 마."
"그... 하일즈는 주사끼가 있더라?"
'역시 술을 마시고 실수한 건가..'
여기까지는 하일즈의 예상 범주 내였다.
자신의 옷에서 풍기는 짙은 술냄새, 끊긴 기억, 클로에나 티나의 태도를 보면 술로 인한 무언가의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해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어떤 실수였냐는 건데...'
술에 취해서 기고만장해서 뭔가 건방지게 굴었나? 지레 짐작하던 하일즈에게 클로에는 입을 열었다.
"어제 술을 마시다가 하일즈 네가 갑자기 처량하게 울기 시작했어."
"뭐..? 내가?"
"그..... 지금까지 내가 섹...스하지 않고 동거하면서도 은근히 피한게 서러워 죽겠다면서.. 바닥에 뒹굴러 술을 자신한테 뿌려 대면서 자해하더라구.."
"아.... 아....니.... 내..가... 진짜.......?"
어린아이도 아니고, 말로 듣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후끈 거리는 치태에 하일즈는 어버버 거리며 물었다.
그런 하일즈의 표정을 보고 클로에는 가슴이 찌르르 떨려오는 것을 느끼곤 살짝 입꼬리를 올려 히죽 거리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응.."
"항상 완벽하기만 한 오빠인줄 알았는데 나도 깜짝 놀랐지 뭐야.."
클로에와 같이 은근히 히죽거리면서 티나도 한 술 거들었다. 클로에에 이어, 티나까지 입을 맞추면 설사 없던 일이었다고 해도, 하일즈에게는 진실이 될 수 밖에 없다.
'확실히 요즘 그것 때문에 마음 고생을 하기는 했다지만.... 설마... 내가....'
요새 클로에와 뒹구를 수 없어서 얼마나 서운했던가, 취중진담이라고 짐작이 가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닌 하일즈에게 이미 자신의 치태는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여기까지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쪽팔려 죽겠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클로에의 말에 하일즈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응? 그리고 나서라니..? 뭔가 더 있어?"
"으응..."
자신의 약혼자를 골려 흥분한 나머지 울긋불긋 요염함을 풀풀 풍겨대는 클로에를 보고 하일즈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길래 저러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더.... 뭘 했는데?"
"그... 음... 그렇게 떼를 쓰길래 내가 위로를 좀 해줬거든.. 기억 나?"
"음.. 듣고보니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푸흣'
하일즈의 그 말에 클로에와 티나는 조소를 참아내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럼 다음 일도 기억 나?"
"미안.. 거긴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렇게 위로를 해주니까.. 하일즈 네가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을 해왔거든."
어딘지 발그레 심취한 느낌으로 클로에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다행히 이번 실수는 별 것 아니구만..'
취해서 기억에는 없는 말이지만, 사랑고백이야 방금 전 치태에 비하면 벌 것 아니라고 안심하기도 잠시, 이어지는 클로에의 말에 하일즈는 기겁을 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네가 얼마나 날 사랑하는지 보여주겠다면서... 바지를 벗고... 자위를...."
"뭐어어어어!!!!?"
"그러니까..."
"아니! 아, 알아는 들었어! 근데.. 거, 거, 거,,,, 거짓말이지? 아무리... 내, 내가 취했다고 해도...."
누가봐도 당황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하일즈는 눈알을 이리 저리 굴려가면서 혼란해 했다.
주책없이 클로에 앞에서 몸을 안 섞어 줬다고 주정을 부린 것도 모자라, 자위까지 했다니.. 아무리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퍼마셨다지만,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음... 너만 보면 난 이렇게 흥분해서 미칠 것만 같은데.. 왜 너는 안 대주냐고.. 날 사랑하지 않는거냐고 따지면서 그... 물건을 꺼냈는데, 평소 같으면 빼줬을 수도 있지만 기레스도 있는데 내가 뭘 해줄 수도 없어서 그냥 뒀더니... 자위를..."
"으.. 으으...... 하... 하하... 하하하... 자, 잠깐만.. 클로에 지금 짜고 나 놀리는거지?"
"짜고 치는 거 아니야. 오빠. 그래서 모르는 게 약이라고 내가 아까 말했잖아."
클로에의 말에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티나가 심드렁하게 사실이라고 못을 박아 버리자 하일즈는 머리가 새하얘져 버렸다.
'으 으으 으아아....!'
삼인성호라고 세사람이 우기면 없는 사실도 진실이 되어 버리는 게 세상이라고, 믿었던 티나까지 보증하고 나서자 하일즈는 이성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하일즈가 아는 고지식한 클로에는 이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할 인간이 아니고, 티나도 자신을 놀린답시고 저런 말도 안되는 거짓말에 동조할 동생이 아니다.
"그렇게 내 앞에 누워서 봐달라고 자위를 하고... 몇번 사정을 한 뒤에 술을 더 마셔야 겠다고 앉았다가 그대로 엎어져서 지금까지 자게 된 거야. 서운했는지 건드리지 말라고 뿌리쳐대서 방에 데려가지도 못하고.. 하일즈만 여기 내버려 두는 게 미안해서 우리도 거실에서 자게 된거지."
'하... 하하.. 저.... 정말 내가 그딴 말도 안되는 짓을 했다고...?'
'잠깐만... 그러고 보니... 술냄새도 술냄새지만.. 내 옷이랑 주변에서 나는 이 묘하게 익숙한 냄새는...!?'
하일즈도 클로에와 은밀한 정사를 나눴던 건장한 청년, 남자의 정액 냄새가 어떤 것인지 모를 리 없다. 술에 씻겨 잘 나지는 않지만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잔향은 분명 남자의 정액 냄새였던 것이다.
'아... 시발...!'
그야말로 아다리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게 하일즈는 머리에 망치를 후드려 맞는 것만 같았다.
설마하니 기레스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약혼자 클로에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티나와 난교를 즐겼다는 것을 하일즈가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일견 말이 안되는 것처럼 보여도, 정액의 냄새가 난다면 '클로에와 티나의 말대로' 자신이 술주정 하다 꼴사납게 감정을 못 이기고 자위를 했다고 생각하는 쪽이 하일즈에게는 이치에 맞는 것이다.
"으.. 그으... 으득.."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언제나 완벽해야만 할 자신이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하필이면 클로에 앞에서 벌였다는 사실에 하일즈는 정신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지랄 발광을 하면서 미친사람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버리고 싶었지만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하일즈."
그렇게 금방이라도 미칠 사람처럼 몸을 떨면서 분개하는 하일즈를 클로에는 살포시 끌어 안았다.
"어..?"
"미안해. 내가 지금까지 너무 서운하게 굴었지?"
"아... 아니... 내가 잘못 했는데.."
"얼마나 서운 했으면 하일즈 네가 그런 모습까지 보였을까 싶더라... 어제의 일, 하일즈는 창피하겠지만.. 나는 딱히 아무렇지 않으니까.. 괜찮아.."
"아... 으흑.. 미안... 미안해.. 클로에. 하아.. 후우.."
멘탈이 완전히 붕괴된 하일즈는 클로에의 따스한 위로에 순간 기레스가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한차례 왈칵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클로에의 앞에서 인간으로서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의 다정한 위로가 얼마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지, 울컥 거리는 것을 참느라 필사적인 하일즈였다.
"괜찮아. 그만큼 날 사랑해 줬다는 거잖아? 정말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쓰지마.."
그렇게 울컥이는 하일즈를 끌어안고 달래는 클로에는 즐거움이 그득해 보이는 요염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