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220화 (220/238)

〈 220화 〉 티나(112)

* * *

"하아..."

하일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며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응?'

창백한 얼굴로 어딘지 울상을 지은 것 같이 보이는 클로에의 모습은 절로 하일즈의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클로에도 상당히 아쉬워 하는 거 같네. 하긴 그런 복장을 입어주기까지 할 정도면 말 다했나..? 그러고 보면 오늘 복장도 나쁘지 않은데..'

노출이 심하지 않은 단아해 보이는 차림이라도 클로에가 입으면 당연한 듯이 성적 매력이 물씬 올라온다.

가슴을 까지도 않았는데 옷 위로 선명하게 드러난 몸선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든 한번 만져보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안달이 나버리는 하일즈였다.

"아버지랑 엄마가 오신대?"

클로에의 뒤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레스는 나대듯 끼어들어 하일즈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씹새끼 요새 클로에랑 같이 있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주제도 모르고 클로에한테 반했나..?'

클로에가 섹시한 옷차림을 입은 이후로, 기레스는 이전보다 은근히 클로에의 곁을 멤도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사실은 '클로에가' 기레스의 곁을 멤도는 것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리 없는 하일즈였다.

'병신 같은 새끼지만, 남자는 남자라 이건가.. 부질없는 노력하느라 애쓰는구만..'

이따금씩 클로에를 흘끗흘끗 곁눈질하며 쭈뼛대는 기레스의 찌질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 하일즈는 조소를 머금었다.

'클로에가 말 걸어 오는 걸 매몰차게 거절하는 성격은 아니어서 어떻게든 말이라도 거는 모양이지만..'

자신에게도 무뚝뚝하기 짝이 없는 클로에가 기레스에게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클로에가 기레스에게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하일즈는 보나마나 냉랭하게 상투적인 반응이나 했을 게 뻔하다고 지레 짐작하며 우쭐거렸다.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어차피 부모님이 돌아오시면 끝이고 내버려둘까..'

"어.. 하아.. 이제 좀 클로에랑 지내는 게 적응되나 싶었는데.. 아쉽다."

"그러게..."

하일즈의 푸념에 클로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귀엽다.'

클로에는 하일즈의 앞에서 평소 자기 생각을 내뱉는 일이 드물었다. 같이 살면서 나름대로 개방적이 된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아쉬워 하는 클로에의 갭모에가 하일즈는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흠.. 그래도 아직 이틀 정도 남았고, 어머니 아버지는, 내일 모레쯤 돌아오신다고 하니까... 내일은 마지막으로 파티나 한번 할까?"

"....."

그다지 파티를 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어서 침묵하는 클로에 대신에 기레스가 나서서 대답했다.

"아.. 그거 좋은 생각이네."

주책없이 또 나대는 기레스의 말에 하일즈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클로에의 앞에서 기레스를 타박할 수는 없었다.

"클로에는 어때?"

기레스가 하자고 하는데 클로에에게 이견이 있을 리 없다.

"응. 좋아."

"뭐어? 싫어!"

"아니.. 왜.."

"내가 노력해서 얻은 걸 왜 언니랑 공유해야 돼? 가이아스 구하면 나한테 써주기로 약속 했잖아!"

"야.. 야..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도 모르냐? 클로에랑 같이 지내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어차피 체력적인 문제도 없어서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겠다, 클로에랑 같이 즐기면 좋잖아."

"지랄하고 있네. 내 행복을 언니랑 나누면 반이 되지. 커지긴 뭐가 커진다는 거야? 헛소리 말고 가이아스는 언니가 우리 집 나가고 나면 그때 나한테 써."

툴툴 거리면서 욕심 부리는 티나가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기레스는 살짝 사정하듯 말했다.

"제발 부탁 좀 하자. 이번이 아니면 클로에랑 집 안에서 가이아스를 이용해서 떡칠 기회 잡기가 힘들다는 거 너도 알잖아."

'힘들기는..'

티나는 기레스의 영악함을 잘 알고 있다.

기레스가 마음만 먹으면 클로에랑 밤새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 따위 일도 아닐 게 뻔했지만, 이렇게 자신에게 매달리는 기레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주도권을 가져온 것 같아 마음이 근질거리는 티나였다.

"칫.. 근데 왜 가이아스는 하나 밖에 못 사온거야? 돈은 다 돌려 줬잖아."

기레스가 구해온 가이아스를 요리조리 돌려 보면서 티나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티나 너도 마을에서 내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잖아. 이것도 의심을 사가면서 겨우 얻어 온 거야."

"의심?"

"생각해 봐라. 이게 좀 비싼 물건이냐? 마을에서 병신 취급 받는 내가 거금을 주고, 뜬금없이 가이아스를 사고 싶다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하겠냐?"

기레스는 뭔가 미심쩍어 하는 랄크에게 진땀 빼며 변명했던 것을 떠올리며 티나에게 말했다.

'흠.. 그렇게 매사 바보인 척 하는 오빠가 의심까지 사면서 구해 왔다는 거네.. 근데 결국 이걸 언니랑 같이 쓰겠다는 거잖아!'

