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 티나(96)
* * *
티나가 방을 나간 뒤, 클로에는 얼이 빠진 멍한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고 알고 있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상상과 현실의 간극은 너무나도 멀고도 험난한 것이었다.
'이러려고 기레스의 집에 온 게 아닌데..'
클로에의 야심찬 계획대로라면 지금쯤은 슬슬 몰래 기레스의 방에 기어 들어가 음탕하게 질척이는 장난을 치고 있거나, 그게 아니어도 아까 전 티나가 했던 것처럼 티나와 하일즈의 눈을 피해 은밀한 정사를 즐겼을테지만, 티나의 폭주 아닌 폭주에 의해 클로에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으으...."
애간장이 녹아, 마음이 시큰 거려서 클로에는 티나의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끙끙 거렸다.
'지금쯤.. 티나는..'
티나가 내려간지도 이미 수 분, 총총 걸음으로 셀린의 방에 기어 들어간 티나가 '자신이 즐기고 있었어야 할' 음탕한 정사를 즐기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속이 달아 올라 버린다.
대담하게도 시시덕 거리며 기레스에 대한 것들을 고백했던 티나를 생각하니 클로에의 속은 지글지글 끓어 올랐다.
누군가를 원망할 수 있어서 욕이라도 시원하게 내뱉을 수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테지만, 아무리 얄밉고, 질투나고, 화가나도 클로에는 티나를 욕할 수가 없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먼저 배신한 건 나고..'
하필 그렇게 배신한 자신과 하일즈를 지켜보겠다고 티나가 기레스에게 몸까지 바쳐버린 상황에, 한시라도 빠르게 티나를 타락시켜 달라고 기레스에게 부탁한 것도 자신인데 무슨 염치로 티나를 욕하겠는가.
'그래도...'
인간은 이기적인 생물이라고, 염치가 있든 없든, 속 안을 멋대로 헤집고 다니는 시퍼런 칼날 같은 질투심이 어디 사라질 일은 없다.
어딘가 투정이라도 부려서라도 이 서슬퍼런 질투심을 풀고 싶어 미칠 것만 같은데, 마음 풀 곳은 없는 클로에는 끙끙 앓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리던 클로에의 갈 곳을 잃은 질투심은 다른 방향으로 훌쩍 넘어가 버렸다.
'내기랑... 섹스랬나...?'
촉촉히 젖은 시선으로 클로에는 티나가 자랑스럽게 고백하던 기레스의 능욕을 떠올렸다.
내기에 지면 섹스라니.. 상상만으로도 먹음직스러운 이야기인지라 클로에의 입에는 절로 군침이 고여 버렸다.
'티나가 말했던 어투를 생각해 보면 '결국에는' 내기를 졌다는 느낌이었지..?'
그 내기의 과정 속에서 얼마만큼이나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댔을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찔거리고, 음부가 찌르르 떨려오는 클로에였다.
'얼마나 즐거웠을까..'
자신이 기레스에게 개발 당하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클로에는 티나의 침대 위에서 가녀린 손가락을 슬그머니 음부에 가져다 대었다.
"아으응.."
이미 촉촉히 젖은 것은 당연했고, 거듭된 음탕한 상상에 얼마나 민감해 졌는지, 클로에는 음핵을 건드리자마자 쾌락에 몸은 물론, 혼백마저 떨려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 버렸다.
"으읏..."
자위다운 자위를 한 것도 아닌데 이미 팬티는 흥건하다 못해 흐를 정도로 젖었고, 팬티 위로 어루만졌던 예쁜 손가락에는 끈적한 애액의 실이 늘어져서, 더 했다가는 같이 자게 될 티나의 침대를 아주 못 쓰게 만들어 버릴 것 같아 클로에는 어쩔 수 없이 자위를 멈추었다.
그나마 폭발할 것 같은 질투심을 달랠 마지막 수단인 자위마저 못하게 된 클로에는 보기 드문 뚱한 얼굴로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거짓말쟁이.."
'두 달이면 티나를 함락시키고 안아주러 오기로 약속 했으면서...'
결국 클로에의 갈 길 잃은 분노는 기레스에게로 넘어가 버렸다.
약속한 두 달은 이미 까마득하게 넘었고, 티나가 저렇게 홀라당 빠졌는데도 아직까지 티나와 정리를 하지 않은 기레스에게 클로에는 귀여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 일단은 기레스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좋아.."
영원히 흐르지 않을 것 같은 시간도, 목적이 명확해 지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
흘끔 티나 방에 놓인 시계를 확인한 클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 생각했다.
'하일즈가 셀린을 보고 두시간 쯤 지나서 기레스와 교대를 했으니까.. 당연히 기레스도 이제 슬슬 티나와 교대를 했을거야.'
얼마나 지독하게 지다린 시간이던가. 클로에는 조심스럽게 티나의 방문을 열고 혹여 누가 들을새라 살금살금 기레스의 방을 향했다.
문을 두드릴까 살짝 망설였지만 기레스와 자신의 관계겠다, 혹시나 하일즈가 들을까 신경이 쓰인 클로에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기레스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으.. 읏.....'
달빛만이 들어오는 어둑어둑한 방에는 인기척이 느껴지질 않는다.
'서... 설마...'
