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티나(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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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하루의 일과를 끝마치고 돌아온 하일즈는 클로에와 티나가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오..'
원래 클로에와 티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어딘지 최근들어 클로에와 티나는 훨씬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냥 단순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상황 때문이 아니라, 서로 간에 풍겨오는 분위기가 정겨운 것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리감이 없게 느껴졌다.
'보기 좋구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장래에 아내가 될 클로에와, 귀여운 동생인 티나가 사이좋게 이야기 하는 모습은 하일즈에게 푸근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렇게 돼서... 좀 더 ..... ..... 연습하게 되었는데.."
"아.. 그치..? 나도 ..... 나빠서 혼났다니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간간히 말이 들리긴 했지만, 뭔가 전반적으로 소곤소곤한 어투로 시시덕 거리는 터에, 하일즈는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히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음? 아.. 하일즈. 어서와."
하일즈가 거실에 발을 들이자 마자, 클로에는 단박에 하일즈를 알아채곤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즐겁게 하고 있어?"
"아~ 여자들만의 그런 게 있어♥"
하일즈의 물음에 티나는 보란 듯이 요망한 미소를 보이며 놀리듯 답했다. 억양부터 교태스러운 행동거지에, 간드러진 표정에 이르기까지 묘하게 남심을 자극하는 티나의 모습에 하일즈는 흠칫 몸을 떨었다.
빤히 자신을 올려다 보고 있는 클로에의 무표정한 시선에 괜히 양심의 가책을 느낀 하일즈에게 티나는 마침 생각난 게 있다면서 말을 걸었다.
"아! 그렇지. 오빠, 나 물어볼 게 좀 있어서 그런데 지금 잠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응? 물론이지."
"그럼 언니 있다 봐~"
"으응...."
대답하는 클로에의 얼굴에 기대로 가득한 음탕한 빛이 물드는 것을 하일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2층으로 올라간 티나는 자기 방에서 무언가를 챙겨 하일즈의 방으로 들어왔다.
티나가 품에 들고 온 몇가지 책자를 보면서 하일즈는 살짝 의아해 하며 물었다.
"물어볼 거라는 게.. 공부 이야기 였어? 별일이네 티나. 네가 모르는 것도 다 있고."
"오빠라고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거나 하지는 않잖아? 나라도 모르는 것 정도는 있다구."
"하긴.. 그런데 나야 좋긴 하지만, 지금 한 방을 쓰고 있기도 하겠다, 모르는 게 있다면 클로에한테 물어봐도 되는 거 아냐?"
"바보. 기껏 오빠한테 언니랑 붙어 먹을 기회를 만들어 줄까 싶어서 챙겨 왔는데.. 무슨 눈치없는 소릴 하는거야? 오빠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집에서 같이 동거까지 하는데도 오빠랑 언니, 많이 붙어 있지는 못하고 있잖아."
"그렇긴 하지."
보통 하일즈가 클로에와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방과 후 돌아와서 셀린을 보기 전까지, 그마저도 클로에가 꺼려하는 티를 풀풀 풍기는지라 방에는 같이 들어갈 엄두를 못내고 간간히 마주쳤을 때 방 밖에서 잡담을 나누는 게 일반적이었다.
셀린을 같이 보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항상 같이 보면서 붙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자연히 하일즈도 못내 아쉬움을 느끼던 참이었다.
"언니가 오빠 방을 꺼려 하는 이유는 섹스할까 오해하는 게 창피해서 그런거잖아?"
"음.. 그렇지."
티나 답다면 다운 적나라한 말에 하일즈는 살짝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거침 없는 편이긴 했지만 역시 티나의 입에서 섹스라는 말을 들으니 좀 묘하네.'
티나 정도가 되면 당당히 섹스를 언급하는 자세도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매력과는 별개로 오빠인 입장에서 쉬이 반길 이야기는 아니었다.
'티나 말고 클로에가 티나처럼 개방적이었다면 좋았을텐데..'