생각하면 할수록 얄밉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도와줬는데..."

입을 삐죽 거리면서 티나는 은근히 죄책감을 자극하는 애증어린 시선으로 기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미안해서 이렇게 허락을 구하고 있는거잖아.. 에이 시발년,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싫으면 어쩔 수 없지."

"뭐야? 포기라도 하게?"

이러니 저러니 투닥거리기는 해도 기레스와 티나의 관계는 완벽한 갑과 을의 관계였다.

기레스가 섹스를 빌미로 협박하면 못 이긴 척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끝마치고 있었던 티나는 눈을 껌벅이며 놀라 물었다.

"어쩌겠냐. 약속은 약속인걸. 거기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 줬는데 안된다고 하면 내가 포기해야지. 가이아스 없다고 섹스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건 가져가서 쓰고 싶을 때 써."

'으.. 귀축 주제에 신사인 척 하기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레스가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고 인정해 줬다는 사실에 마음이 콩콩 달아오른 티나는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나중에.. 두개 더 구해와.."

"뭐?"

"이건 내일 써도 되니까, 나중에 책임지고 내 전용으로 두개 더 구해오라고! 이 바보 오빠야. 아흣.. 시발.. 아흐으..."

대답 대신 쫀득하게 바지 안쪽으로 비집고 들어온 기레스의 음탕한 손가락에 티나는 귀엽게 욕을 싸지르면서 은근히 허리를 내밀어가며 호응했다.

"하아... 하아... 그래서.. 이건 내일 파티를 끝내고 사용할 생각인 거야? 아응♥"

기레스의 방에서 밑도 끝도 없이 밤을 새가며 미칠듯이 정사를 즐길 생각을 하니 티나의 입에는 넉넉하게 군침이 고여 버린다.

가랑이를 벌리고 기레스의 손길을 받아들이면서 티나는 금방이라도 침을 흘릴 것만 같은 녹아내린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내며 물었다.

"아니."

"?? 그럼..?"

"사실은......."

"와... 시발... 하읏.. 귀축새끼.. 으긋... 하아아앙~"

기레스의 흉계를 들어 흥분한 나머지, 티나는 빳빳하게 편 다리를 벌벌 떨면서 황홀한 절정을 맞이했다.

다음 날, 하일즈의 눈을 피해 기레스의 방에 들어온 클로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기레스의 앞이라고 해도, 클로에가 이렇게까지 감정표현을 하는 일은 꽤나 드문 일이었다.

"엄청 아쉬운 모양이네."

"당연하지. 기레스는 안 아쉬워?"

"아쉽긴 하지만, 어차피 정해진 일이잖아.."

'의외로 기레스는 현실주의자라니까..'

어떤 의미로는 자신보다 더 냉철하다고 생각하면서 클로에는 말을 흐렸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까지 집 안에서 즐겼던 정사들이 주마등처럼 클로에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짐승처럼 음탕하게 살을 치대거나, 서로 꽁냥거리면서 사랑을 나누며 부비적 거리거나, 살결을 맞대 껴안고 단잠에 빠지거나, 욕실에서 간질거리는 정사를 즐긴다거나, 하일즈 몰래 후려지고 '후렸던' 나날을 떠올리니, 클로에는 안타까움에 몸을 가눌수가 없었다.

'그냥 섹스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긴 하지만..'

자신의 변태성을 살살 간지럽히는 유페르 집안에서의 심장을 죄여오는 섹스는 보통의 섹스와는 또 다른 별미였는지라, 아쉬움에 마음이 시큰거리는 클로에였다.

"집안에서 하일즈 몰래 즐기는 게 그렇게 좋아?"

기레스는 클로에를 껴안아 손가락을 데굴데굴 굴려가면서 희롱하기 시작했다.

"아으읏.. 으응..."

그 적나라한 질문에도 클로에는 부인하나 하지 않고 교태스럽게 수긍하면서 단숨을 내쉬며 기레스의 애무를 음미했다.

"어머니 아버지가 와도, 딱히 우리 집에서 못 즐기는 건 아냐."

"뭐? 어떻게.."

"그건 나중에 말해줄게. 그건 그렇고 클로에 오늘 파티 말인데..."

"파티는 왜..?"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단순히 파티를 끝내고 그냥 내 방에서 즐기기만 하는 건 뭔가 조금 아쉽다고 생각되지 않아?"

"??"

기레스의 방 안에서 진하게 즐길 수 있으면 그걸로 좋기만 한 클로에는 기레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하게 즐겨볼까 하는데..."

"특별.. 하게..?"

귓가를 간질이는 기레스의 말에 클로에의 마음은 기대로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응. 하일즈한테는 조금 미안하게 될수도 있지만.."

'아.. 아아.......'

정확히 뭘 하려는 건지는 아직 듣지도 않았는데도, 하일즈에게 미안할 수도 있다는 한마디에 클로에의 속옷은 절조도 없이 흥분으로 흥건히 젖어버린다.

"어떻게... 즐길 생각인데..?"

그렇게 기대를 품고 물어오는 클로에의 얼굴은 요염한 색으로 듬뿍 물들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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