[으득]
이미 교대하는 두 시간은 30분이나 지난 시간, 아직도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않은 기레스에게 클로에는 질투심에 치를 떨 수 밖에 없었다.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
클로에는 기레스와 연습이라는 핑계를 대며 질펀하게 즐겼을 때도, 두 시간을 넘긴 일이 거의 없었다. 하물며 최근 소피아가 감시하는 단련 도중에는 더더욱 짧은 시간밖에 즐기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이놈의 티나는 이미 두시간하고도 30분이나 기레스와 뒹구르고 있는 것이다.
'집에서 그렇게 몰래몰래 짬짬히 즐길 수도 있는데.. 이렇게 밤새도록....?'
자신도 그렇게 후려지고 싶다는 생각과, 합법 여동생 티나에 대한 질투심에 온몸이 오슬오슬 떨린다.
'아냐.. 셀린 보는 거 다 끝났으니 씻고 올라올 수도 있을테니까.. 기다려 보자. 기레스의 방은 처음이기도 하고..'
[스읍]
단련을 할 때, 언제나 스쳤던 기레스의 체취가 사방 팔방에 만연했다는 사실에 클로에는 기레스의 침대에 앉아 가까스로 마음을 바로 잡았다.
'기레스의 침대..'
눈을 감고 명상하는 척 하면서 그대로 클로에는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뉘였다.
"스읍 하아.. 아으~"
'역시 너무 좋아.. 여기서 기레스한테 안길 수 있으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상상해 버린 클로에는 오랜만에 배시시 푸근한 미소 지었다.
그렇게 이부자리에 얼굴을 박고, 숨을 들이키며 좋아라하던 클로에의 몸이 일순간 굳어 버렸다.
'.......'
체취가 나는 것은 기레스만이 아니었다. 예민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맡았던 낯익은 여성의 좋은 냄새가 기레스의 이부자리에서 배어 있는 것을 클로에의 코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하, 아니, 진짜... 시..."
티나는 티나대로 기레스에게 헤롱거린다고 인증했고, 기레스도 기레스대로 티나를 조교해야 되니, 누구에게 기가 막혀 해야 할 일은 아니었지만, 클로에는 속 안에서 거칠게 소용돌이 치는 마음을 도저히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두시간이나 네시간 정도가 아니라 기레스나 티나 본인의 방에서 밤새도록 서로의 속살을 맛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클로에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럼.. 집에서 가족들의 눈을 피하면서 그렇게 음란한 장난도 하고, 셀린을 봐주면서도 애무하고, 다 끝나면 기레스의 방에서도 몸을 섞는다는 거야? 아니.. 아니이...!'
얼마 전까지 티나의 사정이 어떤지 따위, 전혀 알 길이 없는 클로에가 그리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방방 뛰고 싶을 정도로 속이 달아 오른 클로에는 이불을 코 끝에 가져가면서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부러워...'
기레스와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짧은 시간, 외박 따위는 꿈도 못 꿨던 클로에에게 티나와 기레스의 관계는 너무나도 부러운 것이었다.
이부자리에서 풍기는 냄새는 잔향 뿐이지만, 얼마나 시도 때도 없이 짐승처럼 즐겼을 지는 머릿 속에 훤히 그려지는 것이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남매사이라니... 치사해... 친남매기라도 하면 이런 걱정... 할 필요도 없는데..'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 소피아를 닮아 외모는 남자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귀엽고 아름답지, 거기에 기레스를 향한 연심까지 뭐 하나 클로에의 속을 쿡쿡 찌르지 않는 게 없다.
"딱 20분만 더... 기다려보자.."
20분이 지나, 이제는 한시간을 거의 바라볼 무렵이 되어도 여전히 기레스는 올 기색을 보이지 않자, 클로에는 한번 숨을 고르고 기레스의 방을 나섰다.
소피아도 듣지 못하게 할 각오로 소리 하나 새지 않게 살금살금 까치발을 들고 클로에는 조심스럽게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음?'
식당과 거실을 지났지만 별다른 소리가 나지 않아 클로에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혹시나 몸을 씻고 있을까 싶은 마음에 욕실을 가봤지만 당연히 욕실에는 아무도 없어서, 클로에는 신중하게 셀린의 방으로 발걸음을 놀렸다.
'왜 아무런 소리도 안나는 걸까?'
아무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하일즈에게도 몰래 즐겨야 된다고는 하지만, 조금도 새어나오지 않는 소리에 클로에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뭔가 인기척은 느껴지는 것도 같은데 기가 막히게 소리만은 새어나오지 않는 듯한 묘한 느낌이다.
평소 기레스에게 안길 때, 도저히 단숨을 참기 힘들었던 클로에이기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혹시 애무는 벌써 끝나고 그냥 셀린만 보고 있다거나? 아니면 지쳐서 그냥 잠을 자고 있다거나?'
하지만 그 경우라면 기레스가 돌아오지 않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아 여전히 속은 의심으로 뭉글거린다.
'어쩌지...'
속으로 고민하는 척 하곤 있지만, 이미 질투심과 호기심에 클로에의 이성은 형체도 없이 녹아내린지가 오래였다.
'조금만 열고 확인해 보는거야.. 별 일 없으면 닫고 돌아가는걸로....'
"핫, 앗, 아... 하아, 읏,, 거기이... 하아.. 하읏.. 아핫♥ 좋아아. 아히잇!"
그렇게 자물쇠를 따는 도둑보다 더 신중하게 문을 열자마자, 방 안에선 이보다 더 음탕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달콤한 교성소리가 곧장 클로에의 귓전을 때리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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