클로에가 티나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하일즈는 아쉬움에 살짝 입맛을 다셨다.
"그러니까 오해를 사지 않도록 살살 밑밥을 깔자는 거야. 오빠랑 이렇게 공부하는 모습을 언니랑, 그 바보 오빠한테 보여주면서 방에서 만나는 건 지극히 건전하다는 걸 어필하자는 거지."
"음.. 그런 걸로 클로에가 내 방에 올까?"
"흐흥~ 이미 내가 언니랑 이야기 하면서 간을 다 봐뒀거든?"
티나는 자기자랑이라도 하는 듯 귀엽게 콧방귀를 끼면서 하일즈에게 말했다.
"뭐?"
"첫 날에 오빠 방에서 자기 싫다고 매몰차게 거절해 버리는 바람에, 괜히 언니도 단순히 오빠 방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서 가기 힘들다고 고백해 왔단 말야."
"클로에가 그런 말을 했어?"
티나의 말에 정액을 쥐어 짜였을 때, 클로에가 미안해 했던 것이 하일즈의 머릿 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러니까 적당히 구실을 만들고 부추기면 언니도 못 이긴 척, 오빠 방에 들어오기는 할 걸? 마침 리움 사관학교 시험도 코앞이니까 좋은 명분도 있고 말이지."
'확실히..'
어떤 의미로 클로에에게 '리움 사관학교'는 치트키급 명분이었다.
리움 사관학교가 중요하다고 고집스럽게 철두철미한 수행을 했던 클로에를 떠올린 하일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티나의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사 내 방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같이 공부 정도는 할 수 있을거고..'
이제는 집 안에서 기회만 났다 하면 질펀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클로에와 살을 치대며 떡치고 있는 기레스와 달리, 클로에와 붙어 먹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 하일즈였다.
"어때?"
"좋은 생각인 것 같아. 티나 널 가르쳐 줄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 한다고 딱히 손해 보는 것도 없으니까.."
'손해 보는 게 없기는..'
방 건너, 자신의 방에서 끈적하고 질척하게 살을 섞어 요분질을 해대고 있을 두 남녀를 떠올리면서 티나는 조소를 머금었다.
뭔가 기레스를 위해 하일즈를 속여 먹는다고 생각하니, 배덕감에 애무 하나 없이도 달큰히 속이 달아오르는 티나였다.
"그럼.. 오늘 공부가 끝나고 방에 돌아가면 슬쩍 언니를 부추겨 볼게."
검디 검은 속마음과는 달리, 기특하게만 느껴지는 티나의 열정어린 말에 하일즈는 절로 감동받아 버렸다.
"티나. 네가 나를 위해 이렇게 노력해 주다니... 오빠로서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거야."
"에이.. 그렇게 고마워 할 필요 없어. 오빠. '언니랑 오빠가 이루어져서 행복해지는 게' 나한테도 행복이라 돕는 건데 뭐.."
실로 여러가지 의미가 담긴 티나의 요사스러운 말의 진의를 하일즈가 알아차리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티나가 모르는 문제를 봐주던 하일즈였지만, 티나가 모르는 문제가 그렇게 많을 리도 없어서 곧 남매의 공부시간은 자연스럽게 연애 상담의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하일즈는 모르는 여자라는 입장과, 클로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허울 좋은 거짓말을 이용해, 티나는 청산유수로 나불대면서 하일즈를 질책해대면서 천천히 사고를 유도해 나갔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약혼자로써 말할 수 있지 않아?"
투정 부리는 듯한 하일즈의 호소에 티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글세.. 말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렇게 발정 났다고 광고하듯 요구해오면 아무리 하일즈 오빠가 상대라도 좋게 볼 것 같지는 않은데.. 하물며 고지식한 클로에 언니라면..."
"으읏.. 그런거야..? 그... 클로에도 나랑 하는 거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데도..?"
'아... 이게 언니가 말했던... 그 왕자병인가..'
있던 정도 없어질 것 같은 하일즈의 자뻑에 티나는 차디찬 냉소를 머금었다.
