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계네토기-209화 (209/238)

〈 209화 〉 티나(101)

* * *

수업 시간, 기레스는 아침 식사 시간 티나와 즐겼던 정사를 떠올렸다.

'무서운 년..'

클로에를 이용해서 아주 물 만난 고기마냥, 하일즈 몰래 자신을 후려대는 티나의 음탕함에 기레스는 어젯밤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 그렇게 사정을 했음에도 육봉을 빨딱 세웠다.

일견 무식하게만 들이대는 것 같지만, 소피아의 딸답게 배덕적인 요망함을 한껏 머금은 티나의 달콤한 유혹이 상당히 취향에 꽃혀버린 기레스였다.

'티나는 복수나 하고 치워 버릴까 싶었는데, 그 애미에 그 딸이라더니.. 참..'

오늘 아침 하일즈와 벽 하나 사이를 두고 끈적하게 서로의 성기를 교대로 빨았던 것을 떠올리자 바지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버린다.

'으음~'

[탁]

"아... ㅇ....."

아침의 일을 떠올리며 헤실거리던 기레스는 순간 뒤통수를 따갑게 때리는 무언가에 무심결에 신음소리가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두리번 거렸다.

"아..."

몰래 시선을 돌려보면 귀엽게 뺨을 부풀리면서 자신을 원망스레 바라보고 있는 클로에의 모습이 보인다.

'크, 클로에..'

평소 무표정한 클로에가 맞나 싶을 정도로 클로에의 표정은 톡톡 튀고 있었다.

귀엽게도 자기가 화나 있다는 것을 애교가 느껴질 정도로 어필해 대는데, 하일즈는 물론이거니와 기레스마저도 상당히 보기 힘든 표정이었는지라 기레스의 속은 절로 들떠 버렸다.

'그나저나 학교에서 아는 척을 하다니.. 어지간히도 안달난 모양이네..'

과거 기레스가 욕구불만으로 만들었을 때도 이렇게까지 내색한 적은 없던 클로에다. 아무리 티나에게 도발당했다지만, 얼마나 애가 타면 저렇게 뾰루퉁한 표정을 보이며 애처럼 투정을 부릴까 생각하니 티나 못지 않게 클로에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기레스였다.

'표정을 보아하니까.. 그래도 상황은 납득한 모양인데..'

클로에의 표정은 정말 질투심에 미쳐서 용서 못하겠다는 표정은 아니다. 질투심에 미칠 것 같아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납득은 하고 있어, 투정 부리듯 자신을 원망하는 표정인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은... 168번 학생."

'응? 168번? 나잖아?'

티나의 아침 정사와, 클로에의 질투에 역사 수업을 완전히 놓치고 있었던 기레스는 화들짝 놀라면서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어차피 내놓은 자식에 마을의 낙오자 취급인 기레스라지만, 뚜렷한 목적도 없이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게 즐거울 리 없다.

[톡]

'응?'

그런 기레스의 책 앞에 어느샌가 예쁘게 접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338쪽 다섯째 줄 둘째 문단. 그리고 방과 후 구교사로 와.]

'아...'

"흥."

슬쩍 클로에를 돌아보면 평소와 같은 냉랭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곤, 도도하고 새침하게 콧방귀를 끼는 클로에의 모습이 보인다.

방금 전 귀엽게 질투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냉랭한 무표정은 말만 무표정이지 평소의 클로에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깜찍하게만 느껴진다.

"기레스?"

"아 네.. 넷.. 그러니까 그런 세프람 제국의 동란을 제압한...."

그렇게 하루의 수업이 끝나고, 기레스는 오랜만에 주변의 신경을 쓰면서 조심스레 구교사로 향했다.

'수업을 끝마치고 여기 오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구만..'

전에 자신을 죽일뻔해 도망친 클로에를 쫓아 들어온 적은 있었어도, 클로에와 밀회를 즐기기 위해 방과 후에 만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후우..'

구교사의 창문 틈으로 정갈한 자세로 의자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클로에의 모습이 기레스의 눈에 들어온다.

숲에서의 섹시한 복장도, 집에서 입는 캐주얼한 차림도 좋지만, 저렇게 단정한 차림도 한 폭의 예술처럼 아름다운 클로에의 자태를 기레스는 느긋하게 감상했다.

"아, 안들어오고 뭐해?"

기레스가 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는 클로에는 한참이나 기레스가 밖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자, 괜시리 얼굴을 붉히면서 툴툴 거렸다.

"아.. 미안.."

"왜 부른지는 알고 있겠지?"

지긋이 질투심과 원망, 애정이 절묘하게 섞인 클로에의 날카로운 시선이 기레스를 훑는다.

"그야 뭐.. 티나가 그렇게나 달라 붙었으니까.."

"티나를 함락시켜서 만나러 온다고 해놓고선.."

살짝 뺨을 부풀리면서 클로에는 불만 가득한 눈으로 기레스를 추궁해 나갔다.

"이래서야 그냥 티나한테 기레스를 줘버린 꼴이 되버렸잖아!"

"클로에 미안하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내 딴에는 티나를 차근차근 함락시켜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티나 그 년이 그렇게 폭주해 버릴 줄은 생각도 못했단 말야."

'그 년...'

티나한테는 은근히 천박한 말투를 써대는 기레스의 말에 클로에의 눈썹이 부러움에 꿈틀 거렸다.

"폭주라니..?"

"너도 알겠지만 티나랑 나는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야."

"음.. 그랬지.."

