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2화 〉 티나(104)
* * *
기레스의 위에 올라 타 쾌락에 취해 녹아내릴 듯한 표정으로 클로에는 티나를 보고 입을 열었다.
"티나....."
방금처럼 적극적으로 살을 치대면서 움직이고 있지는 않았지만, 폭 담긴 서로 연결된 부위는 미세하게 살근살근 맛있게도 움직이고 있었다.
"하.. 아아... 아흣.."
부드럽게 슬근대는 와중에도 기레스의 손은 보란 듯이 봉긋 예쁘게 부풀어 오른 클로에의 유방의 밑둥을 잡아 조물거린다.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클로에의 풍만하기 짝이 없는 가슴은 찹쌀떡처럼 부드럽고 먹음직스럽게 기레스의 손 안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어, 언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티나의 말이 분노로 떨린다. 이미 클로에를 기레스의 하렘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하기로 말을 맞추고 연기하기로 다짐 했으면서도 눈앞에서 쾌락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클로에의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속이 달아올라 버리는 티나였다.
본래라면 클로에의 배신에 치가 떨린다는 듯한 연기를 해야 했지만, 이미 속이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티나에게 '연기'따위 불필요한 것이었다.
"티나.... 미안.... 미안해에... 앗.. 하으.."
기레스의 품 안에서 클로에의 끊어질 듯한 달콤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미안? 그런 말로.."
기레스가 주는 쾌락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건 없다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하일즈를 배신하면서 미안하다고 외치는 같잖기 짝이 없는 상황인지라 티나는 질색하는 어투로 클로에를 질책하려 들었다.
"하지만... 아읏.. 티나... 너도 말.. 했잖아.. '기레스의 애무는 기분이 좋다고...'"
"뭐...."
클로에를 도발한답시고 말했던 고백이 여기서 튀어 나올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티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방치되면... 발정나서... 미쳐 버릴 것 같다고... 아흑... 나도야....♥"
헤벌쭉 풀어졌던 클로에의 입가에 도발이라도 하는 것만 같은 요사스러운 미소가 살짝 감돈다.
아슬아슬하게 보일 듯 말 듯 스쳐지나가는 미소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버리는 그런 미소다.
'으..읏.'
배째라고 나올 것이라는 것은 이미 기레스에게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그 고지식한 클로에가 자신의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지어 보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티나는 순간 이성을 잃어버릴뻔 했다.
기레스의 품에서 음탕하게 꽁냥거리면서 솔직하게 부정을 털어놓는다니, 상상만으로 배덕적인 느낌인지라 부러움에 뇌가 바직바직 떨려 버리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연기고 나발이고 다 뒤엎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서야 결과적으로 버림 받는 쪽은 자신이 될 거라는 것을 기레스에게 휘둘릴대로 휘둘린 티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침착하자..'
"'나도'라니..? 뭐야? 마치 오빠랑 예전부터 만났다는 듯한 말투는? 언니... 설마.."
이미 진즉부터 다 알고 있었지만 마치 지금에야 알았다는 듯 티나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본래라면 필사적으로 충격 받은 척을 해야 했겠지만, 진짜 충격을 받고 있는 지금 티나는 따로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미안...♥ 티나... 응흐읏..."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고 있지만 기레스에게 매만져지는 클로에의 표정에는 음탕한 환희가 그득히 서려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클로에의 그런 치태를 티나는 입술을 파들파들 떨면서 노려보고 있었다.
'응? 티나녀석 어째 좀 오바하는 거 같은데..'
잠시 티나가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레스는 특유의 능글맞은 악당의 목소리로 거들먹 거리면서 티나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렇게 된 거야. 티나."
"읏... 짐승새끼.."
독기 서린 시선으로 티나는 기레스를 사납게 노려보면서 독설을 내뱉었다.
'티나 녀석.. 역시 꽤 연기를 잘한단 말이지. 나도 진짜 화났다고 느낄 정도니까 클로에 정도는 잘 속여 넘길 수 있겠어.'
입을 맞추고 연기한다고 생각해 티나의 본심도 모르고 기레스는 속 편히 생각했다.
"언니 한테는 손을 안 대는 조건으로 날 노예에 변기 취급 까지 해놓고는...!"
"클로에가 안기러 온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너만 해도 그렇게 싫어하다가 나한테 애무해달라고 얼마 전에 부탁해 왔으면서.."
"난 언니처럼 하일즈 오빠 같은 사귀는 사람이 없잖아! 내가 내 몸을 어떻게 굴리든 뭔 상관이야?"
'박진감 넘치는걸..?'
짜고 치는 고스톱, 눈 가리고 아웅하는 맞장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생동감 넘치는 티나의 반응에 기레스는 클로에의 뒤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감탄했다.
'뭘 실실 쪼개고 있는거야? 쪼갤거면 손가락이나 멈추고 쪼개지.'
이 와중에 이르러서도 클로에의 유두에 걸린, 기레스의 쫄깃하게 꼼지락대는 손가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옷 위로 모양 좋게 콩알같이 빨딱 선 유두를 보면서 티나는 괜시리 애무를 멈추지 않는 기레스에게 얄미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런 것까지 해주는데...'