콩깍지가 씌였던 이전이었다면, 하일즈의 자신감을 높게 샀을지도 모르지만,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지금 하일즈의 천지 분간도 못하는 착각은 우습게만 보일 뿐이었다.
"싫어하는지 싫어하지 않는지 오빠가 어떻게 알아?"
"그야.. 클로에랑 같이 있다 보면 그정돈 당연히 알지. 그... 말로 하긴 좀 그렇고.."
'보나마나 기레스 오빠 때문에 발정난 걸 자기 때문에 발정 났다고 착각한 거겠지.'
클로에는 요령 좋게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어설프게 두명 다 사랑하느니 두명 다 포기해 버리는 것이 클로에라는 여자인 것이다.
하일즈가 클로에와의 관계를 착각 했다면 그 원인은 십중팔구는 기레스 때문일 것이 틀림 없었다.
"오빠, 애무를 싫어하지 않는거랑,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의미잖아. 언니가 섹스에 환장한 발랑 까진 년이야?"
"발랑 까지다니... 그건 아니긴 하지만.."
'아니기는..'
체면이고, 연인이고, 가족이고 다 내던지고기레스와의 음락에 빠져 허덕이는 클로에를 떠올리면서 티나는 속으로 세상 모르고 클로에를 두둔하는 하일즈를 비웃었다.
"언니가 오빠랑 하고 싶어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언니가 나한테 실망 했다고 말한 건 사실이니까.. 혹시나 이번 일이 잘 풀려서 오빠 방에서 공부하게 되면 너무 언니랑 하려고 안달내는 실수는 하지마. 오빠."
티나는 쯧쯧 거리며 나무라는 듯한 투로 하일즈에게 말했다.
"으으... 알았어."
그렇게 티나의 교육을 가장한 아무 말, 질타의 폭행은 식사시간이 다 되어서야 끝을 고했다.
'후우... 여자의 마음은 정말 이해를 못하겠네.. 애액을 지릴 정도로 발정 날 정도면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도대체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식사를 하기 위해 티나와 함께 방을 나설 때, 하일즈는 때마침 티나의 방에서 나온 클로에와 마주쳤다.
답지 않게 발갛게 물든 상기된 얼굴에 무언가에 젖은 것만 같이 반들반들하면서도 축축해 보이는 행색, 살짝 헝클어진 머릿결과 어수선하다고 해야할까? 어딘지 단정치 못해 보이는 차림으로 티나의 방 밖으로 나온 클로에의 모습에 하일즈는 눈을 떼지 못하고 흠칫 놀랐다.
평소 잘 벼려진 칼 같았던 클로에가 저렇게 풀어진 모습을 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그 가꾸지 않은 다소 난잡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모습이 사람을 미쳐 버리게 만들 것만 같은 마성의 요염함을 풍기는 것에 또 한번 놀란 하일즈였다.
"후우.. 아.. 하일즈."
"크, 클로에. 뭔 땀을 그렇게 흘려..?"
다시금 봐도 아찔한 퇴폐미에 하일즈는 말을 더듬으며 자지를 빳빳히 세웠다.
"응? 아아.. '티나도 없어서' 조금.. 운동을 격렬하게 해봤거든.."
살짝 헝클어진 머릿결을 쓸어 넘기면서 클로에는 쑥스럽다는 듯 홍조를 띠었다.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고혹적인 여성미가 흘러 넘치는 클로에의 자태에 하일즈는 순간 고여버린 군침을 삼키며 물었다.
"운동?"
"같이 집에서 지낸 뒤로, 한동안 단련을 못했잖아? 조금 불안해서 방에 티나가 없는 김에 좀 무리해 봤어. 식사하러 가는거지? 미안한데.. 난 좀 씻고 가도 될까?"
은근한 음탕함이 깃든 클로에의 자태를 멍하니 감상하던 하일즈는 뒤늦게 대답했다.
"어? 어어..! 천천히 씻고 와."
"고마워. 하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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