최근은 어땠는지 몰라도, 분명 클로에가 기억하는 티나와 기레스의 사이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반면에 티나는 하일즈는 끔찍히 아끼거든? 하일즈 하나 지키겠다고 나한테 몸까지 팔 정도니까.. 그래서 하일즈의 약혼자인 너를 범하고, 싫어했던 나한테 범해져야 한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티나한테 엄청 원수취급 당했는데.."

'그러고 보니 어제 티나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클로에는 처음에는 기레스가 싫어 죽겠다고 고백 했던 티나의 말을 떠올렸다.

"남매사이긴 하지만 그런 원수 관계다 보니까 어지간해서는 넘어오지 않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최대한 간을 보면서 어떻게든 쾌락으로 길들일 생각이었는데... 설마 그렇게 원수나 다름없는 나를 상대로 티나가 쾌락에 그렇게 갑자기 빠져버릴 줄은 몰랐던거지."

"저번에는 아직 티나를 함락시키진 못했다고 했잖아."

"그땐 그랬지. 그런데 요 며칠 사이에 티나가 갑자기 들이대기 시작했다니까? 방금 간 봤다고 이야기 했지?"

"응."

"티나를 좀 안달나게 만들어 보겠다고 은근히 피하고 있었는데, 티나 요년이 욕정에 미쳐버렸는지 애무해달라고 들이대기 시작한 게 일주일도 채 안 됐어."

'일주일..'

실제로 티나가 적극적으로 들이대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기는 했지만, 그간 얼마나 기레스에게 질척질척 은근히 유혹해 댔는지는 알지 못하는 클로에는 생각보다는 짧은 기간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클로에 네가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만.. 나 어제만큼은 진짜로 티나를 꽤 피하려고 애썼거든?"

티나한테서도 들었던 말인지라 클로에는 귀를 쫑긋 거리며 물었다.

"어째서?"

빤히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클로에와 눈을 마주치며 기레스는 입을 열었다.

"일단 티나를 더 안달나게 만들고 싶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티나 그 녀석, 어차피 나한테 관심 있는 건 애무 뿐일 거잖아?"

"응? 그, 그래?"

클로에는 바로 전 날 신이나서 자신에게 기레스에 대한 애정을 속삭였던 티나를 떠올렸다.

분명 티나는 기레스의 애무만을 찬양하는 듯 보이기는 했지만, 그 찬양 속에는 자신 못지 않을 정도로 연심이 흘러 넘치고 있다는 것을 클로에는 뼈저리게 잘 느끼고 있었다.

'기레스는 자기 평가가 낮으니까..'

매사 기레스가 자신 없어 하는 것에 불만이었던 클로에지만, 이번만큼은 그 낮은 자존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어차피 클로에 '너랑은 다르게' 그 년한테 나는 자위도구에 불과할 게 뻔하다니까?"

"응? 으응...."

티나와 달리 자신은 인정받고 있다는 기레스의 투박스러운 말에 클로에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나 툭하고 새침하게 물었다.

"근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티나를 안긴 안은거잖아?"

"그게.. 아무리 네가 티나를 능욕한다는 거 알고 있다고 해도, 네 앞에서 애무하는 건 싫어할 거 아니까, 거절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 해보긴 했는데.."

'으으..'

티나한테도 들었던, 교차검증된 이야기인지라 자신 때문에 기레스가 노력했다는 말에 클로에의 마음은 더욱 콩닥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티나 이 년이 얼마나 지독한지.. 애무를 안해주면 하일즈한테 너랑 자기를 범한 거 다 꼰지르겠다고 협박까지 하더라니까?"

"뭐어..?"

하일즈와 자신을 지키겠다고 숭고하게 자신의 몸까지 바친 티나가 할 말이 아니었기에 클로에는 순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지만 이내 납득해 버렸다.

'하긴.. 나만 해도 될대로 되라고 하일즈랑 헤어지고, 그냥 기레스랑 결혼하고 싶었는걸.. 뭐..'

셀린의 방에서 오빠가 좋다고 그렇게 교태스럽게 앙탈부리던 티나가 자신과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르겠냐는 생각이 클로에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레스와 이어지지 못할거면 가정 째로 그냥 부숴버리겠다는 정신 나간 생각이었지만 클로에는 어딘지 남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하일즈랑 네 핑계를 대가면서 티나를 능욕했다고 해도, 사실 하일즈가 너랑 내 사이를 알면 안되는 거잖아.."

"응.. 그렇긴 하지.."

"거기다 티나 그 녀석... 엄마를 닮아서 솔직히 얼굴도 몸매도 진짜 예뻐서 말야.. 요망하게 대놓고 들이대면 나도 남자인지라 참기가 너무 힘들기도 하고.."

기레스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멋쩍은 듯 말했다.

'으.. 그 사족은 필요 없잖아..!'

이해는 되지만 납득은 절대로 해줄 수 없는 기레스의 변명에 클로에는 애처럼 은근히 뿜뿜 화났다는 기색을 보이면서 질투심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나저나 기레스..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이야? 아무래도 티나는 다 알고 있는 나한테는 다 밝히고 즐기고 싶은 모양이던데...."

"아.. 그런 거 같긴 하더라.."

"오늘도 주방에서 즐긴거지?"

째릿 기레스를 쏘아보면서 클로에가 물었다.

"..... 그, 그렇지.."

"사실 나도.... 그런거... 하고 싶어서... 기레스의 집에 갔던건데..."

클로에의 말투에는 부러움과 애절함이 뚝뚝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클로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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