"난 오빠한테 안겨도 아무 상관 없지만 언니는 다르잖아! 언니를 건드리지 않는 조건으로 내 순결까지 다 빼앗아 놓고는 뻔뻔스럽게 약속을 어겨?"
"그건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미안하면 손가락이나 멈추고 말하시지? 어차피 언니도 문란해 졌겠다. 약혼은 파기나 다름 없으니까 그냥 나도 하일즈 오빠한테 다 말해버려도 되는거지? 다 까발리면 아마 하일즈 오빠가 오빠를 죽이려 들 걸? 그래도 좋아?"
클로에에 홀딱 빠진 하일즈를 생각하면 티나의 협박은 일리가 있었다. 클로에와 결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유무는 둘째치고 하일즈가 기레스를 가만히 놔둘리는 없는 것이다.
"그건..."
기레스가 말을 흐리며 난처해 하는 척을 하자, 티나는 기세를 타고 미리 짜맞춰 뒀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크흠.. 이제부터 언니를 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지키면.. 하일즈 오빠한테 말하는 것만은 넘어가 줄수도 있어."
살짝 타협을 위해 말을 누그러뜨리면서 기레스에게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티나의 말에 대답한 것은 기레스가 아닌 클로에였다.
"싫어. 티나... 방해하지 마아..."
클로에는 등 뒤의 기레스에게 기대어 뽀얀 살결을 은근히 비벼대면서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언니 미쳤어? 하일즈 오빠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미안하지만... 미안한 것보다 이쪽이 더 기분 좋으니까.. 앗흐응..!"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지도 않은데도 클로에의 몸은 기분이 좋아 죽겠다는 듯이 팔딱 거린다. 그 모습을 볼때마다 부러움에 티나는 목구멍은 저절로 근질 거렸다.
"그렇다네... 어쩔 수 없구만.."
"어, 어쩔 수 없기는 뭐가 어쩔 수 없어?"
"하일즈한테 말하고 싶으면 말하라는 거야. 시발 까짓거 죽이기 까지야 하겠어? 잘됐지 뭐. 이 참에 클로에랑 맘 편히 떡칠 수 있게 되기도 할거고.."
"무, 무슨..!"
"이 년이 무슨은 뭔 무슨이야! 하일즈한테 다 까발리면 어차피 파혼될 게 뻔한데 내가 클로에랑 뭔 짓을 하든 이제 상관 없잖아? 그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마을 안에서 대놓고 사귀지는 않더라도 남이사 몰래 떡치든 말든 그때가면 무슨 상관이 있는데?"
"으.."
"그리고 하일즈한테 말하는 걸 말릴 권리는 없지만, 하일즈한테 말하면 앞으로 나한테 애무해달라느니 안아달라느니 헛소리는 꺼낼 생각도 말어. 시발 좀 꼴린다고 꼬박꼬박 자위도구 취급 당해주니까 사람을 호구처럼 보나본데 하일즈한테 말해버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너랑은 안 할거야. 알아 들었냐?"
'하... 후..'
기레스가 그냥 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티나는 순간 호흡이 막혀 머리가 띵하게 저려 시야가 샛노랗게 물들어 버렸다.
질펀하게 살을 뒤섞는 클로에 앞에서 기레스의 평생 쌩까겠다는 말에 이어, 이제는 트라우마에 걸릴 듯한 호구 취급 했다는 말까지 들으니 현기증에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아앙~ 기레스.. 으웁 츄릅."
다시 슬근슬근 기레스가 살덩이를 부비며 엉겨 붙어오자, 클로에는 고개를 돌려 교태스럽게 앙탈 부리는 소리를 내며 기레스와 혀를 섞었다.
"시, 시발.. 짐승..."
부러워 죽겠다는 듯 입술을 오믈 거리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티나에게 기레스는 건방떨면서 물었다.
"말 다 끝난거 아냐? 안 가고 거기서 뭐 하고 있어?"
"읏..!"
눈알을 굴리면서 연기인지 진심인지 티나는 고개를 팍 숙이곤 한참 몸을 배배 꼬면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눈을 부릅뜨고 기레스에게 입을 열었다.
"그.. 그... 말하지 않으면..?"
"뭐?"
"오빠랑 언니 사이... 하일즈 오빠한테 비밀로 해주면..... 나도 안아 줄거야?"
"어? 어.."
티나의 물음에 기레스는 클로에의 눈치를 살피는 척했다.
이미 클로에나 티나나 기레스가 눈치를 살피는 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연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내색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괜찮아. 기레스. 아히잇... 하읏. 으응ㅡ"
클로에는 음미하듯이 눈을 감고 기레스에게 몸을 맡기며 속삭였다. 기레스는 기레스대로 고맙다고 화답하듯 클로에의 살결을 음탕하게 쓸어내렸다.
자신을 후릴 때와는 전혀 다른 끈적한 애정행각을 티나는 눈꼴 시다는 듯 꼬라보면서 물었다.
"나도... 안아줄거냐고 묻잖아..!"
"어? 어.. 비밀로 해준다면야.. 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